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아직 긴 인생이 남았습니다

저   자
기시미 이치로(역:전경아)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2022년 08월
서   재







  • 90년생이 만 60세가 되는 2050년, 만 60세가 중위연령이 됩니다. 지금의 중년과 노년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겪게 되는 정년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직 긴 인생이 남았습니다


    정년은 왜 불안한가

    나이 듦에 대하여

    내 부모 세대는 평균수명이 길지 않아 55세에 은퇴를 하고 난 뒤 오래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년 후에도 긴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인생 2막이 시작되는 것이다. 건강도 비교적 양호해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건강을 과신하면 못하는 걸 못한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자동차 운전이 대표적이다. 운전 실력이 젊을 때 같지 않다고 자각하는 사람은 신중하게 운전한다. 반면 주의력이나 순발력 같은 것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여전히 젊은 사람 못지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가족들은 하루라도 빨리 그가 면허를 반납하길 바라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노쇠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고라도 일으킬 뻔하고 자신의 실력이 녹슬었음을 느끼면 남은 인생이 초라해져서 전처럼 의욕적으로 살지 못한다.


    노년은 청춘에 비해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문제다. 무슨 일이든 예전만큼 척척 해내지 못한다고 내리막길 인생이라며 낙담할 게 아니라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설령 내리막길이라 해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더는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지 않아도 되고 앞으로는 페달에서 발을 뗀 채 비탈길을 내려온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편한가. 그러나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야말로 사는 보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은퇴 후 삶이 고통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어쨌든 인생 2막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모발이 가늘어지고 빠진다고 해서 바로 대머리가 되진 않듯이 정년을 맞은 날부터 갑자기 아무것도 못하게 되진 않는다. 흔히 노년은 사계절 중 겨울에 비유된다. 무성했던 가지가 앙상해지고 생동하던 것들이 잠을 청하는 이미지가 겨울을 대표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겨울이 다른 계절에 비해 뒤떨어지는 건 아니다. 겨울은 겨울만의 장점이 있다. 지난 계절 맺은 결실을 누릴 수 있고 기나긴 밤 차분히 나 자신을 성찰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른 계절의 장점과는 비교할 수 없다.


    젊을 때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다 해도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면 된다. 젊은 시절보다 열등해지고 약해진 게 아니라 젊은 시절과는 다른 형태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걸 잊어버리지도 않거니와 기억하는 게 많다고 해서 다 똑똑한 것도 아니다. 또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돌아도 책을 읽지 않는다.


    문제는 나이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젊을 때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다거나 젊을 때처럼 열심히 할 수 없다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는 게 문제다. 하지만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도전을 기피하는 사람은 젊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코 나이 문제가 아니다.




    인생 2막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두 가지 용기

    가끔 자신이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다면 보통 사람으로 지내면 된다. 평범하게 살라는 뜻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면 된다는 것이다. 소속이나 학력에 기대지 않아도 자신에게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까닭은 직책 같은 속성은 퇴사와 함께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속성은 가치와 무관하다. 그런데도 이 둘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사람 자체가 아니라 속성에 따라 그의 가치를 판단하려고 한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나라도 죽는 순간까지 보듬으며 함께 가야 하는 존재다. 물건이라면 더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고 마음에 안 들면 버릴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은 대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아들러는 말했다.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느낄 때만 용기를 낼 수 있다.”


    여기서 용기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일에 임하는 용기, 또 하나는 관계에 뛰어들 용기다.


    어떤 일의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내 능력이 충분치 않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힘을 내는 수밖에 없다. 늘 좋은 결과를 내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 없겠지만 처음부터 원하는 결과를 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보다 용기 있게 일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쉬운 일은 없다.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기쁨도 더 큰 법이다.


    또 인간관계에 뛰어들 용기가 필요하다. 관계를 맺는 데 굳이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관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마찰이 생기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많은 기쁨을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지금 배우자와 결혼을 결심한 때를 떠올려 보라. 이 사람과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지 불행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관계도 일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없다. 결혼 또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고민이지만 서로 부딪히더라도 시간을 들여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건 삶의 기쁨이다.


    인생 2막에서는 직장에서와는 다른 관계에 뛰어들 용기를 가져야 한다. 바로 가족, 친척, 이웃과의 관계다. 직장에서는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냈다 해도 이 관계까지 쉬우리란 법은 없다. 물론 그동안에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만 있었던 건 아니겠지만 일을 핑계로 피할 수 있었던 인간관계가 인생 2막에서는 아주 중요해진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전까지 배우자와 자녀, 부모와의 관계를 소홀히 했던 사람이라도 이제는 이 관계를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 가정에서 소외감을 느껴왔다 해도 용기를 내야 한다.


    아들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 용기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직장에서는 늘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야 했으나 더는 남들의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기만 하면 된다. 정말 다행 아닌가.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전에 어떤 직장을 다녔고 어떤 자리에 있었다고 떠벌리고 다녀봤자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가치가 있음을 안다면 그렇게 눈살 찌푸려지는 짓은 하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일의 의미를 묻다

    인간은 왜 일하는가

    기업 연수차 강연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한참 강연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임원 한 명이 몸을 앞으로 내밀고 내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부분에서였다.


    철학자 미키 기요시에 따르면 행복이 존재라면 성공은 과정이다. 성공하지 않아도 인간은 살아 있는 자체로 행복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살기 위해 일한다”라고 말할 때의 ‘산다’는 것 역시 ‘행복하게 산다’는 뜻이다. 즉,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다. 일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할 때 가장 즐거운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해 보자. 인간은 먹기 위해 일할까, 아니면 일하기 위해 먹을까?


    이 질문에 “먹기 위해 일한다”라고 답하는 사람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기쁘고 사는 보람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이 즐거운 사람은 일하기 위해 산다고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반대로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서 일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열심히 일하지만 삶이 고통스럽거나 일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라면 당장 일하는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취미에 쓸 돈을 벌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일을 계속하는 게 바람직할까?


    삶에서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아는 사람이라면 인생 2막에는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 반드시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일을 자유로운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고 이는 일을 하는 방식의 개선으로 이어진다. 현역 시절엔 일단 일을 해야 하니까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아도 됐지만 퇴직 후에는 일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앞서 말한 기업 연수 강연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인간의 가치란 생산성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과거 수많은 장애인이 살상된 사건이 있었다. 장애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살 가치가 없다는 이유였다. 극단적인 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은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장애인 살상을 지지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 범죄자의 변명이기도 했다.


    생산성으로 인간의 값을 매기는 이들은 자신도 언젠가는 일을 못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한 번이라도 병원에 입원해 보면 그 가치관이 흔들릴 것이다. 혹은 주변에 병으로 쓰러진 사람이 있거나 나이 들어 약해진 자신의 몸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잘 알 것이다.


    결국은 생각을 바꾸게 된다. 정년퇴직으로 더는 일을 하지 않거나 계속 일한다 해도 일의 질과 양이 달라지면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만 가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을 수 없다.


    일의 본질은 공헌이다

    우리는 뭘 위해 일할까? 나는 공헌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 공헌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공헌감을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인간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그 관계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이것이 일로써 우리가 행복해지는 과정이다.


    공헌이란 나 자신은 내팽개치고 남을 위해서만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구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 행동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이 멋있다고 해서 남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를 ‘중성행동’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헌은 자신을 희생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에 쓸모가 있어짐으로써 일이 즐거워지는 걸 뜻한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보수를 받는다 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누군가를 희생해 이익을 얻는 일이라면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물론 공헌감을 느낀다 해도 장시간 힘든 노동을 하면서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면 큰 문제다. 그래도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좋아하는 그 일로 공헌할 수 있는지 여부다. 그에 따라 매일의 삶이 달라진다.



    행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

    지금 살고 있는 인생만이 인생

    내가 인생 설계를 권장하지 않는 이유는 앞날을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계획을 세우면 ‘지금’이 그저 미래를 위한 준비 기간이 되기 때문이다. 뭔가를 달성하든 하지 않든 인간은 지금 여기에서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종류의 움직임을 구별했다. 하나는 키네시스라는 운동이다. 이 운동에는 시작점과 종착점이 있어서 최대한 효율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한 운동이라 도중에 중단되면 불완전한 것이 된다. 마라톤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에네르게이아라는 운동이다. 우리가 춤을 추는 거너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음악이 끝나면 춤도 끝나며 지금 여기서 춤을 추며 즐기는 그 순간만이 의미가 있다.


    그럼 산다는 건 무엇과 닮았을까? 그렇다. 에네르게이아다. 효율적으로 산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누구나 반드시 죽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효율적으로 산다는 건 최대한 빨리 죽는다는 뜻이다. 빨리 죽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려고 한다. 그런 사람을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길을 돌아가는 걸 아주 싫어한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려는 순간순간이 모여 삶을 이룬다고 한다면 인생에서 쓸데없는 짓은 하나도 없다. 길을 빙 돌아갈 때도 우회하는 게 아니라 지금 걷는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삶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진다.


    지금은 장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아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재수를 하든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든 지금 사는 이 인생만이 인생이며 지금이라는 시간은 준비 기간도 재활 기간도 아니다. 지금 사는 인생이 본편이다. 그리고 인생 2막이 시작되면 그 본편은 쭉 계속된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젊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자신이 꿈꾸는 성공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 행복해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으면 된다. 성공하기 위해선 뭔가를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행복은 지금 이대로 충분한 것이다.


    미키 기요시는 성공이 양적인 것이라면 행복은 질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승진은 성공일까, 행복일까. 급여가 많아지니 성공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승진의 단면만 본 것이다. 세상에는 승진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교사는 모두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길 바랄 것 같지만 누구나 그렇지는 않다.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오랜 세월 교사로 일하며 가르치는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은 양적인 성공이 아니라 질적인 행복이다. 그래서 여전히 교단에 서는 친구들이 아주 많다. 정년 이후 전처럼 일하는데도 급여가 절반밖에 안 되는 건 문제지만 가르칠 기회가 있을 때가 행복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집안일을 분담하라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살면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일과 인간관계가 변하고 그에 따라 다른 인간관계까지 변한다. 그럴 때는 뭐든 대대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가령 요리를 배워보자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일단은 평범한 음식을 만드는 걸 목표로 세우는 게 현명하다. 처음부터 특별한 요리를 만들려고 하는 건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는 어린 아이 같기도 하다.


    평범한 음식을 만든다고 하면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는 남성은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에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잔손이 많이 가는 정성 들인 요리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가족이 집에 돌아오고 나서 15분 안에 음식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드는 요리보다는 집에 돌아온 가족에게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15분 안에 음식을 뚝딱 내놓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요리를 비롯한 집안일을 해야 한다. 분담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을 때 하면 된다. 아이와 배우자가 학교와 회사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 왔으니 집안일 좀 해”라고 말해도 된다. 낮에 밖에서 일했으니 저녁에 음식을 차리는 등의 집안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집안일은 당신 일이잖아”라고 말했던 사람은 퇴직 후 집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과거는 과거다. 과거에 그랬다 해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어라

    젊을 때는 입시나 자격증 시험을 위해 책을 읽어야 했다면 나이 들어서는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에 쫓겨 빨리 읽어야 할 필요도 없다. 어떤 책이든 읽어서 즐거우면 그만이다.


    퇴직 후 시간이 너무 많아 따분할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책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괴로움을 잊고 유쾌해질 수도 있다.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책을 읽는 ‘지금’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독서에는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다. 처음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도 독서가 재밌다는 경험을 조금이라도 하고 나면 매일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달라진다. 젊을 때 책을 잘 읽지 않았거나 읽어도 실용적인 책밖에 읽지 않았다면 먼저 재밌는 소설부터 시작해 고전까지 도전해 보면 어떨까.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혼자 사는 걸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제나 곁에 책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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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