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나는 소세키로소이다

저   자
고모리 요이치(역자 : 한일문학연구회)
출판사
이매진
출판일
2006년 09월







  •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평전으로, 금전, 호적, 우정, 사랑, 영국 유학 등 다양한 요소들을 동원해 소세키와 그의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했다. 어릴 때 친부모와 양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 런던 유학 시절에 고향에서 죽어가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죄책감, 다섯 번의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



    나는 소세키로소이다


    1장 고양이와 긴노스케
    첫 소설

    메이지 38년(1905년) 1월, 도쿄제국대학에서 강사 노릇을 하던 나쓰메 긴노스케는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합니다. 이 기묘한 소설은 ‘소세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의 탄생을 기록한 첫 소설이라 할 것입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어쨌든 어둡고 습한 곳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다는 기억만 난다. 나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그는 서생으로, 모든 인간 중에서도 가장 영악한 종족이었다고 한다.


    가치체계가 완전히 다른 폐쇄된 두 세계, 즉 인간 세계와 고양이 세계가 고양이가 하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의 의식 사이에서 교통(交通)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닫힌 두 세계가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름은 아직 없다”라는 두 번째 문장에 그 상태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중학교 선생인 구샤미의 집으로 우연히 들어가고 일단 그 집에서 길러지는데, ‘주인’인 구샤미 선생은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습니다. ‘나’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 덕분에  인간 세계와 고양이 세계라는 영역은 서로 닫힌 채로, 다시 말해 이질성과 차이성을 유지한 채 교통할 수 있게 됩니다.


    한편 앞에서 인용했던 책 첫머리의 첫 단락으로 돌아가 보면 ‘나’에게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기억’이 없습니다. 느닷없이 이족(異族)인 ‘인간이라는 종족’과 함께 있는 모습과 거의 같은 형식으로 소세키는 자기 자신인 긴노스케의 성장 내력을 상당히 나중에 고백합니다.


    나쓰메 긴노스케는 게이오 3년(1867) 2월 9일, 아버지 나쓰메 고헤나오카쓰(당시 50세)와 어머니 치에(당시 나이 42세) 사이에서 나쓰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양친은 긴노스케가 태어난 사실을 감추기라도 하듯이 다른 집에 양자로 보냅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야옹야옹 울고 있다”라는 ‘기억’의 근원에 이족의 모습밖에 없다는 고양이의 고백은 긴노스케가 철이 들 나이가 되어 나쓰메 가로 돌아온 후에 들었던 이야기와 그대로 겹쳐집니다. 소세키는 고양이인 ‘나’의 말을 빌어 긴노스케의 가슴속에 맺혀있던 출생과 양자의 경험을 둘러싼 굴절을 표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긴노스케는 나쓰메라는 성을 가진 친부모가 있는 집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긴노스케라는 이름 위에 양자로 간 적이 있는 가족의 성인 시오바라라는 호적상의 성을 반드시 적어 넣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긴노스케의 큰형과 작은형이 폐결핵으로 목숨을 잃자 메이지 21년(1888) 1월 29일, 아버지 나오카쓰는 긴노스케를 시오바라 가에서 나쓰메 가로 복적시킵니다. 아홉 살까지 양육했다는 이유로 시오바라 쇼노스케는 그때까지의 양육비를 나쓰메 가에 청구합니다. 친자식에 대한 애정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하여, 오로지 가문의 재산을 지켜내기 위해서, 긴노스케는 돈의 힘으로 시오바라에게서 나쓰메로 되팔려온 것입니다.


    분열된 두 개의 성뿐만 아니라 그 둘로 분열하는 하나의 이름, 즉 긴노스케라는 이름을 가진 그 청년은 결정적인 위화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긴노스케란 그를 사는 사람인 나오카쓰가 명명했던 이름이며, 또한 파는 사람인 쇼노스케가 호적에 등록한 이름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정을 함께 고려해본다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제1회 말미에서 “평생을 이 교사의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마칠 작정이다”라는 고양이의 결의를 밝힌 대목에서, 나쓰메 긴노스케라는 남자가 겪은 상당히 뿌리 깊은 굴절이 새겨져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주인의 명명을 계속 거부하는 고양이가 긴노스케라고 한다면, ‘이름 없는 고양이’의 이야기로 유명해진 소세키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자신을 명명하고, 그 필명을 평생 쓸 이름으로 선택한 것이야말로 과거의 굴절을 반전시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시키와 소세키
    나쓰메 긴노스케가 소세키라는 필명으로 활자매체에 최초로 발표한 언문일치체의 산문은 1901년 4월, 폐결핵으로 병상에 있던 대학친구 마사오카 시키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입니다. 이 글은 런던 유학 중이던 긴노스케가 생활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써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시키는 이 편지에 ‘런던 소식’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저자를 소세키라고 밝혀서 잡지 「호토토기스」 5월호에 게재했습니다.


    소세키라는 필명의 작가가 이 세상에 태어날 기회를 만들어 준 시키는 「런던 소식」과 비슷한 것을 몇 편 더 써줄 수 없겠느냐고 긴노스케에게 의뢰했습니다. 결핵에 걸려 늘 바라던 서양행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시키에게 긴노스케의 편지는 ‘직접 서양에 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무리한 부탁이겠지만 말일세)”라고 해가며 긴노스케가 유학중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몸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한 번만 더 「런던 소식」과 같은 편지를 써줄 수 없겠냐고 간곡히 부탁했던 것입니다.


    시키의 1901년 11월 6일자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쓰고 싶은 말은 많지만 괴로우니 용서해주게.” 시키의 간곡한 마음은 병자가 쓴 글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또박또박 쓴 글씨 그대로 런던의 긴노스케한테 전달되었을 터입니다. 그러나 『문학론』의 구상과 준비에 들어간 긴노스케는 “바빠서 그러니 용서해주게”라는 답장을 보내버렸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용서해주게”라고 썼지만 시키의 상황과 소세키의 상황 사이에는 결정적으로커다란 낙차가 있음을 소세키 자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유학 기간도 끝나서 귀국하려던 1902년 11월쯤, 시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다음에야, 정말로 쓰려고 맘만 먹었다면 쓸 수 있었다는 회한의 정이 몰려왔고, 친우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 기억으로 새겨진 편지의 마지막 구절 때문에 긴노스케는 늘 ‘가엾은=개운치 않은’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병상에서 자신의 편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지새웠을 시키를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는 의지 아닌 의지에서 나온 방법이 바로 『문학론』 집필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식적으로 시키를 죽은 자로 치부함으로써 ‘가엾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편지를 쓰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렇게 내적 반성을 했을 때 병으로 죽은 친구를 자신이 ‘죽이고 말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 같은 죄책감은 과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학창시절 때 만난 두 사람의 관계 전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하이쿠를 주고받는 절친한 사이였지만 사실 마사오카 시키는 무사, 즉 사족 계급 출신인데 반해, 나쓰메 긴노스케는 에도의 군주 집안, 즉 ‘평민’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이 출신성분에 얽매이면서도 대등하게 ‘문학’에 대해 논쟁을 벌인 것을 보면 두 청년 사이에는 시대를 함께 걸어간다는 동반자적인 감각이 농후하게 존재했던 듯합니다.


    아마도 긴노스케는 소세키라고 서명할 때마다 기억 속에서 시키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세키라는 서명이야말로 언제나 시키와 2인3각을 이루며 언어를 산출하는 하나의 장(場)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세키라고 서명한 대부분의 소설을 보건대, 시키가 늘 주장했고 긴노스케가 자각적으로 전승한 사생문을 여러 형태로 변주한 작품들로 보이니까요. 또 소세키라고 서명한 모든 소설의 근저에는 삶과 죽음을 둘러싼 문제가 배태되어 있다는 점에도 시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해야겠지요. 이미 죽어서 존재하지 않는 타자일지언정 기억 속에서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자기 내부의 타자로서 시키는 소세키와 더불어 계속 살아갔던 것입니다.


    돈과 권력
    나쓰메 긴노스케/소세키는 생애에 걸쳐 금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런던 유학시절에도 학비 부족에 몹시 시달렸고, 귀국 후에도 늘 돈 마련에 쫓겼으며, 도쿄제국대학 강사가 되고 나서도 생활비 때문에 세세하게 신경을 쓰면서 가계부를 썼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제국대학 교수를 그만둘 결심을 한 주된 이유도 「아사히신문」이 제시한 보수, 그러니까 경제적인 안정에 있었습니다.


    1914년 11월 25일, 소세키가 학습원(황족과 황족의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도쿄에 창설한 학교)의 교직원과 학생들의 친목조직인 보인회에서 한 강연으로, 나중에 『나의 개인주의』라는 제목으로 활자화된 글에서 소세키는 자본주의적 인간관계 근저에는 돈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인간의 정신을 매매하고 인간의 도덕심과 인간의 혼을 타락시키는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표명했습니다. 소세키는 인간의 정신이나 도덕심, 심지어는 혼까지도 화폐에 의해 사고 팔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삼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소설가로서 ‘소세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중심 테마인 화폐와 상품의 문제를 소설의 인간관계를 둘러싼 주요 동력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주요한 사건의 하나는 구샤미 선생의 제자인 물리학자 미즈시마 간게쓰, 그리고 가네다라는 성을 가진 벼락부자의 딸 사이의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소동입니다. 결과적으로 간게쓰는 가네다의 딸 도미코와 결혼하지 않고 고향에 있는 아가씨와 약혼하며, 도미코는 구샤미 선생의 다른 제자로서 실업가를 꿈꾸는 다다라 산페이와 약혼합니다.


    여기에서 돈의 힘을 빌려 구샤미 선생에게 갖가지 싫은 짓을 해대는 가네다 집안이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돈으로 사려는 행위를 상징합니다. 이 밖에도 이 작품에서 소세키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보험 문제, 인격을 형성하는 교육이 투자에 불과하다는 것, 또는 사교계에 드나드는 젊은 여성들이 자신을 남자에게 비싸게 팔아넘기려는 모습 등등, 인간과 화폐를 둘러싼 온갖 현상을 비판적으로 파악해갑니다.


    소세키가 쓴 소설 중에 『한눈팔기』만큼 돈과 인간관계를 둘러싼 담론이 풍부한 작품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한눈팔기』가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과 연관됩니다. 이 소설은 분명하게 최초의 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쓰기 시작한 무렵, 즉 자신의 말을 상품으로 만들어 돈과 교환하기 시작한 무렵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는 갑자기 나타난 양아버지 시마다가 갈수록 돈을 염치없이 요구하므로 그와 인연을 끊기 위해, 양자에서 본가의 자식으로 호적을 복귀할 때 겐조가 쓴 휴지조각 같은 문서를 겐조가 백 엔에 산다는 것입니다. 월급 백이삼십 엔을 버는 대학강사인 겐조가 문서를 사들일 가욋돈을 마련하는 것은 ‘아아, 아아’ 하면서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써낸 글, 그러니까 대학강사 이외에 글을 돈으로 바꾸는 일을 통해서입니다. 『한눈팔기』는 언어가 상품이 되는 순간의 기분 나쁨을 더할 나위 없이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파는 사람인 시마다는 당초 휴지조각 같은 문서에 3백 엔이라는 값을 붙였던 듯하나, 시마다의 대리인은 문서를 팔아넘기려고 찾아온 단계에서 먼저 겐조에게 값을 물어봅니다. 그리고 겐조가 “백 엔 정도 되겠군요” 하자 그는 “3백 엔 정도 주셨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상품이 될지 말지조차 모르는 휴지조각 같은 문서에 먼저 겐조가 값을 매김으로써 그것은 상품이 되며, 다음 단계에서 파는 사람이 매매 희망가격을 제시하는 전도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휴지조각 같은 문서를 상품으로 파고사는 시장이 형성되고, 시마다가 파는 사람이 되고 겐조가 사는 사람이 되어 문서는 백 엔짜리 상품이 되고 맙니다. 결국 우선적으로 수요가 생겨서 상품이 공급되고 가격이 결정된다는 인과론이 아니라 부조리하고 근거 없는 상품이 생성되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실은 겐조가 ‘쓴 글’, 다시 말해서 소세키가 쓰고 있는 소설에 매긴 가격도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하고 근거 없다는 것이 앞의 교환과정을 통해 또렷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현재 일본인이 쓰고 있는 천 엔 지폐에 초상이 찍혀 있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보여주는 명확한 인식을 읽어내야 할 것입니다.


    소세키의 여자와 남자
    『갱부』의 주인공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소세키의 초기 소설에는 마치 여성을 혐오하는 듯 배제하려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그 가운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제11회에서 구샤미가 16세기의 영국 작가 토머스 내쉬를 인용하면서 “아내는 우정의 적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잘 읽지도 못하는 라틴어를 비롯해 그리스 철인들의 여성혐오 담론을 왈가왈부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이후 소세키의 작품 세계는 기존의 성차 개념을 뒤흔드는 형태로 이성애 관계와 동성애 관계를 고착시켜 나갑니다. 어쩌면 소세키 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은폐되는 동성애 공포와 여성혐오라는 이중 갈등이 항상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소세키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인 『한눈팔기』에는 갑자기 겐조 앞에 모습을 드러내 조금씩 복선을 깔면서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양부와의 거래가 세로축에 놓이고, 그것을 둘러싼 겐조의 누이 부부나 형과의 상담, 대학 교사를 하고 있는 겐조의 일상생활이나 아내와의 관계가 가로축에 놓입니다.


    겐조의 현재를 둘러싼 사항으로 가장 많이 기술된 것은 어긋남을 반복하는 아내 오스미와의 일상생활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세부적인 일상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 사이에 깊은 도랑이 생기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내인 오스미의 인식을 겐조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부부가 엇갈리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결혼하기 전 오스미가 속해 있던 가정환경 속에서 형성된 남성상과 남편이 보여주는 현실적 남성상이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메이지라는 시대의 역사성을 생각해보면, 오스미의 부친은 ‘입신출세’의 현실이 국가의 정치적 중심과 관계가 있는 메이지 1세대의 이상을 훌륭하게 체현한 남자였습니다. 그러한 부친과 그 주변의 남성들로부터 ‘남성에 대한 관념’을 추출한 오스미가 보기에, 매일 대학강의가 끝나면 서재에 틀어박혀 노트를 메우고,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는 겐조가 ‘남자’라는 틀에 들어맞지 않았을 것은 당연합니다.


    오스미는 “만약 존경받고 싶으면 그만큼 내실을 갖춘 사람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하고 말할 정도로 명확한 요구를 가진 신여성이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겐조가 ”처음부터 남편만을 위해 존재하는 아내를  당연히 여기는“ 구식 남자였다는 사실도 화자는 상당히 엄격하게 지적합니다.


    소세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메이지 시대에 들어 새롭게 형성된 근대적인 부권 사회, 학교나 군대, 관료조직이나 회사 등과 같은 남성적 동성사회 관계로부터 모두 낙오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진화론이라는 틀에서 보면 소세키의 남자들은 분명히 ‘퇴화’한 남자들입니다. 그러나 소세키는 메이테이의 입을 빌어 그것을 ‘개성’이라 규정함으로써 진화론적인 틀에서 일탈한 것으로 배제하지 않고 자기 소설의 중심에 놓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소세키의 동시대적 급진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과 전쟁
    전적으로 역사적인 우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나쓰메 긴노스케/소세키의 생애는 결과적으로 다섯 차례의 전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진전쟁(1868), 서남전쟁(1877),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입니다. 나쓰메 긴노스케/소세키는 1867년에 태어나 1916년에 죽었으므로 국민국가의 성립을 둘러싼 내전과 제국주의 전쟁의 시대를 꿋꿋이 살아냈던 셈입니다.


    ‘20세기’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했던 ‘소세키’가 다섯 차례의 전쟁을 세계사적 문맥에서 보았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부터 1년 반 뒤, 생애 최후의 해 정월에 소세키는 “독일이라든가 불란서라든가 영국 따위의 나라 이름이 내게는 이미 중요한 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독일 대 연합국의 전쟁으로 보지 않고, ‘군국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세계적인 규모로 대결하는 것으로 인식하려고 했습니다.


    한편 나쓰메 긴노스케가 태어날 무렵 구미에서 탄생하고, 아시아에서는 메이지 일본이 그 대열에 합류한 국민국가는 서서히 제국주의적인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자기 개성의 자유를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같은 정도로 그리고 동시에 타자에 대해서도 그 개성을 마음대로 발전시킬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개인주의의 윤리성을 ‘국가주의’와 ‘세계주의’ 안에서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각각의 국가나 민족?부족의 ‘개성’을 서로 인정한다면 어떤 국가가 자신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개인주의라는 윤리를 국가 간의 윤리로 삼을 때, 분명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논점이 눈에 띄게 두드러집니다.

    ?

    또한 소세키가 말하는 ‘자기본위’의 개성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단 하나의 ‘개성’입니다. 허다한 개성의 차이는 절대적입니다. 이 개성의 차이는 국가나 민족, 다양한 문명의 존재방식에도 들어맞을 것입니다. 소세키의 ‘자기본위’는 절대적 차이를 관철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그러한 삶은 절대적 차이인 자기를 쉼 없이 차이화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절대적 차이도 차이화된 자기도 결코 안정된 지속 안에 존속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것들은 현실과 부딪히는 순간 생겨나서는, 생겨나자마자 곧장 변용을 강요받는 현상입니다. ‘소세키’란 그러한 위태로운 현상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