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잘 되는 나

저   자
조엘 오스틴(역자 : 정성묵)
출판사
두란노서원
출판일
2007년 10월
서   재







  • 『긍정의 힘』을 통해 국내에 알려진 조엘 오스틴의 두 번째 책이 미국과 동시 출간된다. ‘웃는 목사’로 불리는 조엘 오스틴은 전작에 이어 건강한 자아상 회복을 한 독자들이 매일매일 더 나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가치나 그 방안은 새롭거나 비범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만큼 쉽고, 편안하게, 그리고 일상에서 쉽사리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지침들로 짜여져 있다. 그로 인해 이 책은 ‘좋은 삶’에 안주하지 않고 ‘가장 좋은 삶’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위한 탁월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잘 되는 나


    잘되는 마음
    나는 잘될 것이다
    -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라

    하나님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을 보시고 그에게 딱 맞는 재능을 주셨다. 아이디어와 지혜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그만의 영역을 주셨다. 그렇다면 불만족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극히 평범한 직장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사람들은 뭔가? 답은 뻔하다. 하나님이 마음에 심어주신 꿈과 열정을 좇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과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재능이라는 보물을 넣어두셨으나 그 보물을 캐내는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몫이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뜻에 시선을 고정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주신 꿈과 열정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게 어떤가? 꿈과 열정을 좇아야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잠재력을 최대한 사용했다는 뿌듯함으로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 열정이 샘솟는 일을 찾아라
    진짜 하나님이 처음부터 내게 주신 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별로 복잡하지 않다.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바로 우리의 소명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슨 일을 할 때 순수한 기쁨이 솟아나는가? 우리의 꿈과 열정이 가리키는 방향에 우리의 길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가? 아침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터로 기어가는가? 일이 지겹고 의미를 찾지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하는 일을 솔직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불행하고 불만족스러운 삶을 계속 이어가서는 안 된다. 소명이 있는 분야에서 일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무의미한 삶을 언제까지 이어가겠는가? 하기 싫은 일을 언제까지 참을 것인가? 당장 편한 삶을 뒤흔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에서 머물러서는 평생 그 모양으로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주신 나만의 길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 잘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일이다
    당신 안에는 우주의 창조주께서 심어놓은 소명 혹은 목적이 들어있다. 이 소명은 우리 본성의 일부다. 하나님은 독특한 본성과 개성을 넣어 각 동물을 창조하셨다. 이를테면 올빼미는 밤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야행성 동물이다. 그런데 올빼미가 밤에 자고 낮에 돌아다니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뜻을 거스르는 행동이다. 창조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자기 본성에서 벗어난 올빼미의 종말은 안 봐도 훤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 안에 독특한 특성을 불어넣으셨다. 우리가 소명을 찾아 잘하는 일을 하면 인생이 날마다 더 즐거워진다. 아무리 늦게까지 일해도 힘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일이 풀리지 않으면 곧바로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때로 우리는 어려운 일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더없이 값진 교훈과 실력을 얻는다. 하지만 인생 전체가 힘겨워져서는 곤란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주셨다. 특별한 재능과 기술을 주셨다. 이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곤란하다. 판매나 커뮤니케이션, 격려, 운동, 마케팅, 뭐든 자신에게 너무 쉽다는 이유로 무시하면 소명을 놓치고 만다. 잘하는 일이 곧 하나님이 주신 일이다. 잘하는 일, 그래서 즐거운 일이 곧 우리의 소명이다.


    * 열정이 있는 곳에 성공이 있다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는 내가 즐겨보는 클래식 영화다. 영화에서 에릭 리델은 재능이 뛰어난 육상 선수로, 올림픽 출전이 꿈이지만 오히려 중국 선교의 소명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재능은 달리기였다. 달릴 때마다 하나님의 미소가 눈에 선했다. 한 장면에서 그가 유명한 대사를 읊는다. "달릴 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느껴져." 다시 말하면 이렇다. "처음부터 나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 좇아 재능을 활용할 때 나를 향해 웃으시는 하나님이 느껴져!"


    아직 소명을 향해 발을 내딛지 않았는가? 여전히 열정이 없는 일을 붙들고 있는가? 이제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때다. 물론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성급하게 그만두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최소한 인생을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 열정을 좇고 있는가? 천부적으로 잘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뭔가 변화를 꾀해보는 건 어떤가? 인생은 짧다. 열정이 가는 길을 찾아 자신의 전부를 쏟아 붓기에도 모자라다. 열정을 향해 전진하면 하나님이 한번에 한 걸음씩 인도하시리라.



    잘되는 습관
    나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 남의 비판에 화내지 마라

    "그 여자가 나에 관해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정말 몰랐어!" 테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씩씩거렸다.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일하고 싶지는 않아.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완전히 다른 사람하고 어떻게 함께 일을 해?"


    그러자 친구 보니가 테라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특별히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닐 거야. 그 여자는 원래 그래. 아무나 비판하지. 사실은 자기 자신이 미워서 그러는 거야."


    누구나 비판을 받을 때가 있다. 때로는 마땅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부당한 비판으로 마음이 상하고 관계가 경직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직장이나 사교 모임에서 누군가 나쁜 소문을 퍼뜨리거나 대놓고 우리를 비난할 수 있다. 우리의 작은 실수를 부풀려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게 이런 비판은 우리를 도우려는 의도가 아니다. 우리를 깔아뭉개려는 시도일 뿐이다.


    물론 건설적인 비판은 유익하다. 우리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 지혜로운 비판을 해주면 겸손히 받아들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방을 세워주려는 비판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정반대다. 복의 통로가 되기보다는 상대방의 가슴을 도려내려는 비판이 태반이다. 부당한 비판만큼 큰 상처를 주는 일도 없다. 비판받는 사람보다는 비판하는 사람 본인에게 문제가 있을 때 이런 비판이 나온다.


    내 인생 최대의 교훈 가운데 하나는 남들의 성공을 축하해주라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던 승진이 다른 동료들에게 돌아가면 인간인 이상 질투심이 생길 수 있다. "왜 내가 승진하지 못했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는데, 억울해."


    하지만 우리가 올바른 태도를 잃지 않고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주면 하나님이 정한 때에 우리에게 더 좋은 문을 열어주신다. 나는 남들과 함께 기뻐해주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없다는 진리를 발견했다. 그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 우리만 모른 체하시겠는가? 때가 되면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신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좋다
    부정적인 말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 때문에 인생을 완전히 망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산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 자신도 행복해진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좋아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은 뜬구름을 잡으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출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여지없이 흠을 잡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수천 번을 잘해도 언제나 단 한번의 잘못에 대한 지적만 돌아올 뿐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판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전혀 무익하다. 세상을 좋게 바꾸려다가 비난을 받았다면 오히려 축하할 일이다. 예수님을 닮은 삶이니 말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선을 행하셨으나 끊임없이 비판을 받으셨다. 심지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한 일로도 손가락질을 받으셨다. 세리들과 저녁식사를 나눈 후에는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으셨다. 돌팔매질을 당하기 직전에 놓인 여인을 구하셨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틀에 자신을 맞추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으셨다. 일일이 해명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한길로 가며 자신의 소명을 이루셨을 뿐이다.


    비판자들은 우리가 갈 길을 방해할 수 없다. 최종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다. 안 된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사람들을 만족시키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저 떨쳐내고 나서 계속 전진하면 그만이다.


    *남들의 비웃음을 웃어넘기라
    나는 자주 웃는다. 사실 늘 싱글벙글이다. 웃음을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줄곧 그랬다. 일곱 살 때 자동차 사고로 머리 부위가 많이 찢어진 적이 있었다. 응급실로 찾아온 친구들은 내가 울며불며 난리를 치고 있을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친구들이 하는 말, "야, 너 그렇게 다치고도 여전히 입이 귀에 걸려 있더라."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만드신 걸 어쩌겠는가. 때로 사람들은 내가 너무 많이 웃는다며 놀려댄다. 얼굴을 찡그리는 것보다야 활짝 웃는게 낫지 않은가. 그런데도 간혹 "왜 저렇게 많이 웃어"라는 말이 들려온다. 내 귀에는 그들이 뒤에 붙이려다 만 말이 똑똑히 들린다. "얼빠진 사람처럼"


    얼마 전 나를 풍자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봤다. 나를 닮은 사람이 나와 말하다가 웃을 때마다 치약 광고처럼 앞니에서 ??핑??하며 별이 튀어나왔다.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이 패러디를 보고 나만큼 많이 웃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안 웃을 줄 알아? 싫어하면 더 웃어줄 거야.?? 누가 아는가? 유명한 치약 회사에서 우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후원할지!


    우리는 남들의 비웃음을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부당한 비판이 들려와도 너무 억울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만 바라보라.



    잘되는 태도
    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 상황에 흔들리지 마라

    그 어느 때보다도 시련의 순간에 강해진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는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 시련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복 받을 만한 그릇으로 빚으신다. 그 시험을 잘 통과하기 위해서는 늘 평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비결이다. 평정심을 유지하면 어떤 힘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마음을 편히 가지면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신다.


    때로 우리는 어리석은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오늘 당장 이 고통에서 저를 빼내주세요. 하루도 더 견딜 수 없습니다. 일주일만 더 이런 식으로 지속되면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기도를 드려야 한다. "아버지, 최선의 태도로 이 시련을 통과하도록 제게 힘을 주세요. 기쁨을 잃지 않고 늘 평안 가운데 거하도록 도와주세요." 먼저 우리가 바뀌어야 상황이 바뀐다.


    우리 안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힘이 요동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떤 풍랑도 헤쳐나갈 수 있다.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우리는 패자가 아니라 승자다. 물론 누구나 하나님이 당장 구해주시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은 좀처럼 그렇게 역사하시는 법이 없다.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 더는 걱정하지 마라. 근심걱정으로 말과 생각을 오염시키지 말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참 믿음은 흔들림이 없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목적이 스며 있다. 당장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상황이 아니면 결코 허락하지 않겠노라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믿는다면 마음의 짐을 떨어내야 한다. 기도가 우리의 뜻대로 응답하지 않아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더 좋은 계획을 세워놓고 계신다. 하나님은 최선의 길을 아신다.


    마음을 고요히 유지하면 인생이 훨씬 편해진다. 평안한 사람은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 승진에서 밀려났다고 한달이 넘도록 찌푸린 얼굴로 돌아다니는 법이 없다. 억울한 일을 겪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하나님이 다스리시며 계획대로 이루어가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는 한,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신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가? 좋은 소식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싸우고 있는 그 무엇보다도 크고 강하시다. 하나님은 같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는 분이다. 이런 분이 우리 편이신데 왜 혼자 싸우려 하는가? 우리에겐 어떤 장애물도 전혀 걱정거리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는 그저 그분을 믿고 계속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당장은 칠흑같이 어두워 보여도 성경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믿음이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믿음이 부쩍 올랐다가 상황이 바뀌면 다시 곤두박질친다. 과연 이런 믿음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어떤 시련도 우리에게 유익하게 사용하신다.


    *언제라도 평정심을 잃지 마라
    우리는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처럼 굴 때가 많다. 결혼하거나 사업이 번창하기 전까지는 웃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안 될 말이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우리가 고집을 꺾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다.


    나는 교회사 중에서도 1800년대를 살았던 부유한 사업가 호레시오 스패포드Horetio G. Spafford의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스패포드 이야기는 요즘 세상에서 열광하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비참한 비극의 주인공에 가깝다. 어느 날 아내와 네 딸을 태우고 대서양을 횡단하던 배가 다른 배와 충돌하는 바람에 2백 명이 넘게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바다는 그의 네 딸을 모두 삼켜버렸고, 겨우 살아남은 아내는 전보로 남편에게 이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스패포드는 비통에 잠긴 아내 곁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배에 몸을 싣고 대서양을 건너갔다. 짙은 바다 한가운데 어느 지점에 이르자 선장이 무거운 입을 떼며 말했다. 지금 그의 딸들이 익사한 곳을 지나고 있다고. 굽이치는 파도를 엄숙하게 응시하던 그는 그날 밤 지금까지도 널리 애송되는 찬송가의 가사를 써내려갔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어떤 일이 닥쳐도 우리는 스패포드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삶이 나를 험한 파도 속으로 내던져도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괜찮다. 하나님의 완벽한 때에 이루어질 테니 조급해하지 않으리라.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가지지 않은 것, 할 수 없는 것, 인생의 풀리지 않는 면만 바라보며 살아왔는가? 언제 어떻게 해주셔야 한다며 5분마다 하나님을 닦달해 왔는가? 원하는 그대로 해주시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겠다며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단하라. 시편 55편 22절은 이렇게 말한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러면 그 분이 너를 붙드시고." 눈앞이 아무리 암울해 보여도 짐을 벗어버리면 더 높이 올라 인생의 찬란한 해를 보게 되리라.



    잘되는 실천
    나는 믿음으로 산다
    - 믿음을 기대로 바꾸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꿈과 소망을 믿어주셨다. 우리는 저마다 나름의 소원을 품고 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관계가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결혼할 날을 기다리는가? 아니면 승진? 아니면 병이 낫기를?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런데 기다림에는 올바른 기다림과 그릇된 기다림이 있다. 상황이 자기 시간표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낙심하고 절망하는가? 마음에 약속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냥 포기하고 현재에 만족하려 하는가? 이것은 올바른 기다림이 아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 참고 기다리십시오. 농부는 땅의 열매를 참고 기다리며." 그렇다. 농부는 열매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상황이 바뀌지 않을 거야. 기도하고 믿기도 해봤어. 하지만 이 혼란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안된다. 기대감을 품어야 한다. 기대감을 품으라는 말은 희망과 긍정으로 살라는 뜻이다.


    가만히 앉아서 넋놓고 기다리는 것은 올바른 기다림이 아니다. 복이 나타나는지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려야 한다. 믿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복 받을 채비를 해야 한다.


    *긍정과 희망의 태도로 성공을 준비하라
    우리는 긍정과 희망의 태도로 성공을 준비해야 한다. 믿음과 기대는 서로 다르다. 기대는 마치 임신 상태와 같다. 믿음에서 기대로 나아가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아기를 위해 방을 꾸미고 옷을 사느라 바쁘다. 그리고 친구와 친척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돌려 기쁜 소식을 알린다.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까지 삶의 모든 면이 태어날 아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마음에 꿈을 주시면 임신한 엄마처럼 행동해야 한다. 난생 처음으로 가정의 회복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되었는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먼저 믿음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 믿음에서 기대로 나아가야 한다.


    부정적인 말은 금물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을 믿고 행동해야 한다. 긍정과 소망의 행동으로 믿음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신다. 믿음에서 기대, 곧 행동을 나아가야 한다.


    *변화가 더디더라도 끝까지 비전을 따라가라
    많은 사람들이 변화와 행운을 기다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부정적인 태도에 빠져든다. "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지?" "언제나 결혼할 수 있으려나?" "이 문제에서 벗어날 날이 올까?"


    조급하게 굴지말고 상황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면 그 분이 알아서 해주신다.


    지금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고 있는가? 간절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가? 아침마다 일어나 곧 얻게 될 해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씨앗을 뿌려라. 그러고 나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꿈이 정말 이루어질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에서 기대로 나아가면 완벽한 때에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