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저   자
필립 짐바르도
출판사
앤페이지
출판일
2023년 02월
서   재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깨진 유리창 이론’ 등 심리학계의 살아있는 전설, 필립 짐바르도. 그가 일그러진 악의 시대를 건너는 법을 자서전을 통해 이야기해드립니다.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스탠퍼드 임용, 새로운 연구와 교수 생활, 집필

    다시 불붙은 정치적 행동주의

    스탠퍼드 대학교 초기, 1960년대 후반 격동의 시기였던 당시 심리학과와 동료 교수들, 대학 상황은 어떠했나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사이 스탠퍼드대학교는 사방에 흩어진 최고 인재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어요. 그때 운 좋게 합류할 수 있었죠. 아무튼 1970년대 초부터 무려 40년 동안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는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지켜왔습니다. 이는 굉장히 놀라운 업적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스탠퍼드는 공개적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공간이기도 했어요. 매주 월요일 밤, 교수들끼리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임을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교도소 생활 실험에 참가할 대학생 구함’

    교도소 모의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교도관이 되는가?’ ‘처음 교도소에 수감되면 어떻게 적응하는가?’라는 주제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많았어요. 그래서 기숙사에서 모의실험을 진행하기로 했죠. 그런데 실험 준비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감금’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보인 학생들이 모두 같은 기숙사 이용자라는 점이었죠. 비폭력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콜럼베이하우스 기숙사 학생들이었을 겁니다.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아무튼 실험에 참여하기로 한 기숙사 학생들 가운데 절반은 교도관 역할, 나머지 절반은 죄수 역할을 맡게 되었죠. 이 역시 그 누구의 강요 없이 각자의 의지로 선택했습니다. 다만 학생들에게 제복 같은 게 필요할 거라는 조언은 했어요.


    사실 이건 본격적인 실험이라기보다 시연이라고 부르는 게 맞아요. 금, 토, 일, 단 3일 동안 치러졌거든요. 그리고 바로 돌아오는 월요일, 이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실험은 무사히 끝났고 그 결과를 학생들이 직접 발표하기로 했죠. 조원 가운데 몇 명은 가짜 제복을 입고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죄수 역할을 맡았던 학생 한 명이 감정에 북받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제 너랑은 친구를 할 수 없어. 네가 그런 힘을 가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게 됐으니까 말이야.”


    이 말에 교도관 역할을 맡았던 학생은 당황했어요.


    “오해하지 마. 우린 그냥 맡은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야.”

    “아니, 그게 진짜 네 모습인 것 같아.”


    수백 명의 학생 앞에서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실험이 최악의 경험이었다면서 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요. 한정된 경험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에요. 학생들은 그 체험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말했죠. 어떻게 단 며칠 만에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누구도 그들에게 교도소 실험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주제가 있었는데 학생들 스스로 그 주제를 선택했죠.


    그 수업이 끝나고 나서 데이비드 제페의 조원들과 대학원생 수업 조교 크레이그 헤이니, 커티스 뱅크스를 연구실로 불렀습니다. 우리는 이 주제를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 결과 ‘데이비드의 실험을 직접적인 자극제 삼아 교도소 실험을 체계적으로 해봐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름 학기가 끝난 뒤 스탠퍼드와 관련 없는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팰로앨토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냈습니다.


    모집: 교도소 생활 실험에 참가할 대학생 구함

    기간: 1~2주

    보수: 하루 15달러


    광고를 보고 75명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크레이그와 커티스가 모든 지원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죠.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일곱 가지 척도로 이루어진 UCLA의 콤리 성격 검사 외 여러 가지 심리 검사를 실시했어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심리적으로 안정적이고 신체적으로도 아무 이상이 없는 건장한 청년 20여 명을 무작위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교도관 역할과 죄수 역할을 임의로 배정했죠.


    권력이 지배하는 교도소 실험의 탄생

    실험 첫날은 상황 자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어요. 당시는 1971년이었고, 교도관을 맡은 학생 전부가 반전운동가였죠. 일부는 당시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군복을 입게 된 거죠. 특히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몸에 잘 맞지도 않는 제복을 입고 상당히 어색해했어요. 게다가 그들은 반경찰, 반군대주의자였어요. 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이건 바보 같은 짓이야!”라고 말했어요.


    처음 교도소 실험에 지원했을 때 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감방에서 기타나 치고 카드놀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교도관들이 점호를 시키고 팔굽혀펴기를 시켰습니다. 그 외에도 망신스러운 일을 끊임없이 명령했죠. 죄수들은 이런 일을 하려고 실험에 지원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억압적인 행동은 누가 생각해낸 거죠?

    교도관들이 자연스럽게 한 행동인가요?


    교도관 스스로 한 행동입니다. 교대 근무조의 교도관이요.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했나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는 그들에게 일련의 책임을 허락했어요. 물론 누군가를 해쳐도 된다는 허락은 아니었습니다. 신체적 처벌을 가해선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거든요. 하지만 심리적 형벌은 막지 않았어요.


    “여긴 여러분의 교도소이고, 이곳에 있는 사람은 여러분의 죄수입니다. 한계는 있지만 여러분에게 책임이 있어요. 만약 죄수가 도망가면 실험과 연구도 끝나게 되겠죠. 법과 질서는 유지되어만 합니다.”


    이게 요지였죠. 교도소에서 중요한 건 ‘힘’이었습니다. 교도관은 그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죄수는 여러 방법으로 그 힘을 빼앗으려 했죠.


    실험 첫날을 보내고 커티스와 데이비드, 크레이그 등 연구진을 불러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별로 효과가 없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내일 실험을 그만두어야겠어.”


    그때까지만 해도 죄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연신 웃어 대고 있었거든요.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피식거리는 그들을 향해 “제발 좀 진지하게 받아줘”라고 호소했고요. 그런데 실험 둘째 날, 1번 방과 2번 방의 죄수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마도 비인간적인 대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존엄성을 무시당하는 교도소 생활이 문제라는 거였죠.


    야간 교대조 교도관이 제가 와서 물었습니다.


    “교수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의 교도소다. 어떻게 하고 싶은가?”

    “인력이 더 필요합니다. 이대로는 더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들의 요청으로 교도관 12명을 모두 불러들였습니다. 얼마 후 죄수들은 감방 문에 바리케이트를 치기 시작했어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밧줄로 문을 묶어 교도관이 못 열게 했죠. 그들은 나름 안전해진 감방 안에서 교도관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큰일 났구나’ 싶었죠.


    예비 인력까지 동원해 12명의 교도관이 바리케이트를 부수고 감방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을 발가벗겼습니다. 일부는 묶어놓기도 했고요. 오래된 상자와 서류함이 쌓여 있던 복도 옷장은 독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교도관은 그 공간에 죄수 두 명을 가뒀습니다. 주동자인 8612번과 또 다른 한 명을요.


    3번 방은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는 ‘착한 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너희는 식사할 권리를 상실했다. 저녁으로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다. 대신 1번 방에 특식을 넣어주겠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교도관은 1번 방 죄수들을 감방 밖으로 나오게 하고 특별한 음식을 제공했죠. 그 모습을 본 2,3번 방 수감자들이 “먹지 마! 제발 음식을 먹지 마! 우리 편이 되어줘!”라고 외쳤지만 1번 방 죄수들은 음식을 먹어버렸죠. 바로 그 시점부터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야간 근무조의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잔인하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그곳은 실험 장소가 아니라 심리학자들이 운영하는 교도소가 되어버렸어요. 권력이 지배하는 감옥 말이죠.


    실험 진행이 걱정스러울 정도였나요?


    교도관들이 감방 문을 부수고 들어가 죄수들을 끌어낼 때 물리적 폭력이 사용된 것에 대한 우려는 있었죠.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것을 지켜본 뒤, 교도관들을 모아놓고 경고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곤봉을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금합니다. 앞으로 죄수들에게 신체적 접촉을 하거나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즉시 실험에서 제외시키겠습니다.”


    그러자 교도관들은 재빠르게 직관적 심리에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3개 방끼리 대립하게 만들었죠. 이 전략은 효과가 있었어요. 수감자들이 서로 등을 돌리기 시작했거든요. 일례로 신경쇠약을 일으킨 한 수감자가 몇 시간 동안 고함을 질렀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정신 차려, 친구”라고 말해주는 사람조차 없었죠. 단결이 사라진 거예요.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죠.


    신기하게도 3명으로 이루어진 각자의 근무조마다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교도관이 꼭 한 명씩 나왔어요. 앞장서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 즉 1번 교도관이 있다는 뜻이죠. 그들은 죄수에게 벌을 주고 다른 교도관에게 시킬 일도 결정합니다. 상대적으로 3번 교도관은 수동적이고 죄수에게도 호의적이었습니다.


    만약 2번 교도관이 너그러운 교도관과 뜻을 함께하면 그 근무조의 권력은 ‘부드러운 특징’을 띄게 됩니다. 반면 2번 교도관이 지배적인 1번 교도관에 동조하면 ‘부정적인 특징’을 띄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근무조에서 2번 교도관은 권력을 가진 1번 교도관 쪽에 붙었어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나요?


    권력은 지배력과 통제권을 선물합니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힘이죠. 그래서 힘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보통 지배적인 1번 교도관이 2번 교도관에게 명령을 내리면 2번 교도관이 3번 교도관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식으로요.


    앞서 이야기했듯 3번 교도관은 착한 교도관입니다. 그런데 그들 역시 나쁜 교도관의 그릇된 행동을 적극적으로 막아서지는 않았습니다. 1번 교도관처럼 적극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교도관들의 가학적인 행위를 막아서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맡은 역할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

    이틀 동안 수감자 모두 칼로가 이끄는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았습니다. 칼로는 가석방 위원장 역할에 깊이 몰입했어요. 그는 이미 감옥에서 17년을 복역했잖아요. 이 말은 곧 가석방 심사를 16번 받았다는 뜻이죠. 일 년에 한 번씩 심사를 받는데 모두 거부된 거예요. 이런 이유로 그는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가석방심사 위원장을 맡다니!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던 사람이 본인이 되어버린 거죠.


    칼로가 학생 수감자에게 묻습니다.


    “너희 인종이 교도소에 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넌 너희 인종의 수치다. 무슨 죄로 들어왔지?”

    “경찰 말로는 형법 453조를 위반했다고 했어요.”

    “경찰이 그렇게 말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래서 죄를 지었다는 거야, 짓지 않았다는 거야?”


    죄수는 울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칼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류를 읽는 척합니다.


    “장래 희망이 교사라고 되어 있는데, 맞나?”

    “네,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나라면 너 같은 범죄자한테 학생을 맡기지 않을 거다.”


    그는 계속 수감자에게 굴욕을 줍니다. 죄수는 서럽게 울고 있어요.


    “이자를 당장 데리고 나가세요, 교도관님!”


    칼로의 말에 따라 교도관들은 수감자를 끌고 나가죠. 얼마 뒤 그 수감자는 “할 말이 있는데 다시 가석방심사위원회에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묻더군요. 좋은 죄수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면서요. 그가 상황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죠.


    모든 과정이 끝난 뒤 칼로 프리스콧이 말하더군요.


    “아, 다시는 못하겠어요. 구역질이 나요. 제가 그렇게 싫어하던 인간이 되다니 말이에요. 의도한 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최악의 개자식이 되었네요!”


    어떤 역할을 맡든 다 그런 현상이 나타났군요.


    그래요, ‘맡은 역할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겁니다. 그것이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 담긴 가장 큰 메시지입니다. ‘실제 행동’이 무작위로 ‘주어진 역할’을 따라가는 거죠.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은 교도관이 되었고, 수감자 역할을 맡은 학생은 정말로 수감자가 되었습니다. 가석방심사 위원장을 맡은 칼로 프리스콧 역시 심사위원장으로 변했고요.


    이 과정에서 제가 큰 실수를 하나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조사관에서 교도소 감독관으로 역할을 바꿔버린 거예요. 또 다른 실수도 있었는데, 사무실에 ‘교도소 감독관’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거죠. 수감자를 면회 온 부모는 항상 교도소장을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돌아가기 전에는 감독관을 만나야 했고요. 그래서 그들은 저를 교도소 감독관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고, 저 역시 교도소 감독관으로 그들을 대해야 했죠.


    교도소 감독관처럼 어떤 기관의 권위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조직과 조직원 쪽으로 팔이 굽습니다. 이 말은 곧 학생, 환자, 수감자 등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권위자의 입장에서 그들은 가벼운 존재에 불과하니까요. 간호사, 의사, 교사, 교도관이 바로 그렇죠. 제가 그런 역할로 바뀌어버린 겁니다.


    ‘크리스티나 마슬라흐’라는 이름의 작은 영웅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실험 이틀째 신경쇠약을 일으키고 통제 불능으로 소리를 지르는 수감자가 또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크레이그 헤이니가 자리를 비울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와 커티스, 데이비드 셋이서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누구는 하루 세 번 음식을 가져오고 누구는 비디오를 촬영하고 누구는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처리해야 했죠. 가석방 심사를 준비하면서 칼로를 상대해야 했고, 우는 죄수를 다루면서 사제도 만나야 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업무와 잡무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그 와중에도 수감자가 신경쇠약을 일으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했죠.


    모든 사람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어요.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실험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둘째 주까지 이어가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거든요.


    원래는 둘째 주가 시작되기 전 실험과 상관없는 대학원생을 데려와 교도관, 수감자, 실험자 등을 인터뷰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역할을 바꾸거나 실험 요소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점검하고 싶었거든요. 그중 한 명이 바로 스탠퍼드 대학원 제자이자 당시 연인이었던 크리스티나 마슬라흐예요.


    당시 크리스티나에게 교도소 실험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탐색 행동 연구라고만 말했죠.


    목요일 밤 10시, 그녀가 지하 교도소로 왔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매일 밤 10시에 일어나는 일을 목격합니다.


    매일 밤 10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요?


    수감자들은 그 시간에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10시 이후에는 감방 안에 준비된 양동이에 소변이나 대변을 봐야 했어요. 냄새가 심하니까 다들 싫어했죠. 교도관들은 갈수록 악의적으로 변해 수감자들에게 더 큰 굴욕을 안겨주었죠.


    당시 감독관 일지에는 밤 10시 화장실 사용, 오전 8시 아침 식사, 낮 12시 점심 식사, 가석방 심사, 가족 면회, 사제 방문 등이 표시되어 있었어요. 제가 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죠. 하지만 크리스티나에게는 그렇지 못했어요. 현장을 본 그녀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못 보겠어요. 정말 끔찍해!”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녀를 쫓아갔습니다. 우리는 심한 말다툼을 벌였어요.


    “왜 그러는 거야? 너 심리학자 맞아? 이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연이라고. 굉장히 도발적이야.”

    “제발 그만해요. 학생들이 괴로워하고 있잖아요. 쟤들은 죄수도 아니고 교도관도 아니에요. 당신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고요.”


    그녀는 차분하고 자제력이 강한 사람으로, 우리가 말다툼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상황이 당신을 변하게 만들었다는 걸 모르겠어요? 교도관과 수감자뿐 아니라 당신도 변했다고요. 어떻게 내가 방금 본 걸 당신이 못 볼 수 있어요? 어떻게 저런 끔찍한 상황을 그냥 내버려둘 수 있어요?”


    이 말을 듣고도 계속 그녀를 설득했죠.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당신의 모습이 아니에요. 만약 이게 당신의 진짜 모습이라면 이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연인뿐 아니라 평생의 동반자도 포기하겠어요.”


    그녀는 절대로 “지금 당장 실험을 끝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고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았어요. 그제야 “세상에, 세상에나 그래, 그래, 당신 말이 맞아!”라고 소리쳤죠.


    순간 깨달으셨군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크리스티나의 말대로 제가 맡은 역할에 심취해 있었던 겁니다.


    “당신 말이 맞아. 내일 실험을 끝내야겠어.”


    “공식적으로 교도소 실험을 종료합니다”

    “지금부터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공식적으로 종료합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도 됩니다.”


    멍한 것도 잠시 수감자들은 서로 껴안고 키스하고 소리를 지르며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제 기분도 좋아지더군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부록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 쏟아진 비판에 답하다

    1971년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의 진위와 가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 실험을 ‘사기’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비판자가 종종 있는데, 그 어떤 비판도 이 실험의 결과를 바꾸는 실질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실히 밝혀둔다.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사회적 역할과 외적 압력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설득하고 있다. 누구든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개인적․사회적․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떤 행동의 동기가 이해된다고 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외부적 상황의 힘에 몰려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일부 비판자는 여전히 이 실험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실험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에 대해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Blum,2018)”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2018년 르 텍시에도 “이 실험은 마치 ‘세상에, 나도 나치가 될 수 있구나.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괴물이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깨달음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괴물이 되더라도 나 자신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비판에 동참했다.


    수십 년 전 나치 의사를 비롯해 전범자들이 뉘른베르크재판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대로 ‘단지 맡은 일을 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저지른 잔혹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이에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 담긴 기본 메시지가 “사람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라는 비판을 강력히 거부한다.


    개인 또는 집단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바꾸거나 막으려면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황적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환경적 취약점이 무엇인지, 어떤 미덕을 갖췄는지 등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과 시스템이 개인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력을 이해하려는 과정은 부도덕하고 불법적이고 악한 행동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함이 아니다. 필자는 늘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이끌어내는 환경과 시스템 조성을 지지해 왔다.


    어떤 결함이 있더라도 필자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인간의 행동과 그 복잡한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내적‧외적‧역사적‧동시대적‧문화적‧개인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상황의 힘은 인간의 행동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역학과 그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가 커질수록 인간의 바람직한 본성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사명이기도 하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