국내도서 요약 

배낭 속에 담아 온 음악

저   자
현경채
출판사
학지사
출판일
2016년 03월
서   재







  • 저자인 현경채는 음악평론가이자 영남대학 겸임교수이고, KBS와 국악방송, 교통방송 등에서 수년간 방송 진행자로 활동했다. 저자가 여행 다니며 직접 찍은 수많은 사진과 첨부한 자료 사진들은 생생하게 아시아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 다양한 아시아의 음악 종류들과 여행 중에 만난 음악 명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한 나라만의 고유한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독창성으로 차별화 된 음악 문화는 바로 그 나라의 경쟁력임을 알려주고자 한다.



    배낭 속에 담아 온 음악


    중국 - 광활한 영토가 빚어 낸 다양한 음악

    미국을 위협하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자금성과 만리장성, 진시황릉 등 조상이 남겨 준 화려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었던 나라다. 세계가 중국을 주목하게 된 것은 인구만 많던 가난한 나라에서 전 세계의 무역상대국 1위로 국가의 위상이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의 도시는 아마도 상하이일 것이다. 상하이는 1920년대 말 갑자기 솟아나 파리에 맞서기도 했을 만큼 모던한 신여성과 댄디보이의 도시다. 중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도시는 베이징이다. 『도시 수집가』라는 책에서는 인간계에서 한 뼘쯤 떠올라 천계의 그늘 밑에 자리 잡은 오래된 도시이며, 천계와 인간계 사이의 도시가 바로 베이징이라고 했다. 한국을 찾은 관광객의 수도, 결혼 이민자의 수도, 유학생의 수도 단연코 중국이 1등이다. 예로부터 한국의 문인들은 줄곧 중국을 동경했으며, 한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중국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중국 인구의 대부분은 한족이고, 몽고, 회, 장, 묘, 조선족 등 56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수민족은 전체 인구의 약 8%에 불과하지만 분포되어 있는 지역은 전체 면적의 약 50~60%를 차지한다. 현재 중국은 21개의 성(省)과 5개의 소수민족자치구, 그리고 3개의 직할시로 구성되어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인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음악 문화를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중국 음악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경제는 물론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였다. 2008년 3월부터 베이징올림픽 기간인 9월 말까지 6개월 동안 진행되는 중국 음악 공연은 3월 20일 베이징음악홀에서 있었던 중앙가극원의 공연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베이징올림픽 기간 중 공연되는 중국 음악은 140여 개의 다양한 전통 작품으로 구성된 600여 회의 무대음악 작품이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개회되었다.


    베이징올림픽 문화 행사를 위한 준비 작업은 2002년부터 단계적으로 중국 정부 주도하에 진행되었으며,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된다. 첫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인 수준의 국가 브랜드 공연물 발굴사업인 국가 무대예술 정품공정 프로젝트이고, 둘째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중국의 문화유산을 문화재로 인정하는 중국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사업이다. 엄청난 규모로 기획된 이 두 사업은 모두 중국 정부의 문화 정책으로 진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002년부터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된 국가 무대예술 정품공정 프로젝트는 총 240억 원이 투입된 사업이다. 베이징올림픽에 맞추어 베이징 인민광장 옆에 완공된 국가대극원 개관에 세계 수준의 새 극장에 어울릴 만한 무대 작품을 확보하겠다는 목적으로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선 공연 진흥책이다. 2002년부터 매년 30개의 작품을 예비 선정해 1차로 제작비를 지원하였고, 그중 10개 작품을 최종 선정 후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2007년에 마무리되었다. 중국 전역에서 엄선된 중국을 대표한 예술작품은 경극을 비롯하여 곤곡, 화극, 지방음악극, 어린이 음악극, 가극, 무용극, 인형극, 오케스트라 연주, 민족음악, 전통서커스, 민속연회 등으로 중국 색채감을 짙게 담고 있는 중국전통을 무대예술화한 풍성한 결과물이다.


    국가 무대예술 정품공정 프로젝트는 창작 기폭제라는 평과 돈으로 도배했다는 엇갈린 평가가 있었지만, 전통극을 현대적으로 탈바꿈시키고, 세계 무대에 수출할 수 있는 명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21세기 중국 문화 지도를 바꾸어 놓은 대단한 사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국가 무대예술 정품공정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수준의 무대예술 작품을 위한 볼거리 중심이라면, 중국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사업은 진정으로 중국 색채를 담고 있는 중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사업이다. 중국 정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중국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중국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사업을 진행하였다. 한국의 무형문화재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001년과 2003년에는 중국의 곤곡과 고금 음악이 유네스코의 세계무형유산 걸작에 등록되고, 2005년 11월에는 중국 신강성의 위그루무카무와 몽고족 장조민가가 추가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면서 중국의 풍부한 무형문화유산을 체계 있게 정리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조사 작업과 함께 진행한 것이 바로 2005년에 시작된 중국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사업이다.


    중국 음악은 1950년대 이후 악기 개량 사업의 영향으로 서구화되는 경향이 발견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케스트라 편제의 중국 음악 연주가 중국의 음악 흐름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서양음악적인 개념과 작곡기법이 도입되고, 서양 악기가 중국 전통악기와 나란히 연주되면서 한동안 혼합되는 음악 문화를 경험했다면, 중국 정부의 문화 정책으로 근자에 실시된 중국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사업은 중국 고유의 색채를 담고 있는 중국 전통음악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더 나아가 중국 전통음악을 재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비물질 문화유산과 국가 무대예술 정품공정 프로젝트 사업으로 중국 전역에서 선정된 중국 전통음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간에 집중적으로 공연되었다. 전 세계를 향해 문화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당당하게 알렸다. 역시 중국은 무궁무진한 전통음악 콘텐츠를 보유한 나라인 듯싶다.



    대만 - 때로는 섬세하고, 때로는 토속적인 소박함의 음악

    최근 여행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경험하지 못할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여행을 리미티드 여행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곧 운행이 중단될 기차를 타러 가거나, 멸종 직전의 야생 동물을 관찰하는 것, 빙하 위를 걷는 것 등이 해당된다. 내게는 2015년 1월의 쿠바가 그런 여행지였다. 또한 이번 대만 여행처럼 그곳의 음악 문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일종의 리미티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통문화가 차츰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니 말이다.


    대만 사람은 중국인이기도 하지만 본토와는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음악 문화도 같은 듯 다른 듯 자신만의 것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과 홍콩, 대만은 같은 중화권이고 모두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지난번 대만 여행 중에 썼던 나의 일기를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2016년 2월 10일 대만 여행 8일째

    예전에는 대만식 억양의 중국어를 싫어했다. 북경식으로 R발음이 강하게 들어가서 꾀꼬리가 노래하는 것 같은 본토 중국어를 상류사회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여행 경험으로 나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 본토의 경제적인 급성장으로 중국인들의 본격적인 해외여행이 시작되면서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시끌벅적한 중국인 관람객들을 만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본토 발음의 중국어가 들리면 슬그머니 멀리멀리 그들과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급성장하여 전세계를 여행할 정도는 되었지만, 예절은 아직 글로벌하지 못하다. 어디를 가나 목소리가 높고 큰 소리로 떠드는 중국 대륙 사람들과는 달리 대만 사람들은 아주 조용했다. 지난 일주일간의 상하이, 쑤저우, 항저우의 여행은 그들과 섞이며 참으로 힘든 여행이었고, 반면에 대만 여행은 착하고, 남을 배려하고, 조용하고 정직하고, 예의 바른 대만 사람들로 인해 어느 일본의 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으며, 대만 억양의 중국어에 대한 인식이 급호감으로 전환되었다. 대만은 일본의 조용하고 나긋나긋함을 많이 닮아 있었다. 어디서든 사람들의 따뜻한 친절과 정을 느끼게 해 주는 소박한 대만이야말로 정말 매력적인 여행지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음악극, 가자희

    가자희는 유일하게 대만에서 생겨나고 자란 향토적인 음악극이다. 중국의 극음악은 대체로 중국 본토의 난양평원 일대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특이한 사례다. 가자희는 시작에서 전승까지 대략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음악극으로, 초기에는 민요 수준의 단순한 노래로 가자라는 노래를 기초로 했다. 그 후 단계적으로 차고희가 포함되었으며, 분장과 복식 등이 전문화되며 점차 음악극으로서 체계를 갖춘 가지진과 낙지소로 발전하였고, 거기에 가무가 곁들인 작은 음악극 형식의 본지가자가 완성되었다.


    가자희는 대만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독특한 유행의 흐름을 형성하였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세력이 확장되었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겸비한 음악극의 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경극과 북관, 복주반 등의 기타 극음악의 표현양식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완전한 대형 음악극으로 완성되었다. 상당수의 경극 배우나 북관의 예인이 부득이하게 가자희를 겸하여 공연하거나 완전히 가자희 쪽으로 전공을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가자희가 표현기법과 예술적인 면에서 더욱 성숙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더불어 가자희는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인들의 후원으로 상업 구역 내의 무대에서 정식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황민화운동의 압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광복과 함께 다시금 새로운 전환기를 맞아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가자희는 통속적이고 평민 친화적인 내용으로 꾸준히 사랑받으며, 대중 문화에서 굳건한 자리를 확보한 음악극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무대공연 외에도 대중적인 표현수단으로 매체를 바꾸어 다양하게 사용된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영화와 광고, TV 연속극으로 가자희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이는 가자희에 대한 대만인들의 특별한 사랑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가자희 음악극 <양려화풍조>를 제외하더라도 가자희의 멜로디는 큰 무대뿐만 아니라 작은 골목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으로 대만 민중들의 공통된 기억 속에 자리한 음악극이다. 대만인들의 가자희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생전에 가자희를 좋아하던 부모님을 위해 봉분 앞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 가자희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타이베이의 용산사처럼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이나 도교사원의 광장에도 종종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가자희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가자희의 표현 방식은 강한 생명력이 특징이다. 노래하는 창법에서 다양한 음악극 장르의 노래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융합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유행 음악을 받아들인 사례도 발견되는데, 칠자조를 받아들인 것이 그 예다. 이것은 가자희의 전체 내용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로 해석된다. 대만의 대표적인 민요이면서 대중유행 음악이기도 한 칠자조의 멜로디는 도마조와 잡념자에도 자주 사용된다. 이 노래의 가장 큰 특징은 곡조라고 하는 우는 소리를 노래로 부르는 방식이다. 대만의 노래는 울면서 시작해 울면서 끝냈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대만의 대표적인 울음의 문화 코드를 대변한다. 울음의 문화는 초기 가자희의 내용을 처량하고 비극에 가득 찬 색채로 물들였다.


    가자희는 소재 또한 상당히 넓은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야기의 소재는 선남선녀의 사랑 이야기다. 대만의 4대 이야기 중 하나로 꼽히는 산백영태가 대표적인 예다. 그밖에도 역사적인 이야기가 소재가 되거나 신화와 전설, 민간설화를 비롯하여 심지어는 시사적이며, 사회적인 내용 등이 모두 가자희의 소재가 되어 공연되었다. 야외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공연되는 외태희반이 있다. 그중에 공연으로 호별자희는 심지어 무협소설과 유명 영화를 각색하여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하늘을 나는 말과 항공을 가르는 연출기법이 등장한 무협기정비희극등의 기법이 가자희에도 있다. 이처럼 최근의 가자희는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내용과 기법을 두루 수용한 모습으로 공연된다.


    현재 가자희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은 사원의 야외 가설무대와 TV프로그램 그리고 공연장 등이고, 관록의 노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공연되는 고박한 가자희도 여전히 만날 수 있다. 이것은 외태가자희와 TV가자희, 대형극장가자희 등과는 다른 스타일의 공연 모습을 담고 있다. 최근 가자희는 신세대 관중들의 미적 요구가 달라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음악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가자희가 표현기법이 좀 더 정밀해지고 대형화되는 긍정적인 흐름으로 보고, 더불어 가자희 발전의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인도네시아 - 탄생부터 죽음까지 전 생애를 함께하는 가믈란 음악

    하늘의 별만큼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인도네시아에는 천 가지 이야기와 함께 400개가 넘는 종족이 있다. 그곳에는 구석기 문화와 첨단기술이 공존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거리 문화가 피어난다.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했다. 나를 보고 웃어 주었고,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면 받지도 못할 사진인데 도리어 찍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인도네시아는 완전한 열대성 기후로 동남아시아 계절풍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연중 기온이 높고, 전 지역이 평균기온 25~27℃를 기록한다. 강수량은 몬순의 영향을 크게 받아 중심부에 해당하는 적도 부근을 제외하면 대체로 건기와 우기의 구별이 뚜렷하다.


    인도네시아는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지금은 2억 5천만 명 정도이고, 전문 조사 기관은 2050년에 3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도네시아는 단순히 사람만 많은 것이 아니라 종족의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종족이 모여 산다. 다양성 속의 통일은 인도네시아가 추구하는 모토다.


    인도네시아는 화산이 살아 숨 쉬고 땅이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섬나라다. 인도네시아의 해역은 테티스 해 구조대와 환태평양 구조대가 이어지는 곳으로 지반의 변동이 심해 화산도 많고 지진도 잦은 편이다.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화산 분화의 70~80%가 이곳에서 일어난다. 화산은 재난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화산 활동이 일어났던 곳은 땅이 비옥해 농사 짓기에 좋다. 자바 섬의 토양이 가장 비옥하며, 인구의 60%이상이 이곳에 거주한다. 화산지대의 온천과 간헐천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좋은 곳으로 훌륭한 관광상품이고, 이른 아침 연기를 뿜어 내며 브로모 화산(동부 자바)이 서서히 깨어나는 모습은 장관이다.


    드뷔시가 사랑한 음악, 가믈란

    우리에게 목신의 오후 전주곡으로 익숙한 20세기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가 드뷔시는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 박람회에서 인도네시아의 자바 음악을 처음 접하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음악이 바로 피아노곡 판화다. 드뷔시가 들은 것은 자바 지역의 웅장하고 근엄한 가믈란 음악인데, 특별히 가믈란의 선법을 차용했다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음악학자는 드뷔시와 가믈란 음악의 상관관계를 지속적으로 거론했다. 그때부터 그가 독특한 음색의 5음 음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판화는 1903년 7월에 작곡된 음악으로  탑, 그라나다의 황혼,   비 내리는 정원의 3곡으로 구성된 드뷔시 초기의 작품이다. 제1곡 탑은 동양 음악의 감명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자바 음악의 색채가 담겨져 있다. 드뷔시는 만국박람회장에서 들은 자바 음악의 묘한 매력에 끌려 자주 박람회장을 찾았고, 프랑스에 있는 생가에도 당시 풍경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인도네시아 음악에 대한 그의 관심은 특별했다고 할 수 있다. 가믈란 음악에는 두 개의 중요한 스케일인 슬렌드로(5음계)와 페로그(7음계)가 있다. 이 작품은 슬렌드로 스케일을 중심으로 사용하였다. 첫마디에서 오른손 손가락으로 두 개의 음(G#과 F#)을 몇 번 울리고 잠시 있다가 또 울리며 후에도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인접하는 두 음을 밝고 아름답게 처리한 작곡기법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사실 드뷔시에게 자바 섬이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곳이었고, 이 곡에서는 이국적인 극동의 경치와 건축, 전통적인 춤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믈란 음악은 인도네시아의 전형적인 타악기 합주음악으로, 공, 실로폰, 심벌즈 같은 악기로 구성된다. 황금빛으로 번쩍번쩍거리는 악기들로 가득 찬 가믈란 합주 무대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가믈란은 가믈(Gamel)이라는 단어에서 기원한다. 가믈란이란 두드리다라는 의미로 망치로 쳐서 소리 내는 타악기 음악을 모두 포함하며, gamelang, gamelin이라고도 쓴다.


    가믈란은 발리 섬을 중심으로 자바 섬, 수마트라 섬,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남쪽지방 섬들까지 폭넓게 퍼져 있다. 이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의 여러 대학이나 연주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가믈란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쉬우면서도 재미있다는 점이다. 음악에 대한 예비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10분 정도 설명을 듣고 가믈란 악단에 참여할 수 있다.


    고대의 가믈란은 부드럽고 아늑한 느낌의 실내 가믈란과 소리가 크고 장엄한 야외 가믈란으로 분류된다. 실내 가믈란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와양쿨릿의 반주다. 와양쿨릿은 그림자 연극을 말하는데, 이것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중요한 공연 예술이다. 여기서 가믈란은 노래의 반주뿐 아니라 극의 진행에 따라 적합한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배경음악을 담당한다. 자카르타 지방에는 오래된 야외 가믈란이 있는데, 이 가믈란은 실내에서 쓰는 어떤 악기도 사용하지 않고 노래도 없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두 종류의 가믈란이 서로 혼합되어 현재의 가믈란 모습을 갖추게 된다. 현재의 가믈란은 크게 중부 자바 가믈란, 순다 가믈란, 발리 가믈란의 세 가지로 나뉜다. 그러나 이것은 지역적인 분류 방법일 뿐이고, 이 세 가지 가믈란은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발전된 것이며, 같은 음계를 쓰고 있고, 음 구조나 악기 편성에서도 비슷하다. 18세기 무렵에는 자바의 가믈란이 동남아시아 대륙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의 타악기 합주에서 쓰이는 중요한 공과 차임들은 자바와 가믈란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믈란은 중부 자바의 소로와 조그자라는 두 왕실에서 육성되어 왕실의 의식 제전 및 연극/무용 등에 쓰여 왔다. 왕가에는 악사/배우/무용인 등의 양성기관이 있어 많은 젊은 예술인을 육성하였다. 가믈란은 기능에 따라 대편성/중편성/소편성으로 나뉜다. 대편성은 왕가의 의식이나 잔치에 쓰이는 것으로 25명 정도가 필요하다. 약식인 경우에는 중편성이, 민간 행사나 극장 등에서는 소편성이 쓰인다. 악사는 슬렌드로용과 펠로그용의 두 가지 악기를 놓고 연주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가믈란 악기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하며 신성시한다. 가믈란 연주에는 향과 꽃을 바치는데, 이는 악기가 신에 의해 보호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믈란은 왕족의 제례행사에서 사용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즐기고 노는 곳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명절이나 가정의 행사, 이를테면 결혼식이나 생일 잔치에서 가믈란을 연주하면서 춤과 노래로 밤을 지새운다. 심지어는 장례에도 가믈란을 사용한다. 장례식 자체가 힌두교의 종교의식이고, 힌두교에서 죽음이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절차일 뿐이며, 이것은 윤회를 위해서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다. 때문에 발리 섬의 장례식은 슬픈 분위기가 아니라 축제 같은 느낌으로 가믈란 음악이 함께한다.


    가믈란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춤, 드라마, 연극이나 와양쿨릿 같은 무대극의 반주 음악으로도 즐겨 사용된다. 최근에는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예배의식에도 사용하는데, 서양 악기와 가믈란을 함께 준비해놓고 어떤 때는 서양음악을, 어떤 때는 가믈란을 연주한다.


    가믈란 음악의 최대 장점은 마을 사람들을 한 덩이로 묶어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믈란 음악은 혼자서 하는 연주는 별다른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혼자서는 연주를 할 수도 없다. 가믈란 악단에서는 누가 특별히 솔로를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전공 악기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사람의 연주자가 여러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그래서 간간이 서로 악기를 서로 바꾸어 가며 연주를 한다. 이렇게 함께 연습하고 함께 연주하다보니 자연스레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조화와 화합을 배우게 된다.


    가믈란은 우리나라의 농악과 비슷한 점이 많다. 농악은 타악기의 합주에 유일한 선율 악기인 태평소가, 가믈란은 선율이 있는 타악기와 선율 악기인 술링이 연주된다. 농악과 가믈란이 모두 마을의 수호신을 위한 종교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 이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전수 방법도 악보를 쓰지 않는 구전심수라는 것도 공통적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농악은 현재 여러 기능을 상실하고 무대 음악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데 비하여 인도네시아의 가믈란은 원래의 여러 의미와 기능 그리고 음악 내용이 고스란히 전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 - 외래문화를 고유문화로 녹여 낸 저력의 음악

    끝없이 흘러가던 오토바이 물결은 역동적인 베트남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내가 만난 베트남은 아주 이른 새벽부터 업무가 시작되었고, 또한 베트남은 진한 커피 향기로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거리에 놓인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도 커피를 마시고, 콜로니얼 건물을 개조한 유럽풍의 카페에서도 향긋한 커피를 마신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중독성 강한 베트남 커피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베트남전쟁, 쌀국수, 커피, 결혼 이민자 등으로 기억되는 나라 베트남의 정식 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한반도 1.5배의 영토를 가졌지만 도시 간 이동 경로가 대부분 10시간이 넘고 볼거리가 많아서 중요한 도시만을 여행한다고 해도 최소 한 달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태국의 카오산 로드처럼 배낭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 베트남에도 있다. 그곳에는 저렴한 숙소와 환전을 비롯하여 여행자들을 위한 교통편을 제공하는 여행사들이 성업 중이다. 호치민 시내의 여행자 거리 이름은 데탐거리다. 몇 번을 가도 늘 여행자들로 가득한 자유롭고 재미있는 거시가 바로 데탐거리다.


    데탐거리의 밤은 낮보다 매력적이다. 그것은 아마도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열정 때문이기도 하고, 시원한 맥주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곳의 신카페 여행사에서 오픈 투어 버스 티켓을 구입하여 달랏과 무이네 비치를 다녀왔다. 오픈투어 버스는 호치민과 하노이 사이를 운행하는데, 경유하는 큰 도시는 어느 곳에서나 승하차가 가능하다. 과도한 경쟁으로 가격이 내려가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까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배낭여행객이 여행자 버스를 이용한다. 베트남은 춤과 음악, 축제가 풍성한 나라다. 농경사회이며, 2천 년 전부터 자연과 조상을 기리는 의식은 물론이고,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축제가 개최된다. 축제에는 당연히 노래와 춤, 악기 연주가 함께하는데, 지금도 딘이라고 불리는 사당에서 농경 관습과 수호신, 그리고 영웅을 위한 축제가 개최된다.


    프랑스 식민지와 새로운 베트남 음악의 탄생

    1884년, 베트남 능우엔 봉건왕국의 대표와 프랑스 침입자들 사이에 조인된 조약에 따라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식민 통치자들은 지방민들의 끊임없는 군사 봉기와 마주쳤고, 1920년대에 본격적으로 프랑스 식민지로서 베트남을 지배하였다. 그들은 전통 도시와 행정 중심지의 근간 위에 유럽 스타일의 새로운 행정을 시작함과 동시에 문화 도시들을 세워 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본가, 지식인 계급, 사회 주도 세력, 노동인 계급으로 구성된 새로운 시민계층들의 사회집단이 나타났다. 이들은 산업사회 속에서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프랑스의 문화와 역사를 통해 유럽 국가들의 문화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들의 문명화 수준을 따라잡으려는 열망과 함께 베트남 고유의 문화를 유럽화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서양음악에 초보 수준이었던 일부 베트남 엘리트 집단은 서양음악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고전파 음악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졌고, 프랑스 노래와 연주곡을 통해 실습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 도시에서는 주점에 댄스 바가 생기기 시작했고, 프랑스 식민 통치자들과 일부 베트남인의 일상 장소가 되었다.


    그 당시 기독교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향한 베트남인의 분투 의지를 진정시키는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교회와 수도회로부터 베트남인들은 여러 장르의 가톨릭 성가들을 배웠다. 일부 베트남인은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사곡을 무척 좋아했다. 하노이와 사이공(현 호치민 시)의 공원에서는 프랑스계 단체들이 브라스밴드를 연주하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음악 연주회도 종종 열렸다. 축음기가 보급되었고 유럽 음악의 보급과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도시와 마을에 영화관이 생겼고, 상영되는 영화에서 유럽의 음악이나 최신 음악이 유행하기도 했다. 1927년 9월 하노이에 프랑스 극동음악학교가 설립되었다. 이 음악학교는 1929년까지 유지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33년 사이공에 음악예술학교가 세워졌다.


    20세기 초, 베트남에서는 서서히 유럽 고전음악에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작곡된 노래들이 만들어지며 새로운 음악적 사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프랑스 식민지 상황으로 인한 유럽 음악 침투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적응의 표현이고, 새롭게 형성된 상류 계층이 소비하던 고급 음악 문화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한 세기가 지나간 현재, 베트남의 이러한 음악 사조는 조금 더 베트남화되면서 베트남 전통음악의 요소를 포함하게 되었다.


    베트남 음악의 주제와 양식은 독자적인 발전기를 거치면서 내용적으로 낭만적, 애국적, 혁명적 등 세 가지 경향으로 나뉘었다. 낭만적 경향의 작곡자들은 프티부르주아 계층의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식민화된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거나 대담하게 혁명 투쟁에 가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도시 생활의 낭만적인 모습으로 담아냄으로써 슬픈 현실에서 도피하여 기쁨을 얻고자 했다.


    애국적 경향은 주로 작가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시 프티부르주아 계층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애국심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었던 지식인이다. 그들이 쓴 노래의 주제는 과거 역사 속 베트남 국민의 승리를 연상시킨다.



    혁명적 경향은 공산당에 의해 혁명 운동의 범주에 속해 있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작곡가들은 혁명가로서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 할 그들의 의무에 대한 생각을 음악으로 승화했고, 이것이 혁명 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조의 음악은 계속해서 역사적/사회적 배경과 맥락 속에서 각각 지속되고 발전하였다. 새로운 음악 사조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시민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음에도 그것이 시골이나 농부들의 삶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시골과 농촌의 농부들은 여전히 수세기 전과 같이 느린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렇게 느리고 전형적인 삶의 리듬은 쌀을 파종하고 거두고 축제를 여는 등의 활동으로 매해 반복되었다. 전통음악 역시 음악이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공동체 속에서 일상적 삶의 활동을 따라 반복되었다.


    베트남에는 이처럼 당시에는 두 가지 음악적 흐름이 실재했다. 유럽 고전 음악에 기초한 새로운 사조의 신 음악이 도시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계층들의 생활 속에서 함께했다면, 전통음악은 지난 수세기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나갔다. 그러나 이두 가지 서로 다른 음악적 흐름이 개별적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신베트남 음악을 이끄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노래곡과 연주곡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종종 전통음악을 활용하곤 했다. 그 결과로 새로운 작품들은 베트남 전통음악의 미적 취향과 특징을 점점 더 많이 포함하게 되었다.


    식민 통치자들은 피지배인들을 야만적이거나 거칠고 미개한 사람들로 간주하곤 한다. 그래서 식민 통치자들은 식민지를 진보적이고 발달된 문화로 문명화시켜야 하는 하늘이 내린 소명이나 역사적 사명 등을 부여받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사실 이는 피지배 계층의 문화를 그들의 것으로 동화시키려고 하는 천박한 음모를 숨기고자 하는 교활한 표현일 뿐이다. 역사적인 사례들은 피지배 민족인 단순히 동화되지 않고 도리어 자기 고유의 문화가 가진 잠재적 수용성을 바탕으로 베트남의 상징문화의 정수를 선별하고 수용하여 자신의 문화적 전통을 살찌울 수 있음을 보여 준 긍정적인 결과물을 남겼다. 신베트남 음악사조의 출현은 바로 그러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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