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나는 아직 내가 낯설다

저   자
다장쥔궈 (지은이), 박영란 (옮긴이)
출판사
파인북
출판일
2024년 01월







  • 심리학에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은 결국 ‘자아’라는 주제로 귀결됩니다.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 것! 드러내기 두려워 마냥 숨기려고만 했던 자신의 진짜 욕망과 마주하고, 내면의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아직 내가 낯설다


    가짜 자아의 게임에 깊이 빠지다

    습관중독

    피해의식 버리기 - 온 세상이 당신의 적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인간관계가 엉망인 이유를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거나 탓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회는 이보다 더 지옥일 수 없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것 같으며, 온 세상이 자신을 적대시하는 것처럼 느낀다.


    피해의식,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

    나쁜 일이 발생한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땅히 책임질 일에 대해서도 회피하는 사람이 된다면 나는 항상 피해자로 남게 되고, 이 사실에서 결코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다. 피해의식을 가지면 점점 마음속으로 자신이 당한 부당한 일들을 확대해석해서 자신을 진짜 피해자로 만들고 매일 불평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런 비이성적이고 건강하지 않은 심리 상태가 나타나는 이유는 문제의 초반에는 일시적이나마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보호는 심리적 방어기제 중 하나다.


    ;심리적 방어기제;는 실패나 위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일단 그 상황을 거부하여 내면의 불안을 해소함으로써 심리적 균형과 안정을 회복하는 성향을 말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죄책감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고, 무력감으로 인한 열등감도 줄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하거나 자신을 개선할 기회를 찾을 필요 없이 그저 가만히 서서 화만 내면 되므로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모두 다른 사람의 잘못이고 우리는 단지 ‘학대’를 당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직면한 모든 부당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학대’를 즐기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이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남용으로 인해 반드시 일어나는 악성 결과인 ‘철회(withdrawa)’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심리적 철회를 선택하는데 이에 대한 유일한 대응 방법은 그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100점만큼의 상처를 받는다면, 당시 심리 상태에 따라 동일한 상황이나 상처가 확대 해석되면서 최종적으로 체감하는 상처는 1,000점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심리적 트라우마든 피해자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현미경으로 자신의 상처만 들여다보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을 피해자라고 인식하면서 상처를 더 곪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사고는 끊임없이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한다.


    자기 연민에 빠지면 온 세상이 자신과 대립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느낀다. 누구든지 행동하지 않으면 우울증과 자기 연민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길을 잃고 만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자신에게 설정한 악성 심리 게임이다. ‘자신의 상처’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고 자연스럽게 자신은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자기 연민’에 빠져서 ‘상처에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며 결국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세상의 불공평을 인정해야 날아오를 수 있다

    아직 의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바란다. 승진에 실패한 원인이 단지 열악한 업무 환경과 속물 같은 상사 때문이었을까? 속셈이 있어 보이는 그 동료가 정말로 당신에겐 없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여자 친구가 당신을 떠난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일까? 아니면 당신의 소극적인 인생관에 실망했기 때문일까?


    당신의 인생에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거나 고민해 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수년에 걸쳐 길러진 피해의식이 익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당신의 발목을 계속 잡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지게 만들어 매일 밤 모든 일을 반추하고 왜 항상 나만 상처를 받는지 가슴을 치며 물을 것이다.


    다시는 이 문제에 몰입되어 자신을 무너뜨리지 말자. 대신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게 백번 낫다. 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을 하면 피해의식에 갇히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수 있다. 어쩌면 당신도 피해자에서 구원자로 변신해서 자신의 삶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세상이 언제나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빌 게이츠(Bill Gates)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10가지 조언 중 첫 번째는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인생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감정소모

    감정 단절 - 당신의 슬픔은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슬픔에는 진통제가 없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 중 가장 지혜로운 동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슬픔을 다루는 일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당신이 가난하고 고된 생활을 하지 않을 만큼 부유해도 마음의 고통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당신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슬픔을 인정하지 않고 억누른다. 울고 싶어지면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눈시울이 붉어진 것이라고, 마침 눈에 먼지가 들어가 눈물이 난 것이라고 둘러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과 전혀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슬픔이 빨리 치유되길 원한다.


    그래서 당신은 몰래 인터넷을 검색해 파워블로거나 실시간으로 전문가와 상담이 가능한 유튜버 등에게 무슨 비결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블로거도 인터넷에서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유롭지만 그 역시 정말 슬플 때는 집에 가서 혼자 울기도 한다. 아파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방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슬픔이 그렇게 무서운가? 아마 모든 사람이 그럴 테지만 만나고 싶지 않고, 만나더라도 굴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슬픔이다. 예전에 알게 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녀는 너무 바빠서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분이 아무리 나빠도 한 시간이면 회복할 수 있고 그 후에는 해야 할 일을 다 해냈다. 그녀는 다음 미션이 시작되기 전에 슬픔을 정리하기 위해 알람 시계가 필요한 것처럼 슬픔을 다루는 시간마저도 일정에 포함시켰다. 많은 사람이 그러길 바랄 테지만, 슬픔은 육체적 질병처럼 약을 먹고 나면 며칠 후에 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육체적 고통은 어느 정도의 유효기간이 있어서 외부의 작용을 통해 고통과 그 근원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약을 먹으면서 안심하는 이유는 일주일간 약을 먹으면 고통을 줄여줄 뿐 아니라 증상이 뚜렷하게 가라앉는 효과를 보는 명확한 시간과 기한을 알기 때문이다. 심리적 고통을 다룰 때도 이렇게 분초를 다투는 요구와 기대가 있지만 슬픔과 고통의 완화와 소멸을 위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약물 사용법은 없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없애려는 이유는 고통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은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잘못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항상 슬픔을 ‘나약함’의 동의어로 여겨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고통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사랑받지 못하며, 슬픔은 쉽게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약점으로 여긴다. 그래서 서둘러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거나 이성적으로 억제하려고 한다.


    그런데 슬픔이 무슨 잘못인가? 우리가 흔히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고 쉬는 것처럼 그냥 인정하고 대처하면 된다. 그러고 나서도 또 감기에 걸릴 수 있지만 지난번의 경험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적어도 더 이상 허둥지둥하며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위로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

    이성적인 측면에서 평가하고 조언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감정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은 이미 슬픔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 슬픔은 진정으로 보여야 흘러갈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의 흐름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열쇠이다. 당신과 대화하고 있는 슬픔에 찬 그 사람은 구체적인 조언을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이 자신의 슬픔을 바라봐 주고, 자신의 작은 감정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라는 것뿐이다.


    감정을 축적하고 봉인하는 행위는 사람을 슬픔에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든 자신을 위한 것이든 우리는 모두 슬퍼할 권리가 있으며, 그것을 금지하거나 일정 기간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슬픔에 열려 있는 경우에만 치료할 수 있다.


    얼마 전 드라마 <밥잘사주는 예쁜 누나>를 봤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앞으로 숨지 못하게 할게, 약속해’라는 대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슬픔을 직면할 때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숨기지 않길 바란다. 앞으로 우리만의 슬픈 순간이 다가오면 숨지 말고 빛을 보게 해주자.



    낯선 진짜 자아와의 첫 만남

    심리적 ‘유모’ - 당신은 지금껏 젖을 뗀 적이 없는 ‘거대한 아기’다

    상대방이 뛰어난 기술이나 역량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생각은 다음과 같다.


    ‘너 심리학 전공이잖아, 그럼 내가 우울증에 걸린 건지 아닌지 한 번 봐줄래?’

    ‘너 컴퓨터 잘하잖아. 그럼 내 이메일이 왜 로그인이 안 되는지 알겠네!’

    ‘요즘 잘 나가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전공했잖아, 내가 제대로 쓴 건지 한번 봐줄래?’


    그리고 상대방의 인생 경험에 근거해서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뉴질랜드에 가본 적 있어? 거기에 뭐가 재미있는지 얘기 좀 해줘.’

    ‘연하남이랑 사귀어 본 적 있잖아, 어때? 연하는 어떤지 얘기 좀 해줘.’


    이 상황이 거북하고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서로 좋게 포용하고 이야기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꼭 이기적이고 차갑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받은 메시지에 회신을 안 한 것뿐인데,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이기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 만약 우리가 정해진 근무 시간에 이런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 답장하느라 프로젝트 진행을 지연시키고, 동료의 업무와 퇴근 시간에 지장을 주고, 심지어 성과에도 영향을 미쳤다면 이런 행동이야말로 직장에서는 이기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내가 당신을 잘 알고 있고, 당신이 어떤 능력/경험이 있는지 알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도와주어야/대답해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이름을 붙인 ‘어른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런 유형은 마치 청소년 시기처럼 나약하고 책임감과 독립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여기에 도덕적 고자세를 유지하며 상대방을 비난하고 착취하는 습관의 합병증까지 따라온다.


    이러한 착취는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방과 잘 지내는지 또는 당신에게 이익을 주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무슨 일이 생겨서 상대방에게 도움이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탐욕스럽게 상대방에게 집착하고 요구한다. 그런 뒤로는 아무런 보답도 없이 떠나버리고 다시 문제가 생기면 또 돌아와 같은 방식을 반복한다.


    -누구든 보살피려는 ‘유모병’도 중독이다

    간혹 도움을 청하러 오는 사람을 만나면 ‘여기까지 찾아오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쓰여서 되도록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그러고 나면 상대방은 ‘와! 놀라운 깨달음이에요.’,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렸어요.’라며 이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매우 형식적으로 ‘정말 친절하시네요.’, ‘많은 도움이 됐어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내 인간성을 칭찬한다. 그러면 나는 흐뭇해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비록 이 사람이 친구의 친구의 처제의 동창의 동생일지라도 그 순간에는 자아도취에 빠져 이 사람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줄 만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더 심하다. 딱 한 번 만난 적 있는 위챗 친구가 나에게 인생의 난제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그녀가 느꼈을 불안과 걱정, 괴로움을 대신 짊어진 채 내 인생의 어려움처럼 나는 밤새도록 치열하게 고민했다. 마침내 생각을 정리하여 그녀에게 몇 단락에 걸쳐 답장을 해줬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고작 ‘감사합니다. 이 문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라는 말이었다. 힘들게 고민해서 답을 줬는데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니, 황당하긴 했다.


    나는 내가 앞서 보여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유모병’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좋은 어머니(아버지)가 되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을 책임지거나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 합병증은 누군가 당신을 훌륭한 부모로 여기면 더욱 다른 사람을 돕고 싶고, ‘와, 난 정말 대단해.’라는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어른 아이’와 ‘유모병’은 쌍을 이루거나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불치병에 걸려서 서로 영양을 공급한다. '어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데 점점 더 익숙해지고 ‘유모병’ 환자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을 희생한다. 그 결과 그들은 분별력을 상실하고 한계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런 관계 패턴이 굳어지면서 급기야 무엇이 자신의 인생인지조차 망각한다.


    ‘어른아이’는 타인의 시간과 공간을 침범하거나 착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유모병 환자’도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나만의 외딴섬을 아름답게 가꾸는 삶

    다행히 이제라도 문제를 깨달았으니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이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


    지난 주말, 나는 도움을 청하는 ‘어른 아이’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친구들과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며 SNS에 게시물을 올렸다. 그런데 잠시 후 불만 가득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바쁘셔서 답장을 안 하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그렇다. 나는 내 오후를 즐기느라 바빴다. 이렇게나마 주어지는 짧은 휴식은 마음을 가다듬고 긴장을 풀어줘서 계속해서 힘든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어른아이’의 인생과 아무 관계가 없다. 이때, 당신에게 통찰력이 없고 내면이 약하면 도덕적 압력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오후를 즐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 문제가 더 중요하고 시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에 이런 방해가 계속된다면 이건 누구의 책임일까? 모든 일에 도움을 청하는 문제해결 방식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의 평생을 항상 책임질 여유가 없다면 지금 당장 그를 심리적 이유(断乳), 즉 젖을 떼게 하는 것이 좋다.


    당신 자신이 만일 ‘어른 아이’라면 당신의 입장을 대신해 줄 수 없고, 당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당신을 위해 모든 여정을 안내하고 그저 형식적인 대답을 한다면, 이것이 정말 당신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는가?


    모든 사람은 외딴섬이다. 이 외딴섬은 홀로 자립해야 더욱 잘 살아남는다. 다른 사람의 외딴섬 사이의 거리를 명확히 알고 어떻게 하면 적정한 선을 넘지 않고 왕래할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먼저 자신의 외딴섬을 잘 관리하는 것을 기반으로 다른 섬에서 일어나는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침범하지 않으며, 건강한 내부 생태 순환 체계가 있어야만 자신의 영역이 건강하게 번성하고 발전할 수 있다.



    깨어날수록 자유로운 나

    진짜 자아와의 평온한 동행

    악담과 험담에 대한 대처 -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기

    -악의적인 비판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그것’

    악의가 담긴 행동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좋다. 이 세상에 악의는 선의만큼 많다. 물론 나도 선의가 더 많다고 믿고 싶다. 악의를 대응하다 보면 선의에 대한 기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고 악의에 사로잡혀 악의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눈과 귀, 마음은 온통 악의로 가득 차서 당신에게서도 악의만 드러날 뿐이다.


    악의를 악의로 대응하는 악순환은 바꾸기 어렵다. 히가시노 게이고(Higashino Keigo)의 소설 『악의(恶意)』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의 악의는 잡풀이 무성한 토양과도 같다. 그래서 언제 하늘 을 치받고 선 나무를 키워낼지 모른다.’


    평생 살면서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를 키울 수 있다면, 지금 그 나무의 씨앗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미래에 선의가 충만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나무의 씨앗을 고르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의적인 상황을 마주하면 거기에 반박하여 해명하고 만회하려는 충동을 느낄 테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수학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 학기에 가장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바로 수학이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2등이라는 높은 성적을 얻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감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찬물을 끼얹듯 감동적인 순간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너 수학 성적 엄청 잘 나왔다며? 어떻게 찍은 거야?”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말 때문에 며칠 동안 우울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어머니께 하소연하며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하면 복수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해 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친구랑 따지고 싸우면 과연 기분이 나아질까?”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깨달은 이 이치를 어른이 된 지금도 적용하고 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한바탕 따지고 기분을 풀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방법이다. 정작 당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은 아마도 진즉에 그 일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당신의 반박이 오히려 상대방의 추측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당신의 무력한 반박은 그가 마음대로 떠들어댄 판단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런 방식으로는 자존심 회복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당신의 행동만은 최고의 증명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가장 좋은 증거다. 당신이 보여줘야 할 일은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처럼 노력과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고득점 수학 시험지를 이용할 필요는 없지만 사실을 가지고 결과로 반격하면 된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존중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하든 비난하든 초심을 잃지 말고 스스로 존엄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악의적인 의도에 휘둘려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 감정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심지어 잘못하면 당신 인생도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말 것이다. 또한 악의를 가지고 당신을 억측했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당신을 공격할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진정으로 존엄성을 갖춘 강자가 되는 것만이 악의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당신을 자극할 수 없다. 그때쯤이면 당신은 어떤 악의적인 비방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살면서 악의적인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와 마찬가지로 선의와 사랑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는 악함을 위해 살기보다 선함 과 사랑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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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