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저   자
이현세
출판사
토네이도
출판일
2014년 02월
서   재







  • <공포의 외인구단>, <아마게돈>, <남벌> 등 숱한 화제와 찬사, 논쟁을 낳은 갖가지 작품을 발표한 이현세 작가의 책. 이 책에는 21세기라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한 저자만의 독특한 애정과 철학을 담고 있다.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가장 큰 사막이 가장 큰 여행자를 키운다

    운명의 벽을 눕혀 길로 만들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것들은 그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되어 삶 전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타고난 재능이나 선천적 장애처럼 태어나면서 알게 되는 것도 있다. 또 어떤 것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한 시간에 찾아와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운명의 벽을 마주하면 대부분 한동안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 운명과 맞서 싸워보겠노라고 벽을 향해 돌진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벽 앞에 주저앉아 눈물만 흘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운명의 벽을 만났을 때 맞서는 사람도 주저앉는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벽을 눕히면 길이 된다"는 말처럼 운명의 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래,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구나하고 운명이 이끄는 방향으로 모험을 하는 사람이었다.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보통의 어머니나 할머니는 흔히 길조심, 차조심을 당부한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가 내게 한 말은 달랐다. 가장 먼저는 물조심이었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멱 감으러 강에 갔다가 빠져 죽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또 한 가지를 덧붙였는데 바로 입조심이었다.

    나는 빨갱이 집안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운명, 그것은 바로 빨갱이라는 낙인이었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 어른이었던, 삼촌으로 알았던 아버지마저도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사고로 돌아가신 뒤 나는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도 삼촌도 없고 집안에 남자라고는 나와 동생뿐이었다.


    빨갱이 집안 출신이라는 낙인, 일찍 돌아가신 집안 어른들…… 그 모든 것은 내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만약 내가 그때 운명에 맞서서 부딪치려 했다면 극좌든 극우든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는 자기 파괴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반대로 빨갱이 자식이라는 운명 앞에서 주저앉아 버렸다면 연좌제 때문에 앞길이 막혀 아무것도 안 될 것이라고 실망해 허송세월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맞서지도 주저앉지도 않고 그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인 채 그림을 향한 열망으로 걸어 들어갔다.



    살아남는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무엇이 나를 몰두하게 하는가

    똑같이 한 시간을 일해도 몰입해서 작업하는 사람과 산만하게 작업하는 사람의 결과물은 양에서나 질에서나 차이가 난다. 내 경우에도 그렇다. 작업을 할 때 그날 걸려오는 전화를 다 받은 날과 전혀 받지 않은 날을 비교해보면 결과물의 양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림 역시 추가적으로 작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나온다.


    누구나 집중력을 가지고 몰입하기를 원한다. 오죽하면 집중력을 강화시켜준다는 기계까지 나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을까(진짜 효과가 있는지는 안 써봐서 모르겠지만). 돈까지 들여서 구해야 할 만큼 몰입은 인간에게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그런데 누구나 마법 같은 몰입의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게임을 할 때가 그렇고,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당구를 할 때가 그렇다. 눈 깜빡할 사이처럼 시간이 지나 있는 것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진짜 원하는 일을 한다면 몰입은 애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잊다

    지금까지 만화를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손이 빠르거나 재능이 특출해서가 아니다. 나보다 빨리 그리면서도 기가 막히게 잘 그리는 천재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 있는 것 하나가 바로 몰입이다.


    내 몸까지도 제어할 정도로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은 자, 지금부터 몰입하자는 식의 인위적인 주문이 아니라 앗, 내가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참고 있었구나?와 같은 발견이다. 만일 지금 하는 일에서 만족할 만한 완성도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과정을 반드시 되짚어봐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관성적으로 하던 대로 한다. 그게 편하고 무엇보다 습관이 돼버리면 고치기가 힘들다. 하지만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이 계속되면 당연히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기가 힘들다. 이때는 핑곗거리를 찾게 된다. 저 사람은 나보다 시간이 많았어,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몰려서 어쩔 수 없지 같은 생각 말이다.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타인을 관찰하듯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점검해보자. 그렇게 하다보면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천재와 싸워라

    보통 사람을 위한 생존법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거나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 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난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 서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인생에서 만난 첫 번째 천재

    삶에서 처음 천재를 만났을 때는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스스로 봐도 어쩜 이렇게 만화를 잘 그릴까? 하고 감탄할 만큼 우쭐대고 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드디어 천재를 만났다. 나는 좋아하는 만화를 똑같이 따라 그리거나 약간 변형해서 그리는 정도였는데, 그 친구는 이미 자기 나름대로의 그림체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스토리까지 꾸며서 만화를 그릴 정도였으니, 한참 자만심으로 부풀어 있던 내 마음의 풍선이 뻥 터져버린 느낌이었다.


    중학교 때 그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나와 다른 중학교를 선택했다. 나에게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중학교에 안 가도 됐으니 피하지 않아도 천재와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른이 된 이후로는 통 소식을 듣지 못했던 그가 어느 날 고향으로 내려왔다. 마음 한쪽에 미뤄두었던 회화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만화를 그리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회화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지 못한 듯했다. 친구가 보여준 만화는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자기만의 스타일로 도배돼 있었다. 그저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회화가 있었고, 거만과 조소의 상처입은 만화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천재를 만났을 때는 천재와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다만 중학교 이후에 그가 보여준 삶의 궤적으로 어렴풋이나마 천재성만으로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험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천재를 만나면 덤벼서 싸우기보다 기꺼이 나보다 앞서 가도록 해주는 것이 약이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일생일업(一生一業), 평생을 걸고 한 가지에 미쳐라

    이루고자 하는 것이 꿈인가 직업인가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어보면 많은 이들의 대답이 거의 직업이다. 교사, 의사, 방송인, 운동선수 같은 것들은 특히 인기 직업으로 꼽힌다.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아 나가는 목적이 직업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대학교 광고에서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것도 취업률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좋은 대학교 들어가는 게 목적이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목표가 된다.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서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무엇이 되겠다는 목적은 있지만 어떤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타리 안 VS 자유로운 들판

    그냥 의사가 되겠다가 아니라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는 삶의 목적이 직업에서 끝나버린다.

    요즘 사람들이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서 그런 게 아니다. 교육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이 직업에서 끝나는 사람이 자라서 사회의 중심이 되면 큰 문제가 된다.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기만 위하고 호의호식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목적이 돼버리면 원하는 직업을 갖는 순간 삶은 더할 수 없이 허무해진다.

    그렇다고 개인의 선택 탓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시스템 탓만 하기에는 한번뿐인 인생이, 그리고 바로 지금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깝지 않은가.


    불안을 이유로 버티고 선 울타리 안은 안전할 것이다. 맹수에게 공격당할 위험도 적고 가만히 있으면 때마다 먹이도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야성의 DNA를 잃어버리면 가축과 같이 길들여진 삶이 만족스러워 바깥으로 나오기가 더 힘들어진다. 한번쯤 자신이 이 세상에 왜 왔는지 생각해보자. 편안함이 충족되면, 밥벌이가 충족되면 그만인지, 그 이상으로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억눌려 있는 것은 아닌지, 넓은 초원으로 나가 탁 트인 하늘을 보며 질문해보자.



    세상에 없는 것을 배워라

    깨달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스승, 곧 멘토를 만난다. 그 멘토는 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고 선배일 수도 있으며 운이 좋으면 아버지나 어머니일 수도 있다. 혹은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사람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먼 대양에서 춤추는 고래, 가을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의 비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중요한 이치를 깨우칠 수도 있다. 뉴턴의 사과처럼 말이다.


    세상 만물은 모두 스승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시간과 상황과 인연이다.


    일상에 떨어져 있는 보석 같은 아이디어

    만화는 작가만의 스타일을 필요로 한다. 이 스타일을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것만 해도 대단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이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렵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만화를 재미있게 만든다는 것과는 다르다. 단순히 종이 위에 감탄할 만한 그림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듯 펄펄 뛰는 주인공과 독자가 몰입할 수밖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만화의 표현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멋진 아이디어의 발견이다. 흔히 아이디어라고 하면 막연하게 낯선 이야기로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가장 재미있는 소재는 작가의 주변에 있는 이야기다. 어느 날 아이가 생겨서 자녀의 성장하는 모습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이를 소재로 그리는 만화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그와 같은 경우가 있다.

    한 여학생이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만화를 그린 편지를 주다보니 그게 쌓이고 쌓여서 『군바리와 고무신』이라는 만화의 바탕이 되었다. 그전까지 여학생이 군대라는 세계에 대해서 신경이나 써봤을까? 남자친구의 부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계기로 자기가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고, 멋진 작품을 그리게 된 것이다.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힘

    호기심이 없다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 기업에서 원하는 사람은 창조적인 인재라고 한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주는 힘이 조직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리라. 만화 역시도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분야이다. 만화가로 살면서 종종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아이디어를 얻는 비결이다. 내 경우에는 작품마다 다른 분야의 소재를 추구하다보니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는지 더욱 궁금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라고 해서 언제나 꺼내 쓸 수 있는 아이디어 상자를 가진 것은 아니다. 나에게서 뭔가 특별한 비법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사실 별게 없다.


    관찰하면 모든 것이 소재다

    책이나 뉴스를 보다가, 혹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디어는 내게 온다. 그야말로 우연의 산물이다. 싱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 그런 것을 어쩌랴. 특별히 어디에 아이디어를 메모한다던가 하는 것도 없다. 그냥 머릿속에 담아두고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식이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다. 나는 남들보다 머리가 뛰어나게 좋거나 상상력이 무궁무진한 편은 아니다. 다만 호기심은 정말 많다. 언제나 세상 만물에 항상 관심을 두고 궁금해한다. 그렇게 관찰하다보면 의외로 이 세상에 평범한 사건도 평범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제의 연장이 아닌 새로움으로 가득 찬 스토리인 것이다.


    주위에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를 해대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대체 무슨 소리지? 하고 콧방귀를 뀌지만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하고 관심만 가져도 일단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모든 것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창의력은 그 다음 단계다.


    앞서 말했듯 작품을 할 때마다 분야와 소재가 바뀌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소재가 없어서 머리를 싸매거나 헤맨 적은 없다. 범죄, 자연, 사회 현상, 인간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다보니 관찰을 하고 그 결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여간다. 끊임없는 호기심이 만화를 그려도 그려도 질리지 않고, 힘든 작업을 끝내고 나서도 또 그리고 싶어서 손을 근질거리게 만드는 동력이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지?가 아니라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하지? 하고 순서를 결정하는 게 내 고민이다.


    같은 시작, 그러나 완전히 다른 결과

    당신은 이 세상에 왜 왔는가

    고래가 못 되어 슬픈 멸치

    바닷속에는 고래에서 멸치까지 수많은 물고기가 있다. 덩치 큰 고래에게는 고래의 삶이 있고 작은 멸치에게는 멸치의 삶이 있다. 멸치에서 고래까지 각자가 조화롭게 살아나갈 때 바다의 생태계는 이어진다. 바닷속 모든 물고기를 하나의 가치관으로 잣대질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멸치가 획일적인 기준으로 고래의 삶을 강요당한다면 비극이다. 멸치는 100번 다시 태어난다 해도 고래가 될 수 없는 작은 몸이다. 결국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자포자기할 것이다.


    왜 이 세상에 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멸치인지 고래인지 똑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자식에 대한 기대에 잔뜩 부푼 부모는 넌 고래야 고래! 하고 끊임없이 고래의 삶을 강요할 것이다. 그러나 고래 흉내를 내는 멸치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성공의 기준은 한 가지가 아니다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글재주가 워낙에 좋은데 실리를 따지다보니 일류 대기업 홍보실에 지원해 일하게 됐다. 그는 글 감각이 있기 때문에 좋은 홍보 자료들을 만들면서 성장했다. 그리고 차차 다른 업무 능력도 인정받아 사장까지 되었다. 아마 100명 중 95명은 그 사람의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설가가 되어서도 성공했을 수 있다. 쓰는 작품마다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까지 되어 콘텐츠가 갈 수 있는 최대한의 영역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똑같은 재능으로 대기업 사장이 될 수도 있고 유명 소설가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의 경로와 종착역은 무수히 많다. 예술적인 성취, 그리고 후대에 이름은 남기는 것을 성공의 척도라고 보는 사람은 후자를 성공으로 볼 것이고, 돈을 성공의 척도로 보는 사람은 전자를 성공으로 볼 것이다. 정답은 없다. 누구의 삶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삶인지는 주변의 평가가 아니라 본인의 몫이다.


    한 가지 기준으로만 성공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성공은 그 사람이 소설가가 되었는가 대기업 사장이 되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이었는가, 그 삶에 얼마나 충실하게 살았는가에 있지 않을까. 세상이 무엇을 권하든 강요하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걸로 성공한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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