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청 도서요약
   국내도서 요약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저   자
김태형 (지은이)
출판사
갈매나무
출판일
2023년 12월







  • 현대 한국 사회는 진정한 사랑이 아닌 ‘가짜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가짜 사랑이란 필요에 따라 상대를 이용하는 도구적 사랑이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심리적 고통과 인간 소외를 초래합니다. 진짜 사랑을 되찾기 위한 심리학자 김태형 소장의 제안과 만나보세요.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진짜 사랑을 잊어버린 한국 사회

    왜 모두 사랑에 실패하고 있는가?

    각자도생의 시대, ‘죽음의 키스’

    원래 제아무리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에 별문제가 없으면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심장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체 기관이다. 그러나 심장에 이상이 없는 한 자기의 심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상적으로 자신의 심장박동을 세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평소에는 심장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일지라도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거나 통증을 느끼는 등 이상이 생기면 심장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 사람은 심장박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인터넷에서 심장질환 관련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기도 하고, 병원에 방문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사랑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인간에게 사랑이 너무나 중요함에도 사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자존감, 행복 등에 과거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신자유주의는 사랑을 실제로는 불가능하게 만들어놓고, 사랑에 매달리도록 유혹하고 부추긴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각종 매체를 통해 사랑에 대한 환상을 지속적으로 유포한다. 영화나 드라마, 대중가요 등은 여전히 사랑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거나 현실의 온갖 문제를 사랑으로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들을 꾸준히 생산하고 퍼뜨린다. 한마디로 현실 도피 수단으로서의 마법 같은 사랑,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환상을 조장하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절대적 영향력 때문에 대중은 세상이 어떠하든 간에 환상적인 사랑은 가능하며, 그런 사랑을 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허황한 믿음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이와 함께 소셜미디어 같은 네트워크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사랑에 집착하도록 압박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성공적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삶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보면서 “나만 빼고 모두가 사랑에 성공하고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여기며 괴로워한다. 그리하여 이를 악물고 더욱 사랑을 위해 분발한다.


    그런데 SNS에다 알콩달콩 사랑하는 장면이나 행복에 겨운 모습을 올리는 사람들은 정말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거나 행복한 것일까?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리는 행위와 실제 관계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남들에게 완벽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애쓰는 커플은 자기들의 관계를 알리는 데 별 관심이 없는 커플보다 사이가 더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랑 전선에 이상이 없을 때가 아니라 상대의 감정에 확신이 없을 때, 즉 관계가 불안정할 때 페이스북에다 관계를 과시하는 게시글이나 이미지를 올렸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가족 사이가 친밀하지 않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타인으로부터 긍정적인 관심을 얻어내기 위해 SNS를 더 자주 이용했다. 이런 연구는 실제로는 사랑에 실패하고 행복하지 않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 사랑의 성공을 자랑하는 글과 이미지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게시글이나 이미지가 현실을 오해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데 있다. 만일 절대다수가 솔직하게 사랑의 어려움이나 실패를 토로하거나 불행을 하소연한다면 사람들은 나 혼자만 사랑의 실패와 불행으로 고통받는 게 아니라는 걸, 따라서 이는 모두의 문제라는 걸 깨닫고 ‘모두가 사랑에 실패하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이 아닌 잘못된 사회 때문이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사회, 서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랑의 어려움이나 불행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를 두려워한다. 그것은 자신이 경쟁에서 낙오된 ‘루저’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멍청한 짓이자 타인으로부터 경멸이나 무시를 자초하는 일종의 자해 행위이기 때문이다.


    거짓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사랑을 포기한 삶, 사랑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성공하기란 대단히 힘들다. 신자유주의 사회가 사랑을 못 하도록 가로막는 탓이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랑에 실패할수록 사랑은 더 중요해진다.


    사랑을 방해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으뜸은 각자도생의 삶이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이기주의와 정신건강 악화-이기주의와 정신건강 악화는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의 관계에 있다-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려고 애써보지만, 이기심에 사로잡힌 탓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의 정신건강을 파괴한다. 이기주의는 인간을 자신의 욕망이나 이익을 위한 이용 대상 혹은 도구로 간주하게 만들고, 삶의 의미나 가치를 박탈하며,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등의 부정적 작용으로 정신건강을 가혹하게 파괴한다.


    이기주의와 정신건강 악화는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를 차별하거나 무시하고, 학대하거나 괴롭히도록 강요한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선 이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불안 수준이 급격히 증가하고 정신장애나 사회병리 현상, 반사회적 범죄 등이 급증한 건 이 때문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해보지만 가짜 사랑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파괴하는 사랑을 ‘죽음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즉 자신은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에게 키스를 했는데, 그 사랑이 가짜 사랑이어서 키스가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거나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거나 죽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기주의와 정신건강 악화가 극단에 이르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하려고 애쓰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랑은 가짜다.



    주류 심리학은 왜 문제의 원인을 은폐하는가

    사람들은 왜 가짜 사랑에 속는가?

    정신건강은 사회의 규칙에 좌우된다

    사회가 인간심리와 정신건강에 미치는 거대하고 결정적인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게임의 규칙만 달라져도 그것에 인간심리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금방 변화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당시에 지각생을 단속하던 선생님은 지각생들을 모아놓고는 운동장을 단체로 열 바퀴 달리고 나서 교실로 들어가는 벌을 주셨다. 이런 벌을 받을 때만 해도 지각생들은 서로 농담까지 주고받으면서 사이좋게 운동장을 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단속에 걸린 지각생들을 운동장 반대편에 있는 농구 골대까지 뛰어갔다 오게 한 다음 선착순으로 2등까지만 교실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또다시 달려야 하는 방식으로 벌칙을 바꾸셨다. 개인 간 경쟁 방식으로 벌칙이 바뀌자 지각생들은 마음의 여유를 잃어 친구들을 거의 배려하지 않았고, 자신이 2등 안에 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이기기 위해 은근슬쩍 반칙하는 학생들까지 생겨났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 사회-일반적으로 게임의 규칙은 그 사회를 지배하는 독점자본가 같은 지배층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정한다-가 정하는 부의 분배방식이나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 게임의 규칙 등은 인간심리와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는 권력과 부를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1대 99의 양극화 사회를 초래했고, 사람들에게 승자독식의 원리에 기초한 경쟁이라는 게임 규칙을 강요하여 인간관계를 파괴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간적이고 건전한 요구나 욕망을 실현할 수 없기에 전반적인 정신건강이 크게 악화된다. 부정적 심리와 정신건강 악화는 진짜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가짜 사랑을 강제하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주류 심리학은 인간심리가 정상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주범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을 꼽는다. 다시 말해 부모의 잘못이 제일 크다는 뜻이다. 부모의 양육 혹은 어린 시절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리적 왜곡이나 정신건강 악화의 주범이 부모 혹은 어린 시절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사회의 대리인’이다. 사회가 건강하면 부모도 건강하고 사회가 병들면 부모도 병든다. 한국인들의 심리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고 정신건강을 파괴하는 주범은 부모가 아닌 병든 한국 사회이다.


    가짜 자존감, 가짜 사랑

    오늘날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자존감 손상이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기초해 스스로를 존중, 존경하는 마음”이다. 원칙적으로 인간의 가치는 사회 기여도에 따라 결정된다. 쉽게 말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가치가 높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은 가치가 낮다는 말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한국에는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는 병적인 풍조가 만연해졌다. 이와 비례해 한국인의 자존감은 심각한 손상을 입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한국인은 돈이 없다거나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여 자존감이 추락했다. 부자들 역시 자존감이 추락했는데, 진정한 자존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보통 사회적 지위가 높으므로 실제로는 자존감이 낮은데도 높다고 착각하는 가짜 자존감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가짜 자존감일 뿐 진짜가 아니므로 부자들 역시 자존감 추락을 피하지 못한다.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돈 따위로 평가하는 사회는 그 누구도 자존감을 가질 수 없도록 방해한다.


    또 하나 심각한 자존감 위기의 원인은, 학대 도미노 현상이나 인간관계 악화 때문에 사람들이 만성적으로 학대당하거나 무시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더 잘났어’ 혹은 ‘내가 더 잘 나가’ 경쟁, 즉 개인 간 서열 경쟁은 사람들이 서로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기는커녕 칼질을 해대게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자존감이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므로 타인의 평가나 존중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은 본질적으로 자신에 대한 사회 혹은 타인의 존중이 내면화된 것이지 개인이 주관적으로 조작해낸 게 아니다.


    이는 어려서부터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의 자존감이 예외 없이 낮다는 점을 통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이렇게 자존감이 심각하게 손상된 결과 현대인들은 자존감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데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게 되었다.


    자존감의 추락과 그것에서 비롯된 자존감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존감 경쟁은 가짜 사랑의 주요한 원인이다.



    진짜 사랑은 왜 사회개혁을 향하는가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귀중히 여기며 아끼는 마음

    다수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랑은 심리적 안정감, 친밀감과 유대감, 자존감과 자신감 만족감과 행복감과 비례관계에 있다. 사랑은 정신건강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육체의 기능을 향상하고 질병으로부터의 회복력을 촉진하는 등 몸의 건강도 증진시킨다.


    사랑이 이렇게 중요함에도 사랑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주된 이유는 현실에서 사랑이 아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엣센스 국어사전》에서는 사랑을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서 타당한 부분만 추려내 합치면 사랑은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다. 나는 사랑을 ‘어떤 대상을 귀중히 여기고 아끼며 위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상’이라는 말은 사랑의 대상이 원칙적으로 무제한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사랑하는 대상은 인간에게 귀중한 대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이 귀중하게 여기는 대상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자신에게 귀중한 대상을 당연히 귀중히 여기고 그 대상을 아껴주고 위해주는 마음을 가진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무엇이 귀중한가

    그렇다면 사람에게 귀중한 것은 무엇일까? 달리 묻자면 사람이 어떤 것을 귀중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요인은 뭘까? 그 요인은 요구, 욕망이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기초해 대상을 대한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를 원하기에 그 욕망의 실현에 도움이 되는 대상이나 조건 등은 귀중하게 여긴다. 반면에 자신의 욕망 실현을 방해하거나 좌절시키는 대상이나 조건 등은 귀중하게 여기지 않거나 증오한다.


    이데올로기나 가치관 같은 신념 또한 그 주요 요인이다. 사람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대상은 귀중히 여겨 사랑하는 반면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대상은 사랑하지 않거나 증오한다. 물론 사람이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가치관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는 주로 욕망으로 좌우된다. 그러나 일단 특정한 이데올로기 혹은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자체를 실현하려는 욕망이 발생하여 독립적으로 작용하므로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을 따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환경보호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대상 혹은 그것을 실현하는 데 유리한 대상을 귀중히 여겨 사랑할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고급 종이로 만든 공책이 아니라 재활용 종이로 만든 공책을 귀중히 여겨 사랑할 가능성이 높다.


    각자의 욕망은 다르므로 사람마다 사랑의 대상도 다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욕망은 사회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특정한 시기에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욕망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특정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대상, 즉 사랑의 대상이 획일화된다.


    오늘날의 한국은 돈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세상, 돈을 숭배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사람들 대부분은 돈을 사랑하며, 나아가 돈이 많은 사람 혹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한국인들이 부자,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 예쁜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곧 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돈을 상징하는 유명인을 찬양하고 사랑한다고 개탄했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돈은 그 자체로는 별로 귀중하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온갖 욕망을 다 실현하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이다. 돈은 생존의 조건이며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갖게 해주고, 인기를 누리게 해주고, 존중 혹은 존경받게 해주고, 과시하거나 잘난체할 수 있게 해주고, 경제적 지원이나 선물을 주는 행위로 사랑을 얻도록 해주는 등 모든 욕망을 실현하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이자 매개물로 기능한다. 그렇게 때문에 제일가는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진짜 사랑 권하는 사회

    사회가 바뀌어야 사랑도 달라진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짜 사랑을 하거나 사랑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 기본적인 원인은 사회다. 그러나 친자본주의적이고 체제에 순응하는 학문인 미국의 주류 심리학은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관한 문제를 모두 개인 탓으로 돌린다. 주류 심리학은 사회가 잘못되었으니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하지 않는다. 오직 개인의 노력만을 줄기차게 강조할 뿐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그의 부인인 사회심리학자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은 “심리학자들과 심리치료사들은 고객의 현재의 비참함을 오직 개인의 아동기 때의 체험이라는 측면에서만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초점을 놓치고 만다”라며 사랑에 대한 주류 심리학 이론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에바 일루즈도 사랑의 영역에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데 심리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서, 그 결과 “사랑의 고통은 개인이 자초한 것이라는 생각은 20세기 내내 무시무시할 정도로 괴기한 개선행진을 거듭해왔다”고 비판했다. 진짜 사랑을 하지 못하는 데에 불건전한 욕망 같은 개인의 심리 문제가 더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불건전한 욕망에 사로잡혀 가짜 사랑을 하도록 만드는 주범은 병든 사회다. 따라서 진짜 사랑은 개인의 노력만 으로는 이뤄낼 수 없다. 사랑을 가로막는 반인간적 사회를 개혁하여, 모두가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사회개혁 없이 개인적 노력으로만 사랑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기차가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데 승객들이 더 편안하고 좋은 자리에 앉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이 주인인 사회를 만들자

    사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한국 사회가 인간이 아닌 것을 인간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사회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가장 귀중한 건 사람이 아닌 돈이다. 한국은 그야말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회이다. 돈이 인간의 주인이 된 사회에서 인간은 돈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발붙일 데가 없다. 따라서 돈이 아닌 인간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인간이 주인이 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인간이 돈보다 더 중요한 사회, 즉 인간이 주인인 사회를 만들려면 가장 먼저 돈에 대한 병적인 욕망을 정상화해야 한다. 돈에 대한 집착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런 집착은 인간의 본성과는 무관하다. 북유럽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돈에 대한 욕망이 약하다. 북유럽은 무상의료, 무상교육, 실업이나 노후 대책으로 국가가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주며 직업에 따른 소득 격차도 적다. 이 때문에 북유럽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굶어 죽게 될 거라는 불안에 시달리지 않으며, 돈을 많이 못 번다고 해서 남들한테 무시당할 거라는 불안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 수준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참고로 북유럽 국가들도 지금은 과거보다 불평등이 심해지는 등 상황이 나쁘다. 그럼에도 여전히 북유럽 국가가 한국보다는 훨씬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인들은 돈이 없으면 굶어 죽게 될 거라는 생존불안, 돈을 잘 벌지 못하면 남들한테 존중받지 못할 거라는 존중 불안이 매우 심하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돈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고 욕망한다. 따라서 이런 공포와 불안을 완화하거나 없애야만 한국인이 돈의 노예가 되어 살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즉 돈이 아닌 사람이 주인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극심한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은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없애기 힘들다. 다음 주장처럼 사회 혹은 국가만이 그 문제를 해결 가능하다.


    오직 국가만이 해결책이나 도움을ㅡ즉 모든 시민들을 위한 최저임금(오늘날의 기본소득), 취업 여부와 무관한 사회적 안전망, 공동 고용을 막는 방해물의 제거 혹은 특정 직업을 위한 기준의 수정 등등-완전히 제공할 수 있다.


    기본사회는 사랑의 필요조건이다

    고립적 생존 불안을 완화하거나 없애려면 기본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기본사회란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며 보장하는 사회이다. 기본소득, 기본직업, 기본대출, 기본주택 등은 물론이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필요하다면 무상주택 제도 등을 통해 국민의 생존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기초적인 생존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생존 불안이 사라진다는 건 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떠받치던 두 개의 기둥 중에서 하나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만으로도 돈에 대한 욕망이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돈에 집착하고 남들과 싸우면서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소박하고 착한 사람들이 한국에 아직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 중에는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악착스럽게 돈을 벌어 기어이 호화주택을 사려고 하는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국가가 생존을 책임지는 것은 사람들이 이기적 사랑에서 벗어나 진짜 사랑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사회적, 객관적 조건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보장하면 사람들은 삶을 각자도생 방식으로 개척하기보다, 타인과 사랑하고 협력하면서 해결해나가는 공동체적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방식이 훨씬 더 낫다는 점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고립된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삶은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는 절박감을 강요하고, 이웃과 공동체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자기 자신만 쳐다보도록 시야를 좁혀 필연적으로 개인 이기주의를 강제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기적 사랑만이 가능할 뿐이다.


    반면에 국가를 통해 집단적, 공동체적 방식으로 생존 문제를 해결해나가면 사람들은 생존을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나에게만 좁혀져 있던 시야를 사회로 넓힘으로써 이기주의에서 해방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 국가가 자기의 생존 문제를 해결해주는데도 이웃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살아가기를 바랄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이웃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