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 1

저   자
천위안 (지은이), 정주은 (옮긴이)
출판사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출판일
2023년 02월
서   재







  • 천하를 쥐락펴락한 영웅 중의 영웅, 제갈량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근거지가 없어 떠돌이 신세였던 유비를 천하의 영웅으로 만들었고,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관우와 장비에게는 마음으로 승복하게 만드는 리더십을 보여줬습니다. 제갈량이 가진 지혜의 비밀과 만나보세요.



    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


    제갈량, 세상이 원하다

    심드렁한 판매자 전략으로 몸값을 올리자

    제갈량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마친 준비란 ‘출사’하지 않는 것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갈량은 결코 출사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게 하는 것이었다.


    제갈량은 융중에 사는 농부에 불과했지만 출사할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의 형 제갈근이 동오에서 꽤 인정받고 있었으므로 미관말직이나마 한자리 꿰차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갈량은 양양의 명사인 방덕공과 친분이 있었고 장인인 황승언과도 관계가 가까웠다. 방덕공이나 황승언이 유표에게 제갈량을 추천했다면 당장이라도 출사할 수 있었다. 손권이나 유표도 당시 꽤 이름을 날리던 군주였다. 그들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금도 출사할 뜻을 내비치지 않았다.


    유비는 서서가 떠나기 전에 제갈량을 추천했다고 사마휘에게 말했다. 사마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자기가 가면 가는 것이지 어쩌자고 와룡을 들먹인 것인가?’


    사마휘는 제갈량이 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와룡’이라는 호만 언급했을 뿐 제갈량의 이름과 사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출사하려는 뜻을 알았다면 사마휘가 제갈량에 대해 말하기를 꺼릴 이유가 없었다.


    이는 가르침을 청하러 온 서서에게 유비를 추천한 사마휘의 행동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서서는 유비에게 말했다.


    “저는 원래 유표를 주인으로 섬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몇 가지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결과 참으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날 밤으로 사마휘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지요. 그때 사마휘는 눈이 있어도 현명한 군주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저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현덕공이 이곳에 있는데 어째서 그를 찾아가 충성을 바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노래를 지어 부르며 주군의 관심을 끈 것입니다.”


    사마휘는 서서에게 유비를 찾아가라고 명확하게 가르쳐줬다. 그러면서도 인재에 목말라하는 유비에게는 정작 제갈량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 같은 태도로 보아 사마휘는 제갈량이 ‘출사를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확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제갈량이 욕심이 없고 공명을 멀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그랬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제갈량이 출사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는 그저 다른 사람처럼 제 발로 출사하기를 원치 않은 것뿐이다.


    그렇다면 제 발로 출사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될까? 제 발로 출사하면 주도권을 잃게 돼 자신의 발전을 다른 사람이 좌지우지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인맥’으로 관직에 오른다면 말단 관직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을 죽도록 일해도 큰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평생 아무런 실수도 저지르지 않고 무난하게 임무를 수행해도 처음보다 겨우 몇 직급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게 고작일 것이다. 제갈량은 이런 길을 가고 싶지 않았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되면 두 가지 불리한 요소가 작용한다.


    첫째,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조직 전체를 통제하는 높은 자리에 오른다 해도 황금 같은 청춘을 모두 바쳐야 뜻을 이룰 수 있다.


    둘째,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일인자로 태어난다. 이런 사람은 단번에 최고의 자리에 올라 웅대한 포부를 펼친다. 그런 사람에게 밑바닥부터 시작해 복잡한 관계를 차근차근 처리하며 천천히 성장하라고 한다면 호랑이에게 풀을 뜯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천부적인 재능과 웅대한 포부를 지녔던 제갈량은 밑바닥에서 시작하면 평생 두각을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번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조직 전체를 아우를 힘을 갖기를 원했다. 야심만만한 제갈량이 볼 때 제 발로 출사하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행위였다.


    간절히 원하지만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핏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을 이루면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위해 제갈량은 ‘심드렁한 판매자’책략을 쓴 것이다. ‘심드렁한 판매자’책략이란 ‘판매자’가 자신의 본심을 감춤으로써 구매자를 유인해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물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대로만 구사한다면 ‘심드렁한 판매자’전략은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학문을 익히든 무예를 익히든 최종 목적은 군주를 곁에서 모시는 것이다. ‘심드렁한 판매자’수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최단 시간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는가? 일찌감치 이를 간파한 제갈량은 출사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융중을 지켰다. 단순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고 싶을수록 더욱더 출사에는 관심이 없는 양 밭을 갈고 자연에 파묻혀 사는 삶을 즐기는 척했다.


    ‘심드렁한 판매자’책략이 성공하려면 진짜로 ‘심드렁해’ 보여야 한다. ‘진짜’처럼 보여야 ‘가짜’가 ‘진짜’가 된다. 만약 심드렁한 ‘척’한 사실이 들통 나면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제갈량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완벽한 연기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판매자가 팔려는 의사가 ‘전혀’ 없다고 판단한 구매자가 제풀에 나가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안 팔겠다는데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상황이 이렇게 흐른다면 제갈량은 지난 몇 년 동안 헛고생을 한 셈이 된다.


    심리학으로 들여다보기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먼저 자신의 가격을 책정하지 마라. 과소평가든 과대평가든 당신 입에서 먼저 나와서는 안 된다. 상대가 먼저 당신을 알아보고 흥정하게 하라.



    제갈량, 때를 알고 나서다

    은혜는 인생을 멀리 내다보는 자가 베푼다

    역사상 가장 이상한 투항 권유였다. 서서는 원래 유비의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유비를 떠났는데 이제 유비에게 투항을 권유하러 가게 된 것이다. 유엽은 약속으로 서서의 손발을 묶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사자의 신분으로 투항을 권유하러 간 사람이 명령을 어기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두 그를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 법칙에는 ‘약속의 속박’만 있지 않다. 바로 ‘호혜의 원칙’이 있다.


    서서는 유비를 떠나기 전,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제갈량을 추천할 정도로 유비의 깊은 정에 감동했다. 그런데도 서서는 유비에게서 받은 은혜를 다 갚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투항을 권유하는 사자로가 다시 유비 곁에 머무를 일은 없겠지만 투항을 권고할 리도 만무했다. 오히려 유비의 투항으로 백성의 마음을 사려는 조조의 의도를 알려줬다. 여기에 더해 조조가 군사를 여덟 갈래 길로 나눠 백하를 메우고 번성을 짓밟으려 한다는 군사 정보까지 알려 주었다. 이에 유비와 제갈량이 미리 준비하도록 도왔다. 조조와 유엽은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왜 유비는 조조에게 투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유비는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제갈량이라는 천하의 기재를 얻고 난 뒤부터 유비는 전에 없이 기분이 좋았다. 유비는 아무리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제갈량만 있으면 약한 병력으로 대군을 물리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유비는 투항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제갈량도 사람일 뿐 결코 신이 아니었다. 박망파 전투와 신야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유비는 낙천적이기만 했다 조조군의 내부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서서는 작별인사를 하기 전 유비에게 더 지체하면 돌이킬 수 없으니 도망치라고 했다. 그제야 유비는 제갈량에게 조조군을 막을 방법을 물었다. 제갈량도 언뜻 좋은 방책이 떠오르지 않았고 지금 상황에서는 ‘도망’치는 것밖에 길이 없었다.


    유비는 양양에 도착해 성문을 향해 성문을 열도록 소리쳤으나 채모과 장윤은 원래 유비를 경계해왔던 터라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유비를 흠모해 온 양양성의 장수 위연(魏延)은 채모가 성문을 열어주지 않자 크게 노했다. 위연은 수문장을 죽인 후 성문을 열어 유비를 들게 하였으나 형주의 명장이 나와 위연과 싸우는 모습을 본 유비는 양양성에 들어가지 않았다. 위연은 유비가 떠나는 것을 보고 양양에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해 장사(長沙)태수에게 가 몸을 의탁했다. 위연의 행동은 유비가 양양성에 드는 데 도움을 주지는 못했어도 유비에게 큰 은혜를 베푼 셈이 되었다. 이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훗날 위연은 목숨을 구한다.


    한편 조조는 제갈량의 화공에 두 번이나 당한 일이 떠올랐다. 이에 조조는 융중에 가서 제갈량의 식솔을 잡아오도록 명령을 했으나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의 간계에 속아 목숨을 잃은 일에서 교훈을 얻은 제갈량은 줄사하기 전, 이미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였다. 조조는 유비가 겨우 300리 정도밖에 도망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철갑기병에게 하루 안에 유비군을 따라잡으라고 명령했다. 제갈량은 한 차례 ‘대패’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갈량은 유비가 죽어도 백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먼저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는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제갈량의 셈은 빈틈이 없었다. 조조군이 쫓아오면 유비가 아무리 백성을 지키고 싶어 해도 온전히 지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비와 조운이 유비를 지키고 있고 유비 또한 무장이라 생명은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제갈량 자신이었다. 그가 비록 병법에 정통하나 문인이었다. 그의 목숨을 누가 보장해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제갈량은 자신이 먼저 빠져나가기로 결심했다. 유비의 정예병 2천명이 유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힘이기에 유비가 제갈량이 유기를 설득하도록 생각하게 유도했다.


    ‘호혜의 원칙’을 기억하는가? 제갈량은 유기의 목숨을 구한 바 있다. 만약 제갈량이 유기에게 강하를 지키러가라고 충고하지 않았다면 유기는 이미 계모 채씨의 손에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기를 설득하려면 제갈량을 강하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제갈량이 강하에 도착하자 유기는 지난날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자신의 정예병을 모두 내 주었다. 유기의 지원병이 육로와 수로에서 속속 모여들자 조조는 잠시 공격을 멈추고 형주 내부의 일을 처리하는데 집중했다. 이는 조조 평생 최대의 전략적 실수였다. 조조는 단숨에 유비와 유기를 섬멸했어야 했다.


    심리학으로 들여다보기

    은혜를 베푸는 일은 얼마만큼 긴 안목을 가졌는지 시험할 좋은 길이다. 발밑에 시선을 둔 자는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하나만 아는 사람도 더불어 나아갈 길과 방향을 모른다. 그로 인해 손안의 것만 움켜잡으려 한다. 인생을 멀리 보면 매사에 관대해질 수 있다.



    제갈량, 진가를 선보이다

    맨손으로 이리 잡는 재주를 썩히지 마라

    제갈량은 조조군의 강대함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동오로 건너올 때 자신만만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소수로 다수를 이기려면 무턱대고 덤벼서는 안 된다. 반드시 외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제갈량은 경험으로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박망파 전투와 신야성 전투에서 제갈량이 조조군을 격파할 수 있었던 것도 화공(외부의 힘)의 도움 덕택이었다. 화공은 제갈량의 장기 중의 장기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갈량은 언제나 ‘화공’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세웠다.


    불을 쓰려면 바람이 불어야 한다. 조조군이 북쪽에 주둔하고 있으므로 화공을 펼칠 경우 반드시 동남풍이 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엄동설한이어서 서북풍이 부는 시기였다. 안타깝게도 화공을 펼칠 경우 남쪽에 주둔한 자신들만 불태울 뿐 조조군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문을 자세히 살펴본 제갈량은 화공을 쓸 수 있는 이상기후가 두 번 나타날 것을 예측했다. 원래 제갈량은 ‘안개’를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안개를 이용하면 동풍이 불 때 자신의 신비감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유가 ‘화살이 부족하다’라는 구실로 거칠게 몰아붙이자 제갈량은 버리려고 했던 ‘안개’ 카드를 제대로 사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후광효과’를 활용하는 데는 제갈량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제갈량은 ‘안개’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신출귀몰한 현인’의 이미지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 했다. 주유는 제갈량의 계책을 듣고 제갈량이 체면을 지키려고 무리수를 뒀다가 나중에 기회를 봐서 도망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유가 제갈량을 죽여야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나는 제갈량이 스스로 무덤을 파다가 체면이 깎였고 주유는 체면을 되찾은 것이다. 하나는 제갈량이 도망치면 승전에 따른 ‘과실을 나눠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없으므로 동오가 독식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주유가 바라는 결과다.


    주유는 이번에도 노숙을 보내 제갈량의 동태를 살피게 했다. 노숙은 제갈량에게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갔다고 화를 냈다. 그러자 제갈량이 말했다.


    “내가 분명히 주유에게 내 말을 전하면 안 된다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내 말을 듣지 않아 일이 이 지경이 되었소. 이제 주유가 나를 사지로 내몰았으니 이는 그대가 나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은 것이나 다름없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다. 제갈량이 이 순간을 위해 덧붙였던 말이 드디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노숙을 괴롭히는 양심의 가책은 마치 제갈량에게 은혜를 입고도 갚지 않은 것과 같은 부담을 주었다. 그 결과 제갈량의 부탁을 절대로 거절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역시 ‘호혜의 원칙’이 힘을 발휘한 때문이다.


    제갈량은 노숙에게 배 스무 척과 배마다 군사 스무 명씩을 빌려달라고 하였고 배에 짚단을 천 개씩 실고 배에 푸른 휘장을 둘러달라고 하였다. 노숙은 제갈량이 잘난 척하기는 했지만 결국 배를 빌려 도망가려는 속셈이라고 여겼다. 노숙에게서 배를 빌린 제갈량은 사흘째 되는 날, 4경이 되자 제갈량은 노숙을 불러 함께 배에 올랐다. 노숙은 반드시 함께 가야 했다. 그가 배를 통제할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숙은 제갈량이 도망칠 계획이라고 결론을 내려놓고 왜 제갈량과 함께 가거나 배웅하려고 할까? 그것은 제갈량이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있다.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자경, 나와 함께 화살을 주우러 갑시다!”


    이런 ‘자신감 넘치는 표현 방식’은 정말이지 효과만점이다. 노숙은 제갈량의 말을 믿는 정도가 아니라 그 방법이 자못 궁금해졌다. 짙은 안개가 깔린 가운데 배는 서서히 조조군의 수채로 접근했다. 제갈량은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라고 명령했다. 노숙은 그제야 제갈량이 자신을 조조군의 코앞까지 데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짚단을 실은 배로 화살을 빌린 이 순간은 제갈량이 동호에서 가장 즐겁고 마음 편한 순간이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사람은 자신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확실한 위험이 다가올 때 사람은 ‘수비’만을 선택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조조는 동오군이 안개를 틈타 기습공격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군은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고 아군은 아직 수전에 익숙지 않으니 군사를 쉽게 움직일 수 없다. 활쏘기는 ‘수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둘째, 조조군의 수군도독이던 채모와 장윤이 죽어 수전에 문외한인 모개와 우금이 수군을 통솔하고 있다. 이들은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은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셋째, 조조군에는 궁병이 매우 많다. 새벽에 습격을 받은 조조군은 겁을 먹은 채 1만이 넘는 궁병과 수군 모두에게 활을 쏘라는 명령을 내릴 것이다. 그럼 화살 10만대를 쏘는 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제갈량은 어림짐작으로 화살 10만대를 모두 채우고 뱃머리를 돌려 퇴각했다. 그러면서 군사들에게 외치게 했다.


    “승상, 화살을 빌려주셔셔 고맙습니다!”


    조조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서둘러 군사를 보내 뒤를 쫓게 했지만 제갈량은 이미 멀리 도망친 뒤였다. 한참 두려움에 떨던 노숙은 화살 10만 대를 ‘빌리면서도’ 안전하게 귀환하는 제갈량의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는 진심으로 그를 우러르게 되었다.


    심리학으로 들여다보기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에 죄책감을 심을 줄 알아야 한다. 죄책감을 일깨우기 위해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지 말고 상처를 보여줘라. 눈으로 감지한 아픔과 상처의 깊이에 상대는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그래야만 그가 변한다. 억지로 주지시킬 필요가 없다.



    제갈량, 승부수를 던지다

    쇠사슬에 묶인 코끼리는 걷는 법을 잊는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주유는 곧 군사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주유의 군대가 공안에 이르렀으나 강 위에는 배 한 척 없고 마중 나온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정탐을 나갔던 군사가 돌아와 보고했다.


    “형주성 위에는 백기 두 개만 꽂혀 있고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유는 뭍에 올라 장수와 시종들을 거느리고 형주성 밑으로 향했다. 이때 주유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어야 했다. 그러나 주유는 이제 겨우 제갈량을 꺾을 수 있다는 계책을 ‘구상’해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주유 내심의 강한 동기와 예상이 ‘지각의 선택성’에 빠지게 만들었다.


    ‘지각의 선택성’이 사람이 객관적인 외부 세계를 객관적이고 온전하게 인지하지 않고, 자신의 동기와 예상에 맞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인지하고 맞지 않는 부분은 간과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주유는 자신의 계책이 예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기만 바랐다. 제갈량이 이미 자신의 계책을 간파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뭔가 꺼림칙한 조짐이 잇따르는데도 기어이 형주성 밑까지 왔다.


    주유는 이번에도 제갈량에게 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단발마의 비명을 질러댔다. 사람은 화가 나면 이성을 잃는 법이다. 주유는 마음속에 가득 찬 분을 풀 길이 없었다. 기어이 서천을 공략하고 말겠다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미 유봉과 관평을 보내 수로를 막았다. 이 사실에 주유는 더욱 격분했지만 아직 화나 나서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주유를 죽일 마지막 무기는 제갈량이 직접 주유에게 쓴 한 통의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담담히 말한 것에 불과했다. 굳이 제갈량이 일깨워주지 않더라도 주유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틈만 나면 해칠 계략을 세웠던 상대에게서 나온 담담하고 진실한 말은 오히려 심장을 후벼 파는 날카로운 칼이나 다름없었다. 이 칼은 그 어떤 비웃음보다도 더 모욕적이었다.


    “이미 주유를 낳았으면서 제갈량은 왜 또 낳았는가!”


    이렇게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고 나서 숨이 끊어지니 그의 나이 겨우 서른여섯이었다.


    주유는 자신이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여긴 내부통제자였다. 젊어서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 평생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


    그러나 제갈량이 나타나면서 주유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뛰어난 계책을 생각해내도 제갈량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처음에 이것이 그저 우연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제갈량보다 뛰어나다는, 적어도 제갈량보다 못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했다. 주유도 결연한 내부통제자에서 무력한 외부통제자로 변했다. 생명의 끝에 이르러서야 주유는 자신이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운명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에게 ‘학습된 무기력’을 알려준다. ‘학습된 무기력’은 내부통제자에서 외부통제자로의 전환을 말한다. 이러한 전환은 종종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 완성된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없다. 이것은 아마도 인류에게 있어 가장 보편적인 ‘학습된 무기력’이다. 만약 주유가 조금 일찍 이 이치를 깨달았다면 분을 참지 못해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제갈량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체면이 좀 깎이는 것 외에 달리 무슨 해가 있었겠는가?


    제갈량은 주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소리로 웃었다. 물론 주유의 죽음은 제갈량이 바라던 바였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데도 마냥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갈량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때의 제갈량도 내부통제자였다. 제갈량은 하늘의 보살핌을 받은 사람이었다. 이후로도 또 다른 행운아인 사마의가 나타날 때까지 그의 행운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다.


    하늘은 공평무사하다. 하늘의 보살핌을 많이 받을수록 ‘학습된 무기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학습된 무기력’의 필연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제갈량은 여섯 번이나 기산으로 출정해 군사만 잃고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 뒤에야 결국 오장원에서 이 이치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 그의 생명은 종착역에 이르고 말았다.


    심리학으로 들여다보기

    인간은 평생의 시간을 들여 ‘무력’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손을 내저으며 거부하고 자신 있음을 내비치지만 속내는 두렵고 망설여진다. 여기에는 감당하기에 벅참도 있지만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요인이 크다.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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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