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 황우석

저   자
매일경제 과학기술부
출판사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일
2005년 06월







  • 사람들은 신문이나 방송 보도를 통해 황우석 교수를 매일 접한다. 그러나 '황 교수에게 이런 인간적인 면이 있구나' 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면 이 책이 쓰여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 황우석


    1장 황우석의 어제와 오늘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황우석 교수는 1952년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계룡산 자락에서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시골에서 자란 황우석은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년 황우석은 결코 유복하다고 할 수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황우석은 남의 소를 키워주고 송아지 한 마리를 얻는 ‘한우소작’으로 6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열심히 도왔다.


    황우석의 어머니에게 소는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식의 생계와 교육 밑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던 소년 황우석에게 소는 재산이라기보다는 친구였다. 소년 황우석은 방과 후 시간을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소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의 습성이나 성격을 배우게 됐다. 소년 황우석은 이즈음 두 가지 결심을 한다. 하나는 평생 소와 함께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소에 관한 한 최고가 되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이 때 결심한 생각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쉰 살이 넘도록 소와 함께 지냈고 이 분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늘 소와 함께 있었고 또한 소에 관해 어느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등 안대기 클럽
    대전고에 입학해서 본 첫 중간고사 시험에서 황우석은 큰 충격을 받았다. 480명 중 400등을 했다. 은산초등학교와 대전서중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황우석으로서는 아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을 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을 해보자.” 그는 곧바로 ‘등 안대기 클럽’을 결성해 공부해 들어갔다. ‘등 안대기 클럽’은 졸업할 때까지 방바닥에 등을 대지 말자는 의지를 가진 학생들이 모인 단체였다. 실제로 그는 그 후 졸업할 때까지 방바닥에 거의 등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하다 졸음이 오면 엄동설한에도 맨발로 뛰어나가 운동장을 돌거나 양동이로 물을 퍼부어 가며 졸음과의 전쟁을 벌였고, 잠을 잘 때는 책상 위에서 엎드려 잠깐 눈을 붙였다.


    사람들은 그가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고 영롱이 복제 등으로 이름이 알려지자 어릴 때부터 매우 명석한 두뇌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황우석은 말한다. 그가 지금가지 이룩한 일들은 자신이 천재여서가 아니고 순전히 성실과 노력으로 이뤄냈다고. 그는 자신보다 잠은 많이 자면서도 공부는 조금 밖에 하지 않은 친구들이 자신보다 좋은 성적을 낼 때는 정말 부러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한 번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노력의 대가는 충분히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련의 계절 - 시골에서 소 키우고 농사 짓고
    황우석에게도 시련의 계절이 있었다. 1982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임용에서 탈락하고 만 것이다. 그는 교수임용 탈락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학내 파벌 대립 탓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당시 박사 학위를 받으면 1982년 전임교수가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언질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교수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돌변했다. 황우석에게 배정된 강의가 취소된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좌절한 황우석은 당시 전 재산인 열여섯 평짜리 아파트를 팔아서 경기도 광주의 황무지를 샀다. 이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지었다. 가족이 몸을 의지할 전셋집을 구할 돈도 없는 처지가 됐다. 한 독지가가 황우석을 딱하게 여겨 무료로 지낼 수 있는 빈 아파트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황무지에 텐트를 쳐서 지내야 할 형편이었다. 황우석은 교수임용에서 탈락한 뒤 시간강사로 뛰면서 학문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황우석은 당시 서울대 수의과에도 없던 실험농장을 황무지에 짓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그를 서울대까지 나와서 농사짓고 있다며 측은한 눈으로 쳐다봤다. 교수 임용 탈락부터 이후 3년 동안 황 교수는 세상의 쓴맛을 보아야 했다.


    홋카이도 대학 -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
    경기도 광주의 황무지에서 시련의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황우석은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을 맞는다. 서울대 수의대 학장으로부터 일본에 가서 공부할 생각이 없느냐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황우석은 “당시 학장님이 서울대 교수 임용 탈락 이후 고생하고 있는 제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날 서울대 수의대 학장의 제안은 황우석을 복제연구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황우석이 일본으로 건너가 1985년 중반부터 1년 남짓 머물며 공부했던 홋카이도 대학은 복제 동물 생산을 위한 기초적인 연구를 하고 있던 곳이었다.


    황우석은 이곳에서 자신의 배움이 너무나 좁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자고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공부에 매달렸다. 황우석은 이곳에서 동물복제를 통해 우량종을 생산해야 한다는 신념을 얻었다. 귀국 후 동물복제 연구에 매달린 황 교수는 1999년 복제소 ‘영롱이’, 복제한우 ‘진이’의 생산이라는 결실을 얻는다.



    2장 인간 황우석


    1조 원 외국 스카우트 제의 거절한 애국자
    황우석 교수는 2004년 여름, 미국으로부터 1조 원 이상의 연구비를 보장한다는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한 마디로 거절한 사람이다. 황 교수는 지금까지 해왔던 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한 각종 생명과학 관련 연구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드림 프로젝트’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뜻에서 1조 원 규모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황 교수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프로젝트는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도 큰 목적이 있지만 10~15년 후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황 교수는 사람의 인슐린과 유사한 물질을 분비하는 돼지 췌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기술을 이용해 이르면 3~5년 내 당뇨병 극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황 교수가 추진하고 있는 중장기 프로젝트에는 당뇨병은 물론이고 뇌졸중,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의 치료법 개발도 포함돼 있다. WTO 조사에 의하면 2000년 기준 세계 60억 인구 중 3,700만 명이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이며, 4,100만 명이 뇌졸중 환자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이들 환자에게 매년 200조원 규모의 의료비를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가 개발한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생명과학 기술을 적용하면 이런 뇌질환 치료도 근본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부 이재영 과장은 이런 점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를 비롯한 생명공학기술이 미래에 가져올 경제적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가 줄기세포기술을 세계 처음으로 실용화하면 여기서 얻는 경제적인 부가가치는 현재의 정보통신산업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과학계가 버려야 할 3가지
    “남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 독불장군 정신, 고질적인 투서문화.” 황우석 교수가 과학기술계가 반드시 버려야 할 낡은 유물로 지적한 3가지다. 황 교수는 2005년 4월 대덕넷과의 인터뷰에서 과학기술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3가지 낡은 유물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꼽은 첫 번째 유물은 남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다. 그는 남이 낸 좋은 성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학계의 두 번째 나쁜 유물은 ‘독불장군식 문화’다. 우리 과학기술계에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과학기술자가 많다는 것이다. 미래기술은 한 분야를 독주한다고 해서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학문의 영역을 뛰어넘는 다학제간, 다기능적 복합연구가 가능해진 시대에 ‘독불장군 정신’은 과학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세 번째로 그는 과학계 내에 음해성 투서가 많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투서자들은 인격이 파탄된 사람들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그는 이 같은 세 가지 문제를 2005년 상반기에 직접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에 남을 인정하지 않고 투서가 많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황 교수는 최근 들어 그 문제가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황 교수는 남의 잘못을 비난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시간 있으면 연구하는 데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철학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눈을 세 번 감고, 남이 잘한 일을 드러내는 데는 주저하지 마라.”


    UN 인간복제 금지법안 통과를 저지하라
    2004년 10월 13일 황 교수가 급히 미국으로 날아갔다. UN은 2004년 10월 20일부터 이틀 동안 인간복제금지협약에 관한 결의안의 채택 여부를 놓고 표 대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치료목적의 배아복제도 안 된다는 코스타리카, 미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금지안’과 치료목적을 위해서는 배아복제를 허용하자는 한국, 일본, 영국 등의 ‘찬성안’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일 금지안이 채택된다면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주도하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됐다. UN 결의안이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여론을 등에 업고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인간복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치료목적의 줄기세포 연구는 생명의 존엄성을 위하는 측면에서도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 황 교수의 지론이었다.


    그는 서둘러 회의에 참석하는 바람에 사재를 털어 이 회견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교수는 회견에 참석한 세계 기자들과 외교관들을 상대로 치료목적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목청을 높였다. “배아줄기세포 배양과 동물복제 연구의 초점은 파킨슨, 알츠하이머 등 인간의 퇴행성 질환을 치료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금지안이 채택되면 과학과 의학계에는 엄청난 후퇴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또 “인간복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줄기세포 연구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을 지나치게 우려하는 시각을 반박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황 교수의 평소 지론인 ‘하늘을 감동시키자‘가 통하기 시작했다. 황 교수와 대표팀의 노력으로 ’과학은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는 코피아난 UN 사무총장의 지지를 얻어냈고 복제금지에 대한 회의를 직접 주재한 제6위원장의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너무 일방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안 된다‘는 지지를 받았다. 결국 2년째 표류했던 UN의 인간복제금지관련 논의는 그 해 11월 제 59차 유엔총회에서 인간복제금지협약 대신 ’인간개체 복제를 반대하는 정치선언문‘을 채택하는 선에서 막을 내렸다.



    3장 황우석이 바꾸는 세상


    배아줄기세포는 미국팀이 첫 획득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제임스 톰슨 교수가 1998년 세계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체세포 복제를 통한 인간의 배아는 2001년에 만들어졌다. 톰슨 교수의 방법과 황 교수가 사용한 방법의 차이를 알려면 기초적인 생물학 지식을 이해해야 한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웠겠지만 정자와 난자가 결함하면 수정란이라는 1개의 세포가 된다. 수정란은 세포수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세포분할을 한다. 수정 이후 첫 14일 동안을 ‘배아’라고 부르는데, 과학자들은 특히 수정란이 세포 분열을 통해 128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포배 상태의 배아가 됐을 때를 주목했다.


    포배 내부에는 ‘내부 세포 덩어리’라는 세포들이 들어있는데 이 세포들은 다양한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톰슨 교수는 포배로부터 내부 세포 덩어리만을 잘라낸 뒤 이 세포 덩어리들을 배양해서 많은 수의 배아 줄기세포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톰슨 교수가 만든 수정란 유래의 배아줄기세포는 난치병 환자의 치료에 응용하기에는 커다란 결점을 갖고 있다. 면역거부반응 또는 조직거부반응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면역거부반응 없앴다
    면역거부반응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환자의 유전자가 같은 건강한 세포를 넣어주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이 시도한 방법이 바로 ‘체세포 복제를 통한 인간배아줄기세포 생산’이다. 우선 사람의 몸에서 체세포를 떼어내고 체세포의 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난자에서 핵을 뽑아낸 다음 그 자리에 체세포의 핵을 넣어준다. 난자는 자신의 핵을 잃는 대신 체세포의 핵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수백만 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에 1,500볼트의 전기적 충격을 가하면 체세포의 핵을 받아들인 난자는 마치 수정란과 같은 상태가 되어 세포분열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한 가지. 복제배아의 유전자는 어디서 왔을까.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했으니 양쪽에서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비중에서 절대적으로 차이가 난다. 인간의 유전자는 99%가 세포의 핵에 들어 있고 나머지 1%만이 세포질에 들어 있다. 복제배아를 만들 때 사용된 난자에서는 오로지 세포질만 사용됐으므로 난자는 복제배아에 단지 1%만의 유전자를 제공했다. 나머지 99%는 핵을 제공한 체세포로부터 온 셈이다. 황우석 교수의 성취는 바로 이 부분이다. 환자 몸의 체세포를 복제해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역거부반응에 대한 염려를 99% 잠재움으로써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에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


    난치병 치료 남은 과제
    배아줄기세포는 거의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배아줄기세포를 건강한 뇌신경세포, 베타세포, 간세포, 피부세포, 척수신경세포 등으로 분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분화된 새롭고 건강한 세포를 환자의 몸 속에 이식시켜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면 환자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뇌졸중 환자는 죽어버린 뇌신경세포 대신에 살아있는 건강한 뇌신경세포를 얻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치료법이 실용화되려면 갈 길이 멀다. 멀고 멀 뿐만 아니라 갖가지 장애가 산처럼 가로막고 있다. 그 산들은 어떤 산들일까.


    ?첫 번째 산 - 영화 수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터퍼 리브는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척수 신경을 다쳐 사지가 마비됐다. 수퍼맨을 치료하려면 건강한 척수신경세포를 집어넣어야 한다. 만약 세포를 집어넣었는데 척수 근방에 췌장세포나 뼈세포, 간세포, 나아가서 암세포가 생긴다면 곤란하다. 배아줄기세포는 마치 럭비공과 같아서 어디로 튀어서 어떤 세포가 될지 통제하기가 힘들다. 배아줄기세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세포로 분화되는지 분화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배아줄기세포를 우리가 원하는 세포만으로 분화시킨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 두 번째 산 - 이제 오랜 실험 끝에 배아줄기세포를 우리가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키는 기술을 얻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곧바로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이 세포를 사람에게 집어넣었을 때 안전하다고 믿을만한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아줄기세포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세포를 얻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조작을 또 가해야 한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조작을 가한 세포가 원래 우리 몸에 있는 세포와 다르게 작용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비록 유전자는 같지만 말이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신약은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에 동물실험을 통해 최소한의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 일반적인 의약품 신약도 동물실험 과정에 3년 이상이 걸린다. 하물며 아직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지 않은 배아줄기세포 치료제는 동물실험에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 세 번째 산 - 동물실험이라는 산을 넘으면 더 높은 산이 놓여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임상시험’이다. 임상시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의약품의 안전과 효능을 테스트하는 절차다. 기존의 합성 의약품 신약 후보 물질도 10개 중 8개는 이 시험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좌절한다. 하물며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의 임상시험은 숱한 좌절과 눈물의 연속이 될 것이다.



    4장 세계를 놀라게 한 국보급 과학자


    윤리문제 왜 나오나
    황 교수의 연구가 윤리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유는 뭘까. 황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윤리 논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생명의 씨앗인 배아를 파괴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가 하는 것이 첫째고, 복제배아 연구는 인간 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둘째이며, 앞의 두 가지보다 중요성은 떨어지지만 난자 채취가 적법하냐가 세 번째다.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어쩔 수 없이 배아를 파괴해야 한다. 배아는 자궁에 착상시키면 생명체로 성장한다. 따라서 배아 파괴는 생명체 파괴라는 게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 배아복제 연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한번 둘러보라고 얘기한다. 불임부부에게 시험관시술을 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배아가 수없이 많은데 왜 유독 줄기세포 연구과정에서의 배아 파괴만 문제삼느냐고 반박한다. 복제배아는 인간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황우석 교수는 “복제인간은 선천적인 기형이나 돌연변이 위험이 있다”며 복제인간의 탄생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강조한다. 복제배아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복제배아를 여성의 몸 속에서 태아로 자라게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난자 추출 과정도 간혹 논란이 벌어지지만 앞서 얘기한 두 가지 윤리적 논란거리에 비하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쇠 젓가락 예찬
    2004년 2월 어느 날, 미국 현지의 공항에 황우석 교수, 문신용 교수 등 연구진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인간 배아줄기세포 획득 연구내용을 발표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움직이던 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외국의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들은 동방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온 경이로운 연구자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이들이 놀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난자를 활용해 연구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난자는 매우 흐물흐물하다. 막이 약해 다루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한 외국기자가 묻는다.


    “어떻게 다루기 어려운 난자를 활용해 불가능의 벽을 뛰어넘었습니까?” “한국인들은 한자 문화권에서 유일하게 쇠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입니다. 젓가락을 사용해 음식을 집어먹는 과정에서 손가락 관절과 피부의 예민함이 길러졌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불가능이라 여겼던 벽을 넘은 것 같습니다.”


    황우석을 보호하라
    황 교수가 세계 최초로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배아복제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하면서 국가 정보기관에 ‘황우석 교수 보호령’이 떨어졌다. 국가가 황 교수를 국보급 과학자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조 단위에 달하는 엄청난 돈을 내걸고 스카웃 제의까지 들어올 정도로 황 교수의 몸값이 비싸졌다. 난치병 환자 치료용 줄기세포 생산을 염두에 둔다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재산임에 틀림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황 교수가 어떤 위해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국가차원에서 황 교수를 요인보호대상으로 선정하고 밀착 보호한다.


    황 교수가 움직이면 일단 두 대의 차량이 뜬다. 한 대는 황 교수가 타는 차량이고 다른 한 대는 경호 차량이다. 두 대의 차량에는 무술 유단자로 구성된 전문 경호요원이 두 명씩 탑승한다. 황 교수가 2005년 5월 20일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 생산에 성공하면서 경호가 더욱 강화됐다. 경찰은 서울 논현동 황 교수의 아파트 앞에 경비 초소를 설치하고 자택 경비도 크게 강화했다.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소는 국가기밀시설로 인정돼 정보기관의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 서울대 수의대학 내 실험실 등에는 24시간 감시 체제가 가동되고 있으며 실험실 출입자에 대한 관리활동도 강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연구시설과 정보기관을 연결하는 핫라인 통신망도 갖춰져 있다.



    5장 황우석의 사람들


    월화수목금금금
    2003년 9월 황우석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진행해오던 미시간대 시벨리 교수가 서울대 황 교수 연구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황 교수 연구팀은 군대(Army)라고 불렀다. 그리고 황 교수는 이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General)이라고 칭했다. 일요일임에도 대학원생부터 책임교수까지 나와 연구에 열중하고 있는 연구원들을 보고 붙여준 이름이다. 시벨리 교수의 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군대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군대도 전쟁중이 아닌 한 일요일은 쉰다. 그렇다. 그들은 군대처럼 근무했다. 아니 오히려 더했다. 서울대 황 교수 연구팀은 현재 황 교수를 비롯해 3명의 교수진과 석 박사 연구원 등 모두 6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황교수 연구팀은 줄기세포연구팀, 바이오장기 연구팀, 질환내성동물연구팀, 특수동물복제연구팀 등 모두 4개 분야로 구성됐다.


    황교수는 매일 오전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이 연구동에 들어와 곧바로 팀 회의를 주재한다. 연구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다. 하지만 아침에 동물의 난자를 채집하기 위해 도축장으로 가야 하는 난자 채집팀은 새벽 5시 30분까지는 연구실에 도착해야 한다. 도축된 소, 돼지의 살덩이와 씨름하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바깥세상과는 단절되다시피 생활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휴일이 없다. 연구원들 사이에서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황우석 후원회
    황우석 교수는 대한민국 과학자 중 가장 팬이 많은 사람중 한 명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인을 받으려고 메모지를 내민다. 또 황 교수의 연구지원을 위한 후원모임도 생겼다. 후원모임의 이름은 ‘황우석 교수 후원회’다. 후원회는 황 교수가 지금까지 쌓아놓은 연구실적을 이어가 난치병 치료를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사안들을 지원하기 위해 2004년 공식 출범했다. 후원회는 한국과학재단이 운영하는 유망과학자후원회 사무국의 지원을 받으며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한 지속적 지원과 안정적 연구 환경 조성, 후학양성 등의 일을 맡는다. 처음 후원회 홈페이지(http://www.wshwang.com)가 오픈됐을 때 하루 2,000여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해 황 교수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을 잘 보여줬다. 2005년 5월 현재 후원회 회원은 총 2,000여 명에 이르고, 후원금 액수는 약 12억 5,000만 원 정도다.


    황 교수도 후원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연구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영 쉽지 않지만 시간 나는 틈틈이 후원회 홈페이지에 들러 회원 혹은 비회원으로부터 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읽는다. 때로는 답장도 해 준다.


    ‘꿍따리 샤바라’와의 인연
    황 교수가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사례를 드는 사람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가수 강원래씨다. 강원래 씨는 지난 2000년 11월 교통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됐다. 황 교수는 강원래 씨와 같은 척수 장애 환자들이 휠체어를 버리고 일어서는 날을 위해 늘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 강원래 씨는 2004년 황 교수가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자 담당 의사로부터 자신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0%에서 0.0001%가 됐다고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강원래 씨는 자신이 자살을 시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생겼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곤 했다.


    전 세계적으로 척수환자는 무려 850만 명이나 된다. 그들은 한결 같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영화 수퍼맨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토퍼 리브도 1995년 2월 말에서 떨어져 복부 아래가 완전히 마비됐다.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살다가 황 교수와 만나기로 돼 있는 날을 하루 앞두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황 교수는 ‘강원래가 일어섰다!’는 제목의 글이 자신의 후원회 홈페이지에 장식되는 날까지 연구에 매진할 것을 다시금 다짐한다.



    6장 매경 칼럼에 비친 황우석의 비전


    난치병 환자 생활 모습 본 후 개발 결심
    생각해보면 짧지 않은 기간에 5개 기관, 40여 명의 연구원이 가슴을 모았고 연구결과는 세계의 이목 속에 발표됐다. 몇 년 전 학문적 고뇌, 성공 가능성에 대한 자문자답에도 불구하고 난치병 환자들의 생활현장을 방문한 후 실험에 착수한다는 어려운 결정이 내려졌다. 이미 원숭이와 인간 난자를 이용한 외국의 실험결과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복제 생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과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각각 연구팀의 경험과 노하우를 상호 점검하고 상승 효과를 극대화 할 전략이 마련됐다. 휴일도 명절도 없이 심혈을 기울였으며 한 꺼풀씩 비밀이 열릴 때마다 박수와 탄성이 이어졌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참고논문도 없는 전대미문의 밤길을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길 거듭했다.


    시애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때가 지난 수요일이다. 긴장과 걱정의 순간 후 엘리엇 하얏트 호텔 프레스센터의 언론 발표장은 따뜻한 갈채 속에 종료됐다. 여섯 대륙으로부터 몰려오는 인터뷰 후폭풍은 또다시 이틀 밤의 수면을 빼앗아갔다. 이제 마지막 일정인 특강이 남아있다. 이 일정이 끝나면 귀국해 새벽 공기를 마시며 다시 캠퍼스의 실험실로 향하련다.


    실험재료 제공자들의 성스러운 참여 정신은 오늘 역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들 것 같다. 그분들의 고귀한 가슴이 내 후배 학자에게 한국 최초 노벨 의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줄 것 같다. 그들의 지성으로 대한민국에 세계 최고 난치 질병 연구병원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수백만 환자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춰주리라.
    <매일경제 2004. 2. 16>


    어쩔 수 없는 의무
    인간 줄기세포 복제 성공에 따른 공식 발표와 저명한 국제학회 초청강연을 앞두고 미국 시애틀로 떠나기 전이었다.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우리 논문을 게재하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긴박하게 일 처리를 해나갔다. 예정된 기자회견을 나흘 앞두고 사전 약속한 제한된 기자들에게 보도제한(엠바고)을 전제로 논문과 함께 「사이언스」 공식논평을 보냈으니 적절히 대응해 달라는 당부를 받았다. 그 직후부터 세계 각국 언론에서 사전인터뷰와 질의가 밀려들었다. 귀국 당시 인천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언론의 눈들과 밀려드는 인터뷰와 출연요청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다. 실험실에 몰두하고 싶다는 뜻과 함께 정중히 거절해 보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러다 ‘나태’라는 웅덩이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언론에 자주 비치는 내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를 동료 교수들과 과학자들이 보내는 무언의 충고도, 학생들의 눈길도 부담이 된다. 무엇보다 언론에 등장할 때마다 닭살이 돋을 만큼 염려하는 집사람의 충고도 나를 짓누른다. 이러한 고민을 듣고 어느 방송국 보도국장이자 친구가 주는 다음과 같은 대답은 「사이언스」 언론담당책임자가 해준 것과 궤를 함께 한다.

    “당신은 대한민국이라는 모국과 서울대라는 보호막이 있었기에 오늘의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이제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해줘야 한다. 이것이 공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이자 도리일 것이다.”


    그의 충고가 정답이라면 우리 연구팀과 그 내용에 대한 탐험은 최소한으로 매듭 되었으면 좋겠다. 단시간으로 마감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이제 다시 85동 실험실과 경기 광주 실험목장, 충남 홍성 양돈장에 정열을 쏟고 싶다.
    <매일경제 2004.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