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Oprah Winfrey and the Glamour of Misery

저   자
에바 일루즈(역자 : 강주헌)
출판사
스마트비즈니스
출판일
2006년 06월







  •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 쇼>의 제작자이자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 그녀가 텔레비전, 출판, 음악, 영화, 자선사업, 교육, 건강 및 사회의식의 영역에서 만들어낸 '오프라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여자


    고백함으로써 자유를 얻다
    오프라 윈프리는 다양한 방면에서 성공을 이뤄냈다. 그러나 국제적인 명사가 된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 이야기는 다른 유명인사들의 성공담과는 사뭇 다르다. 1986년부터 2001년까지 다양한 대중잡지에서 그녀를 다룬 200여 건이 넘는 기사들이 오프라의 삶에서 주목한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프라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사건은 가족의 파탄, 냉담한 어머니, 엄격한 아버지 그리고 성폭력이었다. 그녀의 삶을 다룬 모든 기사가 이런 역경과 성폭력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오프라는 참담한 가난과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체중과의 전쟁, 자선행위와 함께 약혼자, 절친한 친구, 가족 등과의 관계도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위의 목록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녀의 사업능력을 분석한 한 기사에서 말하고 있듯이 오프라에게는 삶이 곧 브랜드라는 점이다. 오프라의 명성은 그녀의 삶에서 실패한 부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활용한 것에서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지독히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았지만 저널리스트들은 이런 물질적 역경을 대수롭지 않게 언급하고 지나간다.


    오프라는 성폭행을 당해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성폭행을 당했고, 그런 사실을 감추지 않고 공개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그녀의 성공은 문젯거리로 점철된 힘겨운 삶을 이겨낸 치유의 승리로 비춰진다. 따라서 오프라의 경우에는 스타로서 자아를 만들어간 과정이 스타로서 자아를 해체하는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요컨대 이 세상이 여성에게 안겨준 불행들의 전도된 모습을 남성적인 성공 세계에 비추면서 오프라는 유명해졌다.


    ‘남성의 성공 이야기’와 달리, 오프라의 이야기는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한 자아에 대한 이야기, 즉 무엇이 성공을 우리에게 안겨주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시킨 문화적 메커니즘은 정확히 무엇일까? 그녀의 삶과 영혼에서 실패한 부분들을 밝히는 것이 그렇게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문화가 실패를 긍정적 경험으로 변환시키는 문화적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다면 실패의 이야기가 유명인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가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갈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결점들을 이른바 ‘치유적 전기(therapeutic biography)라는 문화적 코드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오프라는 실패를 승리와 자기 극복의 이야기로 재순환시키는 방식으로 실패를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1995년 7월, 한 여자가 마약보다 남자에게 중독되었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오프라는 “그래, 바로 내 이야기야. 내가 바로 그렇게 느꼈어!”라고 고백하며 그녀가 남자와 마약 모두에 똑같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는 오프라 윈프리가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녀의 페르소나를 구축해가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런 사건은 그녀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곧 많은 사람이 주목하게 될 ‘이야깃거리’가 되는 고백으로 갖는 기회이고, 두 번째는 ‘해방’의 이야기로서 갖는 기회가 된다. 공공의 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행위를 통해 그녀의 삶에 상처를 주었던 한 요소를 심리적으로 완전히 치유한다. 이는 그녀가 개인적인 삶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심리적 사건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드러내는 행위는 “이야기는 창조되는 바로 그 순간에 가장 창조적이고 혁명적이다”라는 토니 모리슨의 주장을 증명해주는 좋은 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처럼 ‘혁명적 자전’을 만들어왔으며, 그와 동시에 그 자전은 치유라는 문화적 코드를 통해서 윈프리라는 인물을 창조해왔다.



    고통을 승화시킨 오프라 윈프리의 매력


    눈물과 포옹으로 시청자를 배려하다
    사회학자 로버트 우스나우에 따르면 지지 그룹의 리더는 ‘배려의 윤리’를 발휘하고 주인과 손님의 경계나 리더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런 모습은 오프라가 청중과 갖는 상호관계와 무척 유사하다. 오프라는 ‘눈물과 포옹’으로 청중과의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관계를 서슴없이 연출해보인다. 이른바 ‘배려의 윤리’였다. 또한 오프라는 게스트와 구체적인 관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방청객을 토크쇼라는 장르의 한 부분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여러 장치를 사용했다.


    첫째, 시청자들이 매달 보내는 수천 통의 편지에서 제작팀은 알맞은 주제와 게스트를 선정했다. 둘째, 오프라는 게스트와 방청객을 뚜렷이 구분하지만 방청객에서 정기적으로 논평을 요구하고 그들의 논평을 게스트의 이야기에 덧붙이면서 방청객을 토크쇼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는다. 셋째, 오프라의 토크쇼에서는 청중의 피드백이 토크쇼에 반영되며 쇼를 역동적으로 구성하는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청중의 피드백 자체가 볼거리가 된다. 넷째, 오프라의 쇼는 게스트의 가정과 삶에서 일어난 변화를 추적해서 ‘가상의 개인 공간’을 만들어 게스트의 평범한 삶을 토크쇼와 긴밀하게 연결시켰다. 따라서 게스트가 출연한 이후에도 토크쇼가 그의 삶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도움을 주는 형식을 띤다. 다시 말해 <오프라 윈프리 쇼>는 스스로 만들어낸 청중을 끝없이 재사용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오프라의 문화 공식은 매개체와 관객, 텔레비전 스튜디오와 가정, 게스트와 시청자, 사회자와 청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오프라의 쇼는 갈등이나 문제 제기, 갈등 부각, 해결책 제시 등과 같은 기본적인 구조에 따라 진행된다. 이러한 구조는 인물의 행위가 아니라 논쟁과 다툼 및 의견의 교환이란 형태로 이루어진다. 오프라 윈프리의 탁월한 능력은 다양한 유형의 발화들을 하나의 완전한 구조로 치밀하게 엮어내는 데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발화, 규범적 발화,자전적 발화가 뒤엉키면서 당면한 이슈를 제기하고 복잡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해결책을 찾아간다.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가 갖는 남다른 특징 중 하나, 그리고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열쇠는 그녀 자신을 도덕적 행위자, 달리 말하면 경제적 이익보다 영적인 성장에 관심이 더 큰 사람으로 보이게 처신한 것이었다.


    2002년 4월 오프라 윈프리는 독서에서 더 이상 영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유로 유명한 북클럽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서 오프라가 경제적이고 도구적인 관점보다 도덕적 관점에서 모든 행위에 접근한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그녀의 성공은 그녀가 사람들에게 얻은 신뢰에 바탕을 둔 것이고, 이런 신뢰는 그녀가 도덕적으로 행동한 덕분에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오프라 윈프리 쇼>는 사회자와 청중을 더 중요시하고, 사회자와 청중 사이의 공생적 관계를 만들어간다.



    실패와 고통으로 승화된 카타르시스의 미학


    실패라는 질병을 이겨내는 힘
    토크쇼가 시작되기 전과 토크쇼가 진행되는 동안에 관례화된 주된 담론적 관습은 스토리텔링, 특히 자전적 스토리텔링에서 볼 수 있는 관습이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폭행당한 자아나 불행과 같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그 주제는 각 구성요소를 적절히 배열해서 총체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다양한 이야기 틀 안에서 구조화된다. ‘틀짜기(framing)는 어떤 이야기의 주제가 갖는 특별한 사회적 의미를 청중에게 부여하는 문화적 도구이다. 예컨대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에게 피해를 주는 사회적 문제로 틀이 짜이고,가족 사이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 혹은 친자식을 성폭행의 피해자로 선택한 충동의 심리적 원인분석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오프라 윈프리가 요구해서 만들어가는 신상 이야기들의 구조는 어떤 걸까?


    오프라 윈프리의 이야기는 도덕적 규범이나 법적 규범, 혹은 성실한 자아와 관련된 규범의 위반으로 시작된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들은 관련된 도덕규범들, 예컨대 이야기의 주된 관심사가 당사자들에게 일어나게 될 사건에 있는 이야기 코드에서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따라서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딸에게 배신당한 어머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오랫동안 관계를 가진 딸을 둔 어머니의 경우 이 이야기는 딸과 어머니를 맺어주는 의무에 관련된 도덕률의 위반,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자아를 위협하는 위반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는 두 가지 주제가 뒤엉켜 있다. 하나는 도덕적이고 규범적 코드(딸이 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이고, 다른 하나는 치유적 코드(이 사건이 어머니의 심리적 건강을 위협한다)이다.


    규범적 행위에 속한 것과 자아에 관련된 것이 뒤엉키는 형식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들의 차별적 특징이다. 도덕적 코드, 즉 도덕률이 우리를 타자와 결속시키는 규범과 의무를 가리킨다면 치유적 코드는 한 사람의 신상 이야기가 ‘건강한’ 심리 모델과 어떤 면에서 다르고 어떤 면에서 일치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예컨대 딸과 어머니의 관계를 규제하는 도덕률 때문에, 또한 섹스 파트너의 그런 교환을 금지하는 규범 때문에 딸의 배신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오프라 윈프리의 이야기까지 된 이유는 사뭇 다르다. 도덕률의 위반이 있으면서 자아가 그 자체로 문젯거리로 발전하며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된 때문이다(어머니는 딸을 용서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못하다). 따라서 규범의 위반으로 자아가 타인이나 자신에 의해 상처받게 될 때 도덕률은 치유적 코드를 만들어낸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아가 그런 상처에서 벗어나 회복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이런 이야기의 소급구조를 미래지향적 구조로 전환시키려 애쓴다.


    그리고 치유적 이야기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주어지면, 그들은 인과관계의 틀과 원인, 향후의 계획을 제시하면서 이 이야기식 담론을 규격화하는 데 한 몫을 한다. 달리 말하면 치유적 이야기의 코드는 어떤 문제라도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게 할 수 있다. 치유적 전기에서 고통은 이야기의 중심 ‘매듭’이고, 이야기의 동기가 되는 것이며, 이야기가 전개되어 의미를 갖도록 도와준다.


    오프라는 분노와 연민이란 감정을 가장 흔히 사용한다. 정의에 대한 집단의 규범이 무시되었다는 인식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면 연민은 윤리적 규범이 무시된 탓에 고통받는 사람을 향해 주어진다. 따라서 이야기 형식은 게스트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의 감정을 구체화시키고, 시청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어넣기 위해서 수사적 도구를 사용한다.



    오프라와 시청자 그리고 어울림


    변화를 위한 몇 가지 방법들
    오프라 윈프리는 스튜디오에 있는 참여자들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라고 독려하기 위해서 능동적 수법을 사용한다. 오프라는 시청자들에게 “폭력적인 남편은 버려도 괜찮다”며 도덕적으로 정당화시켜주고, 그런 남편을 버리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식으로 여성이 삶에서 부딪히는 구체적인 상황까지 개입한다. 또한 가족의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면을 여성에게 부각시키면서 여성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불변의 것’은 자아, 즉 건강하고 자립적인 자아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은 오프라의 세계관을 이루는 중심축인 동시에, 오프라가 게스트나 시청자의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의 열쇠이기도 하다. 자아에 대한 생각을 피력해가면서 오프라는 독창적이지는 않아도 잘 정돈된 세계관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오프라가 제시하는 중요한 생각 중 하나는 “모두가 위대해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오늘 시작하라! 당신을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투자함으로써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갈 수 있다”이다. 오프라는 이런 자기 변화를 독려하기 위해 게스트의 외모 바꾸기, 능동적 언어, 그리고 치유적 인터뷰 기법을 사용한다.


    오프라는 게스트에게 어떤 감정을 실제로 느끼는지 명확히 하라고 촉구하고, 그런 감정들을 구분해서 그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내도록 유도한다. 오프라는 이런 식으로 게스트를 자기 반성의 과정으로 끌어간다. 요컨대 오프라는 게스트와 청중에게 그들의 감정과 가치관에 대해 돌이켜보기를 요구하면서 그들의 자아상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오프라의 세계관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자기계발정신은 두 가지 문화 영역을 활용하고 결합시킨다. 하나는 감정의 건강에 속하는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자립의 영역이다. 미국 문화에서 후자, 즉 자립은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능한 자아를 가리키는 핵심어이다.


    현대의 자기계발 정신은 과거 200년 동안 가정의 안팎에서 감정을 억제해야 하는 ‘감정노동(emotional work)을 주로 맡아온 여성을 겨냥하고 있다. 여성은 영감과 위안을 얻고 설명과 자기확신을 찾으려고 자기계발 서적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자기계발 운동이 여성에게 호응을 얻은 직접적인 이유는 자기계발 서적이 자기관리기법을 제시하고, 여성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갈등을 해소시켜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삶의 많은 영역에서 변신을 거듭하는 자아를 요구하는 오프라의 자기계발정신도 여성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여성에게 주어진 두 문화 영역, 즉 자유와 자립이란 문화와 친밀함과 배려라는 문화를 포함하며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오프라는 자기 관찰과 감정 조절을 통해서 자아가 감정의 독립을 이루어낼 수 있고, 감정의 독립은 더 강하고 더 나은 애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계발정신의 이런 이중적 면모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유감없이 전개되면서 자립을 강조하는 동시에 상처받은 연대감을 회복시키고 있다.



    세상을 구하는 참모습, 고통과 자기계발


    고통의 치료제를 온 세상에 퍼뜨리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가족 중 여성의 경험과 관점에서 관찰된 사회적 고통의 한 형태를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또한 오프라의 토크쇼는 미국의 고통 문화를 전 세계에 ‘수출’한 최초의 텔레비전 장르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만들어낸 고통에는 피부색도 없고 계급도 없다. 문화적 특이성도 없다.


    이 같은 이유 외에도 <오프라 윈프리 쇼>가 하나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전 세계로 확산된 미디어 구조를 띠게 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오프라가 토크쇼에서 방영된 신상 이야기의 공식을 끊임없이 쪼개고 개인화시켜 표준화시켰기 때문인 듯하다. 오프라의 토크쇼는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시청자들의 개인적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도덕적 소명에 충실했다. 오프라의 쇼는 더 이상 미국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문화 구조가 되었다.


    이제 오프라 윈프리 자체가 범세계적인 제국이 되었지만 그녀는 토크쇼를 여전히 단편화시키고 개별화시킨다. 오프라는 텔레비전을 과거 어느 때보다 개별 가정과 접촉하는 테크놀로지로 만들어감으로써 텔레비전의 활용 가능성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크게는 텔레비전, 좁게는 <오프라 윈프리 쇼>의 역할은 미국 사회에서 심리학과 심리학자가 떠안은 역할이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 문화는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 이때 심리학자들은 국가, 교육, 결혼, 기업, 군대 등과 같은 주요한 사회적 제도에 참여해서 갈등을 조절하고 조화로운 사회적 관계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로 끊임없이 도전받고 자기 관리를 요구하는 자아를 위해 상업적으로 생산한 치유의 지침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나의 페르소나이자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오프라 윈프리는 이런 치유 혁명의 산물인 동시에 매개체이다. 심리세계를 다루는 목적을 띤 이론과 언어, 조직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뒤엉킨 문화로 해석되는 치유 문화가 점점 하나의 언어적 형태를 갖추고, 심지어 이제는 자아, 고통, 치유는 그런 언어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오프라 윈프리 쇼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프라 윈프리의 자기계발정신이 바꾼 문화
    오프라는 후기 근대사회에서 곤경을 겪는 자아의 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문화적 차원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아비투스(habitus,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내면화된 성향의 체계)를 이루는 ‘대처 전략(coping strategy) 중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첫째, 오프라 윈프리는 대본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토크쇼를 자유로운 대화 형식으로 끌어감으로써 대화로 진행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이런 특징은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흑인은 아프리카에서부터 가져온 전설이 풍부하고, 애초부터 문자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대체로 말솜씨가 뛰어난 편이었다. 또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말’은 아프리카의 문화와 기억을 유지하는 데, 또 백인 문화의 억압에 저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둘째,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의 특징은 이성과 감정의 혼합이다. “흑인 목사들은 성경 이야기를 정교하게 다듬어서 전해주며 신도들의 감정을 건드려 그들에게 기쁨의 눈물을 쏟고 마음껏 외치도록” 만든다. 오프라 윈프리는 남부지역의 교회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그 문화에 뿌리 내린 수사법을 배웠다. 오프라는 감정을 드러내고 대화 중에 감정을 끼워 넣는 능력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말하는 법’에서, 즉 감정을 중요시하는 문화 스타일에서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성과 감정의 결합이 현대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문화적 특징이 되면서 오프라는 감정적 화법과 전문가의 조언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이런 특징을 토크쇼에 잘 반영하고 있다.


    셋째, <오프라 윈프리 쇼>가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에 대한 경외심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도 책과 학습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물려받았다. 글의 해독이 자유를 안겨준다는 20세기에 만연된 믿음 때문이었다.


    넷째,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는선과 악의 문제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무척 도덕적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도덕관과 달리, 그들의 문화는 선과 악의 범주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도덕적 문제에 유연하면서도 복합적으로 접근한다. 요컨대 도덕성 여부는 일반적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의 영향으로 오프라는 비정상적인 것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도덕적 딜레마를 선호하고,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다섯째,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의 아비투스에서 연대의식은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의 모성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이후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에 비해 남자에게서 훨씬 독립적이었고 다른 여성과의 관계도 훨씬 밀접했다. 여성을 남성과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는개별화 과정 때문에 양육과 조언에서 다른 여성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갈 수밖에 없는 현대 여성의 조건을 오프라가 남달리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할 듯하다.


    끝으로 흑인은 자기계발정신을 꾸준히 키워왔다. 자기계발 정신은 그들에게 가혹한 착취를 이겨내기 위한 유일한 자원이었다. 페미니스트 혁명이 확산되기 훨씬 전부터 흑인 여성은 자립심을 키워갔고 다른 여성과 연대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이렇게 그들은 여성의 자아에서 새로운 이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창조해냈다. 텔레비전 토크쇼의 여느 사회자와 달리, 오프라 윈프리는 자아의 형성을 위해서는 우정과 밀접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어떤 역경 앞에서도 견딜 수 있는 신속한 회복력과 자기계발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프라 윈프리가 집요하게 강조하는 자립정신은 평범한 것에도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요즘의 자기계발적 담론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혼, 성, 정체성 등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하기 때문이고, 우리는 사회ㆍ정신ㆍ심리, 심지어 생물학적 운명까지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어가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의, 평등, 공정함으로 오프라를 비판하라


    오프라 윈프리의 도덕적 상상력에 대한 비판
    토크쇼를 가장 설득력 있게 비판한 학자 중 한 명인 정치 철학자 마이클 샌들은 “우리 조건을 이해하고 민주적 원칙에 근거해서 시민의 삶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확신과 자제력을 고취시켜주는 사람에게서 우리 시대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럼 오프라는 자신의 주장대로 ‘우리 조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가?


    오프라 윈프리는 치유자의 역할을 자임하며 다양한 형태의 고통이 제시한 의미의 위기를 다루면서 자기변화를 위한 기법과 자기계발 이야기를 제시해주었다. 고통에 대한 오프라의 한결같은 반응, 거의 기계적인 반응 덕분에 우리는 그 반응을 재사용해서 기운을 북돋워주는 경험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하지만 모든 형태의 고통이 ‘생존’ ‘자기계발’ ‘승리에 대한 결연한 의지’라는 희박한 가능성에 녹아들면서 고통받는 사람의 다양한 목소리를 죽이기 때문에 치유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치유가 고통을 긍정적 사건으로 변모시키기 때문에도 자기계발을 이용해서 모든 고통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할 수 있다.


    2000년 1월 7일, ‘우울증은 좋은 것일 수도 있다’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토크쇼의 요약이 내 비판을 뒷받침해준다. 웹사이트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우울증은 고통이다. 당신의 영혼이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고 당신의 관심”을 끌려는 것이다. 고통이 신호라면 고통은 자기변화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고통은 긍정적인 가치를 갖는다. 오프라의 진언(眞言)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쇼, 웹사이트, 잡지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잘못되는 것은 없다. 교훈만이 있을 뿐이다.”


    오프라의 자기계발정신은 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분리되어야 할 두 경험, 즉 고통의 경험과 긍정적 학습ㆍ변화ㆍ개선의 경험을 뒤섞어버린다는 점에서 거짓이다. 따라서 오프라는 도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완전히 상반된 두 경험을 무너뜨리고 결합시킴으로써 그가 여성에게 전하려는 메시지, 즉 “여성은 건강한 관계와 병든 관계를 구분해야 하며, 자신의 자아를 다른 사람에게 과감히 확인시켜주어야 한다”라는 메시지마저 훼손하고 있다. 또한 고통이 자기계발을 촉진하기 때문에 긍정적 가치를 갖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오프라는 여성 조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감정과 도덕의 혼돈을 영속화시키고, 여성에게 고통에서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도덕적 강인함과 자율성을 요구할 가능성을 찾으라고 부추긴다.


    고통의 이야기를 자기 개선의 이야기로 재활용하는 것은 다른 점에서도 문제이다. 이런 재활용은 고통의 치욕스런 면을 지워버린다. 따라서 고통은 그 자체의 현상에서 보듯이 “본질적으로 불필요하고 부질없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인간에게 닥치는 대부분의 고통은 부당한 것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고통은 수치스런 것이란 논리는 우리 시대의 이성과 도덕에 부합되지 않는다. 또한 자기계발정신이 불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심리적 명령, 게다가 일반적이고 기계적인 명령이 될 때 거짓 의식‘으로 발전하고, 오프라의 의도와 달리 도덕적 상상력과 행위를 오히려 약화시키기 십상이다.

    도덕적 상상력은 다양한 삶의 조건과 역경을 이해해서 공감하는 능력, 인간의 의무와 가치에 감춰진 모습을 파악하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자기계발에 대한 오프라 윈프리의 집착은 두 방향에서 그녀의 도덕적 상상력을 약화시키는 듯하다.


    첫째, 그런 집착은 오프라가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동정심, 즉 도덕적 상상력에서 필수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의 진수를 오히려 약화시킨다. 자기계발이란 족쇄 때문에 우리는 감정적 운명을 끝없이 만들어가는 시지포스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패한 삶을 너그럽게 용서하기 힘들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고통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진정한 고통이나 견디지 못할 고통이 없을 것이다. 또한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상처를 입을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런 행위에 책임질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오프라 윈프리는 고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도덕적 설득력까지 약화시키고 있다.


    두 번째 방향은 ‘도덕적 상상력의 깊이와 복잡성’과도 관계가 있다. 자기계발정신이 모든 형태의 도덕적 딜레마와 고통을 동일한 학습과 개선의 기회로 바꾸려는 명령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자기계발정신은 고통을 식상하게 만들고 모든 고통을 똑같이 취급하면서 각각의 이야기에 담긴 개성을 없애버린다. 또한 도덕적 삶을 진실로 매력 있게 만드는 딜레마를 무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고통을 ‘민주화’시키려는 오프라의 행위는 호소력이 떨어지지만 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즉 오프라의 토크쇼가 관음증을 자극하고 감정적이며 고통을 상품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현상성을 부인하며 힘겨운 불행의 불안한 모습을 정복된 고통으로 기계적으로 뒤바꿔버리려고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얄궂은 일이지만 고통의 대중화가 갖는 의미를 훼손시키는 근본 요인은 바로 자기계발정신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