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엄마의 소신, 두 번째 이야기

저   자
이지영 (지은이), 소소하이 (그림)
출판사
서사원
출판일
2023년 10월
서   재







  • 뼈 때리는 말로 수많은 엄마들의 심금을 울리는 빨강머리앤 이지영 작가의 두 번째 이야기! 육아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녀를 키우고 싶은 엄마들에게 등대 같은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엄마의 소신, 두 번째 이야기


    엄마의 소신

    자식 잘 키우셨어요

    자식을 어쩜 그렇게 잘 키우셨어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분들이 있어요.

    이런 말을 종종 듣는 분들도 있고요.


    자식을 잘 키웠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성적 좋고, 성격도 좋고

    속 썩이는 일 벌이지 않고

    부모와 사이도 좋고…

    그러면 잘 키웠단 말 들을 만하죠.


    ‘잘 키우셨네요’라는 말을 듣는 입장이라면

    겸손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예고하고 뒤통수치지 않아요.

    뒤통수를 맞았다 하더라도

    남에게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나의 치부라면 몰라도

    내 아이의 치부를 드러낼 수 없는 게

    부모니까요.


    잘 키운 것 같았는데 아닌 날도 있고

    아니었구나 무너져내렸는데

    역시 이 정도면 괜찮게 자랐구나

    안심하기도 합니다.


    변함없는 아이가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봐요.

    그러니 남들 보기에 참 잘 키운 것 같아도

    겸손해야 합니다.


    잘 키웠다기보다

    잘 자란 것일 수도 있고요.


    ‘잘 키우셨네요’라는 말을 건네는 입장이라도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상대 부모의 수고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마음에

    칭찬할 수는 있겠지만

    내 아이가 그만큼 되지 못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속속들이 알지 못하잖아요.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평가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지금 부러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속 썩지 않는 부모는 없어요.

    완벽한 아이도 없어요.

    너란 아이는 딱 나에게 오는 게 가장 좋았다.

    그 답밖에 없습니다.


    “어쩜 아이를 이렇게 잘 키우셨어요”라는 말

    듣고 싶지요?

    안 들어도 괜찮아요.


    이담에 자식에게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리 듣는 게

    천만 배 값지답니다.


    맘에 들지 않는 성격

    이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어요.

    모두 똑같은 성격을 가졌다면 어떨까요?

    모두가 활발하거나, 모두가 신중하거나

    모두가 적극적이거나, 모두가 호기심쟁이라면

    그 나라, 그 집단은 반드시 망하고 말 거예요.


    아이는 나와 다르죠.

    내가 원하는 성격이 아닐 수 있어요.

    내가 원하는 성격이 아니라 속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내 문제에요.

    속상하고 괴롭다면

    아이를 바꾸려 하지 말고

    마음을 다스리는 게 나아요.

    내 성격의 모난 부분도

    이 나이가 되도록

    어쩌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이 성격을 바꾸겠어요.


    아이가 크고 보니

    맘에 들지 않았던, 바로 그 성격에서

    본받을 점이 보여요.

    가끔은 아이와 다른 내 성격이

    오히려 부끄러울 때도 있어요.

    기준이 ‘나’여서 속상한 것이지

    아이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홀로서기

    나의 세계를 깨보지 않으면

    좋은 대학 나오지 않아도

    금수저 출신 아니어도

    혹은 좋은 인맥을 만나지 못해도

    잘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좋은 대학 가라 하고

    한 푼이라도 모아서 더 남겨주려고 노력하는 거겠지요.

    그리고 그 불안감마저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영원히 개천에서 살까봐.

    계속해서 남의 눈치나 보며 살게 될까봐.

    어차피 한국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아이에게 불안감을 물려주기 전에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깨 보세요.

    혁명을 이루라거나 대단한 사건을 일으키라는 게 아니에요.

    이거 봐.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데 해보니 되더라.

    이거 봐.

    진실하게 살았더니 진짜 친구가 생기더라.

    이거 봐.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생각했더니 좋은 일도 생기더라.


    자신의 세계를 깨본 사람은

    자식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자신처럼 세상에 맞서 살아갈 거란

    믿음이 있으니까요.

    두꺼운 벽이라고

    두드려야 소용없다고

    그러니 너는 먼저 출발해야 한다고 해봤자

    결국 버둥대다 똑같이

    갇힌 세계 속에 살계 될 수도 있거든요.


    나의 세계를 깨보지 않으면 자식 걱정이 앞서요.

    두꺼운 벽의 실금을 찾아 부지런히 두드리는 자에게

    세상은 열립니다.

    그게

    같은 세상 같은 위치에 살면서도

    다른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이름 모를 모녀

    오래전 지하철에서 어떤 모녀를 보았어요.

    거리가 가까워 소곤소곤 나누는 그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들렸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분명 모녀였는데

    대화를 들으면 마치 친구 사이 같았죠.

    상하가 아닌 수평의 대화.


    “엄마가 그 책 말해줬었나?”

    “아니, 안 한 거 같은데.”

    “아, 내가 이건 꼭 너한테 알려줘야지 했었는데…

    그 작가 책이 너무 좋더라고.”


    그러면서 어떤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딸도 귀 기울여 들으며 자기가 아는 것

    궁금한 것을 물었어요.

    듣고 있자니, 이미 둘은 같은 책을 많이 읽었고

    서로 추천도 하고

    그래서 잘 통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로서는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죠.

    다 큰 딸과 같은 책을 읽고 친구처럼

    대화가 이어진다는 게 신기했어요.

    ‘나도 아이랑 저렇게 되고 싶다!’

    강한 소망이 생겼죠.


    지금 딸과 제 대화가

    딱 저렇습니다.


    책, 영화, 음악…

    어느 것이어도 좋아요.

    아이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큰 행복입니다.

    지금은 친구로서 저를 찾고

    말 걸어주는 아이가

    참 반갑습니다.



    물려받은 소신

    스파링 파트너

    친정 식구 중 말 못하는 사람이 없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인가 봐요.


    “네가 뭘 알아? 쪼끄만 게 왜 대들어?”대신

    “너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라고 물으셨던 것 같아요.

    분에 차 있던 사춘기에는

    아빠 말을 다 수긍하진 않았어도

    내가 터뜨린 말 만큼

    속이 시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태도에 대한 지적은 하셨어요.

    네 생각이 그렇더라도

    엄마한테 그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쾅 닫으면

    엄마가 무척이나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니

    그런 행동은 하지 말라고 말이죠.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억울한 걸 억울하다고

    때로는 엄마, 아빠라도 앞뒤가 다르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제가 세상에 지지 않고

    의견을 내고 기죽지 않는 이유는

    부모님이 상당 기간

    스파링 상대가 되어주셨기 때문이에요.

    싸우지 말아라가 아니라

    정정당당히 싸우는 걸 연습시키신 거죠.


    두꺼운 장갑 끼고 마음껏 두드리라며

    링 위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주세요.

    얼굴 때리는 건 반칙인 것도 알려주시고요.

    부모를 이긴 아이들이

    세상에서도 이깁니다.


    세상 밖으로

    노인과 바다 그리고 양육

    이보다 허무한 일이 또 있을까 싶은 내용임에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명작이 되었습니다.

    노인은 84일간 허탕을 친 뒤 다시 나간 바다에서

    큰 물고기를 만나 사력을 다해 싸웠죠.

    놓칠 수 없죠.

    손에 쥐가 나고, 상처가 나고, 잠을 못 자고,

    배가 고프고, 생리적 현상도 해결하기 어렵지만

    절대 줄을 놓을 수 없어요.

    강약 조절을 해가며 물고기와 밀당을 해요.

    따라가 주는 듯 당기다가도

    줄을 끊고 도망갈까봐 마음을 다스립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함께 할 사람도 없어요.

    그저 너무 힘들 때는

    혼잣말을 하거나 신께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데 상어들이 물고기의 살을 다 뜯어가기 시작해요.

    상어들과 싸우지만 노인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에요.

    만신창이가 되어 뼈만 남은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인을 감히

    실패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남은 것은 뼈와 머리밖에 없지만

    그가 얼마나 큰 물고기를 잡았었는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알 수 있기에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노인에 대한 존경심이 드는 겁니다.


    자식을 키우는 게 그와 같아요.

    외로운 싸움에서 사투를 벌이며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믿었던 노인처럼.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기쁨과 인내를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다시 사자 꿈을 꾸는 노인ㄴ처럼,

    부모 노릇이 그러합니다.

    그런 게 명작이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가 사라지는 작품

    막장 드라마 같은 그런 육아 말고

    명작 같은, 고전 같은 육아 기록을

    가슴에 남기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