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세계 헤어웨어 이야기

저   자
원종훈 외
출판사
아마존북스
출판일
2022년 01월
서   재







  • 우리의 머리스타일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이 책은 머리카락, 헤어웨어의 변천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동양, 서양의 머리카락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고 있다.



    세계 헤어웨어 이야기


    신화와 전설: 신비, 과시, 신성

    신화의 고리

    황금가지의 터부

    “머리카락은 터부의 상징이다.”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인류문화사에서 머리와 머리카락을 터부의 영역으로 바라본 탁월한 발견자일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터부(taboo)라는 말의 속살을 들여다봐야 한다.


    터부는 일반적으로 알듯이 단지 금기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각주가 필요하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인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말인 터부에는 두 가지 상반된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깊이 있게 이해한 인물이 있었다. 정신의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다.


    그는 『토템과 터부』라는 탁월한 저서에서 터부를 두 측면에서 해석한다. 하나는 ‘신성한’, ‘봉헌된’이고, 또 하나는 ‘끔찍한’, ‘무서운’, ‘금지된’, ‘순수하지 못한’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터부의 한 면이 금지 또는 금기라는 신호를 보내는 순간, 정반대편에는 신성이라는 신호가 숨 쉰다는 의미다. 터부에서 금기와 신성을 간파한 것은, 프로이트의 빛나는 통찰이다.


    다시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그는 터부의 상반된 이미지를 어떻게 접근했을까? 방대한 문헌에서 흥미로운 광경들을 발견한 그는 긴 시간에 걸쳐 찬란한 걸작을 완성한다. 그가 남긴 『황금 가지』를 펼치면, 머리와 머리카락에 관한 터부가 수많은 가닥의 이야기처럼 흘러나온다.


    프레이저는 머리와 머리카락의 금기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영혼과 신성의 존재를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영혼과 신성을 대하는 인간의 의식을 추적한다. 그는 무수한 원시 신앙과 풍습의 사례를 들어, 사람들이 머리와 머리카락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으며 신성하게 여겼다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프레이저는 머리와 머리카락에서 영혼을 발견하고 신성이라는 지점에 도달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캄보디아에서는 타인의 머리에 손을 대는 행위는 범죄로 여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머리와 머리카락은 접근할 수 없는 불가침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손을 대는 자, 머리 위로 지나가는 자, 상대를 모욕한 죄에 해당하니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바로 터부가 출현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머리와 머리카락은 사람들 사이에서 터부로 굳어져 갔다.


    『황금가지』에 묘사된 머리와 머리카락이 지닌 터부는 풍기는 이미지부터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깊은 해석과 통찰로 알았을 것이다. 머리와 머리카락의 터부가 일부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서만 받아들여지는 인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동양과 서양, 문명과 원시라는 인위적이고 협소한 구분은 물론, 그 어느 계통에 속하지 않은 삶에서도 표출되는 전통이다. 금기와 신성은 다르면서도 같은 이형동체(異形同體)이다. 머리와 머리카락은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감춰진 세계

    로마제국, 귀족의 품격과 주술 사이

    팍스 로마나(Pax Romana) 1~2세기 로마제국은 광대한 대제국을 건설하고 평화를 이어가던 세계 최강이었다. 이 시기 로마인들은 부가 넘쳐흘렀고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만큼 사치스러웠고 화려했다. 그 무렵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남성과 여성 가리지 않고 외모 가꾸기가 유행했다. 가발과 화장술이었다.


    로마인들은 염색가발을 쓰고 다녔는데, 귀족의 품격을 나타내고 유지하는 것이 큰 이유였다. 또한 자신의 머리숱이 적은 것을 커다란 수치로 받아들여 머리를 길게 기르거나 가발을 착용했다. 고대 이집트인들과 비슷한 모발 관리법이 있었는데, 두피에는 사자의 기름, 뱀, 악어, 비둘기의 배설물을 바르기도 했다. 이처럼 로마인들에게 머리카락과 화장술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훌륭한 표현법이었다. 매춘굴의 도구에서 귀족의 품격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마인들이 오늘날 독일인의 게르마니아인을 야만인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의 머리카락 풍습까지 책에 기술한 것을 보면, 역사학자로서 타키투스의 폭넓은 관심과 학자의 자세는 남달랐다. 이처럼 고대인들에게 머리카락은 신성함이었다. 신성함은 주술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고대인들은 머리카락에 담긴 신성함을 소유하고 싶어 했다. 주술은 권력 자체였다. 근대의 이성과 과학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주술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절대적인 능력이었다. 신성함에 대한 소유욕이 강렬하게 표출되는 것이 전쟁터였다. 적의 머리카락을 소유하게 된 자가 주술적인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피가 난무하는 치열한 전쟁의 최종 승리자가 패배자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행위는 시각적으로도 우월했다. 승리자에게는 절대자 신과 동격이 됨을 선포하는 의례였으며 패배자에게는 죽음과 노예의 길뿐이었다.


    팍스 로마나 시대, 로마인들은 몹시 분주했다. 드넓은 제국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부를 쌓는 한편, 집 안에서 내밀한 욕망을 충족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분주함 가운데, 머리카락은 로마인들의 욕망들이 나타나고 실천되어야 하는 세계였다. 하나는, 로마의 귀족들이 자신이 속한 높은 신분을 드러내고 아름다움을 꾸미는 욕망이다. 신분과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세계가 머리카락인 것이다. 또 하나는, 전쟁의 승리자가 되어 주술의 힘을 소유하여 신성함을 얻는 것이다. 로마인들에게 머리카락은 곧 신분과 아름다움과 주술의 표시였다. 로마인들은 또 하나의 세계를 통치하고 있었다.



    혁명과 연애: 열정, 자유, 영원불멸

    너무 바쁜 중세의 사람들

    변발로 이어진 몽골, 고려, 청나라

    변발(辨髮)은 몽골어로 케큘(kekul), 한자어로 음역을 해서 겁구아(怯仇兒)라 불렀다. 변발의 머리 모양은 다음과 같았다. 정수리 주변 머리카락을 원형으로 매끄럽게 밀고, 둘레에 남은 머리카락 중 앞머리는 이마에 사각으로 늘어뜨리고, 뒷머리는 두 줄로 땋아 양쪽 귀밑에 길게 내린다. 호라즘 제국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된 변발이 원나라의 고유한 전통은 아니다. 후대 청나라 만주족은 물론 그 이전 3~5세기 위진 시대의 선비, 6세기 수당 시대의 돌궐, 12세기 중국 동북지방의 여진과 같은 북방민족들도 변발을 즐겨했다.


    당시의 유행을 하나 더 꼽는다면, 머리 모양을 빼놓을 수 없다. 개체변발이다. 개체변발은 머리 정수리부분과 좌우양쪽 머리카락을 남긴 뒤 이를 묶고 말은 형태이다. 그런데 원나라의 침략 이전에도 변발이 고려사회에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1123년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변발 풍습이 희미하게나마 기록되어 있다.


    17세기 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한족에게 치발령을 내렸다. 치발령(薙魃令)은 “머리를 두려면 머리카락을 둘 수 없고, 머리카락을 두려면 목을 둘 수 없다”는 것으로, 피지배자가 된 한족에게 변발령을 강행했다. 청나라 전역이 변발이라는 북방민족의 머리 모양으로 바뀌어갔다.


    긴 변발을 한 채 쏜살같이 밀려드는 몽골기병들 앞에서 유라시아는 속수무책이었다. 변발은 세계사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서사적 긴장감을 선사했다. 변발은 고려의 여성들이 멋을 가꾸고 미색을 뽐내는 데 일조했으리라. 그래서 변발은 강렬한 자극이었다. 변발은 원나라와 만주족에게는 지배와 동화를 동시에 나타내는 장식의 언어였으나, 고려와 한족에게는 피지배와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항복의 표시였으리라. 몽골기병과 만주족은 최고의 전사들이면서도 멋을 낼 줄 알았다.


    참으로 바쁜 중세인이었다.


    다른 세계, 같은 세계

    동서양, 미인의 조건

    조선의 신윤복, 일본의 기타가와 우타마로, 프랑스의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륑.


    이들 세 화가는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중반 같은 시기를 살았다.


    그리고 이들은 당대의 미인들을 그림으로 남겼다. 무척이나 공교로운 일이다.


    동서양에서 미인이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서로 다른 자연지리, 문화적 환경을 지닌, 조선과 일본의 에도시대와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거닐던 미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미인들의 속삭임이 서서히 스며드는 듯하다.


    중국에서 미인도는 일찍부터 사녀도(士女圖)란 또 다른 명칭으로 불리며 인물화의 한 분야로 자리잡아왔다.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의 의복은 삼회장저고리 차림이다. 삼회장저고리는 깃, 끝동, 곁마기, 고름의 색깔을 다르게 한 것인데, 이는 기녀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인도의 주인공은 기녀인 것이다.


    여인은 전형적인 얹은머리를 하고 있다. 얹은머리는 틀어 얹은머리라는 뜻의 트레머리로 지칭되기도 한다. 트레머리는 가르마를 타서 뒤로 넘긴 두발을 본머리로 하여 묶고 그 위에 꼬거나 엮은 가체 여러 개를 얹어놓은 형태이다. 즉, 가체를 한 모습이다. 가체는 “혼인여부 표식,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한 신분구별을 나타냈다. 또한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여지기를 원했던” 여인들의 욕망을 표현했다. 그래서 얹은머리는 반가 부녀자를 비롯해서 일반 부녀자 및 기녀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매우 성행하였다. 미인도의 여인처럼.


    18세기 유럽 패션의 중심지는 프랑스 파리였고, 퐁탕주 스타일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야말로 미인의 조건을 갖춘 여인이었으며 패션을 이끄는 시대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적어도 프랑스 대혁명의 단두대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동서양 미인의 조건은 머리 모양에 있었다. 최대한 화려하고, 관능적으로 풍만하고, 가급적 높이 치솟은 상태로 치장하는 것.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인은 가늘고 긴 머리카락을 어떻게 꾸미는지가 중요했다. 18세기 조선일본 에도시대, 프랑스 절대왕정, 그때를 살던 미인들은 자신들의 머리카락에 온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전통과 자유: 스타일, 금지, 아이콘

    스타일의 창조

    스타일의 창의성, 피그와 덕

    인간의 아이디어와 창의성은 의외의 대상과 순간에서 재기 발랄하게 번뜩이곤 한다. 그 대상은 예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헤어스타일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인간들은 꽤 오래전부터 상상력을 발휘해서 동물의 신체 특징을 닮은 헤어스타일로 멋을 부렸다. 동물의 신체를 닮았다면 대체 어떤 동물일까? 이런 헤어스타일은 누가 선호할까? 모든 궁금증은 이 동물에 숨어 있다. 피그와 덕이다.


    피그(pig)는 알다시피 돼지라는 뜻으로 헤어스타일 중에 피그테일(pig-tail)이 있다. 이 피그테일 머리 모양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아온 캐릭터가 존재한다. 1908년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 1874~1942)가 발표한 『빨간 머리 앤』의 앤 셜리(Anne Shirley)이다. 아마도 빨간 머리 앤처럼 소설은 물론 애니메이션까지 꾸준한 인기를 대중적으로 누려온 소설의 캐릭터도 드물 것이다.


    덕테일(duck-tail)이라는 단어는 ‘집오리의 꼬리’를 말한다. 어떤 모양의 헤어스타일일까?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명칭이다. 덕테일은 1950년대 미국의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당시 최고의 청춘스타이자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 1931~1955), 록앤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가 즐겨하던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다. 제임스 딘은 반항하는 젊음의 대명사, 엘리스 프레슬리는 자유와 열정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 1947~현재)은 덕테일 헤어스타일에 얽힌 일화가 노스탤지어로 남은 것 같다. 그의 자전적인 성장소설 『스탠 바이 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무엇보다 교사들은 덕테일 헤어스타일을 하고 가죽 재킷에 가죽 부츠를 신은 이 허깨비 같은 녀석이 아무 예고도 없이 자기 교실에 불쑥 나타난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덕테일은 양쪽 머리를 바짝 붙여 뒤로 당기고, 뒷머리 쪽을 모아 오리꼬리처럼 올린 헤어스타일을 말한다. 덕테일 헤어스타일은 청춘의 상징이자 젊은날 끓어오르던 반항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피그테일과 덕테일은 돼지꼬리와 오리의 꼬리를 닮은 헤어스타일이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동물의 신체를 따라서 머리 모양을 한 것일까? 어떤 익명의 존재가 이름을 달아준 뒤,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며 자연스럽게 오늘의 이름으로 정착된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피그테일은 에이번리 마을에 사는 빨간 머리 앤의 영원한 상징으로, 덕테일은 기성세대의 가치에 반항하고 그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갈구하던 1950년대 청춘들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피그테일과 덕테일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명칭조차도, 앤과 제임스와 엘비스에게는 멋진 장식으로 뒤바뀐다.


    고데와 장발, 표현과 금지 사이

    여학생이 고데를! 체포하라! 남학생이 장발을! 머리카락을 잘라라!


    국민들의 헤어스타일에 일일이 관여하던 국가가 있었다. 대한민국이다. 그 시기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였다. 실제 어떤 내용의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잠시 그때로 돌아가 보자. 그러나 낭만적인 노스탤지어라 부르기에는 국가와 사회의 강압적인 그늘이 진하게 드리워진 때이다.


    여학생들이 머리에 ‘고데질’을 했다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고데(kote, 鏝)는 머리 모양을 다듬는 미용기구를 가리키는 일본말로서, 고데기로 머리를 말았다는 것이다. 1954년 여학생의 고데는 문란과 탈선을 합친 학생범죄였던 것이다. 여학생 포함 학생범죄를 진압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와 어른들이 전방위적으로 나섰다. 마치 범죄 소탕령이 내려진 것만 같았다.


    경범죄처벌법 개정 전인 1972년을 보면 히피성 장발로 불린 장발족이 무려 31만 4천이 넘는 숫자가 경찰에 적발되었다. 당시 표현을 빌리자면 장발족은 반사회적인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장발족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1970년대 한국사회의 청년들 사이에서는 통기타, 청바지, 미니스커트, 그리고 장발이 일대 유행이었다. 당시의 회고를 들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장발 단속과 장발이었던 내가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던 모습이다.” 대중가수들은 통기타를 들고 청바지에 장발로 노래를 불렀다. 과연 장발은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젊은 시절의 멋이었을까? 이때는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지독한 암흑기. 이른바 유신독재시기였다. 장발의 대학생들이 대체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장발은 일종의 문화적 저항행위로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에서는 전국적으로 장발단속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여학생들의 고데, 청년들의 장발은 자기표현의 욕망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1970년대 대한민국은 고데와 장발을 용인하지 못했다. 대신 강력한 힘으로 억누르고 짓누르고 금지하는 물리적 폭력을 택했다. 확실하게 반사회적인 범죄자로 낙인을 찍었다. 국가는 사람들의 가슴팍에 주홍글씨를 새겨버렸다. 누구보다 예민한 자의식을 가졌던 가수들은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으며 스스로 장발족이 되는 길이었다. 장발족은 자유와 저항을 향한 외침이자 한 편의 시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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