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빵의 쟁취

저   자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역:여연 외)
출판사
행성B잎새
출판일
2016년 05월
서   재







  • 『상호부조론』이 그의 공동체주의 사상에 관한 차분한 설명이라면, 『빵의 쟁취』는 적극적인 선동이다. 크로포트킨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이상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한다. 공공재를 오염시키고 사유화해 자신의 부를 축적시키는 자본가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모든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터무니없는 착취와 불의가 없는, 모두가 좋은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 책은 형식적 대의민주주의와 극소수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병든 자본주의에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는 지금의 세대에게 좋은 삶의 권리, 빵의 행방을 다시 묻고 있다.



    빵의 쟁취


    우리가 가진 부(富)

    1

    농업에서, 제조업에서, 그리고 전체 사회 시스템을 통해서 선조들의 노동, 발견, 발명이 소수에게 주로 이득을 주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사실도 분명하다. 즉, 인류 전체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강철과 철제 발명품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모든 사람이 이미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진실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들로 부유하고, 현재의 기계 장비로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많다는 점에서 더욱 부유하다. 그리고 우리의 땅, 제조업들, 과학, 기술적 지식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모두에게 좋은 삶을 가져다주기 위해 쓰인다면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부유해질 것이다.


    2

    그런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난한가? 그 이유는 오랜 역사 과정 속에서 소수의 사람이 땅, 광산, 도로, 기계, 식량, 주택, 교육, 지식처럼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이 강탈의 역사 과정은 강제 이주와 전쟁들이 일어난 과정이고, 무지와 억압의 역사 과정이다. 이것은 인류가 자연의 힘을 제압하는 법을 배우기 전부터 인류의 생활이었다.


    과학과 산업, 지식과 그 응용, 발견과 그것의 구체적인 현실화, 그 덕분에 이어진 새로운 발견들, 두뇌와 손의 정교한 솜씨,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은 모두 협력해서 일한다. 각각의 발견, 각각의 진보, 인간 부의 총합을 증가시킨 각각의 성장은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노고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이 거대한 전체의 가장 작은 부분이나마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슨 권리를 가지고서 “이것은 당신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3

    모든 것은 모두에게 속한다.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서 힘닿는 데까지 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를 생산하는 데 각 사람들이 기여한 몫을 측정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모두에게 속한다! 남자와 여자가 일을 공평하게 분담해서 한다면, 그들은 함께 생산한 것을 공정하게 나눌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눈 것들은 그들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기에 충분하다. 더 이상 일할 권리 혹은 각자는 자신이 일한 결과물들을 모두 가져간다와 같은 애매한 문구들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좋은 삶을 살 권리이다.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이다.



    아나키스트 코뮌주의

    1

    사유 재산이 폐지되었을 경우, 우리는 모든 사회 조직을 공동체주의적인 노선으로 조직하고 유지할 것이다. 아나키 사회는 공동체주의로 나아가고, 공동체주의는 아나키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이 둘은 현대 사회의 지배적 경향인 평등의 추구를 똑같이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동일하다.


    그리고 지금 유행하는 개인주의를 따라가 보면 우리는 모든 현대 역사에서 어떤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옛 시대의 부분적인 코뮌주의의 흔적들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적 삶의 수많은 발전 속에도 코뮌주의적인 원리가 자리 잡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어느 시골 지역에서는 마지막으로 남은 코뮌주의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서 여전히 애쓰고 있으며, 국가가 무력으로 그 균형을 깨트리는 경우만 아니라면 성공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모두에게 필요에 따라 나눈다는 이 똑같은 원리에 기초를 둔 새로운 조직이 다양한 형태로 생겨나고 있다. 왜냐하면 코뮌주의의 영향을 일정 정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시스템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편협하고 이기적으로 되어 가고 있음에도 코뮌주의로 향하려는 경향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의 활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코뮌주의는 푸리에나 팔랑스테르주의자의 공산주의도 아니고,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공산주의도 아니다. 이것은 아나키스트 코뮌주의로, 정부가 없는 코뮌주의, 자유 코뮌주의를 말한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추구해 온 두 가지 이상인 경제적인 해방과 정체적인 해방이라는 이상을 종합한 것이다.


    2

    우리 세대를 특정 짓는 놀라운 사실이 이러한 우리의 생각들을 더욱더 지지해 주고 있다. 이것은 개인적이고 진취적인 정신 덕분에 기업의 영역이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고, 온갖 종류의 자유로운 조직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롭고 무한히 다양한 이 조직은 우리 문명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이 조직들은 아주 빠르게 성장하면서 아주 쉽게 서로 동맹을 맺는다. 이 조직들은 문명화된 인간의 욕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나타난 매우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 조직들은 정부의 간섭을 대신할 만한 장점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조직들 안에 사회생활에서 점점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조직들이 아직도 삶의 전 영역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거나 널리 퍼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노동자의 가난, 현 사회의 분열, 자본의 사적인 횡령, 그리고 국가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이런 장애물들을 완전히 없애 보라. 그러면 문명인이 활동하는 아주 다양한 영역이 이런 조직들로 가득 차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방법과 수단

    1

    어느 한 사회, 한 도시, 한 지역이 주민에게 생활필수품을 보장해 주려면, 그 사회는 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부득이하게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토지, 기계, 공장, 운송 수단, 등을 손에 넣어야 한다. 사적 소유자들이 손에 쥐고 있는 자본도 몰수해서 공동체에 돌려줄 것이다.


    이제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은, 첫째로 지금은 특정 산업에만 한정되어 있는 이 생산성을 더욱 크게 확대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동 생산성을 모두의 좋은 삶을 보장하는 데 쓰려면 사회는 모든 생산 수단을 손에 넣어야 한다.


    현 체제의 해악은 각각의 세대들이 소비하지 않고 남겨둔 단순한 잉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잉여 가치가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왜냐하면 잉여 가치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 아이들 모두가 강요된 배고픔에 못 이겨서 자기들의 노동이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적은 몫만을 받고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해악은 생산 수단들을 소수의 몇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가능한 인간의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써서 모든 사람의 행복에 필요한 재화들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목표는 사적 소유자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전체로서의 사회, 생산에 관한 이런 견해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회가 강제로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야 부를 생산해서 모두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토지, 공장, 광산, 통신 수단 등을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적절한 생산 방법과 수단을 연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생산이 보편적인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2

    사람이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일해야만 자신과 가족을 위한 영양가 있는 음식, 안락한 집, 필요한 옷을 생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사회주의자들이 흔히 몰두하는 문제이다. 대체로 그들은 하루 네다섯 시간이면 충분할 거라는 결론에 다다르곤 했다. 모든 사람이 일을 한다는 암묵적인 조건 아래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농업과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몇 백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사회를 상상해 보자. 이 사회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머리와 함께 손을 써서 일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 교육을 맡고 있는 여성들을 제외한 모든 어른이, 20~50살까지 하루에 5시간씩 일을 할 의무가 있다. 일자리는 그 도시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다양한 분야의 직업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사회는 모든 구성원에게 좋은 삶을 제공해 줄 것이고, 그 행복은 오늘날 중산층이 즐기는 것보다 훨씬 실질적이고 내용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사회에 속한 노동자들은 각자 하루에 적어도 3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들은 그 시간 동안 한문이나 예술에 전념할 수 있으며, 개인적인 일을 하는 데 그 시간을 쓸 수도 있다. 아마도 인간의 생산성이 증가하게 되면, 학문이나 예술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사치스럽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유쾌한 노동

    1

    공장을 과학 실험실만큼이나 위생적이고 쾌적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그렇게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도 확실하다. 공간이 넓고 환기가 잘 되는 공장에서는 일을 더욱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은 개선을 도입하는 일은 쉽게 시도해 볼 수 있고, 이런 개선들은 시간과 노동력을 절약해 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일터가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이유는 공장 경영진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에너지의 가장 어리석은 낭비가 현재 산업 체제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우리는 지금 시대도,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로 즐거울 만큼 훌륭하게 운영되고 있는 공장들을 이미 찾을 수 있다. 만약 그곳에서의 노동이 하루에 4~5시간을 넘지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적성에 따라서 그 일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평등한 사회에서는 일이 기쁨이고 위안이 될 거라는 사실을 우리가 의심할 수 있을까? 그런 사회에서는 일꾼들이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이면서 강제로 자기 노동을 팔지 않을 것이다. 불쾌한 노역들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불건강한 노동 조건들은 사회 전체에 해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유인들의 노동은 즐겁고 분명히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2

    혁명에 의해 다시 태어난 사회는 아마도 가정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것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가사 노동은 마지막 남은 노예 형태인데, 아마도 가장 끈질긴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로부터 내려와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왜 여성들의 노동은 한 번도 중요하게 여겨진 적이 없을까? 어째서 모든 가정에서 어머니나 서너 명의 하인들이 요리와 관련된 일에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할까? 왜냐하면 인류 해방을 원했던 사람들이 해방이라는 자기들의 꿈속에 여성은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힘든 노동을 견뎌야 하는 여성의 어깨 위에 자기들이 올려놓은 그런 부엌일 따위를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의 우월한 남성적인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성을 해방시킨다는 것이 대학, 법정, 혹은 의회의 문을 그녀들에게 개방한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방된 여성은 항상 자기 집의 가사 노동을 다른 여성에게 떠넘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 해방이란 부엌과 세탁실에서의 고된 노동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가 정말로 원한다면, 스스로 자기 아이들을 기를 수 있는 방식으로 가정을 꾸리면 된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자기 몫의 사회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가 시간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소비와 생산

    1

    누구든 상관없이 어느 경제학자의 저서를 펼쳐 본다면, 여러분은 그가 생산으로 글을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책의 뒷부분에 가서 소비를 다룬다. 하지만 뭔가를 생산하기 전에 여러분은 먼저 그것에 대한 필요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처음 사냥을 하고, 가축을 기르고, 땅을 경작하고, 도구를 만들고, 기계를 발명해 낸 것은,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산을 관리하는 것은 필요에 대한 연구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 필요를 고려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적어도 논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이 어떻게 조직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것이다.


    2

    우리가 개인과 사회의 필요를 고려하고, 인생의 여러 발달 단계마다 나타나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단들을 고려한다면, 곧바로 우리는 오늘날 하고 있는 것처럼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생산하는 것 대신에 노력을 조직적으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된다. 소수의 부자들이 점유한 부가 제대로 사용되지도 않은 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겨진다는 것은 일반적인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방식들 때문에 4분의 1이나 되는 사람들의 필요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쓸모없는 것들에 인간의 힘을 낭비하는 것은 범죄와 다름없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모든 필요한 물품들을 가장 유익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그것들 각각을 제일 먼저 가장 절실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쓰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다시 말해, 소위 말하는 상품의 사용 가치는 흔히 주장되는 것과 달리, 단순히 일시적인 변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코뮌주의가 이러한 일에 부합할 수 있는 논리적인 결과가 된다. 다시 말해, 소비, 생산, 교환의 관점을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조직이 코뮌주의라는 뜻이다. 우리의 의견으로는 코뮌주의만이 진정으로 유일하게 과학적인 것이다.



    산업의 분산화

    1

    모든 산업에서 독점이 사라지고 있다. 벨기에는 더 이상 옷감을 독점하는 나라가 아니다. 옷감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미국에서도 만들어지고 있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쥐라산맥 지역은 더 이상 시계 제조를 독점하고 있지 않다. 시계들은 어디에서나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 산업도 더 이상 영국이 독점하고 있지 않다. 황산과 소다는 심지어 우랄지방에서도 만들어진다. 오늘날 스위스는 석탄도 철도 생산이 안 되고 교역할 무역항도 없으며, 가진 것이라곤 훌륭한 기술학교들밖에 없지만, 영국보다 품질이 좋고 더 저렴한 기계들을 만들고 있다. 교환 이론은 이렇게 끝이 난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무역이 나아가는 경향은 분산화로 향하고 있다.


    모든 나라들이 농업을 최대한으로 다양한 공장들과 결합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다. 모든 지역과 모든 나라가 자기네가 먹을 밀과 채소들을 기르고 소비할 상품을 대부분 국내에서 제조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양성이야말로 상호 협동에 의한 생산의 완전한 발달을 약속하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자 진보의 원동력이다. 농업은 공장들과 가까운 곳에서만 번영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공장이 나타나자마자 곧 수많은 다양한 공장들이 주위에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발명한 것을 가지고 서로를 지원하고 자극하면서 생산성을 증가시켜 나갈 것이다.



    농업

    1

    농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쟁기를 끄느라고 몸을 구부린 농부를 상상한다. 그 농부는 제대로 선별도 안 된 옥수수 씨앗을 아무렇게나 땅에 뿌리고는 좋고 나쁜 날씨에 따라 어떤 수확이 있을지를 마음 졸이며 기다린다. 또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농부 가족이 그 결과로 얻는 것은 거친 잠자리, 마른 빵, 질 낮은 음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농부를 미개인으로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참한 처지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회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구제책은 세금과 지대를 경감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 개혁가들조차도 다음과 같은 농민을 떠올려 보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즉, 허리를 똑바로 펴고, 여가를 즐기며,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해서 자기 가족을 위한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100명의 사람들에게 공급해 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의 모습 말이다.


    하지만 의식 있는 농부는 오늘날 더 폭넓은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다. 그가 구상하는 것은 그 규모가 훨씬 웅장하다. 한 가족이 먹을 만큼 충분한 채소들을 기르는 데는 1에이커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땅만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예전에 50에이커에서 수확했던 것을 1에이커의 땅에서 생산하면서도 과거에 비해 총 노동량을 크게 줄여서 과도한 노동이라는 고역을 없애려는 것이다. 그 농부는 각자가 즐겁고 기쁘게 제공할 수 있는 시간 이상을 농사일에 쓰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농업의 경향이다.


    6

    프랑스 대혁명의 모든 위대한 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한 하루는, 프랑스 전역에서 파리로 온 대표자들이 연맹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상드마르스 광장에 모여 삽으로 땅을 평평하게 고르던 날이었다. 그날 프랑스는 하나였다. 새로운 정신으로 활기를 얻게 된 프랑스는 땅에서 함께 모여 작업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았다.


    그리고 해방된 사회가 자신이 하나임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그들을 분열시켜 온 증오와 억압을 없애 버리게 되는 일도 다시금 땅에서 모두 함께 일하면서일 것이다. 그때부터는, 사람의 에너지와 창조력을 백배로 증진시키는 무한한 힘인 연대감을 자각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사회는 젊음의 모든 활기로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전진해 나갈 것이다.


    사회는 알지도 못하는 구매자들을 위해서 생산하는 것을 그만둘 것이고, 충족되어야 할 욕구들과 취미들을 사회 한가운데서 찾아낼 것이다. 이런 일들을 하는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 각자에게 삶과 안락을 아낌없고 공평하게 보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성취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얻는 도덕적인 만족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기쁨 역시 보장할 것이다.


    연대감에서 태어난 새롭고 대담한 정신에 영감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지식과 예술적 창조라는 고상한 기쁨들을 쟁취하기 위해서 함께 전진해 나갈 것이다. 이런 정신으로 고취된 사회는 내부의 불화나 외부의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는 과거의 연합 세력에 대해 새로운 조화로움으로 맞설 것이다. 즉, 각자의 진취 정신과 민중의 재능에 대한 각성에서 생겨난 대단함으로 그들과 맞설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이런 힘 앞에서는 음모를 꾸미는 왕들도 무력하게 될 것이다. 이 힘 앞에 무릎을 꿇는 일 말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인류라는 마차에 매달려서 사회 혁명으로 새롭게 열린 지평선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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