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

저   자
차이더구이(역자: 박영인)
출판사
지와사랑
출판일
2012년 04월
서   재







  • 동양의 정신을 대표하는 공자, 서양의 문화를 이끈 예수. 두 성인의 같음과 다름! 현존하는 중국의 저명한 유학자 차이더구이는 이 책에서 동양의 정신을 대표하는 공자와 서양의 문화를 이끈 예수를 비교하고 통합한다. 유교와 기독교의 출현 배경과 공자와 예수의 사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고 추종되어왔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며, 유교가 숭배하는 공자와 기독교가 숭배하는 예수의 역사적인 면모를 밝혀낸다. 신화로 꾸며진 이야기 속의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한 시대를 실제로 살아냈던 위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두 사상가 그리고 두 종교가 상생하고 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


    공자와 예수의 기원을 찾아서

    중국으로 들어온 예수, 중국 밖으로 나간 공자

    가톨릭이 처음 중국에 들어온 시기는 당나라 때였다. 당시 중국에 유입된 가톨릭은 네스토리우스파였다. 그러나 당나라의 15대 황제 무종은 도를 믿어 불교 탄압 정책을 폈으며, 그 여파가 네스토리우스파, 즉 경교에까지 미쳐 사멸하고 말았다. 원나라 때도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가리켜 애카임(Arkaim, 몽고어로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불렀다. 이는 가톨릭과 네스토리우스파를 통칭해 부른 말로 원나라 후기에 소멸되었다.


    17세기 말에 가톨릭이 다시 중국에 들어왔다. 그즈음 가톨릭 선교사들이 서양에 공자를 소개했으므로 공자와 예수의 사상이 교류할 수 있었다. 중국에 가톨릭이 전파됨으로써 얻은 결과였다. 예수는 공자보다 약 5백 세 어리지만 그의 영향은 공자보다 훨씬 컸다.


    공자를 서양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마테오 리치였다. 중국에서 27년 거주한 그는 『논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 선교사 필립 쿠플레는 1687년 파리에서 『대학』『중용』『논어』의 라틴어 역에다 공자전을 덧붙여 『중국의 철인 공자』란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최초의 완전한 『논어』번역이었다. 18세기에 벨기에 신부 노엘이 라틴어로 번역한 『중국 고전 육경(六經)』은 『중국의 철인 공자』등과 함께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등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마테오 리치는 공자의 존칭 공부자(孔夫子)를 라틴어 Confucius로 번역했고, 이때 번역한 용어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공자가 서방 국가로 간 지도 벌써 3백 년이 흘렀다. 공자의 영향은 20세기 말 미국에 보스턴 유학파와 하와이 유학파가 형성될 정도로 확대되었다.


    자신을 신이라 선포한 예수

    30세 이후부터 예수가 신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그의 행적을 기록했다. 예수는 사역하는 동안 32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간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전역에 그의 명성이 퍼졌다. 이 때문에 유대의 권력자와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복음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너희와 함께 있다", "서로 사랑하라", "사람은 모두 존귀하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했다", "하느님에게 구하면 반드시 죄 사함을 받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수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지만 스스로 깨우쳤다. 하느님의 계시를 직접 받아 선교했으며 제자를 양성했다. 세속적으로 볼 때 그는 비천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래 살지도 못했고 좋은 직업을 가진 적도 없었으며 복, 학위, 지위, 재산, 명예, 권력 등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가진 게 없었다.


    성년이 된 후 그는 유대인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자신임을 선포했다. 기독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가 사역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능력이 있음을 보았고, 그가 행한 신비로운 기적을 보았다. 그래서 그를 평범하지 않은 교사와 선지자 그리고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메시아로 인정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지만 예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류의 구세주, 우주의 주재자로 받아들여졌다. 예수도 스스로 신이라 칭했고 신비한 행적을 많이 보였다. 짧은 기간 동안 사역하면서 그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해주었다. 맹인을 눈 뜨게 하고 중풍환자가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했으며 문둥병자를 낫게 하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소생시켰다. 또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쫓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음식을 남기는 기적을 행했다. 그 밖에도 물 위를 걷고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는 등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기적적인 일들을 행함으로써 예수는 신성을 드러냈다.


    "용이 어린 양에게 길들여진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은 겨우 몇 백 구절로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말씀보다 적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천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논어』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출판 부수는 그 밖의 베스트셀러들을 모두 합한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서양으로 뻗어나간 기독교는 현대화와 민주화를 이룬 유럽과 북미에서 크게 발전했다. 크리스천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은 일단 받아들이면 생명이 된다.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인가? 신은 일단 소통하게 되면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며, 온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신을 경배하는 것이고, 신과 동행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중국에 광범위하게 전파된 건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일부 중국인 "용이 어린 양에게 길들여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용은 중국이고 어린 양은 예수다. 기독교의 빠른 전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국의 유학이 당면한 과제다.



    공자와 예수가 걸어온 길

    동서양 곳곳으로 전파된 유학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유학이 중국의 사상과 문화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사상과 문화라는 점을 인정한다. 공자는 중국의 공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공자이기도 하다.


    공자의 사상은 일찍이 1,2세기경 국경을 넘어 먼저 한국에 전파되었다. 3세기에는 왕인(王仁, 백제 근초고왕 때의 학자. 초청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자와 유학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라는 조선의 한 학자가 『논어』를 들고 일본으로 갔으므로 일본에도 유학이 존재하게 되었다.


    유학은 주자학으로 발전했는데 주자학은 오늘날 한국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유학이다. 일본 유학은 공자와 왕양명의 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양명학은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에서의 유학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


    유학은 일찍이 베트남에도 전파되었다. 진나라 때 베트남에 유입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유학은 베트남에서 순탄치 못한 길을 걸었다. 특히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한 근대 이후에는 유학의 지위가 매우 낮았다. 그러다 통일이 된 후부터 최근 몇 년 사이에 비로소 동아시아에 유학원을 설립하여 유학을 보존하려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유학이 서양에 유입된 시기는 1593년으로 확인된다. 북경 대학의 교수이자 유명 학자인 주쳰즈[주겸지(朱謙之)]의 연구에 따르면, 마테오 리치가 1593년에 사서를 라틴어로 번역했으므로 이때 처음 서양에서 공자와 『논어』, 유학을 알게 되었다. 훗날 프랑스의 볼테르와 독일의 라이프니츠는 공자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받아들였다. 특히 라이프니츠는 『역경』을 깊이 있게 연구한 뒤 이를 바탕으로 2진법을 발명하여 서양에 도움을 주었다. 이를 보면 유학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심지어 서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사회와 보조를 같이 할 수 있는 사상을 만들려면 현대인의 시각으로 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문화 교류의 관점에서 보면 유학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온 사상으로, 특히 다른 문화들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때 발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사상과 문화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유학사상을 개선하고 보충하여 발전시켜야 한다. 나아가 현재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용성을 찾아내 사회가 더욱더 안정되고 번영할 수 있도록 이바지해야 한다.


    유대 사회에서 신속히 전파된 기독교

    기독교의 출발점이 되는 예수는 1세기 전후 갈릴리 지방 고지대에 있는 마을 나사렛에서 살았다. 그의 종교 활동은 로마 황제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 사회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유대인은 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신앙이 두터웠다. 그러나 고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등 이민족의 침입과 박해를 받은 후 로마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로마제국은 유대인을 폭력으로 진압했고 유대인은 나라와 문화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를 다시 재건할 메시아를 갈망할 수밖에 없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대 선지자들이 주장한 세계의 종말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유대 사회에는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유행처럼 빠르게 퍼져나갔다. 로마제국은 당시 가장 완벽한 군사와 행정, 법률 체계를 갖추고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식민통치했다. 따라서 여러 민족들의 문화와 종교가 급속도로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제국 내에서도 사상과 도덕, 풍속이 전반적으로 부패하고 사회질서가 문란해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편 로마제국 내의 민족들 사이에서는 갈수록 교류가 활발해져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이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 요셉이란 이름의 목수가 살고 있었고, 그의 아내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 예수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광야로 나갔다. 광야에서 지내는 40일 동안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았으며 그 후 하늘나라에 관한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라"라고 외쳤다. 또한 그는 열두 명의 사도들을 유대 전역에 파견하고, 가는 곳마다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는 등 많은 기적을 행했다. 유대 사회의 상류층 인사들은 이를 두려워했다. 결국 예수의 제자 중 하나인 유다를 돈으로 매수하여 예수를 체포하였고, 로마인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다. 결국 예수는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선고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러나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났으며, 40일 만에 승천하고 50일이 되던 날 성령을 지상에 보냈다. 열세 번째 사도로 불리는 바울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이 성령을 체험한 후 국내는 물론 국외로도 복음을 전했다. 기독교는 초기에 로마제국 내의 유대 사회에서 신속히 전파되었으며 점차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로 전파되어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공자의 체온이 느껴지는 『논어』, 예수의 영혼이 담긴 『성경』

    공자의 사상과 인품을 보여주는 『논어』

    『논어』는 공자의 제자와 그다음 세대의 제자들이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일부를 기록한 책으로 춘추전국시대에 완성되었고,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공자는 중국의 성인이자 유교의 교주다. 그리고 『논어』는 중국의 성경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캉유웨이(康有爲)도 "유학자들은 천명을 근본으로 삼아 신의 힘을 펼쳐 보였고 공자 역시 하늘을 공경하고 하느님을 받든 교주다"라고 했다.


    『논어』는 공자의 생애와 언행을 기록하여 품격과 원기 넘치는 그의 사상을 완벽하게 정리한 책이다. 공자는 자신이 저술한 책을 남기지 않았지만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하여 『논어』를 남겼고 현재까지 전해진다. 『논어』는 사상, 정치, 사회생활 등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을 정도로 내용이 광범위하고 깊어서 고대 중국 정치사상과 중국 민족의 정신적 소양 및 도덕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논어』는 더 나은 삶을 깨우치고 사람됨을 가르치는 지혜의 책으로, 반복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공자는 인을 근본으로 "노역은 가볍게, 세금은 적게 거둔다",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백성을 부유하게 한다",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잘 조화시킨다", "덕으로 이끈다", "존경과 어짐으로 가능하게 한다", "덕으로 가르치고 예로 다스린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덕정학설을 주장했다. 이 사상은 『논어』에 잘 드러나 있고 지금도 유효해서 조화로운 사회 건설에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논어』를 읽으면 큰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공자를 만날 수 있다. 공자의 학술적 위대함과 인격적 위대함이 온화한 지혜자라는 단어에서 모두 드러난다. 공자는 한평생 인애의 마음을 실천하여 덕은 천지에 가득 차고 도는 고금을 통틀어 뛰어났다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람이 지초와 난초로 가득한 방에 오래 머물면 지란의 향기가 몸에 자연스럽게 배고 고상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연히 덕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논어』를 가까이 두고 익히면 도덕 수양의 효과가 커진다. 그러나 『논어』는 안타깝게도 5‧4운동 이후 봉건의 상징으로 비판받았으며, 공자는 문화대혁명 때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논어』는 재조명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경전 읽기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논어』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여진 성경

    하느님은 자기 백성과 언약을 세우고 그들의 구주가 되었다. 언약의 중보자(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즉 하느님의 독생자이다. 성경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성경이 하느님의 계시이자 은혜와 구속의 계시이며 오류가 없는 확실한 것임을 증명한다.


    성경에는 우주의 시작과 완성, 인류의 기원과 끝, 생명의 참뜻, 인생의 원칙과 의의 등의 내용과 계명이 담겨 있다. 크리스천에게 성경은 신앙과 삶의 근거이자 진리와 도덕의 시작이며 끝이다. 또한 율법과 규율의 기초다.


    성경은 기독교의 영혼이다. 서양의 주류 종교가 기독교이므로 서양문명을 이해하려면 성경을 이해해야만 한다. 세계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성경을 정신적 삶의 양식으로 삼고 있다. 또한 1,80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가장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성경에 의거한 신학과 교리

    신학자들은 인간이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통치, 그리스도의 구속, 성령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우주의 시작과 완성, 인류의 기원과 끝, 생명의 참뜻, 인생의 원칙과 의미 등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은 하느님의 지혜가 엿보이는 걸작이자 하느님의 생명을 드러내 보이는 표현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자애, 공의, 율법, 계명을 기록한 책이다. 신학자들은 성경의 항구성, 보편성, 순수성, 완벽성, 일관성, 진실성, 확정성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며, 영원히 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영원한 권능과 다스림, 그리스도의 자애와 구속, 성령의 계시를 알 수 있다.


    성경은 역대 모든 교회의 전통과 권위를 초월하며 교회의 전통, 율례와 도덕의 기초가 된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가 만들어진 것이지 교회가 있어 성경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신학과 교리는 모두 성경에 의거해야 한다. 성경의 권위와 계시는 교회의 전통이나 신도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확신하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하느님의 신성과 영원성 때문에 성경의 권위와 확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공자의 성인과 예수의 하느님

    유교의 성인과 기독교의 하느님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학술계에서는 하늘과 하느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한 논문이 지속적으로 쏟아지면서 주목할 만한 새로운 관점이 많이 제기되었다. 수저우 대학 교수 저우커전(周可眞)은 저서 『유교의 하늘과 기독교의 하느님』에서 양자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전면적으로 분석했다. 하느님은 세상을 초월하여 세상 밖에 존재하는 존재자이고, 하늘은 세상 속에 존재하면서 우주를 주재한다. 하느님은 유일한 참된 신이고, 하늘은 많은 신들의 주(主)이다. 하느님은 인류의 창조자이고, 하늘은 인류의 조상이다. 크리스천에게 실재하는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유교에서 실재하는 하늘은 성인이다.


    저우커전은 기독교에서의 하느님은 세상과 분리된, 세상을 초월하여 세상 밖에 존재하는 존재자이며, 철학적으로 말하면 세상의 비존재자라고 말했다. 크리스천은 하늘의 뜻을 결정하고 모든 것을 총괄하며, 보편적인 존재자인 하느님에게 의지하고 귀의한다. 그래서 자신도 세상을 초월한 사람, 세상 밖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유교에서의 하늘은 세상 속에 있는 객관적인 존재다. 공자와 맹자는 하늘이 창천으로서 만물의 성장과 사계절의 변화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동중서는 하늘을 창천 외에 춘하추동의 사시, 낮과 밤의 주야, 화·수·목·금·토 다섯 가지 물질의 오행과 산천 등을 포함한 자연으로 보았다. 동중서의 하늘은 그야말로 자연계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하늘이 땅의 대칭 개념으로 사용될 때가 종종 있는데 이때도 창천을 가리킨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하늘의 범위인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지만 하늘의 근본 의미는 공자와 맹자가 말한 하늘과 상당히 일치한다.


    유교는 자연 하늘을 인격화해서 천하 만물의 조상으로 삼았다. 유교의 특징 중 하나는 하늘을 의지와 도덕, 초월적인 힘을 지닌 지고지상한 우주의 주재로 삼아 숭배한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한나라와 송나라의 유교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학의 대가인 정자는 "만물은 하늘을 근본으로 삼고 사람은 조상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동지에 하늘에 제사하면서 선조를 배향하니"라고 말한 바 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하늘 숭배의 가장 뚜렷한 증거이며, 선조 제사와 함께 하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교가 하늘을 조상신으로 섬긴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 자연숭배와 선조숭배를 결합한 이러한 방식은 유교가 종교로서 자연종교(원시종교)의 의식과 유사한 성격임을 반영한다.



    예수 안의 공자, 공자 안의 예수

    동서양문화가 함께 나아갈 미래

    서양문화는 본질적으로 도구적이며 이(利)를 중시하고 의(義)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공리를 중시하는 문화는 본래 배타성을 띠고 있다. 기독교 위주의 서양문화는 모든 것을 이분하는 분석적 사유방식을 발달시켰다. 그 결과 서양의 과학기술과 물질문화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물질문명이 가져다준 풍요 속에서 물질주의와 향락주의는 하나의 유행이 되었고, 사람들은 만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질주의 사상이 맹위를 떨치면서 서양인은 가차 없이 자연을 이용하고 착취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서양문화의 특징인 도구적 이성이 넘쳐나고 가치 이성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제 서양문화는 동양문화에서 출구를 찾아야 한다.


    서양문화와 달리 동양문화는 도리와 의를 중시하고 이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도리를 중시하는 문화는 본래 포용성을 띠고 있다. 도리를 깨우치는 것은 마음의 깨달음을 통해서이다. 종교성이 짙은 동양에서 창세설, 계시진리설, 영혼불사설, 천당과 지옥설 등의 사상이 유행하는 건 당연하다. 물론 이들 학설은 모두 비이성주의의 산물로 직관, 반성, 개인의 신비한 체험으로 얻은 것이다. 동양 철학자에게 있어 감각기관은 심령의 눈이다. 신비로운 심령의 눈이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이성적 깨달음은 대부분 감각기관에서 시작되지만 감각기관을 초월해야만 영적 체험을 얻을 수 있다. 불교의 찰나적 깨달음, 즉 돈오(頓悟)와 이슬람교 수피파의 신과의 합일이 그 대표적인 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양문화는 둘을 하나로 결합하려는 종합적 사유방식을 형성했다. 동양문화는 포용력이 커서 그 영향 속에서 자란 사람은 박애정신이 강하다. 그러나 동양문화가 가치적 이성만을 지향하고 도구적 이성을 홀대한 결과, 가치적 이성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도구적 이성은 부족해졌다. 그러므로 유학문화는 서양문화에서 필요한 부분을 흡수하여 내실을 다져야 한다.


    세계의 대동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동서양문화를 융합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동서양문화를 융합하고 상호 보충하면 최고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바다처럼 넓은 박애정신의 함양이 인류의 이념을 승화시킬 수 있고, 자연계에서 인류의 자리를 바로잡을 수 있으며, 과학의 오만과 편견을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엄청난 위력을 지닌 진리의 손(서양문화)을 단련시켜 더 높은 차원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의 여의봉과 그 여의봉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통제하는 붓다의 끝없는 주문이 상호 결합될 때에만 인류는 생태문명의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각종 덫에 빠져 어려움을 겪는 동서양문화는 과거에 맺힌 원한을 버리고 상대방의 장점을 받아들여 함께 생태문명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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