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디지털 워

Digital Wars

저   자
찰스 아서(역자: 전용범)
출판사
이콘
출판일
2012년 08월
서   재







  •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3사의 1998년부터 오늘과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까지를 검색, 음원, 스마트폰과 태블릿등 대표적인 서비스를 중심으로 CEO 등 대표적인 인물들의 에피소드와 전략 실행 결과에 이르기까지 르뽀 형식으로 구성한 책.



    디지털 워


    서론: 시작

    1970년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눈앞에 인터넷 세상이 펼쳐졌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사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야후(yahoo)와 같은 웹사이트는 초 단위로 뉴스를 전해주기도 하고 날씨를 알려주기도 하며 이메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음반 산업과 같은 기존의 산업들은 조금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컴퓨터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런 변화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세 회사가 등장했다. 애플(App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구글(Google). 이들은 전혀 색다른 존재였다. 이들이 디지털 전쟁의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들의 형색은 제각각이었다. 하나는 이미 화려했던 영광의 날들을 과거로 흘려 보낸 후였고 또 다른 하나는 한참 컴퓨터 업계의 선두주자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두 명의 매우 똑똑한 학생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제 디지털 세계의 서로 다른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한 전투를 치러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광고가 이들이 사용하게 될 무기다. 이 끝없는 전투에 각자의 명예가 걸려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까지도 달려 있다.


    사람들이 어떤 검색엔진을 사용할까? 우리는 어디서 디지털 음원을 구할까? 휴대폰의 소프트웨어, 기차를 기다리거나 회의를 할 때 사용하는 태블릿의 소프트웨어는 누가 생산할까? 과연 이런 질문들은 중요한 것일까?


    어찌됐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톨게이트를 장악하면 황금빛 기회를 거머쥐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톨게이트의 주인이 되더라도 그 곳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통행료는 그의 차지가 된다. 거대한 부가 이 디지털 전쟁에서 이긴 자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이다. 게다가 그 거대한 부로 다른 공간에 새로운 톨게이트를 세우거나 기존의 톨게이트를 차지하고 있는 적수를 몰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까지도 승자의 몫이다.


    이 세 회사가 자신들이 같은 디지털 공간에 함께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때는 1998년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앞으로 치르게 될 전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 전투들이 세상을 바꾸게 된다.



    검색: 구글 vs 마이크로소프트  

    월드와이드웹이 구축된 지는 겨우 6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웹 페이지와 웹 사용자는 급증하고 있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좀더 나은 검색엔진을 만들어낸다면 전 세계가 자신들의 웹 페이지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웹을 인덱싱한다는 생각 자체를 맨 처음 한 것도 아니고, 웹을 인덱싱 하는 그들의 방식이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 콘텐츠를 검색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 역시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이미 야후를 비롯한 수십 개의 회사들이 하고 있었다. 게다가 검색 자체로는 수익을 낼 수 없었다. 수익이 난다 해도 검색 기능을 굳이 개선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구글

    1996년만 하더라도 페이지와 브린은 여러 회사를 찾아 다니며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판매하려고 했다. 그들은 엑사이트(Excite)와 야후를 찾아가서 페이지랭크가 얼마나 정확한 결과를 찾아내는지를 선보였다. 이 거대 사이트들은 페이지랭크가 훌륭한 제품이라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굳이 더 나은 검색엔진을 구매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그들은 이미 검색엔진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정확한 결과가 첫 화면 상단에 나타나는 것이 그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이것은 야후의 공동설립자이자 CEO인 제리 양이 지적한 사실이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그 결과만 클릭하고 바로 그 사이트를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을 올리려면 사람들이 오래 머물며 여러 사이트를 클릭해줘야 했다. 결국 야후 입장에서는 더 나은 검색을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1998년 여름 페이지와 브린은 드디어 자신들의 회사를 설립했다. 멘로파크에 자리를 잡은 이 신생업체는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신용카드를 한도까지 사용하면서 간신히 필요한 설비를 갖출 수 있었다.


    파산

    2000년 초 구글은 최고의 검색사이트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구글의 성장은 우연히도 2000년 3월 인터넷 기업들의 파산과 때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 무렵 인터넷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많은 신생업체들이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말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이 업체들의 주식은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인터넷 기업의 연쇄적인 도산은 구글에게는 시기적으로 너무나 적절했다. 갑자기 파산한 소유자들이 잘 관리해온 서버가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왔다. 비어 있는 서버팜과 사무실은 넘쳐 났다. 그리고 정말로 뛰어난 인재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 모든 상황이 구글에게는 한줄기 단비와 같았다.


    드디어 수익이 나다

    구글은 광고 사업모델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애드워즈(Adwords)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업 모델은 검색 결과 옆에 조그마한 텍스트 광고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광고주들은 검색창에 입력되는 키워드에 대해 입찰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광고주가 결과 페이지의 최상단에 광고를 게재할 수 있었다.


    애드워즈가 추가된 후 그 해 12월 처음으로 구글에게 영업이익이 발생했다. 2001년 전반기 동안 구글은 월드와이드웹에서 가장 접속수가 많은 독립 검색엔진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구글의 이런 지위는 흔들린 적이 없다.


    2001년 말 구글의 매출은 8천6백40만 달러였고 이익은 6백9십8만 달러였다. 과거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었다면 그런 폭발적인 수입과 이익의 증가를 지켜보면서 기업공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페이지와 브린은 달랐다. 잠수함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마라. 그리고 가능한 한 기업공개를 뒤로 늦춰라. 이것이 그들이 선택한 전략이었다. 그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곧바로 시장을 장악하고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여전히 약체

    구글은 검색엔진에서 승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실패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전혀 낯선 지형에서 싸웠다는 것이 그 실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15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에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 10년 후 창고의 젊은 친구들이 자신을 뒤덮고 있던 그 거대한 집의 토대를 부수기 시작했다.



    디지털 음악: 애플 vs 마이크로소프트

    아이튠즈의 시작

    2001년 1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새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의 핵심은 맥을 디지털 허브로 만드는 것이었다. 잡스는 아이튠즈(iTunes)를 출시했다. 아이튠즈는 사운드잼을 애플 브랜드의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로 탈바꿈시킨 것이었다. 아이튠즈는 CD의 음원을 MP3파일로 변환할 수 있었다. 또한 음원명을 자동으로 저장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라이브러리는 음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튠즈를 통해 MP3 CD나 (CD플레이어에서 재생할 수 있는) 오디오 CD를 구울 수도 있었다. 비로소 애플이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제품의 마케팅

    2001년 10월 15일 애플은 기자들에게 쿠퍼티노 본사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해달라는 초청장을 발송했다. 10월 23일 행사 당일, 기자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스티브 잡스는 무대 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잡스는 아이팟이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예측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프레젠테이션의 한 슬라이드에 나타나 있었다. 그 슬라이드는 75달러짜리 휴대용 CD플레이어, 플래시 기반 플레이어, MP3 재생 가능 CD플레이어 그리고 하드드라이브 기반 주크박스를 비교하고 있었다. 그 슬라이드에 따르면 75달러짜리 휴대용 CD플레이어는 10∼15곡이 담겨 있는 CD를 재생한다. 따라서 한 곡당 5달러의 비용이 든다. 플래시 기반 플레이어는 150달러에 10∼15곡, 즉 한 곡당 약 10달러이다. MP3 재생 가능 CD플레이어는 150달러에 150곡, 한 곡당 1달러. 마지막으로 하드드라이브 기반 주크박스는 300달러에 1,000곡, 한 곡당 30센트이다.


    잡스는 계속해서 아이팟이 가진 장점들을 강조해나갔다. 초간편 휴대성, 배터리수명, 파이어와이어의 빠른 전송속도. (USB1.1의 5시간과 비교하여) 파이어와이어로는 전체 저장용량을 음원으로 가득 채우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음원, 저장되다

    2003년 가을 애플은 3세대 아이팟을 선보였다. 이 새 모델이 가진 한 가지 특징은 기기 밑면에 있는 애플 전매특허의 30핀 독 커넥터였다. 이 커넥터를 통해 아이팟을 파이어와이어나 USB2.0 포트에 케이블로 연결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독 커넥터에서는 훨씬 더 신중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이것은 아이팟으로 가는 입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애플은 아이팟에 무언가를 넣고 빼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통행료를 받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향력 면에서 훨씬 중요했던 것은 바로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였다.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야말로 그 이후 음반업체부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아이팟에 대한 잡스의 꿈을 구현한 것이었다. 그 꿈은 바로 인터넷을 통해 원활하게 음원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2002년 잡스는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라고 음반회사들을 줄기차게 설득하고 있었다. 그는 다운로드를 통해 직접 음원을 판매할 계획이었다. 잡스는 애플이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적절히 활용하여 음반회사에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이 협상에서 잡스는 혹시라도 뮤직스토어가 불법복제의 통로가 되더라도 단지 5%(애플의 시장 점유율)의 컴퓨터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거대 음반회사인 유니버설과의 계약이 결정적이었다. 드디어 일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두 얼굴

    디지털플레이어 시장에서 애플의 지배력은 점점 강화되고 있었다. 월마트는 미국 최대의 소매유통업체였고 베스트바이는 미국 최대 전자제품 소매유통업체였다. 애플이 이 두 거대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정신 나간 짓 같아 보였던 결정이 사실은 신중한 브랜딩전략과 소매전략의 기막힌 조합이었다. 이 결정은 먼저 애플이 고수해온 브랜딩전략의 일환이었다. 아이팟은 전자제품계의 패스트푸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급제품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애플의 경영진은 월마트를 통해 판매될 소비자 전자제품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잘 알고 있었다. 월마트를 통해 판매되는 순간 값싸고 날림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아이팟은 신중한 고려 없이 결정된 매장의 공간에 진열될 것이다. 그렇게 진열된 아이팟은 차츰 쇼핑객들의 손때를 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닳고 허름한 그저 그런 제품으로 쇼핑객들의 눈에 비치게 될 것이다. 결국 쇼핑객들은 가격을 살펴보거나 아니면 사양에 대한 체크박스를 쭉 훑어보고는 순식간에 아이팟과 다른 제품 중의 하나를 선택해버릴 것이다. 체크박스에는 아이팟으로 얼마나 쉽게 음원을 동기화하거나 구입할 수 있는지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애플은 이런 대형 소매유통업체의 진열공간을 임대하지 않았다. 대신에 특히 TV 광고를 통해 적극적으로 아이튠즈와 아이팟을 홍보했다. 경쟁 MP3 플레이어가 판매되는 대형유통업체로 편입되지 않고 그 외부에 머물러 있는 전략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 다른 제품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다른 제품과의 경쟁을 일류가 아닌 이류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다른 한편 대형유통업체를 통해 아이팟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결정 이면에는 애플의 소매전략도 자리잡고 있었다. 애플은 웹사이트와 몇몇 지정 소매업체를 통해 판매하는 것 이외에 2001년부터는 소매 매장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매장에는 아이팟과 아이맥이 나란히 진열되었다. 또한 적극적으로 구입을 권유하기보다는 고객들이 제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아이팟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실제로 아이팟을 구입할 가능성을 높였다. 그리고 다른 제품과 함께 진열하지 않음으로써 가격과 특성을 비교할 여지를 없애버렸다.


    황혼

    판매 수치를 살펴보면 아이팟의 실질적인 판매량의 증가는 2004년 1월에 처음 발생했다. 그 후 2년 동안 계속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하다가 2006년부터 안정세로 돌아섰다. 수백 퍼센트 성장에서 수십 퍼센트 단위로 내려간 것이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수평적 모델에 여전히 얽매어 있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파도를 타려는 서퍼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조금의 이익이라도 얻으려고 최대한 열심히 손으로 물을 저어야 하는 신세였다.


    그 파도가 지나가버릴 때까지, 애플은 이미 2억8백만 대의 아이팟을 판매했다. 그러고 나서 판매량은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2001년 1사분기가 끝날 무렵까지 총 3억 7백만 대의 아이팟이 판매되었다. 매년 약 5천만 대를 팔았고, 판매량은 5%씩 감소하고 있었다. 만약 애플이 자기 잇속만 챙기려 했다면 그 제품의 생산을 질질 끌고 가다가 2021년 아이팟 출시 20주년 기념일 정도에 중단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인터넷이 가능한 아이팟 터치와 나노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아이팟 터치는 2011년 중반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데스크톱이나 노트북과는 달리 한 장소에 머물며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용자가 검색하고 브라우징을 할 때마다 그들의 위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검색 결과와 광고의 대상 설정이 더욱 정확해질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검색시장에서 구글의 주도적 위치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처럼 2005년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두 인터넷의 미래가 모바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을 익스체인지와 같은 수익성 높은 백엔드 소프트웨어의 부속물로 이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구글은 모바일 수용자가 구글을 통해 검색하도록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구글의 경쟁업체(마이크로소프트가 분명한데)로부터 천문학적인 금액을 받고 이 소프트웨어를 디폴트로 설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용자들 대부분은 디폴트 설정을 변경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구글도 이미 연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고 모질라의 파이어폭스나 애플의 데스크톱 브라우저인 사파리에 구글 검색을 디폴트로 설정했다. 구글 역시 이런 사람들의 성향을 이용하고 있었다.)


    구글이 자신의 미래를 보호하는 유일한 길은 휴대폰 제조업체가 원하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휴대폰용 무료소프트웨어였다. 그럴 경우 구글 검색이 그 소프트웨어에 포함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냥 걸어 들어가다

    2006년 말이 되면서 애플이 휴대폰을 출시할 것이라는 소문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소문은 틀리지 않았다. 애플 내부에서는 실제로 휴대폰이 개발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이폰(iPhone)으로 불리게 될 휴대폰이었다. 200명 전후의 사람들로 구성된 팀이 2005년 중반부터 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큰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한 팀은 소프트에어를 개발하고 다른 팀은 하드웨어를 개발했다. 끝까지 두 팀이 함께 일하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그 개발작업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폰은 거대한 공학적 시도였다.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경험이 전혀 없는 터치스크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했고, 맥 OS X 운영체제를 휴대폰의 훨씬 제한적인 저장공간에 적합하도록 다시 작성해야 했다.


    어쨌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갔다. 100개 이상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어 비교테스트를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1월 9일 화요일, 스티브 잡스는 그 휴대폰의 출시를 발표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마련된 무대에 올랐다.


    공짜 점심

    2007년 11월 구글은 개방형 휴대폰 동맹(Open Handset Alliance: OHA)의 출범을 발표했다. 그것은 휴대폰제조업체라면 누구라도 구글이 개발한 모바일 운영체제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구글의 제안이었다. 총 34개의 회사가 그 운영체제를 지원했다. 거기에는 HTC, 모토로라, T 모바일 그리고 (휴대폰 소프트웨어에서 핵심적인) 컬컴(Qualcomm)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개방형 휴대폰 동맹은 검색, 앱 등에서 구글이 핵심이 되는 휴대폰을 생산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휴대폰에 대한 구글의 이중적인 전략 중 하나였다. 이를 통해 구글은 전혀 새로운 모바일 경험을 제공하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주로 애플과의) 휴대폰 협력관계를 통해 휴대폰에 구글맵과 같은 앱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라이선스는 최대한 개방한다. 제조업체들은 운영체제의 소스코드에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이 구글이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른 점이었다. 그들은 운영체제의 소스코드를 매우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이 모델은 휴대폰 제조업체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라이선스 비용도 전혀 없었고 휴대폰 생산량을 입증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레퍼런스 디바이스를 만들어서 구글의 승인을 받기만 하면 되었다. 이 승인 절차만 거치면 소매업체나 통신사를 통해서든, 아니면 직접판매든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원하는 만큼 판매할 수 있었다. 소스코드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페이스를 직접 수정할 수도 있었다.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요금을 부과했던 바로 그것을 상품화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부상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의 윗부분을 잘라먹고 있을 때, 다양한 제조업체들이 생산한 여러 안드로이드폰은 마치 흰개미처럼 시장 바닥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폰을 만드는 것은 휴대폰 제조업체들에게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은 계획을 신속하게 수정할 수 있었고 다양한 운영체제로 빠르게 변환할 수 있다. LG, 모토로라, 그리고 삼성은 모두 2009년부터 안드로이드폰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소니 에릭슨은 2010년 중반부터 그 대열에 합류했다.


    티핑포인트   

    2010년 말, 모든 종류의 휴대폰을 다 통틀어 세계 5대 판매업체는 노키아, 삼성, LG, RIM 그리고 애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판매량은 전체 판매량의 59%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화이트박스 휴대폰을 생산하는 중국의 제조업체들을 포함한 기타 업체들이 나머지를 채우고 있다. 낡은 질서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최대 판매기업이 더 이상 압도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3년 4월 이후 30핀 독을 비롯해 거의 모든 아이팟과 아이폰 모델을 표준화한 덕분에 애플은 하드웨어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었다. 액세서리 회사로부터 벌어들이는 라이선스료는 연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독과 호환을 위해서는 특별한 칩이 필요하다.)


    혁명은 손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 회사 중 누가 성공하고 누가 사라지는 것이 중요한 것일까?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은 휴대폰의 진화인 동시에 컴퓨터의 미래이다. 스마트폰은 디지털 전쟁 그 최후의 전쟁터이다.


    휴대폰은 사람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방식 그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영업사원이나 상인처럼 이동이 잦고 자신의 수입이 전화 한 통화에 달려 있는 사람들에게 휴대폰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 이것은 부유한 나라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그 후 나타난 피처폰도 비슷한 효과를 가졌지만 그 활용범위는 훨씬 넓었다. 피처폰에는 카메라, 오디오, 그리고 동영상 촬영기능이 차례로 추가되었다. 또 2010년 이란에서의 선거시위와 2011년 아랍지역에서 일어난 봉기를 특징짓는 한 가지는 피처폰에 탑재된 카메라로 정부당국이 자행하는 폭력현장을 촬영했다는 것이었다. 피처폰은 기기의 각 부분들이 충분히 상호작용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하나의 기기가 그 부분의 합을 훨씬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휴대폰을 보유함으로써 맛볼 수 있는 경험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


    스마트폰은 한 발짝 더 나갔다. 휴대폰에 인터넷을 도입한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웹과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1세대 스마트폰의 효과이다. 그러나 구글은 미래의 스마트폰이 가지게 될 더 큰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2010년 구글은 구글 고글스(Google Goggles)라는 앱을 선보였다. 이 안드로이드 앱은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건물, 텍스트, 책, 연락처정보, 예술작품, 와인 또는 로고 등의 사진으로 그 대상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혈당을 기록하거나 맥박수를 재고 조언을 해주는 앱과 같은 의료 관련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아이폰에 넘쳐나고 있다.


    컴퓨터 기술의 끊임없는 향상 덕분에 언젠가는 틀림없이 모든 사람들이 오늘날 스마트폰이라고 분류하는 것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아이폰이 도입된 이후만 따져보더라도 아이폰이 갖는 연산능력은 2007년 7.75 메가플롭(1메가플롭은 1초당 백만 단위의 부동소수점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에서 2010년 아이폰4의 34 메가플롭까지 개선되었다. 이런 개선 속도는 무어의 법칙보다도 약간 앞서나가는 것이었다.


    이 정도 변화 속도라면 우리가 현재 놀라워하며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는 기능들, 즉 GPS, 음성 인식, 클라우드 동기화, TV 스트리밍이 몇 년 이내에 일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년에서 15년이 지나면 누구나 그 기능을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탄자니아의 어부가 영상통화를 통해 갓 잡은 생선의 크기와 품질을 보여주는 순간 우리는 스마트폰이 가장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영역까지 진출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인터넷의 승리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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