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저   자
루이즈 디살보(역: 정지현)
출판사
예문
출판일
2015년 06월
서   재







  • 이 책 속에는 버지니아 울프,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헨리 밀러, 존 스타인벡 같은 클래식 작가들은 물론 조 앤 비어드, 마이클 샤본, 제프리 유제니디스, 이언 매큐언, 도나 타트 같은 동시대 작가들의 ‘느린 글쓰기’에 관한 일화가 담겨 있다. 저자는 작가이자 교수인 자신의 풍부한 경험은 물론 다양한 작가들의 인터뷰와 일기, 작품 연구를 통해 좋은 글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

    글을 쓸 시간이 없는 이유

    장편을 쓰겠다는 꿈을 이루려면 일관적인 글쓰기가 습관화되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에게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필수적인 의무가 뒤따를 것이다. 직장, 육아, 이성 관계, 집안일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작 매일 해야만 하는 일은 바로 글쓰기다.


    초보 작가들은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퓰리처상 수상작 『스톤 다이어리』의 캐롤 쉴즈(Carol Shields) 같은 작가들의 초기 생활에 대해 알면 도움이 된다. 쉴즈는 소설을 쓰기 전에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소설 집필을 다시 시작한 그녀는 단순한 일과를 따랐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기 전인 11시에서 12시 사이의 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는 하루에 두 페이지를 목표로 한 시간 동안 글을 썼다. 나중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써놓은 글을 읽고 다음 내용을 구상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 두 페이지를 쓰면 주말 즈음에는 열 페이지가 되어 있다. 일 년이면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다. 정말로 소설 한 편을 썼다. 하루에 한 번 쓰는 작은 조각이 합쳐져 큰 것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최근에 탈고를 앞둔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서 괴로워했다. "아이들에게 소리만 질러요. 글을 써야만 하고 쓰고 싶은데 글 쓸 시간을 찾을 수가 없어요." "글 쓸 시간은 찾는 게 아니에요. 만드는 거예요."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을 때나 하루에 두어 시간씩 아이들을 맡기고 글을 쓸 수도 있다.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항상 조용하게 놀아줘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잠깐 말에 조용히 자기들끼리 내버려두고 글을 쓸 수도 있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초기에 멘토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글을 쓰고 싶으면 대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인 즉, 우리가 하지 않기로 선택한 일도 있다는 뜻이다. 초보 작가들 중에는 글쓰기를 포기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가령, 그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글을 쓰는 대신 빨래하기를 선택한다. 소설가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글을 쓰기 위해 "가벼운 인간관계처럼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것들을 희생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내가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기본적인 원칙이다.


    ․ 단순한 일과를 정하라. 쉴즈가 매일 점심시간 이전에 한 시간씩 2페이지를 쓴 것처럼.

    ․ 현실을 직시하라. 지키기도 못할 세 시간보다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한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 낫다.

    ․ 매일 손을 대라. 나는 일주일에 5일 동안 글을 쓴다. 그리고 과정 일지에 떠오른 생각을 메모한다.

    ․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라. 방해받을 때마다 다시 집중하기까지 약 20분이 걸린다.


    단순한 일과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면 매일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존재적 딜레마가 발생해 기운이 빠질 수 있다. 언제 쓸지, 쓰기는 해야 할지,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인지 아닌지 따져보는 시간은 전부 불필요한 낭비일 뿐이다. 천천히 꾸준하게 목표를 달성하도록 해주는 일과가 정해져 있으면 매일 새로 정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작가, 그 오랜 기다림의 시간

    재활 훈련과 글쓰기

    스티븐 킹(Stephen King)은 1999년에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받았던 물리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PT가 고통과 고문(Pain & Torture)의 줄임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재활 과정과 사고 전에 쓰기 시작한 비소설 『유혹하는 글쓰기』의 집필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회복 기간에 마주한 도전과,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한 작가가 마주한 도전을 연결시켰다. 물론 두 상황이 동일한 조건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의 회복 과정과 마찬가지로 다시 능숙하게 글을 쓰게 되는 과정도 느리고, 오래 걸렸으며, 어려웠다.


    킹은 사고를 당하기 직전에 『유혹하는 글쓰기』의 작업을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그 원고는 골칫거리였다.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끝냈지만 글쓰기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중요한 부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어떻게 계속할지, 아니 시작은 해야 할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1997년 말에 그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1998년 초에 중단했는데 18개월이 지나도록 절반밖에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소설 집필은 여전히 즐거웠지만 비소설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고문이었다. 그는 좀 더 느긋하게 그 원고의 집필을 다시 시작하고자 답하고 싶은 질문과 다루고 싶은 핵심을 전부 모았다.


    킹은 다시 시작한 원고를 몇 페이지 썼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났다. 그는 재활 훈련을 하면서 "다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책상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데다 그 책은 더욱 힘겹게 다가왔다. 그는 다시 글쓰기의 흐름으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으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로 든 충동은 글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전에 힘들 때 글을 쓰면서 힘을 얻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몇 년 동안 글을 쓰지 않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다시 소설을 쓰기로 했다면서 "예전에도 쓴 적이 있으니까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글쓰기를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글쓰기는 여타의 예술이나 기술과 똑같다.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며 새로운 시작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다시 글쓰기에 익숙해지려면 오래 걸리므로 매일, 혹은 적어도 일주일에 5일은 계속 글을 쓰면서 감을 유지해야 한다. 노트에 메모를 하거나 읽고 있는 책의 감상평을 써도 된다. 일상에 대한 기록과 성찰을 담을 수도 있다. 쓰고 싶은 책에 대한 상상도 좋다.


    글쓰기의 회복 과정에는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화가 나거나 낙심하거나 분노할 수도 있다. 생각과 달리 전진은 결코 선형이 아니다. 오랫동안 쉬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면 매일 전진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한동안은 전진이 나타난다. 그 후에는 퇴보한다. 그리고 또다시 전진한다.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 후 그러했듯 아무리 힘들고 전진이 없어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스티븐 킹은 처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날 1시간 40분 동안 작업했다. 끝났을 때는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땀이 줄줄 흐르고 똑바로 앉으려고 하는 것만으로 녹초가 되었다. 50권의 소설과 200편의 단편을 발표한 베테랑 작가였지만 첫 500자를 쓰기가 마치 그 전에 한 번도 글을 써본 적 없는 것처럼 무서웠다. 그 날의 작업은 전혀 고무적이지 않았고 예전의 감도 그를 저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단호한 결의로 계속 버텼다.


    스티븐 킹에게도 어려웠다면 우리에게는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의 말처럼 가장 두려운 순간은 언제나 시작하기 직전이다. 그 후에는 더 나아지기만 한다. 그는 어떤 날은 글쓰기가 매우 암울한 난관이고 또 어떤 날은 작업에 다시 익숙해져서 올바른 단어를 찾아 정렬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븐 킹에게 글쓰기는 독자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역시 풍요롭게 해주었다. 그의 말대로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끝없는 도전과 성공

    작가에게 중요한 사람들

    작가 강연회에 가 보면 작가의 작업 습관과 영감의 원천, 작품 완성에 걸리는 시간 등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편집에 관련된 제안은 얼마나 많이 받았죠? 그 제안에 따라서 원고를 얼마나 고쳤나요?"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작가들에게 물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작하는 작가들은 진행 중인 원고를 멘토의 제안에 따라 절대로 바꿀 수 없으며 바꿔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마치 내 작품이고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방식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야말로 자기 작품의 가장 훌륭한 심사위원이라는 가정이 맞을 때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 과정을 그런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작가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의 제안이 있어도 원고를 수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허울뿐인 변화를 주려고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내러티브의 굴곡이나 작품의 목소리, 관점, 순서 등에 대해서는 자신의 관점을 고수한다.


    나는 함께 일하는 작가가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해도 꼼짝하지 않으면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담당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Maxwell Perkins)가 『위대한 개츠비』에 관해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최종 출간 버전 『위대한 개츠비』와 이전 버전 『트리말키오(Trimalchio)』를 비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훌륭한 작가가 편집자의 조언에 따라 어떻게 원고를 고치는지 보여준다.


    퍼킨스는 『트리말키오』를 칭찬하기는 했지만 원고에 나타난 세 가지 큰 문제를 지적했다. 두 개의 챕터에 문제가 있었다. 개츠비의 캐릭터가 약간 모호했다. 퍼킨스는 개츠비의 묘사가 좀 더 분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개츠비가 어떻게 큰 부자가 되었는지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츠제럴드는 퍼킨스의 평가를 들은 후 복잡한 재집필과 재구성 작업을 실시했다. 문제의 챕터를 다시 썼고, 좀 더 앞부분에서 개츠비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소개했으며, 그가 부를 이룩한 경위를 암시했다. 또한 광범위하게 문체를 다듬었고 새로운 소재도 넣었다.


    피츠제럴드는 전에도 소설의 제목을 여러 번 바꾸었다. 그가 고심했던 제목 중에는 『잿더미와 백만장자들 사이에서(Among the Ash Heaps and Millionaires)』, 『웨스트 에그로 가는 길(On the Road to West Egg)』, 『금색 모자를 쓴 개츠비(Gold-hatted Gatsby)』 등이 있었다. 피츠제럴드는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로 바꾸기로 처음 동의한 후 『성조기 아래서(Under the Red, White, and Blue)』 같은 제목을 제안했다. 하지만 퍼킨스는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작가들은 출판 과정을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의 제안에 따라 얼마나 원고를 고쳤는지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고가 전체적인 점검이 필요한 상태였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책이 출간되기 전에 협동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유명 작가는 프로젝트 말미에 편집자와 호텔 방에 함께 숙식하며 원고를 완전히 재정비한다. 이처럼 작가는 출간된 책의 대략적인 원고를 내놓지만 훌륭한 작품에 대한 공은 편집자가 아니라 작가에게로 돌아간다.


    작가는 원고를 완성하고 편집자는 원고를 평가한다. 그리고 그들은 원고를 최대한 좋은 책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친다. 작가들은 원고를 제출할 때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곧 아직 남은 작업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고가 끝날 때쯤 작가는 작품과 너무도 가까워져 있어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므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알려줄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내 경험상 이 단계에서는 때로는 협상, 심지어 언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상당한 수정 없이 출간된 책은 한 권도 없다. 베테랑 작가들이 편집에 관한 조언을 받아들이는 반면 초보 작가들은 썩 내켜하지 않는다.


    유명 작가들은 편집자들을 만난 후 전체적으로 고쳐 써야 하거나, 주요 캐릭터의 표현 방식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거나, 책의 구조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편집자의 조언에 귀 기울려 수년 동안 힘들게 쓴 작품에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변화를 준다. 글쓰기 과정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또 다른 작업의 시작인 것이다. 하지만 초보 작가들은 안타깝게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메리 고든(Mary Gordon)은 시작하는 소설가 시절에 멘토의 조언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 그녀의 첫 소설 『최종 지불(Final Payments)』은 출간되기 전에 많은 수정 과정을 거쳤다. 가장 중요한 3인칭 시점에서 1인칭 시점으로의 변화는 바나드 칼리지(Barnard College) 재학 시절에 영어 교수였던 엘리자베스 하드윅(Elizabeth hardwick)이 제안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30세 여성 이자벨 무어(Isabel Moore)의 목소리로 전개시킨 『최종 지불』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다. 그 소설은 선풍을 일으켰고, 페이퍼백 버전으로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베테랑 작가들은 재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수정을 한다. 자신이 완성한 버전에 무턱대고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문가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또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출간된 작품이 훨씬 좋아진다. 『위대한 개츠비』가 『잿더미와 백만장자들 사이에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면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작가의 휴식

    요리하는 작가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저녁마다 요리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요리할 때 글이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고 모순적이지만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그림자는 안다(The Shadow Knows)』의 작가 다이앤 존슨(Diane Johnson)은 "내가 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요리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일이자 놀이다. 그렇게 보면 나의 모든 삶이 놀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하지만 테이크아웃이나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이 전부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맛없는 음식을 먹기가 싫어서 직접 요리를 한다. 요리를 할 때는 정말 즐겁다. 글을 쓰느라 아무리 피곤한 날에도 요리만 하면 그 즐거움에 빠지게 된다. 내가 요리를 하는 진짜 이유는 그럴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작가들 중에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작가가 요리에 관심이 없거나 요리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글 작업이 무척 중요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마이클 샤본은 에세이 『케이크의 예술(Art of Cake)』에서 요리를 어떻게 배웠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열 살 때 비스퀵 상자 뒷면에서 벨벳 크럼 케이크(velvet crumb cake) 요리법을 발견하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그때 샤본은 이미 몇 년 동안 어머니의 요리를 도와온 터였다. 어머니가 변호사로 하루 종일 일하게 되자 샤본은 대학 입학을 위해 집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 저녁 가족들을 위해 요리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요리한다. 그는 요리를 하는 동안 부엌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


    "글쓰기는 요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라고 샤본은 말한다. 요리는 완고함과 마지막 순간의 실패에 대한 내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요리할 때는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잘 될 수도 있고 끔찍하게 잘 못 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읽고 싶어지는 책을 쓰려고 하낟. 요리할 때는 자신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법이다. 책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쓴다"라고 샤본은 말한다.


    나는 책 쓰는 작업을 요리만큼 즐기지는 않는다. 하워드 가드너에 따르면 무언가를 창조하는 동안에 느껴지는 불만족은 문제의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서도록 만든다. 한 작품에 몇 년을 쏟아도 만족의 순간은 지극히 잠깐에 불과하다. 끝낸 순간에는 만족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정한 기쁨은 아니다. 이미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멘토 미첼 A. 리스카가 책 집필을 막 끝냈을 때 "설레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책 한 권을 끝내면 엄청나게 들뜨고 흥분되는 기분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대답했다. "그랬지. 몇 분 동안."


    첫 번째 책이 출간된 날, 나는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서 흠, 그래도 삶은 똑같이 계속 되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리는 만족과 기쁨을 동시에 준다. 요리가 주는 만족감은 엄청나다.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노력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리고 먹는 기쁨까지 누린다.


    채소를 구입할 때나 필요한 재료를 찾기 위해 냉장고나 찬장을 뒤지거나 당근이나 고추, 양파를 썰 때는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요리를 할 때만큼은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요리를 하지 않으면 항상 작가의 뇌 모드에 머물러 있으므로 주변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일이 아닌 그 무엇에도 제대로 관심을 쏟을 수가 없다. 작가만의 세계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아들 제이슨이 해준 이야기다. 어릴 적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내가 글을 쓰고 있더란다. 아이는 내 책상 앞에 서서 "엄마, 저 피가 엄청 나요"라고 말했는데 내가 "그거 잘됐구나. 가서 간식 먹어. 엄마도 조금 이따 갈게"라고 했단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요리는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글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결국 책상을 떠나 있을 때 더 중요한 일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책 짓기, 책 완성하기

    가장 힘든 선택

    작가는 하루에 수백, 또는 수천 가지 선택을 한다. 이 부분은 그대로 두고, 저 부분은 바꾸고, 이 문단은 여기로 옮기고, 저 문장은 좀 더 강렬하게 하고, 이 문단은 둘로 나누고, 이 부분은 고쳐 쓰고 저 부분은 빼고 등. 생각보다 많은 수의 작가가 자신의 선택이 작품의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내린다. 하지만 선택을 너무 의식해서도 안 된다. 억압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품이 끝났다고 여길 즈음이면 캐릭터와 성격 묘사, 배경, 대사, 구조 등 모든 요소에 관한 결정을 내린 후다.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살폈을 것이다. 매 순간 선택은 어렵고 작가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선택도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다수도 작업이 끝에 가까워질수록 선택에 대한 확신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스티븐 히어로(Sthepen Hero)』 역시 출간될 수 있었던 소설의 초기 버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원고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수정을 통해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변신시켰다. 『스티븐 히어로』는 일반 독자들에게 훨씬 읽기 쉬운 작품이다. 그 원고에서 주인공 스티븐의 어머니와 남동생, 누이는 비중이 크게 그려지고 아버지의 비중은 더 적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디덜러스 가족이라는 주제를 작품에서 강화했다. 그리고 『스티븐 히어로』에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는 그저 암시만 되는 연애사가 더욱 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려졌다. 스티븐의 캐릭터 역시 완전히 달랐다. 『스티븐 히어로』에서의 스티븐은 좀 더 외향적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교적인 성격이다.


    조이스는 『스티븐 히어로』의 원고를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수정할 때 스티븐이라는 캐릭터를 이용해 헌신적인 예술가가 우리 사회에서 탁월하고 영웅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표현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한 소년이 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종교를 버리는 등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스티븐의 성격에서 사교적 측면을 제거하는 일이 필요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포크너는 작가의 의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작품을 끝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완성작에 절대로 만족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포크너는 완성되지 않은 작품은 작가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괴롭히므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포크너는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했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작품을 판단하는 객관성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솔직함, 용기와 더불어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어떤 작품도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포크너에게 가장 큰 어려움을 안긴 소설은 『소리와 분노』였다. 다섯 번이나 따로 써야만 했던 작품이었다. 그는 길 잃은 두 여성, 캐디와 그녀의 딸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끝까지 고뇌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소설의 영감은 그가 떠올린 한 이미지에서 나왔다. 진흙 묻은 속바지를 입은 여자아이가 배나무에 올라가 앉아 할머니의 장례식이 열리는 곳을 엿보면서 나무 아래에 있는 동생들에게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단편으로 쓰려고 했지만 그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여자아이의 속바지에 진흙이 묻었는지에 대한 배경 이야기가 필요하므로 장편 소설을 쓸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떠오른 이미지가 또 있었다. 아빠도 엄마도 없는 여자아이가 자신의 유일한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배수관을 타고 내려가 탈출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 포크너는 남동생 중 한 명인 백치 아이의 관점으로 이야기하려고 생각했다. 그 화자라면 이유는 모르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는 다른 남동생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했다. 그러고 나서 세 번째 남동생의 시선도 활용해보았다. 하지만 완성된 원고를 보니 전혀 효과적이지 못한 방법이었다. 그는 자신을 대변인으로 내세워 네 번째로 소설을 다시 썼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수정해서 출간했다. 15년 후에도 그 이야기는 그를 떠나지 않았기에 부록을 써서 『포터블 포크너(The Portable Faulkner)』에 수록했다.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털어내 평화로워지려는 마지막 시도였다.


    『소리와 분노』는 포크너에게 상당히 큰 고뇌를 안겨준 작품이었다. 도저히 그냥 놔둘 수 없는 이야기였고 아무리 애써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 작품에 커다란 애정을 느꼈다. 포크너는 종종 힘든 도전과 마주했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졌든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전적인 자유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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