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저   자
황유나 (지은이)
출판사
리드리드출판
출판일
2023년 01월
서   재







  • 우리가 어디에서 일하든 대부분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내 경계를 지키지 못한 채 무수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도 못하고 참 힘이 듭니다. 여기 금융부터 패션, 코스메틱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통해, 그 상처에 공감과 위로를 전해드립니다.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어여쁜 구김살_생긴 대로 사는 법

    나는 아웃사이더를 택했다

    응달에 떨어진 양말 한 짝처럼 나는 늘 멋쩍고 어색했다. 어느 구석에 있더라도 어울리지 않았다. 어디에 놓이더라도 분위기를 어둡게 했다. 구깃구깃 주름진 부분마다 그늘이 서려 있었던 까닭이다. 세상 태평한 듯 사는 이들 곁에 서면 내 어둠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못난 마음에 다림질한다면 달라질까. 도움을 받기 위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세상 시름 한번 겪어보지 않은 것처럼 편안해 보이는 의사는 내 증세와 딱 맞아떨어지는 병명을 찾아냈다. ‘사회불안장애’


    사회 알레르기의 곤란함에 대하여

    ‘사회불안장애’란 타인과 함께 있을 때의 불안 정도가 일상생활에서까지 불편을 초래하는 장애 증상이다. 대중 앞에 서는 게 두려운 ‘무대공포증’도 사회불안장애의 한 부류이다. 심하면 사람과의 대면 자체를 무서워하는 ‘대인공포증’이 된다. 쉽게 말해 ‘사회 알레르기’라고 할 수 있다.


    한번 보고 마는 사람보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과의 대면을 더 두려워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과 있는 게 되려 불편하다. 눈을 마주치면 동공 너머의 내 마음을 들킬 것 같다. 지금 어색하게 웃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 쓰일 때도 있다. 컵을 들어 올리는 손 모양을 의식해 로봇처럼 삐걱대며 움직일 때도 있었다. ‘나를 한심하게 여기겠지’라고 생각하면 공포가 몰려왔다. 정신은 곤죽이 되어 다른 데 쏟아야 할 에너지가 남아나지 않았다.


    만남 후에는 말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그 말을 왜 했을까 후회하고, 허튼소리로 상처 주지는 않았는지 내뱉은 단어 하나하나를 다시 꺼내 검열해보았다. 누군가의 기분이라도 상하게 했을까 봐 다음 만남에서는 눈치를 살피기 일쑤였다. 무리 속 나의 존재감은 점차 희미해져 갔고 사람들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자존심을 사정없이 무너져 갔다.


    높은 자기애 & 낮은 자존감

    수줍음은 ‘자기애’의 결정체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극도로 예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자연히 삶의 무게 중심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가 있었다. 상대에게 내 우위를 허락하며 나 스스로 자세를 낮췄다. 그들이 반사하는 내 모습을 나의 ‘자아상’으로 만들었다.


    자존의 성장판이 닫히면

    우리는 ‘자존감’이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열쇠라도 되는 양 숭배한다. 나 같이 자존감 낮고 자존의 영역이 비좁은 사람은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부적격자로 여겨진다. 루저를 자처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자존감’이란 잘 팔리는 자신을 만들기 위한 ‘허상’일 뿐이다.


    남이 나를 높게 사면 내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믿은 때가 있었다. 상대나 어떤 대상으로부터 평가 절하를 당하면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러나 나의 영역을 수호하고 그 안에서 내 소임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때로 세차고 때로 약한 물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이었다.


    물론 남들의 칭찬과 인정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지극히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의문스럽다. 타인들 역시 나와 같이 불완전한 존재이자 인간이지 않은가.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처분을 내릴 재판관도 아니다. 시비를 가릴 감독도 아니다. 애초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내 자존감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 남에게 나를 판단할 힘과 권리를 주어서도 안 될 노릇이다.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고 타인의 인정을 구해서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인생이 답답해진다.


    내 안의 여섯 살 꼬마는 지금도 끊임없이 나를 찾아온다. 둘러보니 어린 나를 보아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가여워 안아주었지만, 어느새 훌쩍 자란 내가 안겼다. 내 품에 나를 안고 다독였다. “애썼다!”



    오리, 날다_꿈꾸는 일 놓지 않기

    미운 오리 새끼의 날갯짓

    얼마 전, 서점에 들렀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그해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인지 보인다. 작년에는 투자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AI였다. 트렌드에 맞춰 A4 최소 100장 이상이나 될 법한 책 한 권을 적시에 척척 내놓는 것을 보면 세상에는 참으로 박학다식한 사람과 전문가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변함없이 인기인 이슈도 있다. ‘소확행’, ‘힐링물’은 몇 년째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화두이다.


    서점 안을 둘러보다 보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꿈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 날이면 날마다 등단하는 무수한 신인을 능가할 만큼의 필력이나 내세울 만한 아이디어도 가지지 못했다. 나보다 더 전문적으로, 더욱 설득력 있게 말하는 수많은 서적을 보면 같은 말을 다른 단어로 바꿔 봤자 소음만 될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다. 기대에 부풀어 노력을 쏟은들 결과는 언제나 실망으로 이어졌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기대하고, 적당히 실망하는 편이 나았다. 애초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다지 열심히 하진 않았으니까’라는 핑계라도 댈 수 있으니까.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금붕어를 삼키고 말 일이었다. 한편으로 어쩌면 지금의 위치가 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아닌가 싶었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자박자박 내려가는 일만 남은 것이 아닐까.


    지난 세월 동안 나는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기에 좌절을 맞닥뜨릴 때마다 크고 작게 무너졌고, 실패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했다. 눈물을 훔친 뒤 다시 도전하고 내 인생에서 해 뜰 날을 기대했다.


    그러나 인간관계나 사회 속에서 개인적인 어려움과 시련을 맞닥뜨리면 이 세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 신화도 내가 쟁취해낸 것이 아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쉽지 않고 어쩌면 내게는 가당치 않다는 좌절을 안긴다. 남들은 쉽게 하는데 나는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이 되어버리는 절망까지 더해지면 자포자기하듯 세상을 관조하게 된다.



    어른 아이 성장기_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걸다

    백수 삼촌의 빈둥거림과 그 끝 이야기

    열 살이던 해,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얹혀 지냈다. 아버지가 만성신부전증으로 장기 입원해 어머니가 온종일 병간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외갓집에는 나 말고도 군식구가 한 명 더 있었다. 당시 ‘백수’였던 외삼촌이다.


    외삼촌은 평균 사흘에 한 번꼴로 분탕질을 쳤다. 그래서 밤에 외할머니와 나란히 누워 잠들 땐 항상 불안했다. 불을 끈 뛰 이불을 파고들며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선잠이 들었나 싶던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돈 내놔라!” “돈 없다, 이 망할 놈의 새끼야.”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드잡이는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욕설과 고함, 울음 섞인 애원이 이어졌다. 몇 시간이나 이렇게 계속되자 그저 무력한 한숨만 나왔다. 깨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했다. 두 번의 날숨 중 한 번은 참아가며, 10초마다 한 번씩 이불을 말아 쥐었다.


    그때 ‘쿵!’하고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엔 몸싸움이 벌어졌다. 외삼촌은 외할머니의 몸을 밀치고, 외할머니는 외삼촌 다리를 붙잡고 기를 쓰는 듯했다. 나는 이불 밖 상황을 상상했다. “아이고, 아이고, 내가 왜 저놈의 새끼를 낳아서.” 외할머니가 기어이 돈 몇 푼을 내던지며 이렇게 한탄 섞인 울분을 내뱉어야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한겨울 웃풍 같은 외삼촌의 시선이 느닷없이 내 쪽에 꽂혔다. “저 싹퉁머리 없는 년이 오늘 내 나오니까 질색하면서 지 밥 챙겨 테레비 앞으로 뛰어가더라. 싸가지 없는 년!” 날아온 비수는 두꺼운 솜이불을 찢고 심장에 꽂혔다. 그 순간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은 멈췄고 치밀어 오른 화는 굳어버렸다.


    두 눈이 팽 돌 만큼 뺨을 맞고 또 맞는 기분이었다. 잊고 싶을수록 생각나고 또 생각났다. 뺨이야 시뻘겋게 터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터진 마음은 두 볼이 아물고 남을 시간보다 더 오래 아팠다. 그까짓 일로 두고두고 분한 건 아픔 탓이 아니다. 한마디도 대들지 못한 내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내가 퍼부었어야 했던 거친 말들이 떠올라 곱씹으며 되새긴다. 머릿속에서 상황을 되돌리며 어떻게 맞받아쳤어야 좋았을지 상상한다. 막상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그날 밤과 똑같이 마비되어버릴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외할머니를 이해해야 하지만

    외삼촌은 3남 6녀 중 막내아들이다. 외할머니는 최소 아들 셋은 두어야 한다며, 딸만 여섯 내리 낳은 끝에 비로소 아들 하나를 더 얻었다. 그런데 어찌나 오냐오냐 키웠는지 이모들은 외삼촌이 ‘망나니’가 된 것은 외할머니 탓이라며 수군댔다. 아들과 딸에 대한 외할머니의 애정 차이는 극명했다.


    외손녀인 나조차도 외할머니의 관심을 받아본 일이 거의 없다. 외할머니는 웃음 대신 작은 걱정을 내게 쏟아주었다. 나는 어릴 때 피부가 많이 건조하고 아토피도 심해서 외할머니는 수시로 바셀린을 발라주었다. 직접 발라주지 못할 때는 ‘바셀린 발라’라고 말을 툭 던졌다. 그러면 나는 살짝 열린 문갑 사이로 작은 내 손을 조심조심 비집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대장암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민망함에 고개를 푹 꺾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인정머리 없는 년, 매정한 년’이라는 욕을 들을까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 후로도 외할머니가 그리웠던 적은 던 한 번도 없었다. 어린 시절 호의를 받아보지 못한 기억에 대한 보상이다. 외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것으로 내 안의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내 어린 시절이 슬프다.


    어른 아이, 아이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당신을 만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단편 영화 속 등장인물이 묻는다. “나는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어요.” 어린 시절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에 감정이 휘몰아친다.


    공감이 어렵다. 그때의 나를 나는 따뜻하게 안을 수 있을까. 품에 꼭 안아주기에 어린 나는 너무 볼품이 없다. 못났고 붙임성조차 없으며 무포정한 얼굴에 경계심으로 늘 긴장한 모습이다.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라지만 주변인들의 언저리에서 눈치만 보던 아이. 나는 그 아이(나)에게 시시한 미소조차 보이지 못할 것 같다. ‘혐오’에 가까운 미움을 내가 나를 향해 쏘아대는 것이다. 내가 더 아프고 괴로워야 그날들을 용서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혐오를 너무 일찍 터득해버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절머리내는 어른의 틈에서 나 자신은 타인을 사랑할 줄 몰랐다. 내 감정을 두 글자로 압축한 그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 소름이 돋았다. 그 안에 내가 온전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와서 내 불행을 누구에게 전가한들 무엇이 바뀌랴. 과거를 핑계 삼은 위로가 뭐가 유익하겠는가. 악순환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을 뿐이다. 지금 서 있는 모습이 그 아픔을 감내한 결과이고, 누구도 모르는 구 아픔을 내가 다독여줘야 하는 시간인데.


    나는 나였기에 힘들었지만, 당신 역시 당신이었기에 힘들었을 거라고.



    AI가 온다_디지털 시대를 손님처럼 맞이하기

    시한부 인간의 필살기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맥도날드를 찾았다. 그런데 세상에! 주문받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주문은 키오스크가 받고 있었다. 직원들은 다른 일로 바빠 보였고 비어 있는 키오스크는 3대나 되었다. 키오스크 앞에서는 매번 긴장이 된다고 할까 괜히 주눅이 든다.


    꽤나 자신만만하게 마주했던 키오스크 앞에서 나는 고장 난 인간이 되어버렸다. 손은 엉뚱한 곳을 헤맸다. 어느새 사람들이 뒤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커다란 스크린은 ‘세상 사람들아, 이 바보 좀 봐라’라며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더블에그 불고기버거’를 선택했더니 세트로 할 것인지 물으며 내게 되려 패를 넘겨 왔다. 기계는 질세라 더 추가할 것이 없는지 물으며 여러 가지 사이드 메뉴를 띄워 댔다.


    기계는 놀리듯 혀를 쭉 뽑아내며 번호표를 내주었다. 그 순간 몇 세대는 더 뒤처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감자튀김 대신 모짜렐라 스틱이 나왔지만 대꾸 한마디 못 한 채 그저 얌전히 먹어치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대면 주문보다 키오스크 주문이 더 마음 편하다.


    바보야, 문제는 AI가 아니야

    그러고 보니 문제는 AI가 아니라 나였다. 10대 시절 이후 진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은 적이 있었던가? 과연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건지 의심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무엇을 해야 비로소 내게 맞는 업을 찾았다며 만족할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 후, 나는 무얼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20대, 30대에도 나는 항상 같은 고민을 했다. 진로에 대해 생각할 때면 수많은 물음표 사이에서 길을 잃곤 한다.


    당장의 안정이 좋을 때도 있었다. 변화란 두렵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안주하고 싶다’와 ‘변화하고 싶다’ 사이의 어디 즈음에서 고민하는 중에도 새로운 흐름은 계속 들이닥쳤다. 조류에 실려 넘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다음 10년은 또 얼마나 달라질까. 이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으니 감히 논할 수도 없다. 지식을 갖춘 이는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또 어떤 이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한다. 그러나 AI와 함께하는 미래는 완벽한 천국도 완벽한 지옥도 아닐 것이다.


    노동은 차츰 AI로 대체되어 가겠지만 그 길목의 끝자락에는 결국 인간성이 남을 것이다. 감정이든 지혜이든 인간 안의 ‘핵’ 만큼은 대체될 수 없다고 믿고 싶다. 전통과 장인, 낭만과 감성 같은 것들은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섬세하게 조작한 필압이 느껴지는 필경사의 필체, 붓자국 하나마다 작가의 고민과 상상을 담은 그림 등 소위 ‘아날로그 방식’이 한층 더 귀해지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탄생하는 어떤 일들은 결코 AI가 대신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묻는다면 아직은 방법을 잘 모르겠다. 여태껏 어설픈 포즈조차 잡지 못한 상태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 두 눈 부릅뜨고 시류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기왕이면 파도를 희롱하는 법과 즐기는 법도 알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대를 잘 타고 싶으니까.



    마음부터 챙김_내가 먼저 알아차리다

    생과 사는 연결되어 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상징적’ 죽음이 차례로 찾아왔다.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결혼 생활의 죽음’이었다. 젖과 꿀이 넘쳐날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초반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3년간의 다툼과 폭력, 별거와 이혼의 과정 끝에 관계를 유지해주는 최소한의 것들이 아예 말라비틀어지고 말았다. 대학원 진학 실패와 수십 군데 회사로부터의 잇단 채용 거절 등 ‘커리어의 죽음’까지 힘을 합치니 가히 ‘물리적 죽음’의 멱살까지 끌어올 정도였다.


    아무 감정도 일지 않았고 의욕도 사라졌다. ‘살까, 말까’의 두 가지 물음 사이를 수시로 넘나들던 어느 날, 우발적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마저 실패했지만 슬쩍 스쳐 갔던 죽음의 손은 삶의 손처럼 따뜻했다. 놀라웠다.


    어설프게나마 죽음을 겪은 후, 행동거지와 말투는 늘 매듭의 모양새가 되도록 의식적으로 매만져보는 습관이 생겼다. 매끈한지 살피고 각진 곳은 없는지 본다. 이음새는 단정한지 거듭 살피기도 한다. 매듭짓지 못한 끝이 가시가 되어 나의 죽음을 괴롭히지 않도록.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되는 나

    만화가 ‘키쿠치 유우키’의 <100일 후에 죽는 악어>라는 작품이 있다. 의인화된 악어가 주인공이다. 악어는 평범하면서도 시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일상을 보낸다. 100일 후 죽음이 ‘예약’되어 있다는 장치만이 이 악어를 특별하게 만든다. 독자들은 이 같은 설정에 대해 알고 있지만 정작 악어 자신은 이를 모르는 것이 이 작품의 백미이다.


    악어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성실히 아르바이트를 한다. 라면을 끓여 먹고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귤을 까먹으며 만화책을 보는 등 딱히 기억에 남을 게 없는 악어의 일상이 나열된다. 그런데도 독자는 각 에피소드 위에 표시된 ‘디데이’에 긴장한다. 마침내 D-0, 악어는 차에 치일 뻔한 병아리를 구하고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최후를 맞는다.


    무시무시해 보이는 죽음을 앞두고도 비장하지 않으며 ‘죽기 전 꼭 해야 할 100가지’ 따위의 버킷리스트 조차 없는 삶. 위대함이란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악착같이 살지도 않은 악어의 인생이라고 별 볼일 없을까. 인생이란 생각보다 심오하지 않다. 그저 자기 몫을 살아내는 게 전부이다. 머리 위에 뜬 남은 생의 시간은 각자 다르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같은 처지 아닌가.


    오늘만 산다

    “요즘은 좋은 하루보다, 별일 없는 하루가 더 고마워요.” 나의 신경정신과 주치의는 나이가 들수록 ‘좋은 날’보다 ‘별일 없는 날’을 더 기대하게 된다고 했다. 덧붙여 이런 말을 했다. “미래를 위해 필사적으로 사는 다람쥐를 본 적이 있어요? 다람쥐는 오롯이 오늘을 살아내면서도 불안을 느끼지 않아요.”


    내 인생은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로 인해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매번 조급했고 항상 다급했다.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을 위해 애쓰고 허우적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완성하고 싶은 것일까? 만약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난다면 그 인생은 미완인가?


    악어에게 어떤 목표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악어가 자신의 반려동물이었던 병아리를 사랑했으며, 병아리를 위해 집을 지어주고 끝내는 목숨까지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이라며 악어는 만족했을지 모른다. 디데이가 정해져 있다고 달라질 건 없다. 늘 그렇듯 오늘이 최초의 날이고 최후의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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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