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마부르크 대학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하이데거와 아렌트는 지적 교류를 넘어선 사랑을 시작한다.

유부남이었던 하이데거와 독립적 여성이었던 아렌트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를 넘어 서로의 철학과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협력으로 갈라졌던 두 사람은 전쟁 후 재회하여 철학적 동반자로서 독특한 유대를 이어갔다.

하이데거의 사상은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스며들었고, 아렌트의 지적 독립은 하이데거에게 새로운 통찰을 안겨주었다.

편지와 서신에 담긴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는 사랑과 철학,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드러낸다.

소설가이자 교수.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의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를 피해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레지스탕스를 위해 일했고, 전쟁 이후 폴란드 정부의 전체주의를 비판하여 감시대상자가 되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유치원』(Kindergarten, 1968), 『퀵 샌드』(Quicksand, 1989)를 발간했다.

1966년 바르샤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대학 래드클리프 연구소를 거쳐 MIT 교수로 재직했다. 전기 『로사 룩셈부르크의 생애』(Rosa Luxemburg, A Life, 1987)를 출간했고, 한나 아렌트의 전기를 집필하던 중인 2005년에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 소설집 『한국어 수업』, 『우리들, 킴』, 철학소설 『한나 아렌트, 난민이 되다』, 산문집 『황은덕 소설가의 공감 공부』, 역서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스노우 헌터스』 등을 펴냈다.

감사의 말

서문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주(註)

역자후기

1924년, 마부르크 대학의 강의실에서 마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는 처음 만났다.

서른다섯 살의 하이데거는 이미 철학계에서 명성을 쌓고 있었고, 열여덟 살의 아렌트는 그의 강의에서 강렬한 지적 자극을 받았다.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크고 검은 눈에 매료되어 그녀에게 자신의 연구실로 오도록 초청했다. 이후 두 사람은 철학과 사랑을 넘나드는 긴밀한 관계를 시작했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첫사랑에 끝까지 충실했다.”

이 문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하이데거는 이미 유부남이었지만, 이는 아렌트와의 관계에서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고독과 열정을 이해하며 그의 곁에서 깊은 영향을 주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약 1년 후, 하이데거는 그녀에게 박사 학위 논문을 마부르크 대학에서 진행할 수 없다고 통보하며 대학을 떠나도록 종용했다.

이는 두 사람의 관계에 큰 갈등을 불러일으켰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

하이데거와의 연애가 끝난 후, 아렌트는 다른 연인들과 새로운 삶을 일구어갔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대한 그녀의 내적 결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이데거는 여전히 그녀에게 권위자로 남아 있었고, 둘 사이의 서신 왕래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히틀러 집권 시기,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력하면서 철학계와 정치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전쟁 이후에도 하이데거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그녀의 고백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철학적 동반자로서의 깊은 유대감을 반영한다.

그녀는 독립적이고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여성이었지만, 하이데거와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역할 속에서의 갈등을 겪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면, 만약 사랑의 대가로 내가 독립성을 포기해야 한다면”이라는 아렌트의 말은 그녀가 하이데거와의 관계에서 겪었던 내적 갈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이데거와의 사랑은 그녀의 삶과 철학적 사고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그녀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녀가 철학적 독립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전쟁 이후, 아렌트는 하이데거와 재회하며 그의 저서를 미국에서 번역하고 출판하는 공적인 활동을 도왔다.

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연애의 범주를 넘어선 독특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해 전체주의를 비판했는데, 이는 하이데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아렌트가 사망할 때까지 반세기 넘게 이어졌다.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관계는 단순히 사랑이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정의될 수 없다.

하이데거는 아렌트에게 있어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철학적 동반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아렌트 역시 하이데거의 철학과 삶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강조되는 존재, 시와 문학,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들은 아렌트의 사상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마찬가지로, 아렌트의 정치철학은 하이데거의 사유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독창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의 관계는 사랑과 철학이 어떻게 얽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특히, 나치 협력으로 인해 비난받은 하이데거와 반유대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한 아렌트의 대조적인 행보는 두 사람의 관계에 복잡성을 더한다.

이들의 편지는 단순한 인간적 감정을 넘어선, 철학적 유대와 갈등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의 관계는 사랑과 철학, 스승과 제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결속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상과 삶에 깊이 영향을 주었으며, 전쟁과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긴밀한 유대감을 유지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적 관계의 복잡성과 철학적 교류의 깊이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의 관계를 통해 철학적 동반자와 인간적 사랑의 경계를 탐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며, 독자들에게 철학적 깊이와 인간적 감동을 선사한다.

이들의 편지와 사유를 통해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과 인간적 관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