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

저   자
김내리
출판사
카시오페아
출판일
2020년 12월
서   재







  • 전시 모임 커뮤니티 대표이자 도슨트로서 미술 작품의 의미를 전하고 가슴속에 각자만의 그림 한 점을 품게 만드는 일에 힘쓰고 있는 김내리 작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미술 작품이 일상에 활력이 되고 위로가 되는 순간들을 엿봤다. “그림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고는, 그동안 몰랐던 그림의 세계와 이야기들로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나와 타인, 세상을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지는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


    희망 가득한 새해를 맞이하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간은 흐른다’는 진리를 절감하는 순간입니다.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 스스로가 작아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떡국을 먹고 멋진 새해 계획을 세워봅니다. 저는 새해 계획에 희망만을 가득 담습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굳은 포부를 가져봅니다. 그러고 나면 왠지 운명의 지배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말이지요.


    장엄한 대자연을 홀로 마주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거대하고 신비로운 바다는 인간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신의 영역처럼 보여요. 그 신의 영역 앞에 지팡이를 짚은 남자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고독해 보이지만 자연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요.


    저는 자연을 ‘운명’이라는 말로 바꿔봅니다. ‘풍경화의 비극을 발견한 화가’로도 불리는 프리드리히의 운명은 누구보다 가혹했어요.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엄마가 천연두로 돌아가시고, 이후 두 누이를 차례로 잃었습니다. 열세 살에는 형이 스케이트를 타다 호수에 빠진 프리드리히를 구하고 익사한 사건까지 일어나지요. 이처럼 가혹한 운명을 마주했던 프리드리히는 적막감이 감도는 쓸쓸한 풍경에 ‘고난에 빠진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담아냈습니다.


    공기와 물, 바위, 나무 등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은 나의 목표가 아니다. 그런 대상들 속에 있는 영혼과 감정을 재현해내는 것이 나의 목표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이전의 풍경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풍경 속에 절망에 빠져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인간의 내면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신을 의지하는 종교적인 여운이 길게 남지만,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운명의 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단호히 내비칩니다.



    일상을 예술로 만들다: 칼 라르손 〈숙제를 하는 에스뵈욘〉

    ‘아,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숙제나 해야 하다니!’ 에스뵈욘의 속마음이 눈에 다 보입니다. 얼른 마치고 나가야 하는데 숙제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나 봅니다. 창밖으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니 마음이 콩밭에 갑니다.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아빠가 지켜보고 있으니 그럴 수도 없습니다.


    아빠가 어디에 있느냐고요? 벽에 걸린 거울 속을 한번 보세요. 거기에 아들의 모습을 그리는 아빠가 있습니다. 에스뵈욘은 화가인 아빠 덕분에 농땡이 치는 모습까지 화폭에 담겼네요. 놀고만 싶은 에스뵈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얼른 숙제하고 나가서 놀자”하며 달래주고만 싶은 그림입니다.


    라르손은 스웨덴의 화가로, 스톡홀롬의 빈민가에서 매우 어렵게 자랐습니다. 가난해도 따뜻한 가정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일용직 노동자, 선박의 화부, 곡식을 실어 나르는 짐꾼 일을 전전했던 라르손의 아버지는 매우 폭력적인 사람이었어요. 라르손은 아버지에게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폭언까지 들었다고 해요. 식구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던 아버지 밑에서 슬픔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을 그의 어린 시절이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다행히 라르손에게 손을 내밀어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열세 살 때 만난 선생님이었지요. 선새님은 라르손의 재능을 알아보고 스톡홀롬 미술학원에 입학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이후 라르손은 1882년 파리에서 스웨덴 미술가 단체에 가입하고, 미술가 카린 베르게를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렸습니다.


    카린의 아버지는 스웨덴의 시골 마을 순드본에 위치한 작은 집 ‘릴라 히트나스’를 딸에게 선물해줍니다. 라르손 부부는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집을 조금씩 개조했고, 이후 릴라 히트나스와 소박한 가정의 일상은 라르손 작품의 주요 주제가 됩니다.


    이 작품 속 라르손 부부가 직접 꾸민 공간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라, 아이들에게는 사랑이 전부이기 때문이다(Love Each Other Children, for Love is All)”라는 신조로 집을 꾸몄는데요. 평온하고 안락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맑고 투명한 수채화의 색감은 포근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진실하고 사랑 가득한 시선이 듬쁙 느껴집니다.


    라르손은 ‘삶이 곧 예술’이라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가치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야 조용히 책을 읽는 아내의 모습, 아이들이 놀고 숙제하고 바느질하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축하 파티를 준비하는 등 소소한 일상과 함께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화폭에 녹여냈습니다. 자신의 불행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아이들에게 안락한 가정을 선사했던 그의 진심은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있어요.



    현실의 고단함과 시름을 잠시 잊는 방법: 레지널드 마쉬 〈20센트짜리 영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경제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특히 전시 피해가 없었던 미국은 유럽에 군수품과 식량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겨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마의 목요일’이라고 불리는 1929년 10월 24일, 천정까지 올랐던 주식 거품이 꺼지며 대공황이 시작됐습니다. 10만 개의 기업과 6,000개의 은행이 파산하며 갑자기 꺼져버린 아메리칸 드림으로 인해 도시 노동자들은 실직과 빈곤이라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실직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며 눈앞의 생존에만 몰두했지요.


    도시 사회에서의 실직은 형벌과도 같았습니다. 인간을 피폐하게 하고 꿈을 꿔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했으니까요. 이러한 대공황의 충격은 오랫동안 지속됐고, 대공황이 발생한 10년 뒤에도 미국의 실업 인구는 9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생생한 도시 풍경과 당대의 현실을 묘사한 애쉬캔파(쓰레기통파)의 후배 작가인 마쉬는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았던 노동자들의 삶을 담았습니다. <20센트까지 영화>는 노동자들이 즐겨 찾는 영화관의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영화관을 찾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으려는 듯 모두들 한껏 치장한 모습입니다. 각박한 현실에서는 꿈꿀 엄두가 나지 않지만, 단 20센트만 내면 영화 속 인물의 삶을 살아볼 수 있고 내가 꿈꿨던 삶을 잠시나마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고단함과 시름을 영화를 통해 잊으려는 그들의 얼굴이 어쩐지 공허하고 무표정해 보입니다. 화려한 영화관 입구에 쓰인 ’NOW PLAYING’처럼 지금의 삶을 즐겨보려 하지만, 간판에 그려진 스타들의 화려한 삶처럼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이 말이에요.


    조명이 꺼집니다. 사자 울음소리가 들리고 영화가 곧 시작됩니다. 한 장면도, 대사 하나도 놓치기 싫어 모든 감각을 집중합니다. 안타까운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서 아쉬운 한숨 소리가 들리고, 감동적인 장면에서는 탄성이 터집니다. 누군가 훌쩍이기도 하고, 함께 깔깔대며 웃기도 합니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고 분노하고 사랑합니다. 현실의 고단함과 시름은 잠시 잊어버립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팍팍한 삶이 다시 우리를 반길 테지만요.


    당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 마쉬의 작품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처럼 새롭고 매혹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삶을 갈망하지만 현실의 고통과 불안에 그만 주저앉는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인생을 재발견합니다. 다시금 부딪혀봐야겠습니다. 다가올 날들이 제게 어떤 시련을 전할지 몰라도 꿈과 이상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선조의 혼이 담긴 몸짓: 이응노 〈군상〉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군중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35년간 민족 전체가 수탈과 착취를 당했던 암흑에서 벗어나 그토록 바랐던 광복의 기쁨을 누리며 춤을 췄습니다. 이들의 몸짓에는 자유와 희망, 환희가 넘쳤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벌판을 떠돌며 광복 운동을 펼쳤습니다. 200만 명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은 일제의 강압 통치에 항거해 목숨을 건 비폭력 저항 운동이었으며, 향후 일제의 통치 방향을 전환시킨 뜻깊은 사건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그 후 뤼순 감옥에 수감됐고, 1910년 2월 14일 이뤄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와 독립투사들이 춤을 추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응노의 <군상>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파리에서 접한 후부터 작업한 작품입니다. 배경 묘사 없이 간략한 선으로 뒤엉킨 사람들을 표현해 자유와 평화를 향한 한국의 시대 정신과 민족의식을 보여줍니다.


    이응노는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문인화와 서예를 배웠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58년 파리로 건너간 후 한지와 수묵이라는 동양화 매체를 사용해 ‘서예 추상’이라는 독창적인 미술의 지평을 열었지요. 서예 추상은 자연 속의 인간 형태를 문자처럼 변형한 ‘문자 추상’과 흰 바탕에 자유롭고 빠른 필치로 사람들의 몸짓을 표현한 ‘군상연작’으로 발전합니다.


    파리에서 혼돈의 역사 속 생동하는 인간의 삶을 그리던 어느 날, 그는 북한에 있는 아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간첩으로 몰리게 되지요.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데 이어 백건우, 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 사건에 연루되는 등 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1969년 사면됐으나 끝내 고국에서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근현대사와 얽히면서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억울함에 매이지 않고 사회, 역사 의식을 담아 저항과 희망의 몸짓을 표현했습니다.



    유한함에서 느끼는 삶의 진정한 가치: 아드리안 판 위트레흐트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바니타스 정물〉

    테이블 위에 투명한 유리 화병에 꽂힌 꽃, 보석, 책, 화려한 장식품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해골이 덩그러니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과 값비싼 정물에 해골이라니, 이상한 조합입니다. 이러한 그림을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부르는데, 바니타스 정물화는 세속적인 삶이 덧없고 짧다는 의미를 상징합니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죽음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해골을 활용해 메멘토 모리(Mement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꽃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특히 튤립은 부귀영화의 헛됨과 허영, 비참한 말년을 상징합니다.


    유럽 교역의 황금시대를 맞아 떼돈을 번 네덜란드 신흥 부자들이 왕관을 꼭 닮은 튤립을 부의 척도인 양 마구 사들이는 바람에 튤립값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소상공인과 직공, 하인들까지 투기에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튤립을 사들였습니다. 희귀한 줄무늬가 있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한 송이는 집 한 채와 맞먹는 가격에 거래됐다고 해요. 그러다 튤립 버블이 터지면서 가격이 폭락했고, 빚더미에 나앉은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을 보여준 튤립 사태로 인해 튤립은 바니타스를 증언하는 상징이 됐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의식하고, 바니타스 정물화처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와 예술이 발전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운명에 맞설 수 없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 때로는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죽음이라는 허무에 빠지기보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열심히 살면 좋겠습니다.


    저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볼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생각납니다. 그의 에세이 속에는 삶의 허무와 결핍, 그리고 고독한 문학 세계 속에서도 즐겁게 살고 싶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가볍게, 그러나 삶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하루키처럼 저도 유한한 삶을 유의미하게 살 수 있도록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려고 합니다. 삶을 향한 애정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