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아이들의 시간

저   자
리처드 지믈러 외(역:정영은)
출판사
생각과 사람들
출판일
2016년 02월
서   재







  • 편저자 리처드 지믈러는 2005년 라샤 세쿨로비치라는 한 저널리스트로부터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의 구상을 부탁받는다. 그는 유명한 작가들의 어린 시절을 단편 에세이로 모아 책을 출간하고, 인세는 전액 한 비영리 공공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에게서 도움을 요청받은 작가들은 선뜻 그의 요청을 수락해 주었고, 원고를 보내와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책의 한국어판이 바로 『아이들의 시간』이다. 각기 다른 출생 배경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아이들의 시간


    독 만들기(Making Poison) _마거릿 애트우드

    내가 다섯 살 때, 오빠와 나는 독을 만들었다. 당시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아마 어디에 살았어도 비슷한 짓을 하고 놀았을 것이다. 우리는 남의 집 근처에 빈 페인트 통을 가져다 놓고, 떠올릴 수 있는 온갖 지독한 것들을 집어넣었다. 독버섯, 죽은 쥐, 독이 있게 생겼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마가목 열매를 넣고 참았던 오줌도 싸서 섞었다. 깡통이 다 찼을 무렵, 내용물은 아주 유독해 보였다.


    문제는 독을 다 만들고 난 후였다. 그냥 거기에 둘 수는 없었다. 우리가 만든 독으로 뭐든 해야 했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음식에 넣을 생각은 없었지만, 우리의 행동을 완성하려면 대상이 필요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렇게까지 싫은 사람이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결국 그 독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황갈색 목조 주택 근처에 그냥 두었던가? 별 죄도 없는 어떤 아이한테 던졌던가? 감히 어른한테 던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눈물과 빨간 마가목 열매로 범벅이 된 작은 얼굴, 우리가 만든 독에 진짜 독이 있었다는 것을 진작 깨달았던 기억은 내 상상일까, 진짜 있었던 일일까? 아니면 그냥 갖다 버렸던가? 도랑을 따라 배수로로 둥둥 떠내려가던 빨간 열매의 모습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걸까?


    애초에 우리가 독을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재료를 넣고 저으며 느꼈던 기쁨, 그 마법 같은 느낌의 성취감을 기억한다. 독을 만드는 것은 케이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다. 사람들은 독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무엇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돼지 부수기(Breaking the Pig) _에트가르 케레트

    아빠는 바트 심슨 인형을 사 주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는 정말 사 주고 싶어 했는데, 아빠는 내 버릇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극구 반대했다. 그러면서 내가 돈의 가치를 존중할 줄 모른다며, 그런 건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 연유로 아빠는 내게 바트 심슨 인형이 아닌, 등에 동전 구멍이 있는 못생긴 도자기 돼지 저금통을 사 주었다. 인형이 아닌 저금통을 사 주었으니 내가 불량배가 아닌 올바른 어른으로 자랄 거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금통을 채우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코코아 한 잔을 억지로 마셔야 했다. 아빠는 만든지 좀 돼서 위에 막이 생긴 코코아를 마시면 1셰켈(이스라엘 통화 단위)을 주고, 그냥 멀쩡한 코코아를 마실 경우에는 반 셰켈을 주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받은 동전을 동전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아빠는 돼지 저금통이 동전으로 가득 차서 흔들어도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이면 스케이트보드를 탄 바트 심슨 인형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도자기 저금통은 꽤 귀여웠다. 코를 만지면 시원했고, 1셰켈짜리 동전을 넣으면 아니 반 셰켈만 넣어도 방긋 웃어 주었다. 사실 제일 좋은 건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늘 웃어 준다는 점이었다. 나는 돼지 저금통에 마골리스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마골리스는 내 다른 장난감들과 달랐다. 전구나 스프링, 건전지 같은 것도 필요 없어서 훨씬 다루기 쉬웠다. 그저 탁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잘 살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마골리스, 조심해. 넌 도자기잖아!"


    나는 마골리스가 탁자 끝에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모습에 놀라 외쳤다. 마골리스는 나를 보고 웃더니, 참을성 있게 그 자리에 서서 내가 안아 내려 주기를 기다렸다. 나는 마골리스의 미소가 무척 좋았다. 마골리스의 등에 있는 구멍에 1셰켈짜리 동전을 넣고, 그 변함없는 미소를 보기 위해 매일 아침 코코아를 마셨다. 어제는 아빠가 들어오더니 탁자 위에 있던 마골리스를 거꾸로 집어 들고는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아무 소리도 안 나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너도 알겠지, 데비? 바트 심슨 인형을 바로 내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알았어요, 아빠. 신나긴 한데, 그만 좀 흔들어요. 마골리스가 어지럽잖아요."


    아빠는 마골리스를 내려놓고 엄마를 부르러 갔다. 그러더니 잠시 후 한 손에는 엄마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나타났다. 아빠는 내 손에 망치를 쥐여 주며 말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네, 그럴게요."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나는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라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망치를 들고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보고 마침내 아빠는 인내심을 잃었다.


    "뭐하는 거야? 저금통이나 빨리 깨라고!"

    "네? 마골리스를 이걸로 치라고요?"


    도자기로 만든 돼지 저금통인 마골리스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온 걸 아는지 나에게 슬픈 미소를 보냈다. 바트 심슨 인형 따위가 대체 뭐라고! 인형 하나 사자고 친구를 망치로 내리치라고? 나는 아빠에게 망치를 돌려주었다.


    내가 됐다는데도 아빠는 망치를 쳐들었다. 나는 도움을 청하듯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만사가 다 귀찮은 듯 피곤한 표정이었고, 마골리스는 체념한 듯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든 건 내 손에 달려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마골리스는 죽는 것이다. 나는 아빠의 다리를 잡으며 외쳤다.


    "1셰켈만 더 주시면 안 돼요? 내일 아침에 코코아 마실 테니 딱 1셰켈만 더 주세요. 그러면 마골리스 등에 넣고 내일 제가 부술게요, 진짜예요."


    엄마 아빠가 방을 나간 후 나는 마골리스를 평소보다도 더 꼭 끌어안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마골리스는 말없이 내 손안에서 가볍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아빠가 거실에서 TV를 다 보고 침실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골리스를 안고 발코니를 통해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가시나무 덤불이 있는 들판까지 꽤 긴 거리를 함께 걸었다. 나는 마골리스를 들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도 여기가 맘에 들 거야."


    나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마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별 인사로 코를 쓰다듬자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마골리스도 우리가 영영 만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분홍 신발(Pink Shoes) _안드레 브링크

    크라쿠프에서 열린 건축가 콘퍼런스의 마지막 날 일정은 주변 관광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떠난 참가자도 몇 명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조한 알버츠가 느끼기에도 그 콘퍼런스는 지루한 발표의 연속이었다. 조한은 어서 모든 일정이 끝나 아내와 일곱 살배기 딸 틴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루한 발표와 토론에서 그나마 조한의 흥미를 끈 것은 파리에서 온 자그마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미리암이라는 참가자였다. 이제 서른이나 됐을까 싶은데, 조근조근한 말투로 업계에서 이미 명성이 자자한 참가자와 맞서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첫 충돌은 콘퍼런스 이틀째에 일어났다. 미리암은 거만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옥스퍼드 석좌교수에게 뭔가를 따지다가 짜증이 났는지 밖으로 나가 버렸다. 조한도 마침 그 교수의 횡설수설을 점점 견디기 힘들었던 터라 미리암을 따라 행사장 밖에 있는 좌우대칭의 안뜰로 나갔다.


    "브라보! 아주 멋졌어요! 근데 그런 패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거죠?"

    "어쩜, 제게 딱 맞는 단어를 쓰시네요. 저 유대인이에요."


    미리암의 짙은 눈이 뜻밖이라는 듯 빛났다. 그 후 사흘 동안 조한과 미리암은 거의 모든 휴식 시간을 함께 보냈다. 조한은 둘 사이의 장벽이 서서히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저녁때가 되어 조한이 미리암을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줄 때면, 그녀는 매번 부드러우면서도 능숙하게 선을 그으며 더 이상의 접근을 피하고는 했다.


    끝에서 두 번째 날 저녁, 조한은 여느 때와 같이 미리암을 방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돌아가려는데,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혹시 내일 저랑 아우슈비츠에 가지 않을래요?"

    "전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에 가려고 하는데요. 그냥 저랑 소금 광산에 가는 건 어때요?"

    "아뇨, 전 아우슈비츠에 가야 해요. 그런데 혼자 가기는 무서워요. 사실 저희 증조할머니가 거기서 돌아가셨거든요."

    "뭐, 꼭 가고 싶다면야......."


    미리암은 충동적으로 다가가 발꿈치를 들고 조한에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숙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저희 친척 할머니 두 분도 강제수용소에서 돌아가셨어요." 조한이 조용히 말했다.


    "보어 전쟁 때요. 독일이 영국에게서 배운 게 많거든요.(식민지 시대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넓혀 가던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정착해 살아가던 네덜란드계 보어인 사이에 일어난 전쟁. 보어인들이 패하며 수많은 어린이와 여성이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으며, 이 수용소는 훗날 독일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모델이 됨)"


    다음 날 아침 10시에 숙소 앞으로 아우슈비츠행 버스가 왔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버스 안에서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수용소에 도착하자, 혼자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조한은 악명 높은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문구가 새겨진 삭막한 입구로 들어서며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수용소에서는 으스스한 소외감과 부재감이 느껴졌다.


    조한은 긴 굴뚝이 달린 소각장과 가스실을 피해 가며 수용소 곳곳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죽은 이들의 물건, 소지품, 유품을 모아 놓은 장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행 가방에는 이름과 주소가 정확히 적혀있었다. 머리카락, 빗, 안경이 차례로 진열된 방도 있었고 또 요강만 잔뜩 진열된 방도 있었다. 그리고 신발만 있는 방도 있었다. 진열된 신발들 가운데 분홍색 신발 한 짝이 배를 찌른 칼날에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듯,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예닐곱 살쯤 되는 여자아이가 신으면 잘 맞을 크기였다.


    조한은 틴카를, 아이의 발을 떠올려다. 틴카의 발이 얼마나 작고 또 가늘고 연약한지를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조한은 공항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리를 한 번 더 산책했다. 거리를 걷던 그는 아담 미츠키에비츠 동상의 맞은편에 있는 직물회관 안에서 아이들 옷과 장신구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가게에서는 틴카에게 딱 맞을 만한 핑크색 발레 슈즈를 팔고 있었다. 조한은 가격도 묻지 않고 발레 슈즈를 주문했다.


    틴카는 신발을 보고 뛸 듯이 기뻐했고, 결국 첫날밤에 떼를 서서 신발을 신고 잤다. 이내 매년 열리는 아트스케이프(케이프타운에 위치한 공연장)에서 어린이들이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하는 날이 돌아왔다.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던 차에 알리슨이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근데 여보, 미리암이 누구예요?" 하고 물었다. 조한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몸에 번지는 전율을 느꼈다. 알리슨은 그렇게 말하며 뜯긴 편지 봉투와 그 안에서 꺼낸 편지를 조한에게 내밀었다.


    결국 부부는 편지 때문에 크게 다퉜고, 조한은 딸의 공연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알리슨과 틴카가 눈물을 흘리며 공연장으로 향한 뒤, 조한은 혼자 집에 남았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온 알리슨은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은 것 같았지만, 틴카는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공연 도중 틴카의 왼쪽 신발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아이가 무대 위에서 넘어졌고, 결국 공연이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아내가 말했다.


    "아빠가 신발 새로 사 줄게. 내일은 잘할 거야."

    "됐어! 이제 춤 안 춰! 다 아빠 때문이야!"


    그 순간, 그는 자제력을 잃고 아이를 때리고 말았다. 조한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사랑하는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발레 슈즈는 가정부의 딸인 은톰비에게 주기로 했다. 그리 꼼꼼한 솜씨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떨어진 신발 끈을 고쳐 준 덕분에 신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신발을 받은 은톰비는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하더니 작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이는 신발을 가지고 카예리트샤 지구(케이프타운의 흑인 거주 지역)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폭로(Kiss and Tell) _존 샘 존스

    시몬의 반 아이들 중에는 또래인데도 벌써 꽤 성숙해 보여 눈에 띄는 애들이 몇 명 있었다. 조금 위압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은 종종 자기들끼리 모여 이런저런 소문을 속닥거렸다. 몇 명은 이미 어른인 양 굴었다.


    시몬에게 열네 살의 삶은 쉽지 않게 느껴졌다. 반 친구들은 조금씩 근육이 붙으며 남자다운 몸매를 갖춰 가고 있었고, 럭비는 자연스레 거친 남자들의 게임이 되어 갔다. 운동 후 다 함께 샤워를 할 때면 더 난감했다. 시몬은 남자가 되어 가는 친구들 틈에서 옷을 벗고 왜소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마다 차라리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춘기가 늦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 그게 하필 자기여서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시몬은 소외감을 느끼며 자신을 더욱 의심했다.


    처음에는 그냥 로버츠 선생님에 대한 공상에만 잠겼다. 공상 속에서 그가 제일 좋아하는 로버츠 선생님은 문학 시간에 배우는 시를 학생들에게 읽어 주기도 하고, 웨일스어의 불규칙변화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시몬의 눈에 로버츠 선생님은 정말 멋졌다. 길고 섬세하며 표현력이 풍부한 손가락, 자기 과목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생기가 넘치는 그 얼굴....... 어떤 때는 상상 속에서 선생님이 시몬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 미소가 시몬에게 용기를 주었다.


    작은 나라, 그것도 강력한 이웃으로부터 자치권을 조금 인정받은 지 얼마 안 된 나라에서는 변화가 빠른 편이다. 2001년쯤 되자, 웨일스의회 정부는 웨일스 전역의 동성애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동성애자들이 겪은 차별이나 불편에 대한 의견을 듣고, 그들이 바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2005년에 교육부 장관이 학교에서의 동성애자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들고 나왔고, 교사들은 교내에서 동성애자 학생들을 잘 지원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난 후 몇 주간, 학교는 온통 로버츠 선생님의 동성애자 발표 소식으로 술렁거렸다. 제인 존스는 그렇게나 잘생기고 섹시한 웨일스어 선생님이 게이라니, 낭비도 그런 낭비가 어디 있냐고 떠들며 아쉬워했다.


    시몬은 누구보다 깜짝 놀랐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물론 시몬도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동성 결혼의 초기 형태인 시민 결합식 에 가 본 적도 있었다. 아빠의 대학 시절 친구인 미리암과 그녀의 파트너인 케이트가 주인공이었다. 사실 시몬은 학교에서 동성애자임을 밝힌 애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남자 동성애자를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평범한 남자인 로버츠 선생님이 동성애자라는 소식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샨 젠킨스는 학교 위원회에서 9학년 대표를 맡고 있었다. 샨은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이면 학교를 거닐며 9학년 학생들을 만나 학교생활이 어떤지 묻고는 했다. 운동장 구석에 혼자 앉아 있던 시몬에게 샨이 말을 걸었다.

    "혹시 점심시간 모임에 안 갈래?"

    "왕따들 모이는 데 갈 생각 없어. 그냥 여기서 혼자 생각이나 하는 게 좋아."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냥 뭐....... 키스하는 생각이랑, 포옹하는 생각이랑....... 그러니까 나랑 내......."


    여기까지 말한 시몬은 당황했다. 남자 친구랑 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샨에게도 그것만은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몬은 더듬거리며, "내 연인이랑 말이야." 하고 말했다.


    "시몬 그윈!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누군데? 이 샨 누나한테만 얘기해 봐."

    "아냐, 더 얘기할 거 없어."

    "에이, 그러지 말고....... 어떤 남잔데?"


    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물었다. 시몬은 다시 용기를 얻어 조심스레 말했다.


    "딜란이야. 우리 웨일스어 겸 프랑스어, 독일어 선생님."

    "지금 농담하는 거지?"


    샨은 이렇게 말하며 학교 위원회에서 연수받은 학내 성범죄에 대한 내용을 떠올렸다. 시몬은 다시 번복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로버츠 선생님과의 연애담을 꾸며 내기 시작했다.


    9학년 학생들은 목요일 오후에 역사 수업을 들었다. 역사 과목을 맡은 퍼우 선생님은 학교 위원에서 학생들과의 소통을 담당하고 있었다. 샨은 역사 수업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교실 저쪽에 앉아 있는 시몬을 바라보며 갈등에 빠졌다. 시몬이 로버츠 선생님과 그런 사이였다는 것에 질투가 나면서도 학교 위원으로서 학내 성범죄를 퍼우 선생님께 신고해야 하는 의무도 저버릴 수 없었다. 결국 샨은 수업이 끝난 후 퍼우 선생님께 시몬과 로버츠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했다.


    엘레리 클루이드 교장은 딜란을 불러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침착하고 분명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딜란은 교장실의 답답한 공기와 자신에게 씌워진 혐오스런 혐의 탓에 갑자기 숨이 막혔다. 뭔가 질문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평소에 그렇게 유창하던 말솜씨도, 그렇게 명료하던 생각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마음속에는 오직 시몬 그윈이 웃고 있는 모습만 떠올랐다.



    머릿속의 오페라(Opera In My Head) _멕 로소프

    내 머릿속에는 늘 음악이 들린다. 밤이고 낮이고 끊임없이 오페라가 울린다. 나는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며 지휘를 한다. 호른, 지금 들어오고! 옆을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과 통통거리는 팀파니 소리는 멀리서 왱왱거리는 구급차의 라장조 사이렌 소리와 화음을 이룬다.


    이게 정상일까? 세상을 이런 식으로 경험하는 게 정상일까? 정상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음인 것들이 내게는 음악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우리 부모님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나는 입양됐다. 그래서 나를 낳아 준 엄마 아빠는 본 적도 없다.


    나는 길을 건너며 도시의 흥얼거림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지하철 표를 끊고 비를 피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간다. 멜로디가 내 핏줄을 채운다.


    몇 년간, 나는 인터넷에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나 호른 연주자, 아니면 오페라 가수를 검색해 볼까 하고 생각을 했다. 분명 그렇게 하면 생각보다 쉽게 내 부모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거의 백발에 가까운 내 하얀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 옅은 파란 눈과 꼭 닮은 누군가를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께 바이올린이나 하프, 호른을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여느 중산층 가정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도 피아노는 한 대 있었다. 조율은 엉망이었지만 난 아무 문제없이 잘 연주할 수 있었다. 건반에 손가락을 얹기만 하면 나머지는 손이 알아서 했다. 생각을 멈추고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두면 한 번 들었던 곡은 모두 연주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 이런 능력이 부자연스럽다며 불편해 한다. 하지만 물론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손에 들린 귀중한 서류를 꼭 움켜쥔다. 종이에는 그냥 이름, 주소, 날짜, 시간만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종이에 적힌 단어 몇 개에서도 소리는 어김없이 들려왔다. 달콤하지만 어둡고,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손에 들린 서류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친엄마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다.


    나는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건물도 번지도 여기가 맞다. 친엄마는 나를 그리워했을까? 아이가 있어야 했을 빈자리를 보며 후회했을까? 아마 친엄마도 나와 떨어진 곳에서 슬픈 마음과 외로운 시간을 음악과 춤으로 달래지 않았을까?


    나는 초인종을 누른다. 내림 라음이 들린다. 딸깍하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나는 발을 메트로놈 삼아 계단을 오른다. 정확히 말해 친엄마를 만나는 게 두렵지는 않다. 하지만 온몸의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선 느낌이다.


    나는 걸음을 멈춘다. 내가 늘 듣고 싶었던 소리가 들려온다.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 소리....... 방을 가득 채운 노랫소리....... 이 모든 소리는 넓고 우아한 모양의 계단 위쪽에서 들려온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도착해 보니, 문이 조금 열려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나타난 반짝이는 거대한 검은 벽이 그녀를 가려 두 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대한 무생물을 가볍게 다루며, 내게는 마치 숨소리처럼 익숙한 노래를 하게 만든다. 그녀는 내가 온 걸 알지만, 아직 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만의 언어로 내게 인사를 건넨다. 물론 그녀는 내가 그 언어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른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마주하는 그녀는 나만큼이나 창백하다. 그녀의 진한 피가 내 핏줄 속에서 힘차게 울리고 있다. 그녀는 베토벤을 연주하고 있다. 방을 가로질러 그녀에게 다가가자, 내 몸의 모든 세포가 노래를 시작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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