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사랑해서 미워하고

저   자
김창경, 김선연, 배숙희 (지은이)
출판사
책구름
출판일
2023년 12월







  • 가족이라서 사랑하고 그래서 미워하고…, 가족이란 단어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 것이 있을까요? 70대의 엄마와 40대의 두 딸이 각자의 삶을 글로 풀어내면서 동시에 서로간의 이야기를 전해, 가족이라서 사랑하고 미워하게 되는 복잡한 관계에 관해 서술합니다.



    사랑해서 미워하고


    김창경

    환대의 나날들

    나는 딱히 적성이란 걸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수능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적어도 나와 내 친구들은 다들 그랬다. 수능 점수로 갈 수 있는 가장 괜찮은 대학과 취업하기 좋은 과를 선택했다. 나의 경우, 적당히 점수에 맞추어 넣었던 학교 중 유아 교육학과와 토목공학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교사였던 부모님은 그래도 사범대가 낫지 않겠냐며 유아교육학과를 권하셨다. 취업용 이력을 쌓기 위해 피 마르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어른이 되어서도 방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장점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아교육학과는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과의 관계가 서툰 편이라 친해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데,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대하기 어려웠다. 당시 나는 겁이 났던 것 같다. 아이들이 만나는 어른의 모습이 조금은 완벽하고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


    나의 불안감은 유치원 때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기인했다. 유난히 적대적인 눈빛과 말투로 6살 무렵의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그는 오래도록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그리고 그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그 선생님은 웃다가도 나만 보면 눈을 흘기고, 간식을 주기 싫어하고 매섭게 대했다. 나도 무의식중에 그런 상흔을 아이들에게 주는 선생님이 될까 봐 겁이 났다. 어떻게 대해야 그들에게 무해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나는 너무나 감정 표현이 서툴고 어려운 사람인데 어떻게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그것도 아이들의 인생 최초의 선생님이라니. 차라리 토목공학과에 가서 사람들과 막말도 좀 하고, 어른들을 상대하며 세속적으로 구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우리 삼남매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는 이런 말을 했다. 교사의 자녀들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데, 아무래도 우린 후자에 가까운거 같다고. 그 말에 언니와 나와 동생은 천재를 체념했다. 지역에서 실력 있는 선생님, 진학 지도를 잘하는 선생님으로 유명했던 아빠는 정작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의 우리가 못마땅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도 아빠가 직장에서 내는 성과를 치켜세우면서 자식들도 좀 신경 좀 쓰지 그러냐며 시기어린 비아냥으로 이어진 날들이 있어서일까?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은 어렸던 우리에게 바로 꽂아버리기도 했다.


    “아빠나 엄마한테 공부 좀 가르쳐 달라고 하지. 왜 성적이 이것밖에 안 되니?”


    어른들은 우리 앞에서도 우리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는 지력과 마음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대놓고 말했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음에도 최상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교무실에서 못남을 지적당했다.


    그저 뭐라도 밥벌이할 정도로 하자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다. 밥벌이할 정도로 공부를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열렬히 갈망하고 인정받고 싶은 영역에서 쓴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나아서 그만큼 기대하지도 않았고, 좌절도 없었다. 내가 간절히 바란 것은 아니니,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니, 이만큼 해냈으면 됐다는 자족감은 괴롭지만 편안한 위로가 되었다.


    그랬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내 아이와 나이 비슷한 조카도 세 명이나 생겼다. 엄마가, 이모가, 어른이 꼭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정하게 웃으며 바라보기만 해주어도 아이들은 순순히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며 곁을 내주었다. 그럴수록 나는 그들 앞에 무해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업무가 많은 날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려와 야근할 때도 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눈치 보며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직 미혼인 직원들이 일하다 말고 앞다퉈 아이에게 다가와 이름을 부르며 관심을 준다. 방금까지도 서로 일하기 바빠서 말 한마디 없던 삭막한 공간에 딸아이가 들어서자마자 환대의 장이 열린다. 그들도 해야 할 업무가 많은데, 흐름이 끊기면 시간이 더 걸리는데 기꺼이 아이를 반겨준다.


    아이는 그런 관심이 좋으면서도 부끄러운지 내 뒤로 숨어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입술을 씰룩인다. 나는 안다. 그 씰룩임에 참을 수 없는 행복한 미소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일하는 내 옆에서 혼자 색칠공부를 하던 아이가 에어컨이 꺼진 여름날의 사무실이 너무 덥다며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른다. 얌전히 엄마를 기다리는 딸이 기특하고 가련해서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더니 딸은 이모들에게도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엄마. 나 오늘 왕관도 안 쓰고 드레스도 입지 않았는데 이모들이 왜 나한테 공주님이라고 부르지? 자꾸만 예쁘다고 해서 너무 부끄러웠지만 행복했어. 그래서 아이스크림 선물하고 싶었어. 나 내일은 어린이집 안 가고 엄마랑 같이 출근해서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다. 이렇게 친절하고 예쁜 언니들이랑 같이.”


    아이는 이모들의 환대에 행복해져서 그들을 어느새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이는 사무실에서 받아 온 초콜릿이나 사탕 따위를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라며 어린이집 가방에 넣어 소중하게 안고는 잠들었다. 오늘 우리 딸은 어른들이 보낸 다정함으로 가슴에 빛을 채웠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이 빛을 꺼내 캄캄한 마음을 비출 것이다. 그리고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런 환대를 차곡차곡 모으고 살아서 그런가, 딸의 자존감은 높은 편이다. 엄마인 나와는 달라서 다행이다. 나는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은 센 편인데, 이상하게 자존감은 높지 않다. 그 이유를 자꾸만 찾게 된다. 아마도 평가받는 삶을 오래 살아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고집 세고 터무니없이 자기애가 넘치는 딸아이를 보고 있자면 그저 웃음이 나온다. 귀엽고 귀하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그 순간이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특권임을 알기에 부러 박수쳐 주고 예쁘다고 말해준다. 눈을 깜빡깜빡 요상하게 뜨며 필 충만한 춤을 세상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출 때면 웃겨서 눈물이 삐질삐질 나면서도 손바닥이 뜨거워지게 박수쳐 준다. 아이는 그 웃음이 어이없고 재밌어서 웃는 것이라는 걸 생각도 못 하고 엄마가 감동받았다고 생각하며 뿌듯한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시절 어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어차피 세상이 아이의 고집과 아집을 깨줄 건데 왜 그렇게 칭찬에 박하셨냐고.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너는 아이를 키우면서 애한테 너무 휘둘리고 있어. 아이를 이겨야지 벌써 져버려서는 어떡하니? 예쁘다는 말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나중에 상처받는다.”


    아이가 잘못하면, 엄격해질 필요도 있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줄 때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꼭 이겨야 하는 건가. 어차피 세상에서는 지고 다닐 일 천지인데 엄마와 있을 때만이라도 충분히 이기게 해주면 안 되는 것인가. 지금 세상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세상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작아질 텐데, 너무 일찍 알려주고 싶진 않다.


    “엄마가 오늘 사무실에서 실수를 좀 했거든. 오래 일했는데도 일을 잘 못 하는 거 같아 속상했어. 오늘은 엄마한테 이래저래 좀 힘든 날이네.”라고 말하면 아이는 자기는 더 많이 실수하는데 엄마가 항상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느냐며 힘껏 날 안아주며 고사리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린다. 그 작은 두드림이 내 안에 큰 북소리로 울린다. 무조건적인 편 들어주기에 객관적 사실 따위 날려버리고 나도 나를 안아준다. 하루에 한 번,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나는 직장에서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고 어린이집 문 앞에서 만나는 오후 6시. 우리는 조우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찬란한 환대.


    우리는 오늘도 서로 떨어져 지낸 시간 동안 힘들었던 것들을 오랫동안 나눈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별일 아닌 것들이 될 얘기들을 하며 나도 아이도 서로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되려고 노력한다. 많은 순간, 나와 있는 순간. 사랑받았다고, 지지받고 보호받았다고 딸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가급적 오랫동안,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한.



    김선연

    내가 기대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의 불문율이 있다. 울지 않고 의젓하게 생활한 착한 아이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는. 나의 비밀스런 선행을 아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선물로 보상을 해준다. 크리스마스 아침마다 산타의 선물을 받음으로써 내가 착한 아이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어린 나는 선물을 확인하는 순간 안도 한다. 들뜬 마음으로 성급히 선물 포장을 뜯는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다면 최고의 날이 되는 거고 기대에 못 미치는 물건이라면 좌절한다. 내가 그들의 기대만큼 착하지 못했던 건지 의심한다. 원하는 걸 받지 못할 만큼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일까 자책한다. 이 모든 것은 타인이 주는 ‘선물’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한 당근이자 은근한 협박이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산타클로스가 북유럽 어디에 사는 흰 수염을 드리운 배 나온 할아버지가 아니라 부모라고 말했다. 안 자고 봤더니 엄마가 선물을 두고 나가더란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카드에 쓰인 글씨도 자기 엄마 글씨랑 똑같더라고. 누군가 흘린 의심의 씨앗은 마음에 심어져 크리스마스 날 우리를 잠든 척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허겁지겁 옷을 입고 나갔다.


    “일어나봐, 산타클로스는 엄마였어.” 동생들을 깨웠다. “그렇구나, 엄마여서 우리들 선물을 항상 작은 걸로 사 줬나 봐. 세 명 것을 다 사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둘째가 말했다. “나는 계속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을 거야. 엄마가 산타였다고 말하면 선물 더 이상 못 받을 것 같아.” 막내가 말했다. 우리는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거실 구석에 놓아둔 앙증맞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봤다. 트리의 크기가 우리 가족이 부릴 수 있는 사치의 크기 같았다. 어른 팔뚝만 한 사이즈의 트리에 우리의 욕심을 닮은 장식품이 잔뜩 달려 있었다. “자는 척하자. 이제 엄마가 오실 거야.” 우리 셋은 다시 반듯하게 누워 거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정이 되기 직전이었다.


    엄마는 금방 돌아왔다. 알 수 없는 실망감이 알싸하게 퍼졌다. 우리는 눈을 꼭 감았다. 바깥 공기를 몰고 온 엄마가 움직일 때마다 차갑고 선선한 공기가 따라 움직였다. 눈을 감아도 엄마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부엌 구석에 앉아 주섬주섬 사 온 것을 포장했다. 익숙한 바스락 소리가 선물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었다. ‘설마 과자는 아니겠지?’ 재빠르게 포장을 끝낸 엄마가 우리들의 양말에 그 선물을 쑤셔 넣는 소리가 났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사고, 양말에 들어갈 정도의 선물이라면 분명 별 것 아니라는 실망감이 산타가 엄마로 판명되었다는 사실보다 곱절은 컸다. 썰매를 타고 오는 산타였다면 돈에 구애받지 않고 값비싼 선물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 돈이 아니니까 비싼 선물을 받아도 돈 걱정 따위 하지 않고 좋아만 할 수 있었을 텐데.


    양말에 들어간 선물은 예쁘게 포장된 초코바, 빵, 사탕 같은 것들이었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우리는 산타가 엄마인 걸 알면서 이런 걸 선물로 주냐고 투정을 부렸다. 크고 좋은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을 대놓고 흘렸다. 내년엔 희소성 있는 선물을 받고 싶다고. 그러나 그날 이후로 엄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밤늦게 나가는 산타 역할을 그만두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고 과자 같은 선물을 받느니 안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 따위 상술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자조하면서도 어린 아들들이 실망할까 봐, 원하는 선물을 미리 사놓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엄마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아이들은 들떠서 쉽사리 잠을 자지 못했다. 들락날락하며 선물이 놓였는지 수십 번도 더 확인했다. 여름부터 기다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겨우 재우고 아이들 머리맡에 선물을 두었다. 아이들은 선물 포장을 뜯으며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매번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딱 알고 선물을 주는 건지 신기해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가 너희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값비싼 선물을 턱턱 받아서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도 어렸을 땐 선물을 받지 않았냐고.


    나의 엄마는 너무 가난해서 산타할아버지가 찾지 않는 곳에 살았다고,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깜빡 잊었는지 선물을 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시절은 그런 아이들이 많았다고, 거의 다였다고. 엄마 목소리에 쓸쓸함이 묻어났다고 여긴 건 나의 착각일까?


    엄마는 아이들이 없을 때 고백하듯 말했다. 아빠는 꼭 그런 날, 누구나 꺼리는 당직을 도맡아 하느라 출근해서 엄마 혼자 우리를 챙겨야 했다고.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는지 매번 미리 사놓아야지 했는데 정신 차려보면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닥쳐 있었다고. 얼른 아이를 재우고 선물을 사러 가야 하는데 우리는 크리스마스라고 설레서 더 안 잤다고. 뒤늦게 선물을 사러 나가면 이미 문방구나 완구점은 문을 닫았고 가장 늦게까지 영업했던 동네 슈퍼에서 겨우겨우 뭐라도 샀다고. 번듯한 선물 가게도 없었던 시골에서 뭐라도 사서 아이들 마음 안 상하게 하려고 아등바등하느라 크리스마스가 힘들었다고. 그나마 제일 이쁜걸 고르고 골라서 고이 잠든 우리 머리맡에 놓아두었다고.


    오 나의 산타, 나의 영원한 산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한 번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세 아이의 산타가 된 엄마. 본인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는 뭐라도 해주고 싶었을 엄마. 결핍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우리를 보살폈을 엄마. 자신을 위한 선물 대신 아이를 위한 선물을 사는데 급급했을 엄마. 부모니까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이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을 엄마. 너무 지쳐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일부러 외면하는 날이면 마음이 사방천지로 널을 뛰었을 엄마.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날이면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고 싶어서임을 모르고 성숙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을 엄마.


    나도 미처 몰랐다. 어른이 된다고 완성된 삶과 안정된 정서를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결혼을 해도, 부모가 되어도, 노인이 되어도 절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챙김 받지 못해도 서운해 하지 않으며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한 인간이 다양한 감정 자락을 지니고, 나라는 개인을 탐험하며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그저 엄마도 여느 사람처럼 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엄마는 어른이니까 마땅히 사랑을 주고 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엄마의 사랑 보따리는 더없이 커서 우리에게 이해와 사랑을 퍼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엄마의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엄마가 주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탓하면서 그 사랑을 엄마의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줄 수 있어야, 다 줄 수 있어야 부모라고 마음대로 정해 버렸다.


    이제 크리스마스 때마다 나는 엄마의 산타클로스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어른이 된 내가, 따스함과 호의가 없는 세상에선 아무리 강한 어른이라도 버틸 수 없음을 알게 된 내가, 나의 영원한 산타의 산타가 되련다. 그리하여 살면서 변변찮은 선물 하나 못 받으며 어른이 되었을 그녀의 머리맡에 작은 선물 꾸러미 하나 놓으련다.



    배숙희

    노인으로 가는 길을 당신은 아는가?

    노인으로 가는 길을 나는 몰랐다. 그냥 살아왔을 뿐인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나를 노인이라고 했다. 지하철은 공짜고, 영화를 보러 갔더니 경로 혜택으로 반값만 받았다. 국립공원에선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니 그냥 들어가란다. 이런 혜택을 받으면 돈을 아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남들과 다름을 자각하게 한다. 전철 개찰구에서 표를 댈 때 일반인은 ‘띠링’한 번, 나는 ‘띠리띠링’ 두 번 울린다. 그 소리에 이 정도면 젊다고 생각하던 나는 ‘노인’이라는 인식 전환을 한다.


    나는 늙음이 오는 것도 몰랐는데, 남들이 먼저 알려주었다. 그러자 나는 진짜 노인이 되었다. 움직임도 느려지고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게 표현 안 될 때가 많았다. 머릿속이 엉켜 얼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일들은 예사였다. 손자들에게 잔소리도 자주하고, 저희끼리 간식을 챙겨 먹을 때 서운함도 느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알고 있던 노인의 특성이 드디어 내게도 생겼다고 자각했다. 첫째 손자가 그린 내 모습이 너무 주름도 많고 못 생겨서 토라진 척했는데, 실제로도 서운한 마음이 생겼다. 늙으면 아기가 된다더니 정말 그렇게 되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더니 요즘 내 움직임이 그랬다. 녹슨 기계처럼 하루하루 눈에 띄게 쇠락해가는 내가 낯설었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노년의 신체 변화는 그저 짐작하던 거랑 다르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노년이라 칭하는 나이가 되어서야 느려진 일상의 흐름과 신체의 변화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도 알았다.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 모두가 나이가 많아지면 늙어간다는 것을 당연하게들 생각하겠지만, 늙음의 주체인 나는 당연하지 않아 서러웠다.


    나이가 드는 만큼 마음은 늙지 않아 현실과 마음의 괴리가 너무 커서 슬픈데, 이제는 마음까지도 늙어가고 있었다. 코믹영화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여덟 살 손자의 웃음이 더는 내게 전해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절로 지혜가 늘어나고, 인자해지고, 욕심은 줄어들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내가 틀린 줄도 알고, 너그러이 남도 용서해주며 살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웃음만 줄었다. 아이들이 “할머니는 안 웃겨요?”라고 물을 때마다 “하하하, 우습네.”라고 맞장구쳐주다가 어색함을 털어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에 나가 잡초를 뽑았다.


    그럼에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잘 늙는 것,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답게 사는 씩씩한 늙은이는 되고 싶다. 자식들이 내 보호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요즘 들어 부쩍 느낀다. 그래도 내 삶의 결정권은 유지하고 싶다. 마음이 늙는 것쯤은 이제 아무렇지 않을 만큼 나도 세월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러면서 죽음이 오는 것보다 더 먼저 내가 아닌 나로 살게 될까 봐 염려가 된다. 자식에게 짐은 되지 않으면서, 나를 잃지 않으면서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가고 싶은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 부러워만 하면 지는 거지!

    새벽은 직장과 살림, 육아에 유일하게 방해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불면증을 벗어나 시작한 운동은 나를 새벽인간으로 변화시켰다. 새벽 시장에선 시골 아낙네가 막 따온 야채를 만날 수 있고, 그 시간에

    김치도 담글 시간도 주는 것이 새벽이라는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운동이나 만드는 것을 잘할 수 있으려면 들인 시간과 정성이 정답이다. 시간을 들여 꾸준하게 노력하는 만큼 기량과 솜씨가 는다는 놀라운 일을 나는 매번 경험으로 깨닫는다.


    타고난 몸치, 음치라서 꾸준함으로 남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많이 연습하는 편이다. 타고난 재능은 나와는 거리가 멀어 재능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젊었을 때는 쉬이 배우고, 잘하는 사람들의 재능을 부러워도 했다. 그런데 부러워만 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 마음에 노력의 시간을 쌓아갔다.


    시집 장가간 자식들은 지들 알아서 잘들 사는 것 같다. 남들이 재밌다고 해서 하는 일 말고, 내 생에 남은 시간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어떤 즐거움에 나의 노력을 쌓아가면 좋을까? 그러다 어반스케치라는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여행과 그림은 내가 모두 좋아하는 것들인데 이 두 가지가 접목된 취미라니 금상첨화였다. 낯선 곳에서도 이웃처럼 푸근하게 잘 지내는 성향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많이 그리라고 물감과 붓, 비싼 코튼 종이를 듬뿍 사주는 딸 덕분에 원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생각해보니 배우고 싶은 것은 놓치지 않고 배웠다.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열심히 참여했다. 그렇다고 내가 뭐하나 이름을 날린 것은 아니었다. 삶을 무료하지 않게 보내는 법을 자꾸 찾았다고나 할까. 아이들에게 쿠키를 구워주고, 운동도 가르쳐주고, 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뚝딱뚝딱 만들고 고장 난 것은 고치고, 심심할 땐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불렀다.


    배움이 헛되지 않았다. 일흔 노인이지만 아직도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허무함에서 나를 구했다. 남 부러워할 시간에 내가 시작하고 볼 일이다. 안 맞으면 그만두면 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그만두고 싶은 마음보다 더 크면 수많은 좌절이 찾아와도 스스로를 이겨내며 해내면 될 일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