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요약

위대한 예술가들을 한 쌍으로 묶어 비교 분석하는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 서양의 모던아트는 고흐와 고갱으로부터 시작된다. 탁월한 아카데미 출신 화가도 많았고 대가의 수제자들도 많았지만, 흥미롭게도 두 아마추어 화가가 모던아트의 지평을 연 것이다.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는 우리에게 한 쌍으로 기억된다. 두 사람은 함께 작업한 적이 있고, 회화에 관해 논쟁하다가 서로를 미워한 적이 있으며, 쌀쌀맞은 고갱의 태도에 고흐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서 살펴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에 의해 회화가 전통과 단절되고 근대에 들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흐와 고갱

주식중개인에서 전업작가로 나선 고갱

해군을 거쳐 주식중개인으로

외젠 앙리 폴 고갱이 파리에서 태어나던 1848년 6월 7일은 ‘2월 혁명’으로 프랑스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수립된 날로 거리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졌다. 「르 나시오날」정치부 기자로서 혁명군을 지지했던 아버지 클로비 고갱은 혁명이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체루로 망명하던 배에서 10월 30일 동맥류파열로 세상을 떠났다. 훗날 고갱이 남태평양의 섬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난 것도 아버지와 같은 사인이었다.

과부가 된 알린은 1874년 4월에 태어난 딸 마리와 돌도 안 지난 폴과 함께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다. 알린은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외삼촌 돈 피오에게 자신과 어린 남매를 의탁해야 하는 막막한 처지였다. 1849년부터 1854년 가을까지 페루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폴은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고 술회했다. 1854년 말 알린은 남매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 오를레앙으로 돌아와 시아버지의 유산을 인수하고 살았다. 스페인어를 쓰던 폴은 이듬해 오를레앙의 예수회 소속 학교에 입학하면서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

그는 열일곱 살이 되던 1865년 12월 학교를 졸업했지만 나이 제한으로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상선대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다. 1866년 2등 항해사로 진급하여 지중해와 북극해 등 세계 전역을 항해하던 그는 이듬해 인도의 어느 항고에서 어머니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고갱은 13개월 동안의 항해를 마치고 1868년 해군에 입대했다. 1871년 4월 제대하고 파리로 돌아오니 생클루 거리에 있는 집은 불타고 없어진 상태였다. 그는 어머니와의 친분으로 자신과 마리의 후견인이자 금융업자이면서 사진작가인 귀스타브 아로사를 찾아갔다. 고갱은 아로사의 주선으로 베르탱의 은행에 직장을 얻어 부동산 처분과 주식중개 일을 했으며 곧 유능한 사원으로 인정받았다.

결혼생활과 취미생활

스물다섯 살이 되던 1873년 고갱은 스물세 살의 덴마크 여인 메테 소피 가트를 만났다. 고갱과 메테는 수개월에 걸친 연애 끝에 1873년 11월 22일 소샤 가에 있는 루터교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나 양가의 가족이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메테는 1874년 8월에 첫아들 에밀을 낳았고 3년 후에 낳은 딸의 이름을 고갱의 어머니 이름인 알린으로 지었다. 이후 2년 간격으로 클로비(1879), 장 르네(1881), 폴 롤라(1883) 등 아들 셋을 더 낳았다.

아이들이 성장하자 고갱은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는 아로사처럼 취미에 맞는 현대화를 수집하면서 부르주아의 삶을 즐겼다. 인상저의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다 보니 고갱은 자연히 그들과 어울리게 되고 회화에 더욱 정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베르탱 은행에 근무하면서 직장 동료 슈페네커와 절친했다. 슈페네커는 회화에 소질이 있었지만 전업작가가 될 자산이 없어 생계를 위해 은행에 근무하던 아마추어 화가였다.

고갱은 1874년부터 파리의 서북쪽 퐁투아즈에 있는 카미유 피사로의 아틀리에에서 수학했고, 그곳에서 세잔을 만났다. 고갱보다 아홉 살 많은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제1회 인상주의전>에 참여했지만, 그들의 화풍에는 비판적이었다. 한편 고갱은 이 전시를 보고 인상주의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센 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1876년 살롱전에 당선되자 고갱은 더욱 회화에 전념하면서 화가로 전업할 생각까지 했다. 그는 피사로를 통해 소개받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고전주의 화법을 버리고 자신의 고유한 기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피사로는 그에게 주제를 한 장소에서만 관망하지 말고 양옆에서 바라보는 대각선 구성으로 그리라고 권했다. 고갱은 피사로의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형적인 구성과 기법으로 그렸으며 야외에서 드로잉한 것을 작업실에서 완성했다.

고갱은 조각에도 관심이 많아 공예가이면서 보석가인 장포 오베와 조각가 쥘에르네스트 부요에게서 조각을 배우면서 아내와 아들의 흉상을 제작했다. 그는 따로 아틀리에를 얻어 도자기를 제작하는 데 열의를 나타내기도 했다.

전업작가로 나서게 된 배경

1882년 11월 주식시장이 붕괴되자 프랑스 경기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했고 고갱과 슈페네커도 1883년 직장을 잃었다. 고갱이 피사로와 동료 화가들에게 전업작가로 나서겠다고 선언하자 회화에 대한 고갱의 열정을 잘 아는 그들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작품을 팔아 생계를 꾸린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염려했다.

한편 폴 롤라를 출산한 메테는 남편이 전업작가로 나서겠다고 하자 심하게 다투었다. 고갱은 1884년 1월 가족들을 데리고 생활비가 적게 드는 루앙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메테가 여섯 달만에 아이들을 남겨두고 코펜하겐에 있는 친정으로 가버렸고 고갱은 다음 달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로 갔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프랑스 회사로부터 방수 외투를 수입해서 팔아보았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말았다. 처가의 도움으로 캔버스 제조회사의 영업사원직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고갱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처가 사람들과 불화했다. 코펜하겐에서 지낸 기간은 고갱에게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최악이었다.

1885년 6월 고갱은 메테와 네 자녀를 코펜하겐에 남겨둔 채 여섯 살의 클로비만 데리고 파리로 돌아왔다. 돈을 벌면 데리러 오겠다고 가족과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영원히 지켜지지 않았다. 사업을 알아보기 위해 런던에 갔다가 두 달여 만에 파리로 돌아온 그는 뒤랑 뤼엘에게 소장품 몇 점을 팔아서 카이 가 10번지에 작은 방을 세 얻었다. 클로비가 천연두에 걸리자 궁지에 몰린 그는 포스터 붙이는 일로 하루에 5프랑을 벌었다. 그럼에도 가난한 생활은 지속되었고 클로비를 양육할 능력이 없던 고갱은 결국 메테에게 아이를 보내야 했다. 병약했던 클로비는 스물한 살 때 관절 수술을 받은 뒤 패혈증으로 사망했지만, 메테가 클로비의 죽음을 알리지 않아 고갱은 죽을 때까지 아들의 죽음을 몰랐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그림
목사와 화랑 집안에서 태어난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작은 마을 그루트 준데르트의 장로교 목사 사택에서 태어났다. 고흐의 어머니 안나 코르넬리아 카르벤투스는 왕식 책 제본가의 딸로 온화한 성품의 여인이었다. 반 고흐 가문이 빈센트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17세기 말부터였으며 빈센트는 브레다 지방 목사를 지낸 할아버지와 숙부 빈센트 반 고흐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아버지의 여섯 형제 중 빈센트의 아버지 테오도루스만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고 세 명의 숙부가 화랑을 운영했다. 빈센트는 숙부의 화랑에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회화에 관심이 생겼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목사였으므로 빈센트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갔으며 기독교는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보수주의 칼뱅파가 아닌 비교적 진보주의 신학에 기초한 장로교 목사들이었지만 도덕적으로는 칼뱅파 못지않게 엄격했으며 빈센트는 이 점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편지

빈센트는 1864년 10월 1일 제벤베르헌의 기숙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했다. 아버지는 그를 틸뷔르호에 있는 한니크 인스티튜트로 전학시켰지만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1868년 3월 학업을 중단시켰다. 이듬해 7월 코르 숙부의 소개로 빈센트는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판화와 복제화를 파는 점원이 되었다.

드로잉에 취미가 있는 빈센트는 화랑에서 일하는 데 만족했다. 매사에 성실한격인 그는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았고 여가를 활용하여 미술관에 있는 대가들의 작품을 관람했으며 독서를 매우 즐겼다. 아버지가 1871년 1월 헬보아츠트로 발령 받아 그곳에서 목회를 했으므로 빈센트는 1872년 여름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다. 그때 거기서 멀지 않은 오이스테르윅에서 공부하던 테오도 아버지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학업을 중단하고 와서 함께 지냈다.

이후 빈센트는 헤이그로 돌아왔고 테오는 오이스테르윅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형제는 18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던 기간은 단 세 번으로,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한 후 심적 변화를 일으킨 1874년 8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 테오가 자신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편지 쓰기를 중단한 1879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 사이, 그리고 파리에서 테오와 함께 지낸 1886년 3월부터 1888년 2월 사이였다. 이 기간을 제외하고 1872년 8월부터 1890년 7월 빈센트가 자살하기 전까지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는 약 800통에 이른다.

편지의 내용 대부분은 자신의 심상에 대한 것과 회화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였다. 테오가 사망한 후 미망인 요안나 봉거가 시아주버니의 편지 652통을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1914-15년에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반 고흐는 편지나 작품에 성 대신 이름 빈센트로 서명했는데 자신이 목사 가문의 사람이란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빈센트는 기독교식 이름이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다섯 살 아래의 라파르트는 정기적으로 빈센트를 만나 함께 작업하면서 원근법도 가르쳐주고 해부학 도표도 빌려주었다. 그러나 라파르트가 브뤼셀을 떠나자 되자 누구에게 그림을 배워야 할지 막막해진 빈센트는 1881년 4월 에텐의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라파르토도 에텐으로 와 12일 동안 머물려 빈센트와 함께 작업했다. 빈센트는 하층민들을 모델로 그린 회화에서의 사회주의자이면서 낭만주의자인 밀레를 최고의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밀레의 작품을 수없이 모사하면서 주제뿐 아니라 기법까지도 답습했다.

8월에는 외삼촌 스트리커의 딸 케이트가 에텐에서 여름을 지내려고 왔다. 빈센트는 케이트를 보자 마음이 흔들렸고, “당신을 만난 후 작업이 한결 나아졌다.”며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나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케이트는 사촌 동생의 사랑을 거절했다. 그녀가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간 후에도 빈센트는 연신 편지를 보내면서 사랑을 구했지만 케이트의 반응이 전혀 없자 빈센트는 암스테르담의 목사관으로 들이닥쳐 그녀의 행방을 따졌다. 스트리커 목사는 딸의 편지를 그에게 주었는데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빈센트는 12월 초 암스테르담을 떠나 헤이그로 갔다. 헤이그 화단의 선두자 중 한 사람인 안톤 모베를 찾아가 몇 주 머물게 해달라고 청했다. 곧이어 비센트는 모베의 집 근처 센크웨그 138번지에 월세 30플로린을 주고 방을 세 얻었다.

헤이그로 돌아온 빈센트는 시엔이란 별명의 클라지나 마리아 후르닉을 찾아갔는데 그의 말대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기’때문이었다. 케이트에게 실연당한 후 만난 시엔은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창녀였다. 시엔에게는 이미 딸이 있는 데다 임신중이었고 알코올 중독에 매독 환자였다. 부모가 화를 내며 아들의 장래를 우려했지만 빈센트는 오히려 시엔과 동거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빈센트는 인물 묘사에 집착했다. 시엔이 늘 그의 모델이 되어 주었고 그해 8월에 그린 <숲 속에 있는 흰 드레스의 소녀>의 모델도 시엔으로 보인다. 색을 쓱쓱 문질러 칠한 데서 들라크루아의 영향과 기분 내키는 대로 색을 칠하려는 표현의 의지를 알 수 있다. 그는 1882년에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 열네 점에 불과하다.

아를에서 만난 두 사람의 우정과 충돌
<아를의 밤 카페>

12월 들어 빈센트와 고갱 사이에 논쟁이 부쩍 격해졌는데 이는 고갱의 강압적인 태도에 대한 빈센트의 반발이 다분히 작용했다. 그동안 빈센트는 주제와 구성에서 고갱의 강압적 영향을 받고 있었다. 꿈의 이미지를 그리라는 고갱의 주문에 응하였으며, 그달에 그린 지누 부인의 초상이 고갱의<아를의 밤 카페>와 같은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 고갱의 영향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빈센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고갱을 흉내낸 그림일 뿐이다.

고갱은 졸라ㆍ모파상ㆍ공쿠르의 소설에 등장하는 문학적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데 관심이 있었으며 드가와 베르나르가 이런 작업을 했다. 빈센트도 고갱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그림에 이런 내용들을 적용했다.

깊어가는 불화

기차를 타고 몽펠리에로 가서 파브르 미술관을 관람하던 두 사람은 의견 충돌을 일으켰다. 고갱은 고전적인 전통주의 화가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반면 빈센트는 감성을 드러내고 웅대한 붓놀림을 한 화가들에게 관심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곧잘 과격한 논쟁을 벌였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고갱과 나의 논쟁은 지독하게 전율적이다. 논쟁 후 우리의 머리는 지쳐버린 나머지 방전된 배터리와도 같다”고 했다.

자기중심적이고, 거만하며, 보스 기질이 있는 고갱은 음울하고 변덕스러운 빈센트와 미학적ㆍ윤리적 주제를 놓고 논쟁을 할 때 빈센트가 보이는 격정적 태도와 광적 집착에 넌더리가 났다. 반면 빈센트는 어려운 상징주의에 대한 이론을 피력하는 고갱의 장광설에 곤혹스러웠지만 그를 높이 평가했다.

빈센트는 고갱이 아를을 떠나려고 하자 불안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런 시기에 빈센트는 자신이 즐겨 앉는 의자와 고갱이 즐겨 앉는 팔걸이의자를 의인화하여 두 사람의 상징적인 색으로 표현했다. 그는 붉은색 타일 위 벽 가까이에 있는 노란 의자를 자신으로 상징했는데, 낮의 조명을 받는 의자로 표현했다. 반면 고갱의 의자는 가스등의 조명을 받고 있어 밤을 상징하며 <밤의 카페> 천장에 사용한 녹색으로 벽을 칠해 복잡하고 열정이 강한 인물로 표현했다. 두 의자를 보면 <고갱의 의자>에는 팔걸이가 있고, <반 고흐의 의자>에는 팔걸이가 없다. 그리고 두 의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빈센트는 자신을 낮으로, 고갱을 밤으로 은유했다. 두 의자는 고갱과의 우정을 상징했으며 동시에 두 사람의 상이한 개성에 대한 표현이었다.

고갱의 상징주의
힘겨운 가난

1888년 12월 23일 빈센트의 자해로 아를에서 도망치다시피 파리로 온 고갱을 반긴 것은 가난뿐이었다. 고갱이 1889년 1월 9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빈센트가 정신분열을 일으키기 전날 그린 자화상과 자신의 자화상을 파리로 가져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갱은 그것들을 볼피니 그룹전에 출품했다. 고갱은 이듬해 2월과 3월 브뤼셀에서 개최된 전시회에 <설교 후의 영상>을 포함해 열두 점을 출품했다. 평론가 옥타브 모는 그의 작품을 “대단히 유쾌한” 작품이라고 칭찬했지만 대중이 동의하지 않았다.

고갱은 6월에 카페 자르에서 <인상주의와 종합주의 그룹전>을 열었는데 슈페네커의 재정적 도움이 컸다. 예상과 달리 전시회는 실패로 끝났지만 젊은 화가들에게는 귀감이 되는 전시회였다. ‘나비파(예언자)’ 그룹의 아리스티드 마욜, 피에르 보나르, 모리스 드니, 에두아르 뷔야르 등이 세뤼지에로부터 익히 들었던 퐁타방 대가의 작품을 꼼꼼하게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에게 고갱의 영향은 매우 컸다.

창작과 발작, 생레미의 겨울
생폴 드 모솔 요양원

병원에 감금되어 그림도 그릴 수 없고 독서도 할 수 없는 빈센트를 보면서 테오는 몹시 걱정했다. 한편 빈센트가 홀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살르 신부는 생레미에 있는 요양원을 추천했다. 빈센트도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요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테오, 살르 신부, 닥터 레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1889년 5월 8일 아를에서 북쪽으로 20km 가량 떨어진 생레미의 생폴 드 모솔 요양원에 입원했다.

테오의 요청으로 나란히 있는 방 두 개가 빈센트를 위해 마련되었다. 하나는 아틀리에, 다른 하나는 기거할 방이었다. 빈센트가 자발적으로 입원한 것이므로 병원 책임자이자 닥터 테오필 페롱은 병원의 정원에 나가 그림을 그려도 좋다고 허락했다.

빈센트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그림을 그렸다. 도착한 날 벌써 스케치를 두 점 완성하고 테오에게 펜이나 갈대펜으로 그리는 것이 돈이 적게 든다고 했다. <요양원 정원 모퉁이>라는 제목으로 펜화를 그리고 6개월 후에 유화로도 그렸다. 요양원에서 그린 작품들은 과거보다 더욱 표현적이고 내면의 충동이 강하게 나타났다. 전과 달리 붓과 펜을 힘 있게 사용하며 화면을 덜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는 과거 <별이 빛나는 밤>처럼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그린 적이 없었다. 이 작품에 관해서는 언급한 내용이 많지 않으며, 언제 그렸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은 높은 데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인데 실제가 아니라 상상의 풍경이다. 작품에 나타난 장소는 생레미의 어느 곳일 수도 있겠지만 누에넨의 풍경일 수도 있다. 하늘을 넓게 구성하고 별들의 드라마를 상상하여 묘사했다.

1889년 7월 7일, 빈센트는 자신의 작품 여덟 점을 찾기 위해 요양원 원장과 함께 아를로 가서 아무도 살지 않는 노란집에 들렀다. 그런데 아를에서 또 발작을 일으켰다. 유화물감을 삼켰는데 당시 물감에는 독성이 있었다. 페롱은 그의 건강을 우려하여 물감과 캔버스를 압수했다. 그러자 빈센트는 “그림 그리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이 날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모든 에너지를 그림에 집중시키는 일이야말로 최선의 치료”라면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페롱을 설득해 달라고 테오에게 요청했다. 페롱은 테오의 청을 기꺼이 수락했다.

발작 후 빈센트는 6주 동안 요양원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요양원 정원의 모습과 정원에서 바라본 들의 장면을 연속적으로 서른 점이나 그렸다. 발작을 일으키고 한동안 작업을 못하다가 8월 중순경에 그림에 대한 의욕이 되살아났다. 그는 화가의 작업복을 입은 자화상을 그렸다. 이때 그린 자화상들은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눈에 초점을 둔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표현주의 방법으로 과장되게 묘사한 것이다.

스스로를 소외시킨 자살
내 작품에 생명을 걸었다

아를이나 생레미에서처럼 오베르에서도 빈센트의 창작열은 식을 줄 몰랐다. 경제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별다른 대안이 생기지 않자 그림 그리는 데만 몰두했다. 빈센트는 7월 11일 어머니와 윌에게 보낸 편지에 오베르의 넓게 펼쳐진 들판이 매우 좋다고 적었다. 그가 그린 가장 단순한 형태의 그림 <구름 낀 하늘 아래 밀밭>을 보면 프로방스의 청명한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오베르는 구름이 많이 끼고 하늘이 일기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빈센트의 구름은 배가 항해하듯 앞으로 나아가는 형상이며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하늘과 대지를 양분하고 각각의 형상과 리듬을 갖게 했다.

7월에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가 상징주의에 관해서 그리고 그가 표현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떤 사람은 혼란스러운 내면의 이미지가 궁극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고, 더러는 자살을 감행하게 만든 정신상태의 표상이라고도 단정 지었다. 빈센트는 넓게 펼쳐진 밀밭을 노란색의 파도가 넘실거리게 했다. 하늘을 검은 색과 파란색으로 어둡고 음산하게 묘사하면서 구름의 운동이 대지를 가를 듯한 천둥과 벼락을 예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노란색의 파도는 관람자를 설레이게 하는 반면, 음침한 하늘을 관람자를 위협한다.

<돌아온 프랑스
고갱의 미학

개인전에서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고갱은 1월에 얻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다시금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아틀리에를 작품을 알리고 타히티에서 그린 작품들을 선보이는 일종의 개인 화랑으로 꾸몄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모자를 쓴 자화상>이다. 고갱은 아스트라카 모자를 쓰고 짙은 파란색 코트를 입은 모습이다. 이 작품을 보면 고갱이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림 속 인물의 차림새와 표정에 반감을 나타낸 사람들도 있었다.

고갱은 몇몇 젊은이들에게 회화를 가르쳤으며 이로 인해 ‘피지 아카데미’란 말이 생겼다. 그는 매주 목요일, 친구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이들을 작업실로 불러 작품을 감상하고, 음악을 연주했으며, 예술에 관해 대화했다.

고갱은 1894년 4월 안나와 함께 퐁타방으로 가서 12월까지 지냈다. 이 시기에 평론가 모리스가 고갱의 대리인 역할을 했으며 타히티에서 그린 작품들을 제법 팔았다. 수입이 생겼지만 대부분은 빚을 갚는 데 써야 했다. 그는 퐁타방에서도 작업했지만 이국에서 지낸 후라서 퐁타방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고갱은 파리로 돌아와 다시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때 제작된 <오비리>는 여인의 누드를 과장한 것으로 특히 얼굴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신상처럼 보인다. 오비리는 타히티어로 야만인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광기 어린 표정을 한 여인이 피투성이가 된 늑대를 짓누르는 모습을 나타낸 대작이다. 1906년 파리에서 열린 고갱의 회고전에서 이 작품이 처음 소개되자 많은 젊은 화가들이 감동했는데, 피카소가 특히 감동을 받아　<아비뇽의 아가씨들>에서 <오비리>를 한 인물의 토대를 삼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