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박승직상점 上卷

저   자
박상하
출판사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일
2013년 07월
서   재







  • 백년의 역사를 세운 최장수 기업, 두산. 최초의 근대 기업가 박승직을 만나다! 최초의 근대 기업가이며, 올해로 117년이 된 국내 최장수 기업 두산그룹의 창업주 이야기. 1896년 ‘박승직상점’이 종로 거리에 문을 연 순간, 이 나라의 기업사는 시작되었다. 당시 종로 거리에는 많은 상점이 존재했고 이름난 거상들이 즐비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 온 상점, 아니 기업은 ‘두산’이 유일하다.



    박승직상점 上卷


    제1부 젊은 날의 말늧

    달걀 같은 세상

    송파 장터에 다녀온 지 꼭이 열이틀 뒤에 승직은 끝내 가출을 감행하고 말았다. 자신을 떠밀어내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무작정 뛰쳐나온 것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어떤 작정을 하고서 고향 집을 나선 것도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한성 종로거리의 육의전으로 그 자를 찾아갔다는 점이다.


    물어물어 석유전으로 그 자를 찾아갔다. 한데 그 자는 석유전에 있지 않았다. 석유전에서 들은 얘기로는 그 자의 이름이 김만봉(金萬峰)이라는 것만을 알 수 있었을 뿐, 그만둔 지 벌써 며칠 됐다고 했다.


    낙심하여 석유전을 그만 돌아서 나왔다. 육의전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댔다. 저마다 갈길 바쁜 몸짓으로 오면가면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나 승직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딱히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이보게! 이보게나!”

    그럴 때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불러 세웠다. 아까 만났던 석유전의 그 행수였다. 뒤늦게야 서둘러 왔는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김만봉이 말일세. 그 자가 우리 전방을 떠나기 전에, 내게 이런 부탁을 하였네.”

    누군가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말을 꼭이 물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전방에서 일할 생각은 없는가?”

    그렇잖아도 만봉이 떠난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행수는 전방에 가서 얘길 하자며 앞장을 섰다. 그도 그런 행수가 싫지만은 않았다. 왠지 전방의 행수답지 않은 단정한 얼굴하며 엄격한 몸가짐, 무엇보다 거역할 수 없는 맑은 눈빛에 그만 넌떡 행수를 뒤따라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닷새 뒤, 희슥희슥 날이 샐 무렵 석유전에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각처로 행상을 떠나는 석유 등짐장수들로 마당이 비좁았다. “행상이 끝나거든 무엇보다 돈을 잘 간수해야 하네. 그리곤 곧장 전방으로 돌아오게. 수중에 돈을 지니게 되면 흔히 딴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 결코 한눈파는 일이 있어선 안 되네.”


    그리하여 개천(지금의 청계천) 길을 따라 도성을 벗어났을 즈음에는 막 일출이 시작되었고, 해가 둥실 떠올랐을 적에는 벌써 망우재 고개를 넘어 양주의 한 마을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가 이같이 생애 첫 장삿길을 망우재 너머 양주로 갔던 것은 전날 행수와 의논하여 작심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가정집에서 쓰는 등잔용 기름은 대개가 들깨기름이나 무명씨기름, 아주까리기름, 쇠기름 따위였다. 하지만 이런 기름들은 만들어 쓰는 데는 품이 많이 들었을 뿐 아니라, 그을림이 많고 불꽃이 여간 작은 게 아니었다. 이와 달리 석유라는 서양 기름은 번거롭지 않아서 좋았다. 더욱이 그을음이 적은 데다 불꽃이 매우 커서, 찾는 사람이 날로 늘고 있는 추세였다.


    그렇대도 밤새 행수와 의논하여 망우재 고개를 넘어간 것이 무엇보다 주효했다. 석유 행상들의 발길이 뜸한 망우재 고개를 넘어간 것이 보기 좋게 적중한 것이었다. 때문에 석유 행상이 모처럼 마을을 찾아왔다는 소문이 삽시에 퍼졌다. 또 그런 소문은 이내 골목 여기저기에서 등잔용 석유를 사려는 사람들을 떼떼이 몰고 돌아왔다. 그야말로 석유를 사려는 사람들이 그의 앞에 줄을 서야 할 지경이었다.


    뛸 듯이 기뻤다. 빈 통지게를 짊어지고서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가자. 어서 돌아가서 석유를 한바탕 더 떼어오자. 서두르면 오후 나절에 한 번 더 장사를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가련한 어머니에게로 한시라도 빨리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이윽고 종로 육의전으로 돌아온 승직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행수와 마주앉았다. 행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석유전의 거느림채 방안에서 피물 보따리를 풀어헤쳐 보였다.

    “석유 통지게를 메고 간 자네가 웬 피물 보따리인가?”

    행수가 물었다. 짐승 가죽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눈길이 싸늘했다. 승직은 망우재 고갯길에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 노인이 그랬단 말인가?”


    행수는 잠시 기다리라며 보따리를 챙겨들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삼각(일각은 15분, 곧 45분)이나 지났을까. 묵직한 엽전 뭉치를 탁자 위에 덜컥 내려놓았다. 늙은 피물 장수가 말한 열닷 냥이었다. 행수는 그 가운데 한 냥 사 전 두 닢을 따로 떼어내어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열닷 냥 가운데 본전인 열세 냥 오 전 여덟 닢을 뺀 나머지 돈이었다.

    “여깃네. 자네가 번 돈이니 자네 것이 아니겠는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지금껏 자신이 가져본 돈 가운데 가장 큰 돈이었다. 하지만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 행수는 다시금 엽전 이 전 다섯 닢을 내미었다. 그런 뒤 이제는 더 볼 일이 없을 테니 그만 고향 집으로 돌아가라고 나직이 말했다. 자신이 행수의 당부를 어기는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승직은 행수의 침소 방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속절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바위처럼 꼼짝 않고 앉아 꼬박 밤을 지새웠다.

    “대행수어른과 상의한 결과, 자네를 사흘 근신시키기로 했네.”

    사흘 동안에는 행상을 나갈 수 없었다. 석유전 거느림채를 모두 청소하라는 문책이 떨어졌다.

    “이쯤 했으면 그만 된 것 같네. 오후 동안에는 종로거리라도 나가 구경이나 하고 돌아오게나.”

    오전 청소가 모두 끝나자 행수가 한결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를 놓아주었다.


    종로거리는 지척이었다. 육의전 바닥을 벗어나자마자 거기서부터 곧바로 종로거리였다. 그리고 종로거리는 육의전 바닥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뻥 뚫려 있는 큰 길이 시원스레 눈 맛이 좋았다. 흥인지문(동대문)에서부터 돈의문(서대문) 앞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뚫린, 폭 56척(약 17미터)의 너비에 길이 15리(약 6킬로미터)길인 종로대로가 승직을 압도했다. 더욱이 잘 차려입은 양반들이 어찌나 많이도 오가는지. 그 위세에 눌려 도시 마음 놓고 길을 걸을 수조차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거느림채 안으로 들어서면서 불현듯 생각을 떠올렸다. 행수가 구경하라고 이른 건 어쩌면 종로거리가 아닐 수 있다. 종로거리가 아니라 그곳에서 흘러가는 세상 풍경을 바라보라고 일부러 그곳으로 보냈는지 모른다. 정작 거느림채를 청소해야 하는 문책이 아니라, 비정한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일부러 하루 동안을 주저앉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어서 행수를 만나봐야 했다.


    한데 대문 안으로 들어서다 말고 승직은 흠칫 놀라 멈추어섰다. 마당에서 행수가 자신을 기다리고 서 있었던 것이다.
    “…누가 찾아왔네.”

    “저를요?”


    저만큼 어둠 속에서 조용히 다가오고 있는 이는 놀랍게도 아버지였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서 찾아왔는지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 울먹울먹하는 목소리로 다가섰다. 그런 다음 아들의 소맷자락을 와락 잡아끌었다.


    “얘, 승직아. 그래 넌 농사일이 그리도 싫더냐?”

    아들은 아주 짤막히 대꾸했다. 하지만 너무도 명백했다. 다시금 가출할 수도 있음을 애써 숨기려 들지 않았다. 한데 아버지의 반응이 조금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그런 대꾸를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한 얼굴이었다.

    “…나으리께서 너를 보러 오실 게다.”



    제2부 껍질 바깥으로

    종잣돈 삼백 냥

    그가 땅끝 해남에서 삼백 냥이라는 종잣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온 1884년에는, 마침내 왕조의 안방 문 앞이랄수 있는 마포까지 개항장으로 열어주고야 말았다. 바야흐로 왕도 한성의 거리에는 외국의 상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바깥 세상으로부터 밀려든 변화의 풍경들은 갓 스무 살이 되어 고향 집으로 돌아온 승직의 젊은 혈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제야말로 둥지를 떠나 이소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고향 집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아버지는 그를 붙잡았다. 그러나 승직은 아버지의 뜻에 더는 따르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곁에 누워 있는 어린 자식들보다 논바닥에 심어놓은 벼를 먼저 생각하는, 그런 농사꾼으로 한평생을 살아왔으면서도 자기 전답이라고는 땅 한 뼘 없는 맨날 그 지경 그 꼬락서니밖에 되지 않은, 고작해야 남의 집 토지를 빌려 일 년 삼백육십 일 온 식구가 죽을 둥 살 둥 등골 빠지게 매달려봤자 겨우 끼니나 굶지 않을 옹색한 궁핍뿐인 농토에, 승직은 어떤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더구나 고향 집에서 불과 이십여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송파장터를 오가며 그 생기 넘치는 상거래 풍경을 어릴 적부터 보아오며 마음속 깊이 품었던, 그가 사또를 따라 땅끝 해남으로 내려가기 전에 이미 가출을 감행해 상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열고자 한 적까지 있지 않았던가. 비록 무거운 석유를 통지게에 짊어지고서 망우재 고개를 할딱할딱 넘어가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힘든 장삿길이긴 하였어도, 그렇대도 생각보다 적잖은 이윤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다시없는 용기였으며, 아직도 젊은 가슴을 뛰게 하는 뜨거운 불씨로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이제 적지 않은 돈까지 모아져 있는 터였다. 해남 관아에 머물 때 사또에게서 받은 녹을 한 푼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이 꼬박꼬박 맏형 승완에게 보낸, 삼백 냥이나 되는 종잣돈마저 쥔 채였다.


    한데 왠지 맏형의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고향 집으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나도록 맏형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맏형이 쓰던 방마저 네 살 위인 작은 형 승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맏형은 어딜 갔어요?”

    “소문 듣기론 무슨 전방을 차린 것 같더라. 한양의 종로 어딘가에서.”


    작은형은 궁금해 죽겠다며 맏형을 한 번 찾아가보라고 일렀다. 승직은 그런 작은 형의 등 떠밀기에 밀려 한성으로 올라가 맏형을 찾아 나섰다.


    한나절 가량이나 되었을까. 누군가 일러준 대로 종로 한길을 벗어나 피마 골목길 안으로 접어들었을 때 문득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다. 맏형이 그를 먼저 발견한 것이다. 맏형은 그를 반갑게 불러 세웠으나 한편 놀라움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빨리 땅끝에서 올라오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며 맏형은 난처해했다.


    “그런데 이 일을 어떡하면 좋으냐? 전방을 이제서야 열게 된 탓에 네 돈이 몽땅 물건으로 잠겨 있으니. 당장 회수하기도 쉽지 않고 말이다.”

    미안한 마음에 맏형은 잠시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텅 비어있는 전방 안을 속절없이 둘러보았을 따름이다.


    “서둘 것 없어. 작은형이 있긴 하지만 아버지가 농사일에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당분간 농사일을 거들고 있을게. 돈이 변통되는 대로 형이 나를 불러줘.”

    승직은 맏형을 안심시켰다. 기다려주기로 한 것이다.


    상략(商略)을 말하다

    돈이 마련되었으니 한양으로 올라오라는 반가운 전갈이 당도했다.


    맏형은 자기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했다. 마땅하게 생각해 둔 것이 없다면 그냥 전방에 눌러앉아 자신의 장사를 거들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생각 좀 해보고.”


    그 전에 먼저 만나볼 사람이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그런 뒤 대답을 들려주겠다며 맏형의 전방을 나섰다. 승직은 육의전의 석유전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행수를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행수는 개성상인들을 지금껏 부단히 주목해 왔으며, 또 그런 결과 그들로부터 대략 스무 가지 정도의 상술(商術)을 발견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상술 스무 가지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집이 세고 배짱이 두둑하다. 끈질기게 매달린다. 부지런하고 짜다. 분수를 알며 검소하다. 무조건 절약하여 모은다. 정직과 친절로 승부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약속은 지킨다. 신뢰와 믿음으로 차별화한다. 어려울 땐 서로 뭉친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모른 체하지 않는다. 돈을 추렴하여 선행에 쓴다.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불순한 자본과 결합하는 매판자본이 없다. 앞일을 내다볼 줄 안다. 기회는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경쟁자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과 상황 판단에 유의한다. 권력에 밀착하거나 결탁하지 않는다. 권력과는 가깝지도 멀리 하지도 않는다일세.”


    행수는 개성상인들의 스무 가지 상술을 다시금 다섯 가지 상략(商略)으로 묶어 설명했다. 다름 아닌 도전정신과 근검절약, 정직과 믿음, 협력과 동료 우선, 기회의 포착과 발굴, 권력과의 거리 유지가 그것이었다. 이를 좀 더 알아듣기 쉽도록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부언해 나갔다.


    “…무릇 상인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하네. 상인이 책을 읽어서 대체 어디다 쓸 것이냐고 반문할는지도 모르나, 나는 그리 생각지를 않네. 상업이 비록 미천한 말업(末業)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더라도 배우지 않고 능히 이 세상을 이길 수는 없는 법. 근자에 들어 장삿속에 어두운 농부들이 몇 해 흉년을 만나면 그냥 소를 팔고 말을 사서 장삿길에 나섰다가,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는 종잣돈마저 모두 잃고 길거리에서 굶어 죽는 꼴을 여럿 보았네. 비록 우리의 눈에는 잘 드러나 보이지 않을지라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자꾸만 변해가고 있는데, 이렇다 할 사전 준비도 없이 그저 단순한 열의만을 가지고서 장삿길에 나선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꼴이 될 수 있음이 아니겠는가.”


    승직은 서둘러 맏형에게로 돌아갔다.

    “많이 늦었구나. 한데… 너…?”

    맏형은 잠시 말을 잊고 바라보기만 했다. 도대체 누굴 만나고 왔길래 전연 딴사람이 되어 돌아왔느냐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어라고 딱 집어 말하긴 어렵다만. 아무렇든 네가 달라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달라졌어, 틀림없이.”


    제3부 1896년 박승직상점

    15년 만의 박승직상점

    “너도 소문을 들어 이미 알고 있을 테지?”

    멀리 북관 지방까지 원행 길에 올랐다가 두 달여 만에야 한성으로 돌아온 승직에게 맏형 승완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제는 육의전 무뢰배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며 맏형은 후련해 했다. 정말 누구나 마음 놓고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며 너털거렸다. 그러나 승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또 다시 북관 지방으로 떠날 원행 준비에만 골똘했다. 아직은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준비라니? 종로거리에 이만한 초가가 두 채나 있으면 됐지. 또 무슨 준비가 필요하단 것이냐?”

    그러나 승직은 아무렇게나 전방을 내고 싶진 않았다. 종로거리의 구석진 끄트머리께 자리한 초가라고는 하지만, 그저 물건이나 좀 들여놓고 앉아 손님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래 전부터 그가 구상해 오고 있는 것은 결코 그런 단순한 전방이 아니었다. 통지게와 당나귀에 개화 상품을 바리바리 짊어지고서 다시금 강원 경상 전라 평안도로, 멀리 북관 지방까지 원행만을 계속했다.


    물론 전날과 똑같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종로 육의전의 금난전권이 완전히 소멸된 마당에, 동시에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져가는 상계의 환경 속에서 그 또한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잖아도 때마침 종로 육의전의 금난전권이 폐지된다고 해서 배오개(지금의 종로4가)에다 포목 전방을 낼까 하고 있습니다. 하면 객주어른, 한양에 오시거든 저의 좌처를 찾아주시겠습니까?”

    “암은. 가다마다. 여부가 있겠는가. 이런저런 사람들로 시끌시끌한 세상에서 어디 박 상인만큼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이가 또 누가 있다고 내 마다하겠는가.”


    사람을 한 사람 알게 되면 길이 하나 더 늘어난다. 계산된 아첨보다는 잔꾀를 부리지 않는 의연함으로 차근차근 신뢰를 다져왔던, 맨 처음 상인의 길로 들어섰을 때 들려준 행수의 가르침은 그가 찾아가는 곳마다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갑오경장으로 종로 육의전의 금난전권이 하루아침에 소멸되고 말았음에도, 승직은 그렇듯 이태 동안이나 상기를 더 다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포목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점을 마침내 개점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나이 서른두 살이던 1896년 6월 그믐날이었다.


    ‘店商稷承朴’. 큼지막한 간판도 주문했다. 종로 저잣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말끔하게 다듬은 송판 위에 횡으로 굵직하게 쓴 상점의 간판도 떡하니 내걸었다.


    박승직상점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오랫동안 다져온 신뢰와 함께 사전 준비조차 단단했던 터라 별 어려움 없이 풀어나갈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눈 코 뜰 새가 없이 바빴다. 개점과 동시에 전국 각지의 포목 객주들을 대상으로 물품을 도매하느라 혼자의 힘만으론 감당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물건이나 좀 들여놓고 앉아 손님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하던 당초의 다짐대로, 개점 초기부터 공력을 들이고 있는 부분이 따로 있었다. 자신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 걸어다니며 일궈 놓은 과거의 시간들이 단순히 부지런함으로 충분했다면, 이젠 그러한 토대 위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다시금 부지런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찾아야 할 시점이었다.


    승직은 그것이 곧 상점을 중심으로 한 전국 단위의 판매망 구축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여력이 닿는 대로 포목 시장의 주거래 지역이랄 수 있는 곳부터 선점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황해도와 평안도를 비롯하여 강원도와 멀리 북관 지방에 이르는 포목 객주들과의 거래를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그 지역으로 가는 중간 거점이랄 수 있는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의 철원 ‧ 평창 등지에 박승직상점의 지점을 설치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오로지 포목 한 가지만을 취급해 오면서 온몸으로 체득한 판매망 확충이 그것이었다.


    첫 번째 말늧 ‘박가분

    승직의 아내 정숙은 입정동에 살고 있는 상나나골 할머니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숙은 상나나골 할머니가 만들고 있는 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곧 힘들어 하는 남편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정숙은 남편으로부터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내어 안채에다 공방을 만들었다. 공방이라야 상나나골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안채 사랑방이 고작이었다. 안채 사랑방에서 너더댓 명의 아낙들이 연일 떠들썩거렸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승직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러다 어쩌다 불황이 끝나면 그만 흐지부지되고 말리라 여겼었다. 그저 아내가 하겠다는 걸 애써 말리지 않으면서 화장분이 소량으로 만들어져 나왔고, 그렇게 만들어져 나온 화장분은 상점의 단골손님들에게 사은품으로 거저 나눠주곤 했다.


    그러면서 승직은 다시금 고민에 빠져들었다.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황 속에 날로 고민이 커져가면서,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는 심정으로 행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자신의 생지 말일세. 새끼 거미는 태어나면서부터 거미줄을 치는 법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자기 자신의 생지야말로 천지간에 둘도 없는 가장 확실한 자산이며 역량임을….’


    한데 알 수가 없었다. 행수가 이른 스무 가지 상술이며 다섯 가지 상략은, 또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여덟 가지 방법은 이미 익힌 뒤였다. 하지만 행수의 그런 가르침 가운데 단 한 가지, 바로 그 생지에 관해서는 십수 년이 흐른 이즘에까지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점을 개점하고 난 뒤 곤경에 처할 때마다 안달이 나서 여러 날을 두고 생각에 빠져도 보았으나, 생각에 빠져들면 들수록 마치 고승의 화두처럼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는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만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끓여온 차를 마시다 찻물 속에 살아 유영하는 것 같은 물고기 형상과 함께 지도무난이란 명문을 우연히 목격케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승직은 찻잔을 더욱 소중하게 아꼈다.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찻잔으로 애용하면서도 행여 깨트리거나 잃어버리지 않을까 애지중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였는지. 길은 멀지 않다는 찻잔 속의 명문이 어쩌면 행수가 이른 생지와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겹쳐들기 시작했다. 불황을 헤쳐 나갈 어떤 길을 찾고자 한다면, 꼭이 먼 데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먼저 자기 안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생각게 된 것이다. 그러다 머릿속을 벼락같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여보, 찾았소. 드디어 찾았소! 원래부터 알고 있었으며, 또한 멀리 있지 않다는 게 대체 무엇을 말함이겠소.”

    승직은 오직 화장분을 일컬었던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제야 길을 찾은 것 같다며 가슴 벅차했다.


    그렇게 탄생케 된 것이 박가분(朴家紛)이었다. 상표를 어여쁘게 지어야 한다고 아내는 한사코 바랐으나 승직의 판단은 달랐다. 무엇보다 신뢰를 중요시하여 그같이 이름을 지었다. 산에 들에 유난히 꽃들이 만발하던 1916년 봄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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