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그 청년 바보의사

저   자
안수현(엮음: 이기섭)
출판사
아름다운사람들
출판일
2009년 07월







  •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은 안수현의 삶을 그가 남긴 글을 통해 되새기는 책이다. 유행성출혈열로 33세에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더없이 건실한 청년의사 안수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나면서 남긴 자신과 이웃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 곳곳에는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글을 실었다.



    그 청년 바보의사

    그 청년 바보의사
    “과연 나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환자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 설대위(David Seel, 전 예수병원 원장)


    병실에 누운 한 환자가 아까부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밤중 병실의 불은 이미 꺼져 있습니다. 주로 암환자들이 누워있는 6인 병실에는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 들이 한 숨, 한 숨을 가늘게 쉬고 있습니다.


    병실의 문이 가만히 열리는군요. 의사 가운을 입은 듬직한 체구의 청년 한 명이 조용히 들어와 환자 곁으로 다가갑니다. 청년은 뼈만 남은 환자의 앙상한 손을 다정하게 잡고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 라파 치유의 하나님, 우리 A환자 분의 병을 낫게 하여 주십시오. 좀 더 시간을 주셔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하여 주시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치료만 할 뿐이니, 우리 주님께서 몸과 영혼을 깨끗하게 치유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청년의사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나갑니다. 꼼짝도 하지 않던 환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오랜 병치레에 지쳐 가족들도 줄 수 없는 따스함을 청년의사가 믿는 예수님의 사랑이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청년의사는 환자와 눈이 마주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눈도 안 마주치고 할 말만 하고 휙 돌아서는 그런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아프시냐고 묻기도 하고, 빨리 처치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웃어주기도 하고, 간호하는 아들이 잘 생겼다고 덕담도 해주었습니다. 청년의사는 입원 첫날부터 한밤중이면 찾아와 환자의 침대 곁에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는 갑갑증을 느꼈고 죽으면 그만이지 이깟 주사는 뭐하려고 맞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링거바늘을 빼버리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병실 바닥이 피로 물들었고, 같은 병실의 놀란 환자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간호사들이 몰려왔습니다.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할 때 청년의사가 달려왔습니다. 주치의니까요. 청년의사는 무섭게 환자를 야단쳤습니다. “할아버지, 가만 계세요. 제발 저희 말을 들으세요.” 청년의사의 억센 팔이 버둥대는 환자를 힘껏 안았습니다. “힘드신 거 다 알아요. 살기 싫으신 거 다 알아요.” 그 말을 들은 환자는 청년의사의 팔에 안겨 실컷 울었습니다.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후 처음이었지요. 황소처럼 목 놓아 오래오래 울었습니다.


    그 후로 매일 밤, 환자는 청년의사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아직 그 환자는 예수님이 누군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청년이 믿는 누군가라면 한번 믿어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일 회진 때, 지난번 거절했던 성경책을 갖다 달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그 의사는 기뻐서 얼굴이 호빵맨 같이 부풀어 오르며 씩 웃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 밤이 지나기 전, 머리맡에 커다란 돋보기와 함께 성경책을 놓아줄 것입니다.


    청년의사의 이름은 안수현. 고대 의대 91학번, 내과전문의입니다. 고대부속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국방부장관 주치의를 맡았었지요. 단정하게 깎은 짧은 머리에 105사이즈의 흰색 폴로셔츠, 푸른색 바지를 즐겨 입던 178cm 키의 듬직했던 그는 환자들에게는 따뜻했고, 동료들에게는 친절했으며, 자신에게는 의사로서 엄격했습니다. 그는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의사였습니다. 의사 경력은 짧았지만, 그의 정성이 환자들의 병든 몸과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여 예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2003년 군의관으로 입대한 청년의사는 2006년 1월,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서른 셋, 예수님과 같은 나이에, 예수님의 흔적을 좇아 달려가던 그 청년은 문득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남겨놓고서 말입니다.


    이 책은 그 청년의사가 쓴 글들을 엮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의 자취를 우리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바보같이 주기만 하던 그를 기억하면서.


    오늘, 그 청년이 더욱 그립습니다.


    나 두렵지 않아요
    2001년 11월 17일 토요일 오후 4시 30분경, 나는 몹시 피곤한 가운데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허리춤의 휴대폰이 울린다. 문자메시지였다. “[긴급] 형이 예전에 보던 은진이, 요즘 제가 보고 있습니다. 재발해서 입원한 지 좀 됐고요. 그저께 안암소아과 BMT실(골수이식병동) 들어갔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1여 년 만에 접하게 된 은진이의 소식이 재발이라니! 은진이는 지난 8월경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검사 결과 재발이 확인되었다. 담당교수님은 골수이식을 권유했다. 골수이식을 결정하고도 유전자형이 맞는 공여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 은진이는 기적적으로 은진이와 동생의 유전자형이 일치해 동생의 골수를 이식받기로 결정되었다.


    골수이식에 앞서 고단위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된 은진이를 만나러 병실을 찾았다. 신실한 크리스천인 내 후배는 다른 과로 옮겨갔지만, 은진이 어머니에게 찬양 테이프 등을 나누면서 라포(rapport: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형성했었다. 은진이 어머니가 내 후배에게 혹시 안수현 선생님을 아시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이 은진이 참 예뻐해 주셨거든요. 작년 생일에 집까지 찾아와서 선물이랑 케이크도 전해주시고 갔었는데. 그냥 생각이 나서…….”


    은진이 어머니는 올해 은진이 병이 재발하면서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한 달 전부터 병원교회에 출석하고 있노라고 했다.


    후배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한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크고 집요하시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은진이 가족이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마음 문을 두드리게 하셨고, 내 후배 의사를 통해 그 열매를 거두셨구나! 나는 감사기도를 드렸다. 피로는 씻은 듯이 가셨고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한 주 앞으로 다가온 학회준비와 저널 발표준비, 중환자들을 돌보는 일들이 겹치면서 은진이를 찾아가려는 계획은 부득이 연기되었다.


    며칠 뒤, 소화기병 국제심포지엄(SIDDS)이 끝났다. 나와 동료들은 진행요원을 맡아 하루 종일 국내외 연사들의 슬라이드와 조명, 노트북 상태 등을 일일이 점검하면서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도우미 역할을 했다. 주말 내시경학회에서 전시할 포스터 작업까지 맡기고 곧바로 은진이를 만나러 가려고 안암병원 소아과 병동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에게 은진이가 잘 있는지 물었다. 간호사는 왠지 당황하는 목소리로 누구시냐고 되물었다.


    “저 은진이랑 아주 친한 내과 3년 차인데요.”


    "은진이 여기 병실에 없는데요.“


    “예?”


    “저, 은진이가 어제 저녁 엑스파이어(expire: 사망)했거든요.”


    “……”


    순간 전신에 힘이 쭉 빠졌다. 이대로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나는 핸들을 꺾어 은진이 빈소가 있다는 안양으로 향했다. 은진이를 돌봤던 후배에게도 연락을 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 안양 장례식장을 찾았다. 빈소는 단출했다. 은진이의 모습이 영정사진으로 어색하게 걸려있었다. 뜻밖의 손님을 맞은 슬픈 얼굴의 은진이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나도 은진이로 인해 가슴 저미는 슬픔 가운데 있었기에, 말이 아닌 마음을 가지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은진이 어머니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이제 막 배운 신앙으로 소화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주님의 주권을 조금씩 인정하는 하나님 자녀의 모습이었다. 자리를 뜨기 전, 내 마음에 가장 궁금하던 것을 은진이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은진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던가요?”


    “은진이요?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편안하게 갔어요. 엄마한테 이렇게 말하면서요. ‘엄마, 나 두렵지 않아요. 두렵지가 않아.”

    그 아이야기를 듣는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은진이는 열 살짜리 아이였지만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것을 이미 알았던 것이다. 주님의 온전한 사랑 속에 있는 이 아이를 사망조차 어쩔 수 없었으리라. 은진이의 마지막 한 마디는 슬픔에 잠겨 빈소를 방문한 우리 두 사람에게 기쁨으로 돌아가게 할 힘을 주었다.


    은진이를 처음 만난 후로 오늘까지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1년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그 가정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림자를 물러가게 하신’ 은혜의 시간은 아니었을까? 은진이에 대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그의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가에 대한 ‘지독한 사랑’의 기록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가정의 믿음이 사그라지지 않게 하시기를 다시 한 번 중보했다.


    “주님, 이 가정에 남아있을 눈물을 닦아주소서. 상하고 지친 자들, 목마르고 아픈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참된 안식과 위로를 허락하소서.”


    외로운 양치기
    담을 뛰어넘기

    내 ID이자 글 마무리에 항상 쓰는 ‘스티그마(흔적)’란 단어는 교회 대학부 성경공부 팀의 이름인 ‘스티그마’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 갈라디아서 6장 17절 말씀인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는 바울의 고백에서 인용한 것이기도 하다. 스티그마는 나에게 무척 각별하다.


    내가 고 3때 고등부 담임 목사님이셨던 김동호 목사님이, 몇 년 전 오디오북 『스티그마』를 내셨다. 사실 김동호 목사님은 대입이란 높은 고지를 앞에 둔 고 3 시절, 풍성한 말씀으로 주일을 기다려지게 만드셨던 분이다. 목사님은 이제 막 신앙의 싹을 튼 청소년들에게 복음과 열정을 통한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셨다. 또한 나는 교회 안의 성경공부 팀 ‘스티그마’를 통해 내 신앙과 삶의 본이 될 선배들을 만났고 모태신앙의 껍질을 벗었다. 선배들이 내게 보여준 헌신은 내게 큰 충격이자 도전이었다. 그 선배들 밑에서 나는 난공불락으로만 보이던 믿음의 요새들이 사실 도전해 볼 만한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높아 보이는 담벼락을 만난 적이 있는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처럼 소름끼치게 높이 막아선 담벼락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담을 뛰어 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광경을 목도하는 순간 ‘나도 저 담을 넘을 수 있겠구나!’하는 새 희망을 갖게 된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18:29)라고 외쳤던 다윗의 고백은 우리의 현재형 고백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책 중 하나인 유진 피터슨의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의 원제목이 『Leap over a wall』이었던 것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돌이켜볼 때 큰 집회나 대규모의 행사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모임 중에 내면적으로 더 큰 영적 각성과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내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다가와 주던 작은 모임, 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더욱 하나님을 알 때가 많았다. 나는 외형적으로는 큰 교회에 출석하고, 여러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자’와 만나는 순간보다 나를 흥분시키는 순간은 없다. 주님도 작은 자들을 사랑하셨다. 주님은 당신의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양이 아닌, 울타리 밖에서 헤매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품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우린 믿는 자의 모임 안에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일 수 있지만, 바깥에 나가면 도움이 필요한 ‘작은 자’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바쁘고 악한’ 종교인이 될 수도 있다. 누구를 위한 분주함이며 누구를 위한 사역일까? 우린 더 이상 교회 안의 친한 크리스천들끼리만 상대하고 교제하는 영적인 도색(桃色)을 그쳐야 한다.


    나는 ‘스티그마’ 성경공부 팀의 헌신적이었던 선배들을 통해 희생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접하게 된 한 명의 ‘작은 자’였다. 그 사랑을 만난 사람으로서 그 사랑을 더욱 전하고 싶다. 그 사랑이 더욱 커지게 하고 싶다.


    흔적들
    나의 슬픔이 그들의 기쁨이 되었고,
    나의 상실이 그들에게 유익이었으며,
    내가 죽어가는 것이 그들을 새 생명으로 인도했다.
    나는 아담이 그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모습을 아주 천천히 발견하기 시작했다.
     - 헨리 나우웬(Henri Nouwen), 『아담』


    아직도 그의 친구들은 모이면 자연스럽게 수현의 얘기를 합니다. 특히 어딜 가다가 길을 잃었을 때 ‘인간 내비게이션’이라고 불리던 수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수현아, 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거니?”


    아직 순례의 길이 남은 친구들은 천국까지 전화를 걸어 지금 자기가 가는 길이 옳은 방향인지 물어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후배 의사들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 기준은 ‘마지막까지 환자의 생명을 붙들고 싶은 보호자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가르쳤던 대학부 제자들은 대부분 교회 교사들이 되었습니다. 그가 했던 대로 여러 권의 성경을 참고하고, 양들을 일대일로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책과 간식으로 양들을 배불리 먹입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닮고 싶고 또 뛰어넘고 싶은 ‘본’이 되었습니다.


    그를 알던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뜨겁게 찬양을 부르다가, 혹은 이웃에게 책과 음반을 나누다가 그가 남긴 흔적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곤 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언제일지 모르는 자신의 마지막 때와 소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순결한 청년의 죽음은 갈등이 있던 교회와 그가 사랑했던 단체의 지체들을 화합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혹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기억 못하고 교만하게 혈기를 부리던 자기들의 탓은 아닌지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의 미니홈피는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어색한 미소를 띠고 ‘여러분 안녕!’하듯 그는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요즘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외롭고, 슬프고, 기쁜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곡해 놓은 음악을 듣고, 그가 쓴 글을 읽고, 무언의 위로를 받고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는 ‘부재 중’이지만, 그의 사역은 ‘진행 중’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의 인생은 미완성 교향곡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명반(masterpiece)으로 남기셨습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