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단 하루의 기적. 카붐!

저   자
대럴 해먼드(역자:류가미)
출판사
에이지21
출판일
2013년 01월
서   재







  • 카붐은 놀이터가 필요한 지역공동체를 상대로 필요한 도구와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황량한 빈터가 24시간 만에 희망과 꿈이 가득한 반짝이는 놀이터로 바뀔 수 있도록 돕는다. 더불어 물리적인 변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가 주도하고 이끄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렸던 공동체 내의 결속을 되찾으며 변혁을 일으키는 것을 주요한 사명의 하나로 삼고 있다.



    단 하루의 기적, 카붐!


    대체로 행복했던 시절, 인생의 철학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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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버지는 아이가 16명이나 되는 가정에서 자랐다. 요즘에는 그런 가정을 전문용어로 ‘역기능 가정(dysfunctional family)’이라 부르지만, 당시만 해도 그냥 ‘나쁜 가정’으로 불렸다. 적어도 네브래스카 주에서는 그런 생각이 강했다. 그들은 나의 조부모가 양육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아이 전원을 떼어 놓을 것을 선언했다. 위에서부터 네댓 명은 보육원에 보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보육원 대신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집안에서 내려오던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아버지의 형제자매 역시 많은 아이를 낳아 대가족을 꾸렸다. 어떤 이는 7명, 어떤 이는 13명의 아이를 낳았다, 삼촌 중 한 명은 세 번 결혼해서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우리 가족만 해도 아이들이 8명이었다.


    1972년, 내가 19개월이 되었을 때 여동생이 태어났다. 어느 날 아버지는 트럭에서 짐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나간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8명의 아이를 혼자 길러야 할 판이었다. 나이가 많은 형과 누나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들은 형과 누나가 자주 결석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이들을 제대로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정부가 그들을 빼앗아 갈 거라고 어머니에게 경고했다. 가족이 서로 떨어져 살기를 원치 않았던 어머니는 그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았다. 사회복지사들은 우리를 의탁 가정에 맡기라고 충고했다. 앞서 말한 대로, 아버지도 의탁 가정에서 자랐다. 그것이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악순환이었다. 결국 우리들은 무스하트(Mooseheart)라고 불리는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보육원이라고 하면 찰스 디킨즈의 소설에 나오는 곳처럼 아주 끔찍할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나는 무스하트에서 지낼 수 있어 무척 운이 좋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훌륭했다. 빨래는 캠퍼스 안에 있는 세탁소에서 맡아서 해주었다. 우리는 캠퍼스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는 학교 대표선수였고 2~3학년 때는 주 대표 선수로 뛰었다.


    무스하트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무스하트가 우리에게 해준 값진 일이었다. 그래서 그때 내게 붙여진 별명이 ‘변호사’였다. 이것에 대해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권위에 맞서는 것에 대한 동경에서 나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또 부당한 일을 보면 기꺼이 무스하트의 관리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최고행정위원들은 내 주장을 받아들여주진 않더라도 늘 공정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소리쳐 주장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또한 권위적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나는 무스하트가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오로지 내가 무스하트에서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복지를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결코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다. 사실 나는 무스하트의 교육과정이 아니라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생의 가장 큰 교훈을 배웠다.


    나는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무스하트로 돌아가 일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무스하트는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자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또 그곳을 지원했던 무스 회원들에게 특별한 곳이다. 나는 무스하트가 해야 할 일을 잘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발전해나갈 것으로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규율을 중시하고 더 나은 행동 기준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더불어 생각과 경험을 나누면서 아이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깨닫게 하고,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갖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과정은 결과만큼 중요하다

    1994년 봄, 도시학 협회를 졸업한 후에는 이미 리폰 대학이나 다른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내 천직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몇몇 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고, 곧 보스턴에 본부를 둔 자원봉사자 그룹인 시티 이어(City Year)가 창립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해 가을, 나는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로 갔다. 그곳에서 열릴 첫 번째 시티 이어 전국회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내가 맡은 일이었다.


    시티 이어의 모든 자원봉사자가 보스턴에 있었던 초창기에는 자원봉사를 장려하는 서바톤(Serve-a- thons, 서비스와 마라톤을 섞은 합성어)행사를 진행했었다. 시티 이어의 모든 직원과 대학생, 그리고 다른 자원봉사자는 한데 어울려 발대식을 하기 위해 보스턴의 한 공원에 모였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T라고 불리는 보스턴의 교통수단에 올라 도시 전역으로 흩어졌다. 처음에 시티 이어의 리더들은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행사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가 꼼꼼히 조사해본 결과, 그것이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콜럼버스는 보스턴만큼 대중교통 시설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콜럼버스에서 그런 행사를 진행하기에는 지리상의 문제점도 있었다.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리폰 대학 1학년 시절, 친구 어머니의 부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리노이 주 에번스턴에서 놀이터를 세우는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인생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흘러간다면, 에번스턴에서 놀이터를 짓는 일에 참여한 것은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전환전이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어리고 철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중이었다. 놀이터를 짓는 일은 내게 그다지 큰 감명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도시학 협회에서 쌓은 경험과 놀이터를 지어본 경험을 토대로 시티 이어 행사에서도 비슷한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시티 이어 최고경영회의에 이 안건을 올렸다. 여러 개의 작은 프로그램 대신,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놀이터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결국 콜럼버스에서 열리는 시티 이어의 첫 번째 전국회의에서는 두 곳의 놀이터를 건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시티 이어는 전에는 이런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없었고 또 다섯 곳의 도시에 새로 개설한 지부를 운영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나 역시 전에는 이처럼 커다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의존했는데, 아마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러 조직의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캠퍼스 파트너스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것에는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캠퍼스 파트너스의 리더가 누구인지 이 조직의 의사 결정자가 누구인지 명백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려고 했다.  또한 우리는 두 곳의 놀이터를 짓는 데 각각 다른 건축회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덕분에 두 곳의 놀이터 설계도는 물론이고 재료와 설비도 따로 마련해야 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그것은 시티 이어 자원 봉사자 모두에게 멋진 경험이었다. 우리는 예산을 초과하지 않고 놀이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문제와 갈등을 헤쳐 나온 끝에, 이 프로젝트는 종착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놀이터를 세우는 게 최종 목표라면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가 공사에 참여하는 것보다 놀이터 제작회사에 맡기는 편이 훨씬 빠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공사가 진행되었다면, 놀이터는 그 공동체나 혹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놀이터를 짓는 과정은 그 결과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다.


    나는 콜럼버스를 떠나면서, 만약 내가 다시 한 번 놀이터를 짓게 된다면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해 보겠노라 다짐했다. 운이 좋았는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놀이터를 짓는 일에 참가하게 되었다.



    꿈꾸고, 모이고, 나누고, 짓고, 지키다

    일곱 살 소녀의 웃음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프로젝트를 마친 후, 나는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시카고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전국 규모의 사회봉사 단체인 유스 서비스 아메리카(Youth Service America, YSA)에서도 제안을 받고 있었다. YSA의 본부는 워싱턴DC에 있는데, 이 단체는 시티 이어의 사이저지 회의처럼 대규모 자원봉사 행사를 기획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1995년 여름, 나는 YSA의 계약직 사원으로 놀이터 공사 계획을 세우기 위해 워싱턴으로 이사했다.


    놀이터를 세우기로 한 곳은 워싱턴DC 남동쪽에 있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주택단지인 리빙스턴 매너였다. 콜럼버스의 에메랄드 글렌 주택단지를 건설한 회사의 이사는 내게 워싱턴에서 주빌리 엔터프라이즈를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협력자를 소개해주었다. 주빌리의 경영진은 주민자치회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놀이터를 짓는 것이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밖의 신청자는 없었지만, 우리는 주빌리 주민자치회에 다른 지역과 똑같이 놀이터 건설을 신청하는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주민자치회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러분이 제출한 신청서를 다른 지역의 신청서와 비교해서 검토할 것입니다!”

    나는 그 마을 주민들이 놀이터 설립을 놓고 다른 곳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그들이 놀이터를 짓기 위해 온 힘을 다할 테니까 말이다. 나는 무언가가 거저 주어지면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조금도 감싸하는 마음 없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참이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직접 투자하고 참여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이루었다는데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얻게 되는 것은 튼튼하고 잘 무너지지 않는 놀이터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투자와 참여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공동체 안에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 놓는다.

    리빙스턴 매너에서 진행한 첫 번째 일은 놀이터를 지을 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얼마 후, 애슐리 브로디라는 이름의 일곱 살짜리 꼬마가 내게 무언가를 말하러 깡충깡충 뛰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 애슐리는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잠시 후 애슐리는 물었다.

    “놀이터를 지으려고 온 거예요?”

    나는 허를 찌르는 그 질문에 놀라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주민에게는 아직 이곳이 시공 현장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놀이터를 짓는다니,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우리는 애슐리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놀이터를 디자인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이 놀게 될 놀이터를 직접 자신의 손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오늘날 카붐이 놀이터를 만들 때도 반드시 거치게 되는 절차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그들이 원하는 놀이터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놀이터의 모습을 그려준다. 우리는 놀이터를 만들 때 이러한 아이들의 꿈과 부모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놀이터에 애착을 갖게 되고 자신이 놀이터를 짓는데 참여했다는 사실을 통해 자부심을 느낀다.


    조금씩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놀이터는 모습을 갖추어갔다. 공사마지막 날인 나흘째 되는 날에는 수백 명의 YSA 회의 참석자를 포함해서 50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마침내 완성된 놀이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빙스턴 매너에 놀이터가 세워졌다는 소식은 그 지역 방송국 뉴스 이외에도 〈워싱턴 포스트〉, 사회문제를 다루는 잡지 〈후 케어스(Who Cares)〉 같은 매체에 보도되며 미국 전역에 전해졌다. 몇 달 후에 샌안토니오에서 회의를 개최할 예정인 신용금융사 디스커버 카드는 직원들이 팀 조직 활동으로써 놀이터를 짓는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들에게 빠른 택배를 이용해 슬라이드 한 판을 보냈다. 그리고 전화를 통해 그 슬라이드 사진을 설명했다. 그들은 나의 설명을 좋아했다. 우리는 그 회사와 함께 놀이터를 짓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아마도 그즈음에 우리는 카붐을 법인화했다. 카붐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낸 것은 콜럼버스 사이저지 회의에서 함께 일했던 시티 이어의 동료인 존 사비를 통해서 알게 된 돈이었다. 우리는 워싱턴 시내의 애덤스 모건가를 걸으며 우리가 세울 비영리단체에 관한 온갖 근사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었다. 돈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인력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뚝딱뚝딱 일하다보면 번쩍!(KABOOM, ‘번쩍’, ‘펑’과 같이 무언가 마법처럼 나타나는 모습을 묘사하는 의태어) 하고 놀이터가 생겨나요 맞죠?”

    나는 그녀의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카붐’은 우리의 열망과 희망을 품고 있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설명하는데 완벽한 단어였다.


    디스커버사는 샌안토니오에서 놀이터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우리를 고용했다(디스커버 카드사는 내가 폐렴에 걸려서 회의 중에 전화로 놀이터 짓는 일을 설명했던 바로 그 회사이다). 1996년 2월에 그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카붐이라는 법인을 공식적으로 설립한 상태였다. 우리는 세금 감면 비영리단체 유형인 501(c)3으로 등록했다. 비로소 합법적인 단체에 속하게 된 것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일상적인 일하기

    나는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피트 다멜리오라는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서류 가방에 붙은 그의 이름표에는 레스토랑 체인점 치즈케이크 팩토리의 업무 총괄 책임자 겸 부사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비행기가 덜레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에게 카붐 사무실에 한번 들러 달라고 말했다. 우리의 조직 운영을 살펴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조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해 본 경험은 없었다. 그러나 탁월한 경영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그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피트를 우리 조직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피트는 카붐 이사회의 의장이 되었다.


    피트가 우리 이사회에 들어오자,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러한 업무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싶었다. 카붐은 큰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그것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공식적인 업무 관리 시스템은 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세 곳의 놀이터 건축회사에서 자재를 구입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 곳의 회사와 지속해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고, 세 곳의 회사와 간담회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며, 세 군대에서 건축 자재를 실어 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공사 도중에 프로젝트 매니저는 볼트와 와셔가 떨어지면 부족한 물품을 사러 지역 철물점으로 뛰어가야 했다. 피트는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건 설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비행기를 띄운 꼴이야!”


    그는 이사회에서 놀이터를 짓는 데 얼마나 많은 너트와 볼트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끄럼틀과 그네를 세우는 데 얼마나 많은 건축 자재가 들어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한 자료를 통해 놀이터를 짓기 전에 해당 공사에 얼마나 많은 자재가 들어가는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연도 단위로도 자재 준비를 미리 해놓는 것이 가능하다. 즉 이런 업무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공사 도중에 자재가 부족해서 철물점으로 뛰어가는 일도 사라진다. 공사 기간도 단축할 수 있고 경비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현명하게 앞으로 우리가 진행할 사업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업무 관리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놀이터를 짓는 동안 우리가 배운 모든 것, 즉 놀이터를 짓는 방식을 축적하고 조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많은 정보가 한 프로젝트 매니저에서 다른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마치 전설과 같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전부였다. 따라서 그 사람이 그만두면 그 지식의 대부분도 함께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와 같은 절차를 밟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문서로 만들고, 성공한 프로젝트는 물론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도 분석하며 시간을 두고 이 과정을 반복해 우리의 절차와 방식을 개선해 나가야 했다. 새로운 업무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자 자금을 지원하는 회사가 원한다는 이유로 혹은 프로젝트 매니저가 원한다는 이유로 업무 절차나 방식을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엄격하게 업무 관리 시스템을 따르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지만, 결국 우리는 해냈다.


    업무 관리 시스템을 표준화해야 한다는 피트의 제안을 현실화 한 사람은 바로 나의 아내, 케이트이다. 케이트가 카붐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 피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어떻게 이토록 많은 일이 문서화되어 있지 않은 것인지 깜짝 놀랐다. 우리는 서둘러 업무를 문서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가 놀이터를 세우는 과정을 문서화하려고 했던 것은 스스로 그 과정 자체를 이해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고 나서 놀이터를 세우는 과정을 표준화했고 그것을 개선했다. 피트가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 외의 다른 업무 일정도 표준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업무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오늘날 카붐의 업무 관리 시스템은 비영리단체 사이에서 최고로 꼽힌다.


    놀이의 중요성

    1970~80년대, 내가 무스하트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놀이터의 놀이 기구가 쓸 만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놀이 기구도 낡아졌다. 기숙사에서 멀리 떨어진 놀이터는 1990년대에 사라졌다. 2001년에 이르러서는 강제로 두 번째 놀이터마저 없애야 했다. 무스하트 캠퍼스의 놀이터는 완전히 사라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스하트는 일리노이 주 아동가정복지국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아동가정복지국은 놀이터에 관한 안전기준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이 점점 까다로워져서 점점 더 많은 놀이터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더불어 학교 측은 보험을 들어야 하는 데에도 부담을 갖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치는 아이들로 인해 책임을 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행한 일이지만, 안전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낡은 놀이터를 없앨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새로운 놀이터를 지을 계획이나 돈이 없었다. 미국 전역에 있는 수천 개의 학교도 매일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충분한 자금이 없을 때, 그들은 그 자금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일 때, 아이들의 놀이에 얼마만큼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놀이가 다분히 사치스러운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놀이는 우선순위에서 늘 맨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놀이는 정말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로 의미가 있으며, 실제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것일까?


    놀이는 정해진 짜임새가 없는 것. 아이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행위. 스스로 참여해서 몰두하는 것.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 활동적으로 탐색하며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물론 놀이는 인간의 발달에 더 큰 역할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린동물은 열량의 2~15퍼센트를 놀이하는데 쓴다. 다시 말해, 놀이에 이만한 역량을 쓴다는 것은 놀이가 그만큼 어린 동물의 발달에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절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놀이를 통해 얻어지는 이득이 없다면, 놀이는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대신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말았을 것이다.


    놀이는 사회성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두뇌발달에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심지어 아기의 옹알이도 일종의 언어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아기들은 주변에 있는 어른들의 반응을 보고 그들의 모국어에서 특정한 소리가 갖는 의미를 배운다. 더불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위험한 놀이를 경험하고, 신체적인 행동의 결과를 배운다. 놀이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을 신체적 한계까지 몰고 간다.


    어린 아이들의 발달에 있어서는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자기 마음대로 그 규칙을 바꿀 수 있는 놀이가 더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놀이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이들의 성장으로 연결된다. 아이들은 세상의 작은 축소판을 만들고, 마치 실제 세상에서 연습하는 것처럼 그 세상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그렇다면 요점은 무엇인가? 아이들의 몸은 놀이를 하게끔 만들어졌다. 놀이가 없다면 건전한 신체를 지닌 어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상하지만 환상적인 싸움은 계속된다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의 모호한 경계

    비영리단체는 작고 느슨한 조직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또한 사람 됨됨이는 좋지만 요령이 없는 이들이 모여서, 세상을 구하겠다는 좋은 의도는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몰라 딱히 성과를 내는 것은 없는 조직이라는 이미지도 한편으로는 갖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진정한 혁신과 뛰어난 경영 능력, 효과적인 목표 선정 능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일처리를 배우고 싶다면, 비영리단체가 아닌 영리단체를 찾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전국적인 비영리단체의 공동설립자이자 CEO로서 나는 이러한 편견과 싸우고 있다. 카붐은 뛰어난 업무능력과 높은 소비자 만족도, 그리고 혁신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 경험에 따르면, 비영리단체는 작고 느슨한 조직이 결코 아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고정화된 이미지는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영리단체든 비영리단체든 상관없이 사업을 운영하는 원칙은 매우 비슷하다. 실제로 많은 혁신적인 비영리단체가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카붐은 비영리단체이지만,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갖고 있는 최상의 방식을 도입하고자 한다. 그 결과 우리의 경영방법에는 영리단체의 방식, 사회단체의 방식, 그레이스톤 베이커리처럼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가 섞인 방식이 모두 혼합되어 있다. 이러한 철학은 우리의 직원 구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직원 중 몇 명은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대기업 지점을 운영했던 경력이 있다. 이러한 조합은 무척 성공적인 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쉐어 아워 스트렝스의 빌리는 후원금과 지원금에 의지하는 과거의 모델은 그저 부를 재분배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이어서 가장 혁신적인 조직은 그것에서 더 나아가 부를 창조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영리단체처럼 생각해서 사업에 적용해야 한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좀 더 돈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큰 도전이다. 대부분의 비영리단체는 서비스나 경험에 드는 비용을 파악하기 위한 엄밀한 사업가적 수완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입과 비용을 정확하게 맞추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해당 지원금을 다 쓰지 않는 범위에서 일을 진행하거나, 혹은 나중에 후원자들이 후원금을 더 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라도, 이러한 경영모델은 효율적이지 않다. 이러한 모델로는 조직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다.


    비영리단체에서 자금을 마련하고 조직을 키우는 것은 리더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책무이다. 그러나 본래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전략을 실행해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비영리 단체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사명을 위한 열정 때문에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만, 결국 역설적이게도 자금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영리단체는 그것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받고 더 확실한 관리를 받을 때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자원을 이용해서 정말로 무언가를 달성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경우라면, 우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의 전략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것은 잠재적인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카붐이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수익 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즉 대기업을 상대로 스스로를 팔아넘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특정한 기업과 너무 친하게 지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러한 비판이 비영리단체는 자선단체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오래된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과연 타당한 비판인지 의심스럽다.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가 손을 맞잡고 함께 일함으로써 가치가 교환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혁신적인 비영리단체는 지금도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의 노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의 모호한 경계선을 지나치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두 영역으로부터 최상의 전략을 활용하려고 한다. 카붐도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적극적인 모색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붐은 기업 세계의 빠른 발전을 받아들여 그것을 우리 조직문화에 가장 잘 맞는 방법으로 적용하고 있다.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그저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리폰 대학의 총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가 2007년도 명예 학위를 받기 위해 졸업식에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총장님께 졸업식에 참석할 수만 있다면 큰 영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받게 될 학위는 박사 학위였다. 명예 학위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몇 분간 졸업생과 그 가족 앞에서 연설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카붐의 정신을 드러내는 한 구절을 말했다.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그저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최고로 짜낼 수 있는 노력과 실제로 행한 노력의 차이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구별할 수 있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면, 당신은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주어진 일에 죽을 힘을 다해 매달렸는지, 아니면 그저 노력했을 뿐인지의 차이점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실패와도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1996년에 카붐을 설립했을 때, 지역공동체가 직접 나서서 놀이터를 세우는 모델을 사용해 만들어지던 놀이터는 미국 전역에서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카붐의 공적은 이러한 개념을 도움이 필요한 지역공동체에 확대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전체의 40퍼센트가 넘는 놀이터가 해당 지역의 자원봉사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듯 지역공동체가 나서서 놀이터를 짓고 있다는 것은 환상적으로 들리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카붐을 비롯한 수십 개의 비영리단체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놀이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지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현실에 존재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공백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영구적이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만큼의 충분히 놀이 공간을 만들고 있다기보다는 부족한 것을 메우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놀이 부족은 긴급 사태이다. 이것은 느리지만 가차 없이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가고 있다. 따라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카붐의 역사는 17년을 넘었다. 그동안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놀이 부족을 해결하는 것은 카붐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 놀이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놀이 기구 제작회사에서부터 학자,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수십 개의 비영리단체, 선생님과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더욱 긴밀하게 힘을 합쳐야 한다. 나란히 보조를 맞추며, 주위에 있는 새로운 협력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기관이 아이들의 놀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와 관련한 예산을 편성하고 주위를 기울이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지쳐버린다면, 나는 다시 기운을 차리게 하는 확실한 방법을 이라고 있다. 바로 밖으로 나가 노는 것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눈싸움을 하거나, 발목까지 잠길 만큼 잔뜩 쌓인 낙엽 위에서 신 나게 뛰어보는 것도 좋다. 아니면 어린 시절에 즐겼던 피구 놀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상상력을 발휘해 종이 상자처럼 쉽게 옮길 수 있는 물건으로 요새를 만들자. 혹 어린 시절에 겪었던 놀이의 경험이 어떻게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는지 떠올려보는 것이다. 위기로부터 눈을 도려서는 안 된다. 문제를 다시 한 번 바라보자. 그리고 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혹은 다시 놀이를 즐기자. 가장 좋은 것은 놀이와 일, 양쪽 모두를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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