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생각을 끄는 스위치가 필요해

저   자
인프제 보라 (지은이)
출판사
필름(Feelm)
출판일
2024년 01월







  • 일상의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놓치지 않고 분명하게 짚어내는 작가의 통찰력이 빛을 발합니다. 묵직하고 내밀한 글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생각이 많아 고민인 사람에게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생각을 끄는 스위치가 필요해


    나, 가장 가깝고 먼

    생각의 걸음걸이

    나는 생각의 걸음이 느렸다. 혼자 걸을 때야 상관없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는 벤치에 앉아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의 발자취를 천천히 따라가며 음미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했다. 말의 온기를 느끼고 향기를 맡아야 했다. 타인이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고, 내가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시키고 싶었다.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로 대화하고 싶었다. 색안경을 벗고 각자의 색깔로 서로에게 스며들고 싶었다. 나에게 대화란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끝나는 게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탐구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많은 사람은 대화의 끈을 유연하게 이어가기가 힘들다. ‘저 표정은 무슨 표정이지? 목소리가 살짝 낮아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아, 뭐라고 대답해야 잘 대답했다고 소문이 날까. 쓸데없는 말실수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건 꽤 까다로운 일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움직이는 입술의 모양을 읽으며, 몇 분의 몇 박자로 한 옥타브를 넘나드는 목소리를 들으며, 미묘하게 달라진 표정과 의도가 가득해 보이는 어색한 몸짓 뒤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해야만 했다. 혼자만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글을 다 쓰고 나면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보곤 하는데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중에 어떤 생각을 꺼내야 할지, 혹시나 내 생각이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지. 머릿속 백과사전을 뒤져가며 단어 하나, 조사 하나 검토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혼자 다른 생각의 길로 빠져 흐름을 놓칠 때가 많았다. 화제가 빨리 바뀌는 대화일수록 더 그랬다. 말과 말 사이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더디고 더딘 내 속도에 말걸음을 맞춰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의 무게도 측정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위험 수위를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제때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안에서 차곡차곡 쌓인 생각들은 자기들끼리 뒤엉켜 붙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풍선처럼 부푸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선 최악의 가정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응어리진 생각의 덩어리가 “펑”하고 터져버렸다. 생각의 잔해들은 허공을 힘없이 떠다니다가, 그날의 기분과 함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생각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을 건네며 “잘 있어.” 하고 인사하는 듯하더니, 통증이 가실 틈도 없이 더욱 거대해진 모양으로 다시 나타났다.


    밥을 먹을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쉴 때도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부지런하게 머릿속을 드나들었다. 잠에 들 때 빼고는 모든 시간을 생각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단물 빠진 껌처럼 뱉어낸 말도 곱씹고 곱씹었다. 생각을 끄는 스위치 같은 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감정을 소모할 일도, 시간을 날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핸들도 브레이크도 고장 난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대로 속력을 늦출 수도, 방향을 틀 수도 없었다.


    마음의 용량은 이미 초과했다고 빨간 불이 떴지만, 정렬되지 않은 어수선한 생각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비워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안 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나에겐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아무 생각을 안 하는 생각을 하는 거라면 모를까.


    싫으면 거절해도 돼

    하와이에 가면 ‘알로하’만 알아도 웬만한 소통은 다 가능하다고 한다. 나에게도 그런 마법의 문장이 있다. 발음 나는 대로 쓰면 알로하와 글자 수도 똑같은 그 말. 나의 모든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 특히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공감할 만한 그 말. “괜찮아.” 아마 빈도수로 따져보면 살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지 않을까 싶다. 괜찮아도 안 괜찮아도 일단 괜찮다고 하고 보는 나. 이런 나, 정상일까.


    웬만하면 긍정이나 동의의 표현으로 괜찮다는 표현을 쓰진 않는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하거나 실제보다 훨씬 과장해서 말하는 편이다. 내가 괜찮다고 말할 때는 괜찮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편하든 불편하든 단호하게 거절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거절한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나에게 부탁을 들어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괜찮지 않을 때 괜찮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의심하거나, 속아주거나. 의심하는 사람들은 내 입에서 “괜찮아.”를 제외한 다른 말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 건드리면 쏙 들어가는 달팽이처럼 파고들수록 숨는 게 나니까. 나는 대체 언제부터, 또 어쩌다가 출력값이 하나밖에 없는 ‘괜찮아 로봇’이 된 걸까. 왜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걸까.


    거절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자. 거절도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내 의견을 마음대로 말도 못 하고 살면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리. 거절이라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같이 밥 먹을래?”라는 제안에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필요도 없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밥은 혼자 먹는 게 편해. 다음에 같이 커피 마시자. 내가 살게.”라고 얼마든지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거절할 수 있다.


    젠틀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연습하자. 그럼에도 상대방이 기분 나빠한다면 그건 그쪽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다. 나와의 관계를 진심으로 존중해 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솔직해지길 바랄 것이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서로 신뢰를 쌓으려면 정도에 알맞게 어깨를 내어줄 줄도, 기댈 줄도 알아야 한다. 느슨하게 끊어지지 않는 줄을 잡고 적당한 힘으로 밀고 당길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관계,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예민사용법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감도 높은 센서가 몸에 탑재된 것 같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취약한 편이라 신경이 자주 곤두서고, 사소한 것에도 불편한 감정을 수시로 느낀다. 같은 환경에 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지친다. 핸드폰 밝기를 최대로 하고 영상을 보면 배터리가 빨리 닳는 것과 같은 원리랄까. 잠깐만 밖에 있어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머리는 깨질 듯 지끈거린다. 모든 감각이 총동원해서 나를 괴롭히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예민한 건 참 피곤한 일이야. 무감각해지고 싶어.” 남들에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쳤다. 어딘가 털어놓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꼬일 대로 꼬여버린 복잡한 감정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게 뭐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으니까.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 꿀꺽 삼키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거다. 무던한 것도 복이라는 것을. 나의 삶은 너무나도 피곤한데. 뭐 하나 마음먹는 것도, 시작하는 것도 어려운데. 무던한 이들의 표정은 나와 다르게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타고날 때부터 예민했던 건지, 살아오면서 변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예민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모든 것에 초연해질 때가 올 거라 믿었지만,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예민한 성격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예민한 사람이 예민해지지 않을 수는 없다. 예민함은 검은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처럼 하나의 기질일 뿐이니까. 예민한 건 절대 나쁜 게 아니다.


    섬세한 나를 지켜주는 신체활동일 뿐이다. 소중하게 다뤄야 할 나만의 능력이다. 생각해 보면 예민해서 할 수 없었던 것보다, 할 수 있었던 것들이 훨씬 많았다. 예민한 성격 덕분에 사람들의 감정을 빨리 눈치챌 수 있었다.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작은 것에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었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매번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풍요롭고 다채로웠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나만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찾고 고민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예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이니까. 그러니 자부심을 느끼자.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자. 예민함이라는 기질 덕분에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하다는 것에, 조금 더 따뜻하다는 것에 말이다. 예민한 사람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365일 인맥 다이어트 중

    인맥 다이어트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불필요한 인간관계는 정리하고 나에게 필요한 인간관계만 남겨두는 것. 일종의 미니멀리즘이랄까. 미니멀리즘을 인간관계에 적용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하긴, 요즘엔 서점만 가도 인간관계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래. 인간관계 지긋지긋할 만하지. 노력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답이 없는 게 인간관계니까.


    나는 1년 365일 인맥 다이어트를 실천 중이라 따로 마음먹을 필요가 없다. 학창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재수를 하게 되면서 연락이 끊겨버렸고, 재수학원 친구들은 재수가 끝나는 동시에 연락처도 SNS도 다 차단해 버렸다. 대학교에서 알게 된 사람들도 다를 바 없다. 인간관계를 리셋하는 게 습관이었다. 연락처를 주기적으로 정리하는 건 기본이고, 적당한 틈을 타서 아예 번호를 바꿔버리기도 했다.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이 가족까지 포함해도 30명 정도 되려나 모르겠다. 하도 편식했더니 이제는 다이어트할 인맥이 없다. 여기서 더 줄이면 인맥 실조다.


    나의 인간관계는 아주 극단적이다. 친함의 기준이 극명하게 갈린다.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사람. 그게 끝이다. 지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이가 없다. “야, 이게 얼마만이야. 오랜만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인사치레를 흉내 낼 관계조차 없다. 그래도 공식적으로 안부를 나눌 명분이 주어지는 특별한 날에는 연락이 올 만하지 않냐고? 그럴 리가. 나에게 그런 명분이 있을 리가. 내 예상을 벗어나는 연락이라곤 단 한 통도 없었다. 생일에도 새해에도 내 핸드폰은 조용하다. 글쎄,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실망이라도 할 텐데. 그런 게 없으니, 기분이 안 좋을 것도 없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게 인생인걸.


    인간관계 기초대사량이 높은 사람들이 부럽다.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도 많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줄 기회도 많으니까. 사람을 만나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편한 사람과 있어도, 불편한 사람과 있어도 혼자서 충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이다. 인간관계가 조금만 늘어나도 배가 불러서 움직이질 못하니. 입맛이 까다로운 소식가라서 슬프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태어난걸. 이게 나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소식가의 운명도 나쁘지 않다. 좋게 생각하면 과식해서 탈이 날 일도 없고,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질 일도 없으니 말이다.



    사랑, 내가 나로 함께하길

    그럼에도 또다시 사랑할 것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끼리 만나, 제대로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 투정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 여자가 다 거기서 거기고, 사랑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말에 겉으로는 맞장구쳤지만, 속으로는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릴 때는 결혼이 사랑의 마지막 목적지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랑인 줄 알고 연애를 시작했더니 사랑이 아니었고, 누군가에게는 연애가 결혼하기 위해 거쳐 가는 수단에 불과했다.


    연애를 하면 할수록 사랑을 약속하는 관계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랑을 약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노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하지 않는 마음이 사랑이 맞는 걸까. 연인이라는 관계를 방패로 변치 않는 사랑을 바라는 게 족쇄처럼 느껴졌다. 파랑새를 새장에 가둬두고 나만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을까.


    사랑을 지나치게 탐낸 것이 문제였을까. 나의 허기진 마음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지만, 간절히 바랄수록 멀어지는 게 인생이라고 했던가. 그런 사람은 끝내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랑이 인생의 목표나 다름없었는데. 내가 여태 고집해 오던 사랑의 기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속된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으로도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게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과 평생을 동반자로 살아가는 게 내가 원하는 사랑이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 것 같냐고. 나는 방향의 차이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상대의 감정보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감정에 더 몰입하게 된다고. 그러나 좋아하는 감정이 미끄럼틀을 타고 사랑으로 넘어가는 순간, 감정의 방향이 바뀐다고. 나로 인해 그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라게 된다고. 내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고. 내가 느끼는 감정만큼 상대의 감정을 존중할 수 있을 때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너와 있으면 모든 게 모호해졌다. 어떤 감정인지 들여다볼 겨를조차 없이 너는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는 대부분의 순간을 하나가 되어 같은 정도의 감정을 느꼈다. 너와 나는 서로에게 느끼는 마음의 온도가 비슷했다. 그것도 뜨겁게 말이다. 우리의 사랑은 끓어오를 일밖에 없었다. 좋아함과 사랑함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했다. 내가 느끼는 행복이 곧 너의 행복이었고, 네가 느끼는 불행이 곧 나의 불행이었다. 나의 욕구에 초점을 두고 본능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전부 너를 위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너는 나의 그런 모습에 사랑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너를 보며 또 사랑을 느꼈다.


    사랑은 아름답고, 성숙하고, 헌신적인 게 아니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다.



    인생, 답을 찾는 모든 시간

    부캐시대

    나에게는 ‘인프제 보라’라는 부캐가 있다. 인프제 보라는 인스타그램에서 MBTI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내 실제 MBTI인 INFJ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을 조합해서 만든 이름인데 “INFJ들은 보아라.”라는 중의적인 뜻도 가지고 있다. 후자의 의미는 고민하다가 그럴듯하게 끼워 맞춘 거긴 하지만, 누군가 이름의 뜻을 물어보면 두 가지를 다 말하곤 한다.


    부담도 기대도 없이 시작한 ‘인프제 보라’는 MBTI 유행에 힘입어 1년 만에 5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얻었다. 5만 명이 내 존재를 안다니.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좋아하던 유명인들이 내가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줄 때마다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일상에 사소한 변화를 주고 싶어서 시작한 취미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이야. 역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프제 보라 계정을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DM으로 여러 번 받았는데,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는 “복잡한 내 머릿속을 비울 공간이 필요해서”라고 답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질문을 받았을 때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세 번째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본캐도 아닌 부캐로 자아실현이라니. 20년을 넘게 나를 찾아 헤맸는데, 고작 1년 만에 부캐로 자아실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이랑 있는 게 힘들어서 피하기만 하고 살았는데, 사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이라는 걸 부캐를 통해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나도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요즘엔 부캐 만드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TV 프로그램을 봐도 유튜브를 봐도 인스타그램을 봐도 온통 부캐 열풍이다. 어쩌다가 부캐가 활약하는 시대가 오게 됐을까.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꺼내고 싶어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고 싶어서?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N잡러로 돈을 더 벌고 싶어서? 아니면 그냥 재밌어 보여서?


    가짜라고 하기엔 진짜 같고, 진짜라고 하기엔 가짜 같은 내 안의 또 다른 나. 우리는 부캐를 통해 꿈만 꾸며 주저하던 것들을 용감하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원래의 나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하던 것들을 말이다. 부캐로는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어설퍼도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으니까. 부캐에는 한계가 없다. 졸업장도 경력도 필요 없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부캐를 만든다는 건 어쩌면 나보다 더 나 같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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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