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하나님을 누가 만들었을까?

Who Made God

저   자
래비 재커라어스 외(역자 : 박세혁)
출판사
사랑플러스
출판일
2005년 11월
서   재







  • 기독교를 향한 100가지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빈틈없는 대답! 신앙인이라면, 머릿속을 한번쯤 스쳐갔을 질문, 시시때때로 튀어나와 신앙전체를 뒤흔드는 질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누군가가 냉소적인 목소리로 던졌던 질문, 그러나, 여전히 분명하게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책은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거침없는 답이다. 비단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난해한 질문에 대한 기독교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누가 만들었을까?


    1부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질문들


    예수의 삶에 관한 기록들은 믿을 만한 것인가?
    제닝스는 특집 프로그램에서 예수의 생애, 가르침, 기적, 죽음과 부활 등의 묘사에 관한 자유주의적 교수들의 회의적인 결론을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학자들은 예전부터 자신들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해 왔습니다. 신약성경 속에는 예수의 삶에 대한 네 가지의 서로 다른, 때로는 상호 모순적이기도 한 서술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각 복음서의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믿을 만한 증거도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그 사건들에 대한 직접적인 목격자가 아니었다는 점에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서는 예수가 죽은 지 40년에서 100년 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라는 분명한 가르침을 훼손하기 위해서 복음서의 신빙성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 이야기의 정확성과 신빙성을 지지하는 탁월한 학자들도 있다. 튀빙엔(Tubingen)의 개신교신학부 명예 교수인 페터 슈툴마허(Peter Stuhlmacher)는 「타임 Time」에 실린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기사에서 “그 당시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지금까지의 설명들 중 최고의 가설은 바로 성경 텍스트 그 자체이다” 라고 말했다.


    덴버 대학교(Denver Seminary)의 신약한 교수이며 『The Historical Reliability of the Gospels 복음서의 역사적 이해』의 저자인 크레이그 블롬버그(Graig Blomberg)는, 엄밀히 말해서 복음서의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세리 마태가 신약성경 첫 번째 복음서의 저자이며, 사도 베드로의 제자였던 요한 마가가 마가복음 기록했고, 바울이 “사랑하는 의사”라고 불렀던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는 것이 초대 교회의 일치된 증언이었음을 강조했다.


    네 번째 복음서의 저자가 사도 요한인지 또 다른 요한인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블롬버그는, 비록 요한과 밀접하게 연관된 어떤 사람이 “마지막 구절들을 정리하면서 전체 문서의 양식적 통일성을 꾀하기 위해서” 편집자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복음서의 대부분은 이 사도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확신 있게 말했다. 이어서 “요한복음도 다른 세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직접적인 증언에 기초한 것이다” 라고 역설했다.


    주후 125년에 파피아스(Papias)는 마가복음과 마테복음의 저지를 확인해 주었다. 또한 주후 180년에 이레나이우스도 다음과 같이 확증하였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있을 때, 마태는 히브리인들을 위해 자신의 모국어로 된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그들이 떠난 뒤 베드로의 제자이자 통역자였던 마가는 베드로가 한 설교의 핵심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바울의 제자였던 누가는 자신의 스승이 전한 복음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주의 가슴에 기대었던 주의 제자 요한은 아시아의 에베소에 있는 동안 요한복음을 기록하였다.


    블롬버그는 복음서의 저자에 관한 의혹이 표현된 1세기의 자료적 증거가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사실 복음서 저자가 조작된 것이었다면 열두 제자에 속하지도 않는 마가나 누가의 이름이나 세리라는 비호감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던 마태의 이름을 사용하기보다는, 각 복음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베드로나 야고보와 같은 영향력 있고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다음은 복음서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다.


    ① 상호 보완적인 복음서들 : 각 복음서들이 상호 모순적이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다양한 책에서 이에 관해 논의해 왔다. 하지만 “기독교학문연구소(Christian Research Institutr)”의 행크 헤인그래프(Hank Haneg raaff)는 “사실 각 복음서들은 전혀 모순적이지 않으며 서로를 분명하게 보충해 준다” 라고 말했다. “몇 세기에 걸쳐 수많은 성서학자들과 주석가들이 이를 증명해 주었다. 만약 모든 복음서 기자들이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했다면, 그것은 조작되었다고 의심 받아 마땅할 것이다.”


    남복음주의신학교(Southern Evngelical Seminary) 변증학자 노먼 가이슬러는 성경에서 모순이라고 여겨지는 약 8백 가지의 사례들을 수집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성경을 비판하는 이들은 성경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때 항상 성경 해석의 17가지 원리 중 하나를 위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예를 들어보자면, 각 복음서가 한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다른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고 해서 이 복음서들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태는 예수의 무덤 속에 한 천사가 있었다고 적고 있지만, 요한은 두 천사만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가이슬러는 “마태가 오직 한 천사만 있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요한은 두 천사가 있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더 자세한 내용을 전해 주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법적 증거에 관한 19세기 최고의 전문가였던 하버드법학대학원(Harvard Law School)의 사이먼 그린리프(Simon Greenleaf)는 네 복음서 사이의 일관성에 대해 연구한 후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들이 사전에 모의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불일치점들이 있으며, 동시에 그들이 모두 동일한 사건의 독립적인 서술자였음을 보여 주기에 충분한 핵심적인 일치가 존재한다.”


    ② 고고학적 증거 : 고고학 역시 신약성경의 신빙성을 확증해 주었다. 신약성경의 부수적인 세부 사항들에 대해서 확인할 때마다 우리는 그것들이 상당히 정확한 것임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5장 1~15절은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를 치유하시는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는데, 요한은 거기에 다섯 행각이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고고학자 존맥레이(John McRay)는, 지금가지 이런 장소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 점을 한 예로서 인용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 우물이 발굴되었으며, 과학자들은 요한이 묘사한 것과 똑같은 다섯 행각을 발견했다.


    신약성경의 4분의 1을 기록한 누가는 지극히 사소한 세부사항가지도 주도면밀하고 누가가 언급한 32개 나라와 54개 도시들, 9개 섬들을 주의 깊게 조사해 보았지만 단 하나의 오류도 발견하지 못했다. 맥레이는 “자유주의적 학자들과 보수적 학자들 모두 누가가 역사기술자로서 매우 정확했다는 점에는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점들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만약 신약성경 기자들이 사소하고 부수적인 세부 사항들에 대해서도 극도도 정확성을 기울이려고 했다면, 예수의 기적과 가르침, 죽음과 부활과 같은 정말로 중요한 사건들을 보도할 때도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겠는가?” 오스트레일리아의 고고학자 클리퍼 윌슨(Clifford Wilson)은 “진실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이제 신약성경이 대단히 정확한 자료를 담고 있는 책임을 인정해야만 한다”라고 결론지었다.


    ③ 복음서의 기록 시기 : 비판자들이 복음서의 신빙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또 다른 방식은, 복음서가 그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전설이나 신화, 희망 사항 같은 것들이 그 속에 숨어 들어갔으며 원래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왜곡시켰다는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것을 반대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복음서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께서 이 사건에 대해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 기록된 대로 예언하셨을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피터 제닝스 역시도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보다 40년에서 100년 늦게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음서가 그보다 훨씬 일찍, 그러니까 예수께서 돌아가신 때(아마도 주후 33년 정도)에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결론지을 만한 확실한 근거들이 있다.


    크레이그 블롬버그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자유주의 기준에 의한 복음서 기술 연대(마가복음은 주후 70년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80년대, 요한복음은 90년대)를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예수의 삶을 직접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있을 때이며 그들 중에는 예수에 관한 거짓 가르침이 퍼질 때 이를 바로잡아 주었을 적대적인 증언자들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블롬버그와 많은 다른 신약학자들은 복음서의 기술 연대가 그보다 더 앞선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믿고 있다. 탈봇신학교(Talbot School of Theology) 교수인 저명한 변증학자 모어랜드 (J.P Moreland)는 사도행전이 주후 62년과 64년 사이에 기록되었음을 확증시켜 주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는 그보다 더 늦게 쓰였다면 분명히 언급했을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런 중요한 사건에는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함락, 60년대 중엽에 일어난 네로의 박해, 야고보(61년)와 바울(64년), 베드로(65년)의 순교, 66년에 시작된 유대 로마 전쟁 등이 있다. 또한 사도행전 속의 많은 표현들은 매우 초기의 것들이며 원초적이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의 함락 이전에 매우 중요시되었던 몇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쓴 2부작 중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쓴 누가복음은 60년대 초 이전에, 즉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30년이 되기 전에 기록된 것임에 틀림없다. 누가는 마가복음으로부터 많은 자료를 끌어왔기 때문에, 마가복음은 누가복음보다 먼저 쓰인 것일 수밖에 없다. 모어랜드는 “공관복음(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은, 그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불과 12년에서 20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에 기록된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는 서기 49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도 바울의 편지도 들어 있다. 바울의 고(高) 기독론(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의 주시라는 견해)은 그의 여러 글을 통해서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니며 “그의 선교 여행이 시작되기 전인 48년 무렵에 이미 거의 완성되었음에 틀림없다.” 모어랜드는 이렇게 덧붙였다. 바울 서신에는 바울 자신의 저자보다 앞선 기록 연대를 가지고 있는 신조와 송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며 기적을 베푸시는 신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다."


    모어랜드는 "요약하자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며 온전한 신성을 가지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라는 생각은 기독교가 탄생한 이후 첫 10년 동안에 이미 나타났다. 그런 생각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몇 십 년이 지나서 생겨난 전설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자기는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만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가 옳은 것이며 고린도전서 16장에 등장하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매우 초기의 신조와 짝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하고 있다. 모어랜드는 이것이 "부활하신 하느님이신 예수에 대한 믿음이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몇 년 이내에 생겨난 것이었음을 증명해준다"고 말했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교의 저명한 고전 그리스-로마 역사가인 에이드리언 셔윈와이트(A.N Sherwin-White)의 연구에 의하면, 고대 세계에서 전설이 생겨나서 역사적 사실의 견고한 핵심을 지워 버렸다고 하기에는 두 세대의 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예수의 경우 우리는 그분의 신성과 부활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④ 사본의 전승 : 신약성경의 풍부한 사본들은 그 문서들이 오랜 역사를 거쳐서 우리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고고학자들은 5천 개 이상의 고대 그리스의 신약성경 사본을 발견했으며, 그 중에는 작성 연대가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도 있다. 라틴어 불가타 성경의 사본과 그 밖의 다른 사본들까지 합하면, 현존하는 사본의 수는 2만 4천 개에 이른다. 고대의 문학 작품 중에서 신약성경 다음으로 많은 수의 사본이 전해지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인데, 이 작품은 원본이 쓰인 후 1천 년 이내에 기록된 사본이 650개가 채 안 된다.


    전(前)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과장이며 『The Palaeography of Greek Papyri 그리스어 파피루스 사본의 고문서학』의 저자인 프레드릭 케년(Frederic Kenyon)은, “원본이 기록된 연대와 가장 이른 시기의 사본이 기록된 연대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신약성경만큼 짧은 책은 없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성경이 처음 기록된 내용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졌는가를 의심할 수 있는 마지막 근거조차 이미 제거되었다.”


    신앙에 회의적이었던 2년 동안 기독교에 관해 조사하면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약성경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를 분석하는 데 썼다. 나는 복음서가 정말 신뢰할 만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법정에서 사용하는 여덟 가지 기준으로 이것을 분석해 보았다. 그 여덟 가지의 기준이란 의도성에 관한 검토, 편견에 관한 검토, 은닉에 관한 검토, 확증 검토한 결과, 나는 복음서의 본질적인 신빙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성경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 주장한다. 바울은 구약성경 전체에 대해 언급하면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 3:16)라고 말했다. 신약성경도 이에 포함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서 복음서를 “성경”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15, 16절에서 바울의 서신들을 “성경”라고 칭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 그리고 복음서와 서신서 모두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다. 예수께서도 마귀에게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 4:4)라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누가 성경을 기록했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감동시키신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다. 바울은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이 성령에 ‘이끌린’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12, 개역). 또한 다윗은 “주님의 영이 나를 통하며 말씀하시니, 그의 말씀이 나의 혀에 담겼다”(삼하 23:2)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하나님이 성경의 궁극적인 근원인 되시지만, 예언자라 불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예언가들의 역할은 매우 독특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변자들로서 그분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다(참고, 잠 30:6); 계 22:18,19). 하나님은 발람에게 “너는 내가 말해 주는 것만 말하여라”(민 22:35)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발람은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저의 입에 넣어 주시는 말씀, 그것이 무엇이든지, 저는 그것만을 말하겠습니다”(민 22:38)라고 대답했다. 아모스의 말처럼 말이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암 3:8).


    구약성경은 전부 예언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구약의 일부 기자들은 ‘직무로서의 예언자’들이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다(신 18:15). 그는 “모세의 책”(막 12:26) 혹은 “모세”(눅 24:27)라고 불리는 성경의 첫 다섯 책들을 기록했다. 모세 이후의 모든 책들이 처음에는 “예언자들”(마 5:17;눅 24:27)라고 불렸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 전체를 “예언자의 글”이라 칭하고 있다(참고, 벧후 1:20,21;히 1:1), 사무엘의 때부터 “예언자의 무리”가 등장하는데(삼상 10:10,12), 엘리야(왕상 18:36;말 4:5)나 엘리사(왕하 9:1)와 같은 이들이 예언자로 알려져 있다.


    그 외 다른 구약성경 기자들은 ‘은사로서의 예언자’들이었다. 즉, 그들은 예언자의 무리 속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그들에게 사람들을 구원할 메시지를 주셨다(암 7:14,15). 다니엘은 직업적 신분으로서는 왕족이었지만(단 1:3~6), 부르심과 은사에 의해 예언자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를 “예언자 다니엘”(마 24:15)이라 부르셨다. 다윗은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다. 다윗은 “주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시니, 그의 말씀이 나의 혀에 담겼다”(삼하 23:2)라고 기록했다. 잠언과 전도서, 아가서를 기록한 솔로몬도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받았다.(왕상 3:5). 그들의 글이 “예언자들”(마 5:17;눅 24:27)로 알려진 부분에 속하고, 구약성경 전체가 “예언자의 글”(히 1:1,2;벧후 1:20,21)이라고 알려져 있기 대문에, 그 밖의 구약성경 저자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또한 모든 신약성경 기자들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며, 교회는 이 기초 위에 세워졌다(엡 2:20). 그들도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약성경 중 절반을 기록한 바울은 구약성경과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여겨졌다(벧후 3:15,16). 마태와 요한은 예수께서 “모든 진리”로 이끄시며, 그분 자신이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다(요 16:13, 14:26).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도들 중 하나였던 베드로는 제자로서의 입장과 예수를 직접 목적한 증인으로서의 입장에 기초해서 두 권의 책을 기록했다(참고, 벧전 1:1;벧후 1:1,16). 하나님은 예수의 종을 통해서도 말씀하셨기 때문에(참고, 약 1:1), 신약성경의 다른 기자들도 구약성경을 기록한 은사로서의 예언자에 해당한다.



    2부 다른 종교들에 관한 질문들


    초능력 자들도 성경 속의 예언과 비슷한 예언을 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정확하지 않은 점쟁이들과 성경의 정확한 예언자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실 거짓 예언자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 중 하나는 그들이 실현되지 않은 예언을 한 적이 있는가 이다(신 18:22). 구약 시대에 성취되지 않은 예언을 한 사람은 돌로 쳐죽임을 당했다(신 18:20). 이런 처벌은 자신의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은 예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성경의 예언자들은 수백 개의 예언들 중에서 단 하나의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대표적인 초능력 자들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그들의 예언 중 92퍼센트는 시간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예를 들어, 진 딕슨의 예언은 대사수가 시간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그녀의 전기를 쓴 루스 몽고메리(Ruth Montgomery) 조차도 딕슨이 잘못된 예언을 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녀는 1958년 10월에 중공이 진먼 섬(金門島)과 마쭈 섬(馬祖島)을 침공하여 세계를 전쟁에 빠뜨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녀는 노동운동 지도자 월터 류터(Walter Reuther)가 1964년 대통령 선거에 적극적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68년 10월 19일에 딕슨은 재클린 케네디가 결혼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장담했지만, 그 다음날 케네디 부인은 오나시스와 결혼했다. 또한 그녀는 1954년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며, 1966년에는 베트남전쟁이 종식되고, 1970년에는 카스트로가 쿠바에서 축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다시피, 이 모든 것은 빗나갔다.


    딕슨의 것을 포함해서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이루어진 초능력 자들의 예언을 관찰했던 한 연구에 따르면, 72개의 예언들 중에서 단6개의 예언만이 이루어졌다. 그나마 그 중에서 두개는 모호한 것이었고, 다른 두 가지는 전혀 놀라운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미국과 러시아가 최강대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며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이런 예언들에 대한 8퍼센트 정도의 정확도는 단순한 우연이나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단 하나의 종교만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편협하지 않은가?
    기독교가 비기독교적인 종교적 경전에 진리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경이 참이고 모순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할 뿐이다. 기독교가 아닌 종교들 속에도 좋은 것과 참인 것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공자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의 안연편-역주)”라고 말했다. 이것을 소극적 황금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가르침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적극적 황금률, 즉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마7:12)라는 말씀과 모순되지 않는다. 또한 불교나 대부분의 다른 종교에서도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성경만이 진리를 담고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성경은 진리이며, 모순되는 두 가르침이 둘 다 참일 수는 없기 때문에 성경과 모순되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코란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이 예언자 모하메트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수라 39:1,2). 수니파와 위대한 권위자 아부 하니파(Abu Hanifa)는 코란에 대한 정통적인 신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코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말씀이자 계시이다. 코란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인 것은 아니지만,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기록된 한 권의 책이며 인간의 언어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실제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몇 가지 핵심적인 사항만 검토해 보자.


    첫째, 마호메트는 처음에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해 준 천사가 악마였다고 믿었다. 이슬람교의 전기작가 무함마드 후세인 하이칼(M. H Haykal)은 자신이 악마에 사로잡혔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마호메트를 생생하게 묘사한 바 있다. “공포에 휩싸여 마호메트는 일어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무엇을 본 것일까?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정말 악마에게 사로잡힌 것일까?’ 마호메트는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두려움에 떨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그 동굴 안에 귀신이 나타날까 두려웠다.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채로 도망하게 되지 않을까 무서웠다.”


    둘째, 코란은 본질적인 가르침에 있어서 성경과 모순된다, 우리는 이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두 가지의 모순되는 진리가 모두 참일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코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수라 4:157,158).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반복적으로 증언하는 핵심 진리 중 하나이다(참고, 고전 15:1~19)


    셋째, 마호메트는 자기 이전의 예언자들이 기적에 의해 확증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스스로 예언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어떤 기적을 행하기를 거부했다(수라3:181~184).


    넷째, 성경과 달리 코란에는 실현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예언이 전혀 없다. 이에 대한 가장 적합한 사례는 로마가 스스로의 패배에 대해 복수할 것에 관한 예언이다(수라 30:2~4). 그러나 이것은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으며 인간적으로 예측 가능한 것이다.


    다섯째, 코란에는 모순적인 진술과 과학적인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과학적인 오류에 대한 한 가지 예로는 아담이 ‘핏덩어리’(수라 23:14)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코란은 하나님의 말씀은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수라 10:64)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모순이 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고 명령을) 바꿀 수 없다”(수라 6:34). 그러나 코란은 나중의 계시가 이전의 계시를 무효화한다는 폐기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수라 2장 106절은 “우리는 계시를 폐기하거나 잊혀지게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의 계시를 또 다른 계시로 대체했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마호메트의 동시대인들이 그를 ‘날조자’라 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여섯째, 코란은 결혼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열등한 견해(즉, 일부다처제)를 가르치고 있다. 마호메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네 명의 아내를 취하는 것을 허락했지만(수라 4:3), 하나님이 자신은 더 많은 아내를 취하도록 예외로 해 주셨다고 말했다(수라 33:50). 그리고는 15명이나 되는 아내를 취했다. 여성에 대한 대우에 관해서 코란은, 만약 남자들이 여자의 부정(不貞)에 대해 의심이 생긴다면 ‘여자를 매질하는’ 것을 허용했다(수라 4:34).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현대 교회의 태도는 어떠한가?
    언젠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시민불복종운동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 우리는 이 몸을 얼마나 많이 더럽혀 왔습니까?” 흑인 공동체에서, 특히 흑인 민권 투쟁에서 킹 목사와 같은 기독교 성직자들은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역사적으로 흑인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인 동시에 사회적 변화를 일구어 내는 기관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또한 흑인 목회자들은 흑인 공동체를 합리적으로 대변하는 동시에 흑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흑인 교회는 흑인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현재의 흑인인권운동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격하게 감소했기 때문에, 일부 활동가들은 덜 위협적이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임에서 흑인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인 입장을 떠나라”는 경고를 받는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말고 종파를 벗어난 기도를 하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이러한 제한은 바하이교(Bahai;이란인 바하 알라가 창시한 이슬람교 시아파 계열에 속하는 종교-역주)나 이슬람교의 비주류파들과 같은 다른 종교 집단에게도 가해진다.


    흑인들의 종교(이슬람교)의 사회적 역동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흑인들의 투쟁에서 기독교가 행한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미국 기독교계의 가장 큰 불행은 백인 설교자들이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을 가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크렌쇼 크리스천 센터Crenshaw Christian Center)의 담임목회자인 프레드 프라이스(Fred Price)목사는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회의 문제는 성경이 아니다. 문제는 성경을 해석했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을 잘못 해석했던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성경을 가져다가 그 메시지를 조작하여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한 인종을 노예로 삼고 학대하는 것을 정당화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버려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래부터 성경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른바 성경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