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성교육 어떻게 할까

저   자
이충민
출판사
마인드빌딩
출판일
2022년 07월
서   재







  •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입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양육법이 필요하고, 성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성교육 전문기관 푸른아우성의 30만 건의 상담 사례에서 찾은 최적의 솔루션을 소개합니다.



    성교육 어떻게 할까


    부모, 성교육 어떻게 할까?

    유아 성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가 준비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인데, 바로 성을 긍정하는 마음과 부끄러움을 내려놓는 마음입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을 준비하면 부모는 좋은 성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긍정성을 가진 부모의 성교육입니다. 아이가 표현하는 성 행동에 긍정성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영국의 대안학교 서머힐 학교의 알렉산더 서더랜드 닐(영국의 아동 심리학자이며 급진적인 자유주의 교육의 실천자)은 “아이들이 선한 존재라는 완전한 믿음을 가지며 아이들에게 스스로 맡겨두면 최대한 발전한다”는 교육사상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성교육은 이러한 선함의 기초에서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긍정의 영향력이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육아를 통해 아이에게 “믿는다, 사랑한다”고 하는 특급 칭찬과 긍정성이 영향을 주어 자녀에게 최고의 긍정적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성 행동과 사고에서 굉장히 긴밀하게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긍정적인 말을 듣고 자라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자존감과 애착 형성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부모에게서 자존감을 공급받고, 자신을 믿게 되고, 사랑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지금 해보세요. 부모의 말에서 시작된 긍정의 효력은 아이에게 누적되어 어느 순간 발현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부모에게서 받은 긍정의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한 긍정의 효력은 언제 꺼내 쓸 수 있을까요? 바로 아이들이 미래의 성적인 위기 속에 꺼내 쓸 수 있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버텨내고 견디는 힘의 차이는 이 긍정성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부모가 가진 성적인 부끄러움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제 딸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성적 호기심’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샤워하고 나오는 저를 욕실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몹시 불편했지만 딸아이 연령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성적 호기심’이라고 생각하고 성적 욕구를 인정하되 행동을 교육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아빠의 몸이 어디가 궁금한지 물어보고 아이가 알고 싶다고 말한 곳을 그림으로 그려주었습니다. 몸이나 성기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 아이가 받아들이기 쉬운 그림을 그려 설명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시각적인 자료를 보여주며 교육하는 방법을 제 강의에서 자주 추천했고, 실제로 딸에게도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모가 불편하지 않은 편안한 상태로 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부끄럽지 않게 말하는 ‘편안한 분위기’는 아이의 성교육을 잘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이제 아이가 성적 호기심이 생길 때마다 질문하기도 하고 표현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때 부모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따라 유아 성교육의 승패는 달려 있습니다. 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자연스럽게 말해주고 부끄러움 없이 기꺼이 대답하는 자세가 된다면 유아 성교육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거절의 표현과 수용은 좋은 경계 교육이 됩니다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는 기본적으로 ‘거절’의 표현과 ‘수용’에 대한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만큼 인간관계에서의 ‘동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동의’가 실행되려면 올바른 ‘거절 교육’이 기초가 되어야 하고, ‘싫다’는 개념을 어려서부터 스스로 잘 표현하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또한 상대방의 거절을 잘 수용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존중 교육은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 맺음을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스킨십에서 아이가 싫다고 의사를 밝히면 그 의사를 수용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 부모가 멋대로 경계선을 넘나들면 아이는 혼란을 겪게 되고 경계가 사라집니다. 부모가 동의와 거절의 경계선을 허무는 꼴이 됩니다. 상대가 ‘안 돼!’, ‘싫어’라고 분명히 거절의 의사를 밝히면 ‘멈추는 것’을 알게 하는 명확한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침묵했다고 동의한 것이 아닙니다. 확실한 ‘긍정의 의사’가 아니면 무조건 거절로 받아들이고 즉각 멈춰야 합니다. ‘싫으면 싫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직접 느끼는 감정이 있어야 변화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아주면 싫었어?”, “그랬구나! 그렇게 안 할게. 다음에 싫거나 불편하면 하지 말라고 꼭 말해주렴.”, “그럼 아빠도 안 할게. 약속해!”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거절하는 방식이 익숙해지도록 해줍니다. 이러한 거절의 표현과 거절을 받아들이는 행동이 나와 타인의 다른 점을 존중하는 개념에서 균형을 만들 수 있습니다.


    교육은 앎에서 끝나지 않고 실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거절을 표현하고 수용할 수 있는 관계가 진짜 건강한 관계이며 그런 관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듭니다. 이러한 균형을 잡아줄 때 아이들은 분명한 경계 속에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할 것입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은 수동적인 자세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신의 거절 표현과 수용을 길러가는 교육입니다. 이러한 ‘자기 통제’를 배워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거절을 잘하는 아이는 거절을 잘 수용하는 아이로 자랍니다.


    싫다고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표현하더라도 작게 말하거나 대답하지 않거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회피할 수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을 타인의 거부 의사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즉각적으로 나의 행동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거절은 타인의 의견이나 생각에 반대하는 것일 뿐이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거절했다고 속상해하거나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으며, 어떤 의견이나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니 매번 상황마다 물어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우정을 발전시키고 정서적 감정을 배우는 경험이 쌓여 결국 타인을 존중하고 공감력을 갖추는 좋은 경계 교육이 될 것입니다.



    자녀, 성교육 어떻게 할까?

    자녀 성교육을 하려면 부모의 성 관점을 먼저 점검하세요

    많은 전문가가 자녀의 사춘기(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2학년 시기)를 성교육의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골든타임은 부모들에게 아주 고통스러운 시기입니다. 요즘 말로 자녀는 사춘기, 부모는 갱년기라고 할 만큼 부모들에게는 ‘현타’가 제대로 찾아오는 시기입니다. 중2병이나 초4병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질병처럼 관심과 신경을 써주어야 하는 때,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게 가장 힘들다고 경쟁하듯 말합니다. 매일 감정이 달라지는 자녀와 감정적 대립이 심해지는 시기입니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도 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통도 힘든 시기에 부모가 어떻게 자녀 성교육을 시작해야 할까요? 부모가 성교육을 직접 하려면 그 출발점은 자녀가 아닌 부모여야 합니다. 자녀 성교육의 첫 번째는 부모가 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깨닫는 것입니다.


    성교육은 자녀가 성 지식이 부족해 그것을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 성을 편하게 나누는 ‘소통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밥상머리 교육’은 온 가족이 모여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식구끼리 자연스러운 소통을 할 때 이루어집니다. 만약 국이 짜다, 맛이 없다, 밥 먹는 자세가 잘못되었다는 훈계와 잔소리로 가득차면 그 자리는 지옥이 됩니다. 그것은 소통의 단절을 만드는 말입니다. 정성스레 밥상을 준비하는 마음, 자녀들의 건강을 위한 부모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대화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밥상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부모가 밥상을 대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 성교육을 하기 위해서 밥상머리 교육으로 부모가 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성을 대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전하면 됩니다. 그래서 성교육을 하기 전에 부모 스스로 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엄격하게 진단해봐야 합니다.


    부모가 성을 심하게 부끄러워하는지, 터부시하는지, 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지, 깊은 상처가 있는지, 성을 대하는 마음이 불편한지, 훈계로만 대하려고 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지 부모의 관점이 확인되어야 성교육의 출발점에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단 속에 부모 스스로 감정의 치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회복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부상당한 선수는 치료를 마치고 경기를 뛰어야 합니다. 부상을 숨기고 그라운드에 서면 팀은 지고 맙니다. 지금 내면의 가시가 있는 부모라면 치료가 우선입니다. 부모가 아픈 상태로 자녀를 대하면 아이도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자녀 성교육의 동력은 부모에게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스스로 ‘나는 어떻게 성을 바라보고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하면 자기 성찰과 철학이 생깁니다. 부모의 건강한 성 의식이 아이에게도 올바르게 작용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성 관점이 바로 서면 우리 자녀를 위한 최선의 성교육 방향이 세워질 것입니다.


    아이의 스마트폰에서 음란물을 발견했어요

    아이의 스마트폰에서 우연히 음란물을 발견한 어머니가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음란물에 노출된 아이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깨닫습니다. 음란물이 주는 충격은 부모에게 회의감을 주고 상처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가 이렇게 감정이 무너진 상황에서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성교육 강연도 듣고 자녀의 훈육 영상을 보면서 공부했어도 ‘사건’ 앞에 무너집니다.


    이것은 부모의 탓이 아닙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지 부모의 책임으로 자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음란물을 본 아이의 탓도 아닙니다. 우리 아이가 특별히 달라서 벌어진 결과가 아닙니다. 음란물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렇습니다.


    자녀가 음란물에 노출된 것이 모두 ‘부모의 탓’이라면 그로 인해 ‘부모의 자격’이 없다고 한다면 그 자격을 갖출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격의 문제가 아니고 문화와 환경의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의지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시대의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음란물을 보게 된 아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아이들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감정이 무너지고 상실감에 빠진 상태로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다시 믿음과 신뢰를 쌓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사건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상처 난 부모의 마음에 단단한 딱지가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버티고 견디는 방법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된 부모는 자녀의 성 호기심과 성 욕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겠지만 음란물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음란물을 보지 않은 부모가 자녀에게 음란물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윤리적인 기준을 갖다 대거나 ‘악의 축’으로 몰아버리면 자녀들은 음란물이 왜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부모는 왜 음란물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유치원 자녀나 초등학생 저학년 자녀라면 ‘구체적인 사고’에 집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음란물에 대한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나열해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는 ‘추상적인 사고’를 하는 시기이므로 자신만의 생각으로 사고합니다. 음란물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아이가 음란물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도록 하는 시간을 줍니다. 그래야 스스로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며 조절하는 동기가 생깁니다. 지금은 음란물을 본 것이 잘못되었기에 혼나는 분위기에 위축되어 있지만 정확히 무엇인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음란물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디지털 성교육, 어떻게 할까?

    부모는 자녀와 디지털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아주 친숙하게 여기고 카메라로 촬영하는 일이 익숙합니다. 디지털 공간에 사진을 올리고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디지털 원주민입니다. ‘셀카’, ‘인증 사진’, ‘먹방’, ‘단체사진’을 쉽게 찍고, 서로 찍히는 것을 경계하지 않습니다. 다영한 ‘필터앱’으로 자신의 얼굴을 편집하고 SNS, 틱톡, 유튜브에 자연스럽게 노출합니다. 온, 오프라인의 경계가 없는 소통의 공간에서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뛰어놀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집니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손은 앱을 실행하고 게임을 열어 친구들과 온라인 놀이터로 장소를 옮깁니다. 게임을 잘하는 아이가 멋지고, 우월해지고, 최신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가 권력을 갖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들의 사회성은 디지털 기기 활용 능력과 정보력에서 갈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발전과 디지털화에 가장 큰 문제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과 환경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편리함을 주는 디지털 공간도 ‘인간관계’가 형성된 사회입니다. 그런데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며 사회 속 인간관계를 쌓는 기회가 사라지고 정보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익명이 보장된 활동은 책임지는 행동보다 주장을 펼쳐야 인정을 받습니다. 이러한 경쟁 문화, 능력 위주 활동은 에고이즘이 강화되어 오로지 ‘나’를 추구하는 개인화를 부추기게 되며, 그로 인한 미디어 환경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보다 빠르게 소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익숙해지면 ‘관계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과 활용에 앞서 더욱 요구되는 것이 ‘디지털 에티켓’을 갖추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온라인 속의 개인화에 대한 위험을 감지하기 어렵고, 부모의 직접적인 관리가 필요한 나이기에 부모의 ‘능동적인 개입과 관리’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성장 과도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자율’이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 전제로 안전이라는 ‘울타리’는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며 교육을 통해 수정 보완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이 성숙한 인격체를 길러줍니다. 하지만 지금의 디지털 환경은 아이들이 실수 과정에서 교화보다 처벌이 먼저 되며 결국 아이들에게 책임지도록 돌아가고 있습니다. 제한적 연령까지는 충분히 막아주고 스마트폰 사용을 늦추어야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연령이 될 경우 제한하고 보호하는 기능을 반드시 설치해야 합니다.


    최근에 ‘코딩 수업’이 열풍처럼 몰아닥쳐 여기저기 코딩 수업이 생겨났습니다. 코딩도 일종의 프로그램 ‘문해력’입니다. 코딩을 갖추는 것은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디지털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인 자녀들이 미디어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올바른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도록 일정한 연령까지 부모가 돕는 것은 필수입니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콘텐츠를 창작하고, 이용하고, 소비하며 디지털 시대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디어를 안전하게 사용하며 디지털 범죄를 예방하고 디지털 폭력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와 자녀가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는 소통 방법입니다. 디지털 소통 능력은 사회를 형성하고 만들어가는 새로운 역량이 될 것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더욱 인정받는 리더가 될 것입니다. 건강한 소통 방식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 초상권 보호, 저작권 보호,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철저한 보안 의식을 기반으로 안전하고 성숙한 온라인 공간을 만들어가는 의무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디지털 기기나 SNS로 자녀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고 부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이해하거나 아이들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혹시 ‘몇 시에 들어오니?’ ‘너 어디니?’ 이런 감시와 통제만 하고 계시지 않나요?


    스마트폰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기회는 많을 것입니다. 시대에 맞는 소통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디지털 친화적인 부모는 소셜미디어에서 아이들의 마음에 더 공감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부모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대가 찾아왔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미디어를 통해 아이들이 이해하는 미디어 사용법을 알려준다면, 그것이 자녀에게는 가장 큰 ‘디지털 소통법’이 될 것입니다.


    디지털 성폭력이란 무엇인가요?

    디지털 성폭력이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타인의 동의 없이 신체를 ‘성적 대상화’하여 촬영 저장, 유포, 협박, 전시, 판매, 시청, 소지하는 등의 온라인 환경 속 미디어나 SNS 등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을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카메라 등의 매체를 이용하여 상대의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하거나 유포, 협박, 저장, 전시하거나 사이버 공간, 미디어, SNS 등에서 타인의 성적 자율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범죄 행위를 일컫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와 성폭력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정의된 뜻과 의미는 나의 행동에 통제력을 갖게 됩니다. 또, 디지털 성폭력의 특징을 바로 알게 되어 자신의 행동을 억제하고 통제하게 됩니다. 디지털 성폭력은 교묘하게 스며들어 익명성, 시공간의 무제약성을 가지고 있으며, 비대면성을 이용해 새로운 지능 범죄로 우리 아이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성폭력, 성범죄의 피해 유형은 크게 집단 괴롭힘으로 나타나고 카메라 등을 이용한 범죄로 나타납니다. 불법 촬영, 성적 괴롭힘, 딥페이크, 온라인 성 착취, 유포‧협박 피해, 온라인 그루밍, 가스라이팅, 아웃팅과 같은 유형을 모두 포함합니다. 즉, 언제든지 ‘봉인 해제’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디지털 성폭력의 민감성과 예민성을 가질 때, 디지털 성폭력과 성범죄의 감수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것이 안전을 담보하는 예방이 됩니다 폭력과 범죄의 경계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통제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위험 인식을 갖고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극복하기 위한 ‘회복 탄력성’을 발휘할 것입니다. 디지털 범죄와 폭력 앞에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사람은 선을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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