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청소년 논어

저   자
판덩 (지은이), 하은지 (옮긴이)
출판사
미디어숲
출판일
2024년 04월







  • 무엇을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어떤 의미를 찾아 행복한 삶을 꾸려 갈지, 그 길을 ‘논어’를 통해 제시합니다. 흔들리고 불안한 청소년 시기에 생겨나는 갖가지 고민에 대한 해답을 들려주고 괴로움을 위로해 ‘진짜 어른’이 되는 평온한 길로 인도합니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청소년 논어


    지긋지긋한 공부, 즐길 수 있을까?

    인생 선배 공자의 첫마디, ‘배움이 가득하니 즐겁지 아니한가?’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공자가 말하길,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학생들에게 ‘고대 중국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 누구냐?’고 물으면 아마 열에 아홉은 ‘공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3천 명의 제자들이 그를 따랐고, 그중에서도 안연, 증자, 자하 등 지(智)·덕(德)·체(體)를 모두 겸비했다고 평가받는 걸출한 제자들이 탄생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명실상부 ‘진짜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습니다. 훗날 제자들은 그가 했던 말들을 기록해서 책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논어』입니다.


    먼저 1편을 봅시다. 위에 등장한 『논어』 속의 구절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뜻은 몰라도 ‘학이시습지’ 정도는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서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문장처럼 느껴질 수 있지요. 이 문장을 쉽게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지식을 얻은 후 부단히 복습하고 활용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며, 마음 맞는 친구가 먼 곳에서 놀러 오는 것은 기쁜 일이고,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화내지 않는다면 군자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 문장은 요즘 말로 하면 ‘쌀로 밥 짓는 이야기’, 즉, 하나 마나 한 이야기,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토록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문장을 책의 첫 장에, 그것도 가장 첫 구절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은 평생토록 배웁니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배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죠. 평생 공부를 시작하는 그 출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움에 대한 마음가짐입니다. 100m 달리기를 할 때도 출발선에 섰을 때 우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마음을 다잡죠.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갖춰야 할지 태도를 정해야 합니다. 이 문장은 바로 공부에 대한 태도를 다지는 문장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문장을 시작으로 책을 만들기로 한 겁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 배우고 제때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이 구절은 로버트 풀과 안데르스 에릭슨의 『1만 시간의 재발견』, 캐롤 드웩의 『마인드셋』의 내용을 압축해 놓은 문장이기도 합니다. 『1만 시간의 재발견』의 저자는 아무리 뛰어난 천재들도 하나같이 목적이 분명한 훈련을 거쳐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반에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모두 오랜 시간 좋은 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는 훈련을 해 왔을 거예요.


    『마인드셋』의 저자 역시 사람은 누구나 꾸준한 노력과 학습을 통해 재능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주장하며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이 두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제때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가 되는 것이죠.


    여기에서 사용한 ‘불역(不亦)’의 표현법은 ‘…하지 않는가?’라는 반문법입니다. 공자가 굳이 반문법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배우고 제때 익히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되물어본 것이죠. 동의하기 어렵다면 스스로 한번 질문해 보세요. ‘배우고 제때 익히는’ 일이 정말 신나고 즐거운가요?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낮은 성적을 받는 건 공부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난다 긴다 하는 친구들의 공부 비법을 듣고도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그건 ‘배우기(學)’만 할 뿐 ‘익히지(習)’ 않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지식이나 정보를 새롭게 습득한다는 의미이지만 ‘익힘’은 습득한 내용을 끊임없이 응용하고 시도하며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기』에는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여 명확하게 분별하고,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논어』에서도 배움에 관한 몇 가지 단계와 함께 ‘실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운 것을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들려면 수업만 열심히 듣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내용을 계속해서 생각해 보고 추론해 보기도 하며 실제로 응용하고 또 활용해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난관에 부딪힐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은 ‘학이시습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에서 만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배우려 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일단 『논어』 자체가 배움을 시작했거나 준비하는 공자의 제자들이 언급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내용은 없습니다. 배우려는 자세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일단 성실하게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은 공자의 제자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배우려는 자세는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둘째는 ‘배운 내용을 어떻게 응용하고 체화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정해진 시간이란 없습니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아주 길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친구들은 목표를 세우고 나서 단기간에 본인이 생각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절망하거나 쉽게 포기합니다. 이러한 불안함은 ‘지름길’만 골라서 어떻게든 편하게 가려는 생각에서 기인하죠.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 됐어. 이 정도로 계획을 세우고 공부했으면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겠지.’


    하지만 공자는 ‘한걸음에 정상에 도달하려는 욕심을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학이시습지’는 배우는 과정이 매우 즐겁고 기뻐야 하는데 결과에만 급급하면 그 과정을 충분히 만끽할 수 없기 때문이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마인드셋』에서 강조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 좌절에서 배울 점을 찾고, 나아가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평생 성장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공부의 탑티어, ‘락지자’를 향해

    아인슈타인과 뉴턴의 이론에 도전장을 내밀어라

    자왈 “군자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공자가 말하길, “군자가 널리 문물을 배우고 예로써 자기 행동을 절제한다면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로다!”


    고대 사람들은 과학적인 새로운 문물이나 기계가 등장하면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누군가 교묘하게 잔머리를 굴려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당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정도에서 어긋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늘 사람의 마음과 인성, 도(道) 같은 것에 몰두하며 어떻게 하면 공자의 학문을 더 발전시키고 확장할 수 있을까만 고민했으니까요.


    역사서를 살펴보면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여러 화제를 둘러싼 논쟁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청나라 시대까지 그것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을 정도였죠. 청나라의 유생들은 공자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누구의 해석이 조금 더 정통에 가까운가에 관해 논쟁하고는 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과학적인 새로운 문물이나 기계가 등장하면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누군가 교묘하게 잔머리를 굴려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당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이 정도에서 어긋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늘 사람의 마음과 인성, 도(道) 같은 것에 몰두하며 어떻게 하면 공자의 학문을 더 발전시키고 확장할 수 있을까만 고민했으니까요.


    역사서를 살펴보면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여러 화제를 둘러싼 논쟁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청나라 시대까지 그것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을 정도였죠. 청나라의 유생들은 공자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누구의 해석이 조금 더 정통에 가까운가에 관해 논쟁하고는 했습니다.


    위의 문장에서 ‘문(文)’은 ‘인문 학술’이고 ‘예(禮)’는 ‘예의 규범’을 가리킵니다.


    공자는 군자라면 모름지기 인문학 서적을 두루 읽고 공부해야 하며 예로써 約之以禮는 제자들이 도에서 벗어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삼가길 바라고, 전통을 뒤집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한 내용입니다. 그에 반해 서양의 과학 체계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천지가 개벽할 만한 새로운 변화를 이뤄내곤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이 발견되기도 했고, 뉴턴의 연구 성과 역시 여러 의심을 받은 끝에 오류가 있다는 게 밝혀졌죠. 아인슈타인의 발견도 온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과학은 이전 사람들의 연구와 가설을 뒤집으면서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공자가 말한 ‘박학어문, 약지이례’가 어떤 면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역가이불반의부,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에 대해서는 저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시대의 사람은 과거의 사람들이 주장한 생각이나 사상, 연구 결과에 감히 도전하고 의구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수백 년 전 삶의 양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지금, 현재에 맞는 해석과 연구를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지식이나 선조들의 생각에 도전장을 내밀고 그것을 바꾸는 정신과 용기는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도대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달항달인왈 “대재공자! 박학이무소성명.”

    자문지, 위문제자왈 “오하짐 집어호? 집사호. 오집어의.”


    달항 고을의 한 사람이 말했다.

    “위대하도다, 공자여! 그러나 다방면에 걸쳐 두루 알면서도 어느 것 하나 전문 분야에서 명성을 이룬 것은 없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엇을 전공할까? 마차 몰기를 전공할까? 활쏘기를 전공할까? 나는 가장 손쉬운 마차 몰기나 해야겠다.”


    ‘달항당인’은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이는 달항의 어린이, 즉 ‘항탁’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주장대로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항탁은 역사적으로 매우 유명한 인물입니다. 「열자·탕문」 편에 그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는데요, 향탁은 매우 영특한 아이였습니다. 친구와 해에 관해 논쟁을 벌이다가 공자에게 당돌한 질문을 던져 그를 난감하게 했지요.


    “대체 태양은 아침에 우리와 가까이 떠 있는 겁니까, 아니면 오후에 가까이 떠 있는 겁니까? 만일 아침에 더 가까운 거라면 왜 오후가 될수록 더 더워지는 거죠? 오후에 더 가까이 있는 거라면 왜 태양은 아침에 더 커 보이는 걸까요?”


    훗날 사람들은 공자 같은 성인도 꼬마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을 두고 매우 놀랐습니다. 항탁은 하나의 모순적인 흑백논리로 공자에게 도전장을 내던진 당찬 아이였습니다. 사실 현대 과학으로 해석하자면 이는 지구의 자전 및 공전과 연관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이란 지구가 남극과 북극을 이은 가상의 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회전하는 것입니다. 태양이 동쪽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지구의 자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지요. 즉,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태양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구의 공전’이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1년에 한 바퀴씩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육안으로는 식별해 내기 어렵고 이것이 기온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지 않습니다. 결국 항탁의 질문은 ‘시각’과 ‘촉각’이라는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태양의 거리를 판단한 것이므로 그에 대한 대답도 두 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럼 처음 구절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달항 고을의 사람이 어느 날 공자의 제자를 만나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대재공자(大哉孔子)! 박학이무소성명(博學而無所成名).” 만일 그 사람이 항탁이라고 가정하고 평소 그의 언행을 고려하면 이 말에는 풍자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공자라는 선생은 아는 건 많아도 전문지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소문처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돌고 돌아 공자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하겠는가? 활을 쏘아볼까? 아니면 마차를 끌어볼까?”


    사실 공자는 예법과 음악, 활쏘기와 말타기, 붓글씨와 수학과 같은 ‘육예(六藝)’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차도 물론 잘 몰았습니다. 고대에는 운전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이야 차량에 체계적인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고 핸들 조작법도 비교적 쉬운 편이지만 고대에는 자동차가 아닌 마차를 몰아야 했지요. 그런데 말은 자동차의 계기판이나 기어처럼 예상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마차를 몰 줄 아는 사람은 말에 탄 채로 전투에 나가 싸우기도 했으니 난도가 상당했습니다.


    그는 활쏘기에도 재주가 있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취푸에 있는 사격장에 들러 활쏘기 연습을 하는 것이 취미 중 하나일 정도였죠. 이렇게 재주 많은 공자가 마지막에 재치 있게 농담을 던집니다.


    “그나마 제일 쉬운 마차나 몰아야겠다.”


    공자는 이 구절로 여러 지식을 두루 섭렵한 ‘박학’과 하나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춘 ‘전공’에 관한 토론의 화두를 던졌습니다. 과연 둘 중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소위 ‘박사’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까요? 사실 이에 관한 논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근본적으로 ‘사상’과 ‘기술’, 두 가지와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천재’라는 합리화의 커튼 뒤로 숨지 마라

    자왈 “성상근야, 습상원야.”

    공자가 말하길,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은 서로 현격히 다르다.”


    공자는 이 구절로 여러 지식을 두루 섭렵한 ‘박학’과 하나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춘 ‘전공’에 관한 토론의 화두를 던졌습니다. 과연 둘 중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소위 ‘박사’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까요? 사실 이에 관한 논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근본적으로 ‘사상’과 ‘기술’, 두 가지와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천재라서 그래.”라고 말하면 바로 안심이 됩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죠.


    ‘내가 안 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사실 ‘천재’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의 성장을 저해합니다. 공자는 일찍이 사람들 간의 재능이나 천성, 지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정상인의 지능지수는 크게 차이가 없으며, 사람 간에 진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수련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자의 말을 살펴봅시다.


    ‘습상원야(習相遠也)’에서 ‘습(習)은 학습과 공부의 뜻 말고도 꾸준한 접촉이나 연습, 사람 혹은 사물에서 받는 영향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공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성상근야(性相近也), 습상원야(習相遠也)’,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은 서로 현격히 다르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한번 살펴볼까요? 유명 인사들이 거둔 성과는 대개 집안, 가정과 연관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전적인 DNA의 영향이 아니라 가정환경이나 훈육을 통해 형성된 학습 분위기의 영향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이 어릴 때 전자기학과 관련한 많은 지식을 통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집이 전구와 전기 기기를 다루는 장사를 했던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삼촌이 매일 부품을 다루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와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게 된 것이죠.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 역시 집에서 약국을 운영했던 덕분에 연관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성장 환경을 제공해 주고, 어떤 지식을 접하게 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새하얀 도화지와 같습니다. 서양의 ‘백지설’에 따르면 아이들은 하얀 스케치북과 같아서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그 위에 그리는 그림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비록 일각에서는 이 ‘백지설’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사람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떤 정보를 접했느냐에 따라서, 어떤 내용을 매일 연습하고, 어떤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느냐에 따라서 사람마다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은 단순히 타고난 자질이나 천부적인 재능 덕분이 아니라 후천적인 훈련과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유전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그 친구는 타고난 걸요.’ 등의 핑계는 여러분을 나태하게 만들 뿐 개인적인 성장과 발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