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이게 나라다

저   자
김세준
출판사
매직하우스
출판일
2017년 02월
서   재







  • 대한민국의 진보를 막고 있는 것이 적폐이다. 소수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다수가 누리는 보편적 권리가 되는 것을 기필코 막고 있는 것이 적폐이다. 한국에서 적폐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원인은 안보이다. 북한 문제만 제기하면 대한민국은 집단적으로 이성을 잃고 만다. 천안함 침몰 사건, 개성공단 폐쇄, 사드 설치 문제 등은 대한민국의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다.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수구 세력들은 자신들만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정당화했다. 이재명 시장은 누구보다 이 문제에 대해 앞장서서 싸워왔다.



    이게 나라다


    이재명 시장의 인생 연구

    이재명 시장의 인생에서 패턴을 발견하다

    어떤 사람에 대해 제대로 파악을 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작업은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을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최근 수많은 국민들이 이재명 시장에게 열광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살아온 과정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드문 듯하다. 특히, 그에 대한 관심사는 주로 성남시장으로서의 성과에 집중되어 있다.


    필자는 이재명 시장이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서점에 나와 있는 두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 두 권의 책이란 2014년 2월에 출간된 『오직 민주주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와 2010년 2월에 나온 『고난을 통해 희망을 만들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재명 예비후보자 공약집)』이었다. 아쉽게도 두 책의 전체 분량 대비 이시장이 살아온 과정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적었다.


    아쉬운 분량이었지만, 스토리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그래프를 그릴 수 있었다.


    그래프 중간의 선을 온도 0도로 가정해 보았고, 그 위를 따뜻한 바닥, 그 아래를 차가운 바닥으로 정해보았다. 필자의 기준으로 차가운 바닥이란 적폐로 인해 대다수의 힘든 사람들이 앉아 있는 지점을 의미한다.


    이 그래프를 통해 보면 이시장의 인생에는 일정하고도 분명한 패턴이 존재한다. 차가운 바닥 → 몸부림과 도전 → 신분 상승 → 다시 차가운 바닥 → 몸부림과 도전 → 신분 상승 → 또 다시 차가운 바닥이라는 패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마치 자동 반복 기능을 설정해놓고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태어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패턴이 나타난 총 3개의 단계가 보인다. 각 단계별로 이시장의 삶을 추적해 보았다.


    첫 번째 단계, 성공을 위한 발판, 사시 패스

    이재명 시장은 1964년생이다. 그가 태어난 1964년은 적폐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해였기 때문에 당시에 일어난 일들을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의 부친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로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한 지 2년차였던 그 해 3월말, 한일회담 타결에 항거하여 전국에서 학생들이 들고 일어섰다. 심지어는 초등학생들까지도 참여하였다. 경찰과 학생들이 충돌하여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수백 명의 학생들이 연행되었으며, 전국에 비상경계령까지 내려졌다. 4월 17일 열린 시위에서 6명의 대학생이 구속되었다.


    5월 20일 서울에서는 학생들과 시민들 1천 명이 모여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를 연후, 학생들은 관을 메고 교문을 나서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100여 명이 부상을 당했고, 13명이 구속되었다.


    5월 23일 박정희는 불안한 정국에 대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고, 야당이 제안하고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이 거부하기로 결정한 국방부와 내무부 장관의 해임 건의안은 5월 27일의 표결에서 부결되었다. 야당은 대통령 하야 건의안을 제출하였다. 당시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해 공식 논평을 거부하였다.


    6월 3일 1만 5천명의 시위대가 모여 박정희 정권 타도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였고, 대학생들은 청와대에 집결하였다. 이에 대한 박정희의 대답은 계엄령 선포였다. 학교 휴교는 물론, 옥외 집회 및 시위는 금지되었다. 언론출판보도에 대한 사전 검열과 통금 시간 연장이 뒤따랐다. 영장 없는 압수 수색과 구속 수사권을 가진 경찰은 6월 4일부터 6월 17일까지 총 168명을 구속하였고, 그 중 53명은 내란이나 소요의 죄목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박정희는 1979년 김재규에 의해 시해되기까지 약18년 동안 장기 집권에 성공한다.


    이재명 시장은 친일 군사 독재자가 만든 이런 무법천지 상황에서 태어났다. 당시 1인당 국민 총소득(GNI)는 103달러. 대부분의 국민들이 차가운 바닥을 경험할 때였다. 그가 책이나 페이스북에서 묘사한 상황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그러나 그만의 아픈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보릿고개의 고통을 받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는 차가운 바닥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감행한다. 1976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리를 잡은 곳은 바로 그가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성남시의 상대원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그러나 그 곳은 더욱 더 차가운 곳이었다. 13살짜리 노동자가 목걸이 공장에서의 잔심부름을 시작으로 상대원공단의 공장을 전전하며 얻은 것은 월급을 떼이는 경험과 산재사고로 인한 6급 장애인 신분이었다. 더 차디찬 바닥으로 내몰린 것이다.


    후각이 마비되고 왼팔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그릴 수 있는 성공 모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 관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공장 관리자가 되면 따뜻한 바닥에서 지낼 수 있는 기대를 가지고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쳤지만, 여전히 차가운 바닥은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몸부림은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중앙대학교 법학과의 신입생이 되었다. 초등학교만 나오고 노동자로 살다가 고등학교 졸업이 유일한 꿈이었던 그에게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신분 상승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받던 월급의 4배나 되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따뜻하진 않아도 미지근한 바닥에 앉게 된 것이다. 이때가 1986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1986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1972년 박정희는 유신헌법이라는 적폐를 통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었고, 이 기관의 대의원들에 의한 간접 선거에 의해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바 있다. 박정희가 단독 후보로 출마하고 체육관에서 진행된 이 선거에서 박정희는 100%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다. 이 적폐는 그대로 이어졌다. 광주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또 다시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로 제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다.


    두 번째 단계,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다

    사법연수원은 출셋길이 보장된 곳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금보다 그 당시의 사법연수원은 신분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한 것이 바로 사법 시험이었고, 흙수저가 금수저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요즘은 로스쿨에 가는 것부터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흙수저 신분으로는 도전 자체가 쉽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시장도 신분 상승의 지름길에 올라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주행을 시작한다. 그토록 그리던 따뜻한 바닥에 드디어 앉았으면서 다시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차가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1989년 따뜻한 바닥에서 차가운 바닥에 있는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차가운 바닥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인권 변호사로서 스스로 차가운 바닥에 앉아 차갑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운동가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삶이 의례히 그러하듯이 말이다.


    세 번째 단계, 정치인이 되다

    다시 차가운 바닥으로 내려온 이 시장. 그러나 이번 단계에서는 그 내려옴의 형태에 변화가 생긴다. 성남시 시장으로 신분으로 태평동 반지하에 살고, 급여도 반납하면서 어려운 삶을 사는 차가운 바닥의 삶이 아니라, 차가운 바닥에 사는 사람을 따뜻한 바닥으로 끌어 올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한 지역을 다스리는 사람의 목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따뜻하게 사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차가운 바닥과 따뜻한 바닥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곳을 책임지게 된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약속을 해야 한다. 이를 공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어떻게 하였고, 얼마나 약속을 지켰는가? 이 시장이 2010년 취임을 했을 때 성남의 상황은 땔감을 확보하기는커녕 전임 시장이 진 빚 때문에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시장은 호화 청사의 9층에 위치한 아방궁 시장실을 시민들에게 내주고, 현재의 시장실인 2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채무를 청산하면서도 차가운 바닥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땔감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차가운 바닥이 최소화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복지 예산을 충분히 늘릴 수 있었는데, 차가운 바닥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사회복지 예산은 일반 회계 비중이 26%에서 36%로 늘었고 총액도 2천억 원으로 늘었다. 이 시장을 수배 상황으로 내몰았던 성남시립의료원 건립도 실천하였다.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예우도 실천하였다. 독립유공자 예우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생존 유공자 일곱 분에게 매달 30만 원의 보훈 명예수당을 지원하였다. 국가 유공자에 대한 예우도 대상자를 확대하여 지원액도 높였다. 이 외에도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확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청소용역 노동자와 버스 운전사들의 일자리 안정화, 체불임금 방지, 노인들을 위한 소일거리 사업 등의 성과는 모두 차가운 바닥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노력의 성과물들이다.


    그렇다면, 이 성과물들은 재신임을 얻었을까? 이 시장은 2014년 치러진 제6대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다시 시장에 당선되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차가운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분당과 판교에서 오히려 높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이 시장은 또 다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첫 번째 당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신분 상승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대선 후보에도 이름이 오르는 영광까지도 누리게 되었다. 이제는 따뜻한 바닥에 편하게 앉아 따뜻한 바닥에 사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은 다시 한 번 차가운 바닥으로 내려간다. 천성인가? 습관인가? 아니면, 전략인가?



    차기 리더가 국민들과 함께 넘어야 할 두 개의 거대한 산봉우리

    이명박근혜 정권이 만들어낸 적폐들

    첫 번째 산봉우리 적폐산

    첫 번째 산봉우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쌓여온 적폐들이다. 1945년 일제 패망. 그리고 한반도의 남쪽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백성들이 그토록 원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투사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미국의 논리에 의해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고,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났다. 적대적인 냉전 체제의 희생양이 되어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상황이 주어졌다.


    남한에서는 주요 요직에 청산되어야 하는 친일파들이 포진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친일파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후로 우리의 삶을 더욱 피폐화되었다.


    지금까지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한 적폐, 그것은 누가 국가의 지도자가 되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특히 적폐로 인해 모순이 폭발한 현재 상황은 오히려 적폐 청산을 위한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할 적폐들은 일제 잔재, 정경 유착, 4대강 사업, 혈세 낭비, 세월호 사건, 관피아, 언피아, 십상시 권력,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 국정 교과서, 사드, 지역감정 등이 있다. 그 무엇 하나 만만치가 않다. 적폐의 혜택을 받아온 세력들의 저항 역시 상당할 것이다. 가면만 바꾸면서 적폐가 만들어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들도 극복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산봉우리 이명박근혜 정권이 만들어낸 쓰레기

    두 번째 산봉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인해 물려받을 환경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사방이 문제 덩어리들이다. IMF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어려움들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들 천지이다.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이어진 경제적인 어려움이 박근혜 정권 들어서 더욱 심화되었고, 정치, 군사, 외교, 사회, 문화 등 전역에서 일어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궁극적으로 악화된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쳐 국민들의 삶을 점점 더 궁핍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2017년 초에 퍼펙트 스톰이 온다는 섬뜩한 경고도 있고, 이제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공황이 들이닥친다고도 한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 농단과 박근혜 탄핵으로 인해 경제가 살아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음 정권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을 소요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은 어느 정도인가?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주관적인 설명이나 해석은 배제하고, 최근 신문기사들 중에서 눈에 띄는 지표들을 중심으로만 게재하겠다. 참고로 이 정권 들어 사회・경제적 지표가 긍정적으로 증가한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역대 최저, 아니면, 역대 최고이다. 좋은 것은 최저이고, 나쁜 것은 최고이다.


    평균경제성장률

    정권의 가장 기본적인 성적표인 재임기간 평균 경제 성장률부터 살펴보면, 박근혜 정권이 역대 최저이다.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도 최저다. 그것도 아주 눈에 뜨이게 말이다.


    GDP 증가율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 3분기 GDP 속보치는 2분기 대비 0.7% 증가했다. 증가했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나, 이 수치 중 무려 0.6%가 건설 투자의 기여도가 차지하고 있다. 즉, 다른 부분은 0%이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이다. 한국 경제의 대들보로 GDP의 30%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마이너스 1.0%를 기록했다.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청년실업률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 이들의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10월 실업률은 3.4%로 11년 만에 최고이다.


    자살률

    정말로 마음 아픈 수치이다. 다행히도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들 때문에 최근 자살률이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OECD 회원국들 중 12년 연속 1위의 영예 아닌 영예를 지키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살 증가율이다. WHO가 172개 회원국 가운데 인구 30만 명 이상인 국가들의 지난 2000년과 2012년의 자살 사망률을 비교한 결과, 자살 증가율 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2위이다.


    국가 경쟁력

    국민들이 열심히 사는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내가 속한 나라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자부심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특히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침을 당하였고, 약소국의 설움을 겪어온 대한민국 국민들로서는 그 기준이 무엇이 되었든 긍정적인 측면에서 국가의 경쟁력이 상승된다면 상당한 뿌듯함을 느낄 것이고, 삶의 가치를 더 높여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국가 경쟁력이 박근혜 정권에 들어와서 15단계나 추락을 하였다. 그것도 3년 연속 26위로 역대 최저이다. 이 정권은 역대 최악만을 기록하기 위해 탄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국가 경쟁력 순위는 세계 경제포럼(WEF)이 매년 매긴다.


    그 동안 역대 최고를 기록한 순위는 노무현 정부의 11위. 2007년 23위에서 12계단이나 상승한 수치이다. 그러다가 이명박 때인 2011년 24위까지 하락하였고, 지금까지 계속 26위이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72위, 정부정책 결정의 투명성은 115위로 바닥권이다. 노사간 협력 순위는 135위, 고용 및 해고 관행은 113위, 금융시장 성숙도는 77위인 우간다보다 낮은 80위. 인플레이션 부문에서는 공동 1위.


    언론 자유

    역대 최악인 기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언론 자유. 2016년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언론 자유 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총 180개 국가들 중 전년 대비 10계단 하락한 70위를 기록했다. 최고 순위는 노무현 정부 시절로 2006년 31위였고,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에는 69위까지 주저앉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는 50위였지만, 2014년 57위, 2015년에는 60위로 계속 하락하다가 2016년 70위까지 내려앉았다.


    그 무엇 하나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가? 어떤 지도자에게 문제 해결을 맡겨야 하는가? 과연 이재명 시장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적임자일까?



    적폐산을 성공적으로 넘을 수 있는 리더로서의 이재명

    일관된 국민 편

    차가운 바닥에 있는 국민의 편에 서 있는 자 누군가?

    "대통령은 나라의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이요 대리인일 뿐입니다. 그런 그가 마치 지배자인 양, 여왕인 양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지금까지 저질러 온 부패와 무능과 타락을 인내해 왔습니다. 300명이 죽어가는 그 현장을 떠나서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7시간을 보낸 사실도 우리가 지금까지 참아왔습니다. 평화를 해치고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으로 빠뜨리는 것도 우리가 견뎌왔습니다. 국민의 삶이 망가지고, 공평하고 공정해야 할 나라가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우린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그 대통령이란 존재가 국민이 맡긴 위대한 정치 권한을 근본도 알 수 없는 무당의 가족에게 통째로 던져버린 것을 우리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고 돈이 없지만 가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나라의 주인이고 박근혜의 월급을 주고 있고 박근혜에게 권한을 맡긴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박근혜는 이미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자에 대한 권력을 근본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여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잃었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이 나라를 지도할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조차 없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스스로 자백했습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닙니다. 즉각 형식적인 권력을 버리고 하야해야 합니다. 아니 사퇴해야 합니다. 탄핵이 아니라 지금 당장 권력을 놓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이 나라의 주인이 명합니다. 박근혜는 국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우리가 고용한 머슴이고, 언제든지 해고해서 그 직위에서 내쫓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하야하면 혼란이 온다, 탄핵하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전쟁의 위기를 겪고, 나라가 망해가도 수백 명의 국민이 죽어가는 현장을 떠나버린 대통령이 있는 것보다도 더 큰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습니까? 대통령이 떠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고 한반도가 더 위험해지겠습니까? 더 나빠질 게 없을 만큼 망가졌습니다. 더 위험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합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의 뜻에 따라 지금 즉시 옷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민주공화국을 위하여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는 평등한 나라를 위하여,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진정한 자유로운 나라를 위하여, 전쟁의 위험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위하여, 생명의 지배가 없는 안전한 나라를 위하여 우리가 싸울 때입니다. 박근혜를 내몰고 박근혜의 몸통인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기득권을 격파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갑시다. 우리가 싸우면 우리가 힘을 합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나쁜 구조를 깨고 새로운 길, 희망의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함께 싸웁시다."


    -2016.10.29. 1차 촛불집회 청계천 광장에서 이재명 시장의 연설문


    싸우려면 제대로 싸워 이겨야 한다

    노무현의 이름으로 다시 투쟁

    최순실 사태에 대한 국정 조사에서 저격수로 나선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을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5공 청문회 때 그는 스타로 떠올랐다. 송곳을 찌르는 듯한 질문으로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던 증인들의 입에서 결정적인 증언이 나오도록 함으로써 말이다.


    국회의원이 되어 전국적인 스타가 된 것은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음 선거에서 당선을 보장받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권력을 가진 자로서의 기득권을 안정적으로 다지는 절호의 찬스다. 누구에게나. 그러나 그는 기득권을 버리는 미련한 길을 택했다. 당선이 확실히 보장된 지역구를 버리고, 탈락이 100% 확실한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 곳에서 야당 후보로서 고난의 행군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김대중의 사진을 등에 붙이고 부산 거리를 누비면서 멱살도 잡히고 누군가 뱉은 침을 얼굴에 맞기도 하였다. 말로 하는 조롱과 비난은 차라리 애교였다. 폭행을 당하기도 했으니까. 탈락은 당연한 이야기. 그래도 그는 또 다시 도전을 하였다. 계속 싸웠다. 자신의 기득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도 싸웠다. 부산의 맹주이자 당 총재였던, 그리고,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데뷔시켜준 김영삼이 주도한 3당 합당을 야합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과 함께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지게 된 계기였다. 현실의 부조리가 그를 싸움꾼으로 만든 것이었다.


    지금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싸움꾼으로서 그의 모습이 아닐까? 변호사로서 따뜻한 삶을 버리고 차가운 바닥으로 내려가서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삶을 살던 모습. 그리고 국회의원이라는 따뜻한 자리를 또 박차고 나가 힘든 싸움을 시작한 그의 모습 말이다.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의 안정된 삶을 또 다시 버리고, 차가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또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였을 때, 그의 지지율은 완전 바닥이었다. 아니, 그를 대통령 후보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율이 어느 순간부터 치솟으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것은 차가운 바닥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싸움꾼의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에 대한 향수는 최근의 데이터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다. 촛불 정국 와중에 진행된 조사에서 작년 2위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위로 올라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촛불부대 전투원들이 원하는 사령관은 노무현과 같은 싸움꾼임을 알 수 있다. 촛불부대가 나선 이후 사람들은 이재명 시장에게서 노무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이 시장의 투쟁력을 본 사람들이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찬 바닥에서 삶을 시작하여, 찬 바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싸워왔다는 사실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 결과 그에게 급등하는 지지율이라는 선물을 보낸 것이 아닐까?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노사모가 노무현에게 지지를 보낸 이후의 지지율 급등과 촛불부대가 이재명에게 지지를 보낸 이후의 지지율 급등을 보면 평행 이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재명 시장은 촛불부대 사령관으로서 자격이 될 만큼 풍부한 싸움 전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재명 시장의 인생은 싸움 그 자체였다. 빈민 중에서도 빈민의 삶을 살면서 굶어 죽지 않으려는 싸움을 초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하였다. 장애인이 되어서도 공장 노동자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싸웠다. 삶을 위해 싸우는 것, 신분 상승을 위해 싸우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촛불을 든 국민들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싸움을 해왔고,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싸우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삶이 안정되고 목표로 했던 신분 상승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토록 어렵게 싸워서 얻어낸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이라면 더 그렇다. 한 번 권력을 얻게 되면 그 권한은 신분 상승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얻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되고, 그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어마어마하다. 이걸 내려놓기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사정이 그렇다면, 권력의 문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기득권을 잃을 수도 있는 싸움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가만히만 있어도 보장되는 것들이 많은데, 일부러 나서서 잃게 될 리스크를 왜 감수하겠는가?


    기득권을 버린다는 것은 차가운 바닥에 다시 나앉아야 하는 일이다. 그에 따른 기쁨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일이다. 어쩌면 기득권을 내려놓는 싸움에 나서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일 수도 있다. 인생이 엄청나게 피곤해질 수도 있는데, 굳이 이런 싸움에 나설 필요가 있을까. 기득권을 버리는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고 비난할 사람도 없다.


    적폐 구조 내에서의 제1 야당도 그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계속해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싸움을 하기도 쉽지 않다. 싸움에 나서지 않는데 대한 반대급부도 상당하다. 지역구 유권자들에 의한 영향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즉, 싸움에 나서려고 해도 다음 선거에서의 투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다보면, 정치적인 계산에 의해 스스로 접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구조 내에서 적폐에 저항하는 싸움에 나선다는 것은 어쩌면 바보짓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에 나서는 자, 게다가 계속해서 싸움판에 나서서 깨져온 자라면 이번에 국민들이 벌려놓은 플레이그라운드 내에서 국민들이 쥐어준 칼자루를 휘두를 수 있는 후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싸움꾼으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이 시장이 촛불부대의 사령관으로 선발되려면 넘어야 하는 산이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신중한 발언이다. 인기를 얻을수록 이전보다 더 많이 대중이나 언론 앞에서 발언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많은 곳에서 발언을 하다보면 말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에도 말실수에 대해 사과를 한 바 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한 만큼 단 한 번의 말실수가 견제 세력이나 적폐 세력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므로 좀 더 신중한 발언이 필요하다. 과거의 말실수까지 들추어서 낙마시키는 승냥이들이 주변에 널렸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는 연약함을 적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국민들이 싸움꾼을 자처하고 결연한 항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사령관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은 이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최근 견제자들의 공격에 대해 SNS 상에서 속상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술 한잔했다는 표현을 한 것은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침몰 직전의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사람으로서는 적절치 못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이러한 연약함을 보이는 일은 절대로 없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전해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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