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저   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은이), 김신종 (옮긴이)
출판사
페이지2(page2)
출판일
2024년 03월







  • 이 책은 서양철학의 전통을 뿌리째 뒤흔들고, 20세기 이후의 사상적 흐름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혁명적 사상가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의 대표작입니다. 자신의 아바타라 할 수 있는 고독한 예언가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을 통해 니체가 일생에 걸쳐 치열하게 사유해온 철학을 펼쳐냅니다.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내가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해주겠다.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어떻게 사자가 되며, 마지막으로 사자는 어떻게 어린아이가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경외심이 담겨 있는, 강력하고 참아내는 정신, 그 정신에는 수많은 무거운 짐이 있다. 그 정신의 강력함은 무거운 짐, 가장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무엇이 무거운가? 참아내는 정신은 이렇게 묻고선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이 잔뜩 실려지길 바란다. 그대 영웅들이여, 내가 스스로 짊어지고 내 강력함에 기뻐하게 될 정도로 가장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 참아내는 정신은 이렇게 묻는다. 가장 무거운 짐은 자신의 교만에 고통을 주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지혜를 조롱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우리가 우리의 승리를 축하할 때 그 일에서 떠나버리는 것인가? 유혹자를 유혹하기 위해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인가? 아니면, 인식의 도토리와 풀로 때우며 진리를 위하여 영혼의 굶주림을 견디는 것인가?


    참아내는 정신은 가장 무거운 이 모든 짐들을 스스로 짊어진다. 짐을 싣고 서둘러 사막으로 달려가는 낙타처럼, 정신은 자신의 사막으로 급히 달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고독한 그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서 정신은 사자가 되어서, 스스로 자유를 쟁취해 자신의 사막에서 주인이 되길 바란다. 여기서 정신은 스스로 자신의 최후의 주인을 찾는다. 정신은 자신의 최후의 주인, 자신의 최후의 신에게 대적하려 하고, 승리를 위하여 정신은 그 거대한 용과 사투를 벌이려고 하는 것이다.


    내 형제들이여, 정신의 사자는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체념과 경외심을 가득 품은, 짐을 짊어질 수 있는 그 짐승으로는 무언가가 부족한가? 로운 가치들을 창조하는 것, 이것은 사자도 아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자유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 이것은 사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유를 스스로 창조하고, 의무도 성스럽게 부정할 수 있는 것, 내 형제들이여, 이를 위해서는 사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가치들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참아내는, 경외심이 가득한 정신에는 가장 끔찍한 받아들임이다. 진실로, 그것은 정신에게는 강탈이고, 강탈하는 짐승의 일이다.


    그런데 말해보라, 내 형제들이여, 사자도 할 수 없던 것을 어린아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강탈하는 사자도 아이가 되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이는 순진무구함과 망각,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 최초의 움직임,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내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잃어버린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신은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는 어떻게 사자가 되는지, 마지막으로 사자는 어떻게 아이가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구하려는 자는 스스로 쉽게 길을 잃는다. 모든 고독은 죄악이다”라고 군중은 말한다. 그리고 그대는 오랫동안 군중에 섞여 살아왔다. 군중의 목소리가 그대의 마음 안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나는 더는 그대들과 같은 양심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한탄과 고통일 것이다.


    보라, 이 고통 자체가 하나의 양심을 낳았고, 이 양심의 마지막 희미한 빛은 그대의 고난 위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그런데도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인 그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그대의 권리와 힘을 내게 보여다오!


    그대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말하는가?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대가 멍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지배하는 생각이다. 그대는 멍에에서 벗어나도 되는 그런 자인가?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의 마지막 가치마저 버린 자가 무수하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것이 차라투스트라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의 눈은 내게 투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서 자유로운가를 말이다.


    오늘도 그대는 여전히 많은 이들, 바로 그대 한 사람에게서 고통받고 있다. 오늘도 그대는 여전히 그대의 용기와 희망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고독이 그대를 지치게 할 것이고, 언젠가 그대의 자긍심은 꺾이고 그대의 용기는 삐걱거릴 것이다. 언젠가 그대는 “나는 혼자다!”라고 외칠 것이다.


    내 형제여, 그대는 ‘경멸’이라는 말을 벌써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대를 경멸하는 자들을 공정하게 대하려는 그대의 정의로움으로 인한 고통도 알고 있는가? 그대는 많은 이들에게 그대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에게 이를 두고 가혹하게 평가한다. 그대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가 그만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그대의 이런 행동을 두 번 다시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말해야 한다. “그대들이 내게 얼마나 공정해질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들의 불공정을 나의 합당한 몫으로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선한 자와 정의로운 자들을 경계하라! 그들은 자신만의 덕을 찾아내는 자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못 박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고독한 자를 증오한다. 신성한 단순함도 경계하라! 단순하지 않은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신성하지 않다. 그들은 불장난, 즉 화형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대의 사랑이 발작하는 것도 경계하라! 고독한 자는 만나는 자에게 너무 빨리 손을 내민다.


    그대는 많은 자에게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 발만 내밀어라. 그리고 나는 그대의 발에 발톱도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대가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일 것이다. 그대는 스스로 동굴과 숲속에 숨어서 그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사랑을 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자만이 경멸할 수 있듯, 그대는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을 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경멸할 필요가 없었던 자가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그대의 사랑과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으로 들어가라, 나의 형제여, 그러면 나중에야 비로소 정의가 그대의 뒤를 절뚝거리며 따라갈 것이다. 나의 눈물과 함께 그대의 고독으로 들어가라, 나의 형제여. 자신을 뛰어넘어 창조하려 하고, 그렇게 하다가 파멸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행복의 섬에서

    무화과가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것은 품질이 좋고 맛도 달다. 무화과가 떨어질 때 붉은 껍질이 찢어진다. 나는 익은 무화과에 부는 북풍이다. 내 벗들이여, 이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처럼 내 가르침이 그대들에게 떨어진다. 그러니 이 가르침의 과즙과 달콤한 과육을 마셔라! 주위를 보니 맑은 하늘이 있는 가을날의 오후다. 보라, 우리 주위는 얼마나 풍요로운가! 넘치는 풍요로움 속에서 저 너머 먼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한때는 먼바다를 바라보면서 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신이 아니라 초인이라고 말하도록 가르치겠다. 신은 하나의 추측일 뿐이다. 나는 그대들의 추측이 그대들의 창조적인 의지를 넘어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신을 창조할 수 있는가? 그러지 못하니 모든 신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확실히 초인은 창조할 수 있다. 신은 하나의 추측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그대들의 추측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신을 생각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한다는 것, 이것은 그대들에게 진리에의 의지를 의미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감각을 끝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대들이 세계라고 일컫는 것, 그대들은 이것을 먼저 창조해야 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이미지,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 진실로, 그대 인식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이 행복으로 이르기 위해서 말이다!


    신은 하나의 추측일 뿐이다. 신은 반듯한 모든 것을 구부러뜨리고, 서 있는 모든 것을 비틀거리게 하는 하나의 사유일 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시간은 사라져야 하고, 모든 순간적인 것은 그저 거짓말에 불과해야 한단 말인가?


    최고의 비유를 들려면 시간과 생성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덧없는 모든 것에 대한 찬양과 정당화이어야 한다!


    창조, 이것은 고통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이자 삶의 가벼워짐이다. 그러나 창조하는 자가 되려면 괴로움과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 그대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대들은 덧없는 모든 것의 대변자이자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창조하는 자가 다시 태어나는 아이가 되려면 산모가 되려 해야 하고, 산고産苦를 겪으려 해야 한다.


    하지만 창조하려는 나의 의지, 나의 운명이 이것을 원한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바로 나의 의지가 그러한 운명을 원한다. 나의 모든 감정이 괴로워하면서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러나 나의 의욕은 언제나 나의 해방자이자 기쁨의 인도자로서 내게 다가온다. 해방을 원함, 이것이 의지와 자유에 대한 진정한 가르침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대들에게 이것을 가르친다.



    자기 극복에 대하여

    그대 가장 현명한 자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을 움직이도록 북돋우고 치열하게 타오르도록 하는 것을 ‘진리에의 의지’라고 부르는가? 모든 존재자에 대한 사고 가능성에의 의지, 나는 그대들의 의지를 이렇게 부른다!


    그대들은 모든 존재자를 우선 사고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대들은 그것이 이미 사고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긍정적인 의심을 갖고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자는 그대들을 따르며 몸을 굽혀야 한다! 그대들의 의지가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모든 존재자는 정신의 거울과 반사판처럼 매끄럽고, 정신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대 가장 현명한 자들이여, 이것은 힘에의 의지로서 그대들의 완전한 의지다. 그리고 그대들이 선과 악, 가치평가에 대해서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대들은 아직도 그대들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마지막 희망이자 도취다.


    그대들이 선과 악에 대한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대들에게 나는 삶과 살아있는 모든 것의 본성에 대해 말해줄 것이다. 나는 살아있는 것을 뒤쫓았고, 그 본성을 인식하고자 먼 길, 짧은 길을 모두 걸어왔다. 살아 있는 것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그의 눈이 내게 말하려는 것을 알고자 나는 백배 확대하는 거울을 들고 그의 시선을 포착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의 눈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는 것들을 발견하는 곳마다 순종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두 번째로 들은 내용이다. 자기 자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자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것이 살아있는 것의 본성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령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명령하는 자가 순종하는 모든 이의 짐을 짊어지게 되고, 이 짐이 그 명령하는 자를 가볍게 짓이기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명령에는 시도와 모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살아 있는 것은 명령을 내릴 때, 언제나 스스로 감히 그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다. 살아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때에도 그 명령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살아있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율법에 대한 재판관이자 복수자,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



    의지에 반하는 행복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수수께끼와 괴로움을 가슴에 안고 항해했다. 그런데 그가 기쁨이 넘치는 섬들과 벗들을 떠난 지 나흘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모든 고통을 극복하게 되었다. 그는 승리한 채 두 발로 당당하게 자신의 운명과 마주했다. 그리고 그때 차라투스트라는 환호하며 기뻐하는 자신의 양심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혼자다. 그리고 청명한 하늘과 드넓은 바다와 혼자 있기를 바란다. 또다시 오후가 찾아왔다. 내가 언젠가 처음으로 벗들을 만났던 때도 오후였고, 또다시 벗들을 만났던 때도 오후였는데, 모든 빛이 점점 고요해지는 시간이었다. 하늘과 대지 사이에 아직 남아 있는 행복은 지금 거처할 밝은 영혼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행복감에 모든 빛이 더 고요해졌다.


    오 내 삶의 오후여! 언젠가 나의 영혼도 거처할 곳을 찾고자 골짜기로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의 영혼은 개방적이고 환대하는 이 영혼들을 발견했다. 오 내 삶의 오후여! 내가 이 한 가지, 바로 나의 사상이 살 수 있도록 뿌리내리고 내 최고 희망의 아침놀만 가질 수 있다면, 내어 주지 않을 게 뭐가 있겠는가!


    창조하는 자는 한때 동행자들과 자신의 희망의 아이들을 찾았다. 그런데 보라, 그가 먼저 그들을 창조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가고 또 돌아오면서 내 작업에 열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본래 인간은 자신의 아이와 일만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고귀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잉태의 징후다. 나는 이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 누워있었다. 욕망이 이런 올가미로 나를 묶은 것이다. 내가 내 아이들의 먹잇감이 되고, 그들로 인해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려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 말이다. 욕망하는 것은 이미 내게 이런 의미를 지닌다. 바로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있다. 나의 아이들이여! 이런 소유에서 모든 것은 안전해야 하고 그 어떤 열망함도 없어야 한다.


    나는 이미 한기와 겨울에 굶주린 상태였다. ‘오 그 한기와 겨울이 나를 다시 갈라지게 하고 삐걱거리게 해줬으면!’ 나는 헌 숨을 쉬었다. 그러자 얼음장 같은 안개가 내 몸에서 피어올랐다. 내 과거는 그의 무덤을 파헤쳤고 산 채로 묻혔던 많은 고통이 깨어났다. 고통은 수의(壽衣)에 숨어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징후로 내게 외치고 있었다. ‘때가 왔다!’ 하지만 나는 내 심연이 흔들리고 내 사상이 나를 깨물 때까지 듣지 못했다.


    오 내 삶의 오후여! 오 저녁이 되기 전의 행복이여! 오 공해상의 항구여! 오 미지의 평화여! 내가 그대들 모두를 얼마나 불신하는지 아는가! 진실로, 나는 그대들의 음흉한 아름다움을 불신한다! 나는 모든 이의 미소를 불신하는 연인과도 같다. 질투가 심한 자가 자기의 엄격함 속에서도 부드럽게 사랑하는 자를 밀쳐내는 것처럼, 나는 기쁨으로 가득 찬 이 시간을 밀쳐낸다.


    물러가라, 그대 기쁨에 가득 찬 시간이여! 내 의지에 반하는 행복이 그대와 함께 내게 왔다! 나는 자진해서 나의 가장 깊은 고통을 감내하고 여기에 서 있다. 그대는 좋지 않은 때에 왔다! 물러가라, 그대 기쁨에 가득 찬 시간이여! 차라리 저기, 내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머물러라! 서둘러라! 그리고 저녁이 오기 전에 나의 행복으로 내 아이들을 축복하라! 벌써 저녁이 다가오고 있다. 해는 지고 있다. 물러가라, 나의 행복이여!”



    징조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자 차라투스트라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동여매고는, 마치 컴컴한 산에서 떠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빛나고 당당하게 자신의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대, 찬란한 별이여!’ 그는 이전에 말했었던 식으로 말했다. ‘그대 깊은 행복의 눈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 줄 대상들이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모두 무엇이겠는가!


    태양이 떠올랐을 때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갑자기 그는 의아하다는 듯 위를 보았다. 위쪽에서 자기 독수리가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서였다. “좋다!” 그는 위쪽을 보며 소리쳤다. “마음에 든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깨어나니 내 짐승들도 깨어 났구나. 내 독수리는 깨어나서 나처럼 태양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내 독수리는 발톱으로 새로운 빛을 움켜잡는다. 그대들은 참된 내 짐승들이다. 나는 그대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내게는 아직도 참된 내 인간들이 없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새들이 떼지어 몰려와 주변을 날아다니며 날개를 퍼덕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진실로, 그 소리는 마치 구름처럼, 새로운 적의 머리 위에 쏟아지는 화살의 구름처럼 그의 머리 위에 내리쏟아졌다. 그런데 보라, 이것은 새로운 벗의 머리 위에 내리쏟아지는 사랑의 구름이 아니겠는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차라투스트라는 놀란 마음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그러고는 동굴 입구 옆에 있는 큰 바위에 천천히 앉았다. 그런데 그가 자기 주변 위로 아래로 모여드는 작고 귀여운 새들을 두 손으로 저지하고 있었을 때 보라, 그에게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니겠는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뭔가 텁수룩하고 따듯한 털 다발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때 동시에 그의 앞에서는 포효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그것은 사자가 부드럽고 길게 포효하는 소리였다.


    “징조가 나타난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그의 마음은 변해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눈앞이 밝아졌을 때 그의 발치에는 누렇고 힘센 짐승이 엎드린 채 머리는 그의 무릎에 기대고 있었고 마치 자신의 옛 주인을 다시 만난 개처럼 사랑에 벅차 그에게서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비둘기가 사자의 코끝을 스치고 날아갈 때마다 사자는 머리를 흔들며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웃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모든 일에 대해 딱 한 마디만 했다. “내 아이들이 가까이 있다. 내 아이들이.” 그런 다음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편안해졌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다가 손등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는 더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고 짐승들을 저지하지도 않았으며 꼼짝도 안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하늘을 날고 있던 비둘기들이 그에게 와서는 어깨에 앉아 하얗게 센 그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지치지도 않고 애정과 기쁨을 보여주었다. 힘센 사자는 차라투스트라의 손등에 떨어진 눈물을 계속 핥으면서도 쑥스러운 듯 포효하고 으르렁거렸다. 이 짐승들은 이렇게 행동했다.


    이 모든 일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는지, 잠시 계속되었는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정확히 말하자면, 지상에는 이와 같은 일들을 잴 시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기억이 떠올랐고, 어제와 오늘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대번에 파악했다. “그래 여기 이 바위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어제 아침 이 바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예언자가 여기 내게로 왔었다. 여기서 나는 외침을, 내가 방금 들었던 도움을 청하는 큰 외침을 처음으로 들었다.”


    오 그대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어제 아침 저 늙은 예언자가 내게 예언해준 것은 바로 그대들의 곤경에 관한 것이었다. 그 예언자는 나를 그대의 곤경으로 꾀어내어 시험하려 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내가 온 것은 그대를 꾀어내어 그대의 마지막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한번 자신 속으로 가라앉았고 다시 큰 바위에 앉아 깊이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동정이다. 보다 높은 인간들에 대한 동정이다!” 그는 소리를 질렀고 그의 얼굴은 청동빛으로 변해있었다. “자! 이제 동정의 시대도 끝났다! 내 고뇌와 내 동정, 이것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내가 행복을 얻으려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라도 한단 말인가? 나는 내 일에만 매진할 뿐이다!


    자! 사자가 왔다, 나의 아이들이 가까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무르익었다.


    나의 때가 왔다. 이것은 나의 아침이다. 나의 낮이 시작된다. 자 이제 솟아라, 솟아라, 그대 위대한 정오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마치 컴컴한 산에서 떠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빛나고 당당하게 자신의 동굴을 떠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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