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1: 신명

저   자
최광진
출판사
미술문화
출판일
2016년 05월
서   재







  • 저자는 요즘처럼 문화가 중시되는 시대에 우리다운 문화를 창조적으로 꽃피우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4대 미의식인 ‘신명’, ‘해학’, ‘소박’, ‘평온’의 정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명은 영혼을 깨우는 생명의 힘으로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흥겨운 정서이고, 해학은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한 권력을 희롱하고 낙천적으로 삶을 긍정하는 달관의 지혜다. 소박은 꾸밈없는 대교약졸의 자연미이고, 평온은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난 본성의 고요한 울림이다.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1 : 신명


    신명이란 무엇인가

    한국인들은 즐거울 때 “신(명)난다” 혹은 “신바람이 난다”고 말한다. 흥이 없는 민족이야 없겠지만,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유독 음주가무를 즐기고 놀이를 좋아했던 민족이다. 중국의 고대 기록인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보면, 제천 행사 기간 내내 노래하고 춤추는 한국인들의 풍습을 신기한 듯이 기록했을 정도다.


    신명의 문화적 전통

    신명은 고대부터 하늘을 숭상하고 무속신앙의 전통이 있는 한국인의 뿌리 깊은 미의식이다. 한국인에게 무속신앙은 종교 이전에 천지인삼재 사상에 입각한 삶의 문화이고, 노래와 춤이 수반되는 제천의식이나 굿은 신명나는 삶을 위한 정치 행위였다.


    근대화 이후 외래문화의 영향 속에 이러한 전통은 많이 사라졌지만, 흥이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음주가무를 즐긴다. 한국인의 음주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하루 평균 약 190만 명 정도가 노래방을 찾는다고 한다.


    신명의 원리와 작용

    인간은 천지의 긴밀한 접화가 깨져 땅의 속성이 강해지면 고통을 느끼게 되어 있다. 땅의 속성이 강해진다는 것은 굳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고통은 굳어짐에서 비롯된다. 몸이 굳어지면 병들어 몸이 고통스럽고, 생각이 굳어지면 집착이 되어 마음이 고통스럽다. 또 관습이 굳어지면 적폐가 되어 사회가 고통스럽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 안에 내재된 신명을 통해 굳어짐을 풀어주어야 한다.


    무당이 행하는 굿은 신명을 끌어내는 수단이다. 신명이 일어나면 불안과 고통이 사라지고 황홀한 쾌감이 동반되는데, 이것은 인간 안의 신성이 깨어나 통일성과 일체감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미의식이다. 일단 신명이 깨어나면 무아지경의 몰입이 이루어지고 창조력이 증진된다. 몰입은 어떤 행위가 다른 목적 없이 순수한 놀이가 될 때 이루어진다. 놀이와 신명은 바늘과 실처럼 관계가 긴밀하다.


    한국적 표현주의

    한국인에게 한은 자신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슬픔인 동시에 신명을 지피는 조건이다. 한국의 예술은 원래 굿에서 근원한 것이며, 그것은 신명을 일깨워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승화시키는 의례 같은 것이었다.


    한국의 신명 예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표현주의 미학과도 상통한다. 눈에 의한 객관적인 재현에서 벗어나 미술을 인간 내면의 문제로 전환시킨 표현주의는 그림을 통해 심리 치유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 서양의 표현주의나 한국의 신명 예술은 모두 선을 중시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파장과 리듬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선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로 표현된 신명의 정서

    사신도 - 유려하고 역동적인 선율로 창조한 신령한 동물

    고구려 벽화는 벽에 회를 발라 그 위에 그리거나 잘 다듬은 돌 표면에 직접 그러져 있는데, 오방색이 기조를 이루는 화려한 색채와 역동적인 선에서 북방 민족 특유의 활달한 기백과 예술혼이 느껴진다. 이것은 한국인의 가장 뿌리 깊은 미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신명의 문화가 양식적으로 보전된 가장 오래된 예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예술의 정체성과 원형을 파악하려면 고구려 벽화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신도는 무덤의 주인이 묻혀 있는 방의 네 벽면에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 성격의 신령한 동물을 그린 것이다. 방의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각각 그러져 있다. 네 방위에 중앙까지 더하면 오신이 되는데, 실제로 고구려 후기 일부 벽화에는 사신도에 천장 중앙에 황룡을 추가하여 오신도로 그린 경우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신 혹은 오신의 형상을 지상의 특정 동물로 정하지 않고 가상의 동물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지상의 동물들이 각기 제한된 능력과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장점을 종합하여 이상적인 동물로 창조한 것이다. 한 동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동물을 결합시켜 가상의 동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는 사람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느껴진다. 고구려인들은 신명이 느껴지는 유려하고 역동적인 선으로 사신도에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예를 들어 고구려 벽화에서 신명의 열기를 조형적으로 극대화하는 요소는 배경의 문양들이다. 이 문양들을 자세히 보면 오른쪽으로 부는 바람에 따라 흘러가며 구름이나 식물 혹은 동물 등을 연상시킨다. 무엇으로든지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잠재적 형상들은 생명의 파장과 파동이 우주 공간으로 무한히 확장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풍속도 - 일상에서 생활화된 신명의 문화

    중국 길림성 집안 무용총 벽화의 무용도를 보면 가무를 즐기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특유의 땡땡이 의상을 입은 무희들이 묘주로 보이는 말 탄 사람 앞에서 아래의 합창단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다. 춤추는 사람들의 소맷자락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하여 움직임에 따른 유려한 곡선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곧 뒤로 뻗은 두 팔이 원을 그리고 치고 올라와 하늘로 향하면 긴 소맷자락에서 유려한 곡선이 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어깨춤의 춤사위가 느껴지는 자세다.


    고구려인들은 가무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활도 잘 쏘았다. 길림성 집안 무용총 벽화의 수렵도는 고구려인들의 사냥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고관으로 보이는 기마무사들이 말을 타고 힘차게 달리면서 사냥을 하는데, 상단에 말을 타고 뒤를 돌아보며 도망가는 사슴에게 활을 겨누는 역동적인 동작은 이 수렵도의 백미다. 사냥의 역동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작게 묘사된 산은 등고선처럼 간략하게 추상화되어 물결치는 듯한 운동감과 율동미를 더하고 있다.



    공예품에 새겨진 신명의 문양

    금동 장식 - 불꽃처럼 타오르는 신명의 문양

    한국의 공예 문양은 식물의 형태에서 착안한 팔메트 문양을 기본으로 하면서 즉흥성이 가미되어 회화적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식물의 시각적 특성보다도 신명의 비가시적인 율려 작용을 드러내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율려문’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율려 문양은 식물에 국한되지 않고 구름과 바람과 파도와 불꽃과 동식물까지 아우른다. 실제로 진파리1호분의 천장의 문양을 보면 율려의 리듬이 파도와 바람과 구름과 산과 식물의 형태를 암시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는 유려한 선들이 새 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자유롭게 변형되기도 한다.


    평양 대성구역에서 출토된 불꽃뚫음무늬 금동관의 경우는 머리에 띠처럼 돌리는 방식인데 기본적으로 팔메트 문양에서 출발하지만, 어느덧 화염문으로 변해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어떤 규칙이 있는 것 같지만 일정하지 않은 문양의 비균제적 조화는 마치 4계절의 규칙이 반복되면서도 하루도 동일한 날씨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닮아 있다. 이러한 문양은 생명력이 응축된 다지안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해 가는 생명의 에너지를 상징화한 것이며, 인간의 기교에 만족하지 않고 천인묘합을 이상으로 삼는 한국인의 멋이 구현된 것이다. 어느 민족의 공예품에서도 이러한 생명력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범종 - 마음을 울리는 신명의 파동

    범종은 사찰의 종루에 걸어놓고 시간을 알려주거나 그 소리를 통해 세속에 찌든 번뇌를 맑게 정화시켜 주는 종이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의 상원사동종은 현존하는 범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맨 위에는 굳센 발톱을 가진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연꽃과 덩굴무늬로 장식된 음통이 있다. 종의 몸체에는 주악비천상이 새겨져 있는데, 두 천인이 무릎을 꿇고 천의 자락을 흩날리며 생황과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 경쾌하기 이를 데 없다.


    구름을 타고 있는 청의가 식물 줄기로 이어져 불꽃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는 표현은 고구려 고분 벽화나 한국의 춤에서처럼 즉흥적이고 음악적인 율동감으로 너울거린다. 이것은 고구려인들의 신명의 미의식이 통일신라시대까지 계승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경산수화에 담긴 신명의 흥취

    진경산수와 입체주의 - 자유로운 시점의 유희

    정선의 금강전도는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을 유람하며 1만 2천 개의 봉우리를 태극 모양의 원형 구도 속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압축해서 그린 것이다. 금강전도는 다양한 시점의 종합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피카소의 그림처럼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정선은 시각적인 사실성을 포착하면서도 음양오행의 구조적 닮음을 통해 금강산의 전체를 한 화면에 효과적으로 표한 것이다.


    이처럼 진경산수화는 여러 곳에서 본 시점을 종합하는데,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각적 한계로 인해 한 자리에서는 장소의 구조적 특성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시점의 적용은 결과적으로 서양의 입체주의와 유사하다. 하지만 입체주의의 다시점은 아이디어 차원의 지적 구성이며, 화면에서의 자율적인 면 구성에 따른 것이다. 이와 달리 진경산수화의 다시점은 실제 장소의 구조적 진실을 포착하기 위한 자연과의 짜릿한 감각적 교류가 반영된 것이다.


    동양화에서는 한 그림에 이렇게 여러 시점이 들어간 것을 ‘산점투시’라고 하는데, 산점은 시점이 흩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엄격히 말하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점을 하나의 평면에 종합한 적이다. 이것은 자연과 감각적 교류를 통해 경험한 장면들을 직관적으로 종합한 것이다.


    진경산수화는 이처럼 장소성의 특징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다양한 앵글을 직관적으로 종합하기 위해 자연과 접하는 물아일체의 체험이 중요하다. 생생한 체험이 있어야 기억 속에서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과 물아일체의 상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공감각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경 통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감각이 열리면 다른 감각에도 영향을 주게 되고, 그러면 온몸이 감각 덩어리가 되어 물아일체의 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다시점이지만 신체의 감각이 제거되고 오직 지적인 구성이 중시되는 서양의 입체주의와 다른 지점이다.


    변관식 - 골산에서 찾은 한국 산수의 전형

    근대기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가장 잘 계승한 작가는 소정 변관식이다. 그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며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권위와 부조리에 저항하며 평생을 야인으로 살았다. 반골 기질 탓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평생 술을 즐기고 산천을 떠돌며 방랑 생활을 하였다.


    특히 그는 금강산을 너무 좋아하여 8년 동안이나 유람하며 그곳의 풍광을 즐겨 그렸다. 그의 외금강 삼선암 추색은 온갖 비바람을 견디며 당당하게 솟은 삼선암의 화강암 덩어리를 대담하게 화면을 수직으로 가르며 배치했다. 삼선암의 그 투박한 형상은 작가의 남성적 기질과 섞여 무서우리만큼 힘찬 기운을 뿜어낸다.


    이 작품을 현장과 비교해 보면 다양한 시점이 종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면에 높은 봉우리는 밑에서 올려다본 시점으로 웅장함을 드러냈고, 삼선암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은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포착했다. 이 각도에서는 봉우리의 웅장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여러 시점을 종합하여 현장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시점과 크기를 자연스럽게 종합할 수 있는 것은 눈이 아니라 생생한 감각적 체험과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산봉우리 오른쪽에는 자신의 분신 같은 사람들이 계곡물을 건너 어슬렁거리며 주막을 찾아가고 있고,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릴 것 같은 주막 안에는 유람객들이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자연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기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야인의 풍류와 해학이 느껴진다.


    변관식은 그림을 그릴 때 구도나 계획 없이 제화된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여 즉흥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망칠 때도 많았지만, 인위적인 계산으로는 나올 수 없는 뛰어난 걸작들도 많이 남겼다. 이러한 그림들은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라 자연과의 접화를 통해 얻은 신명의 흥취를 분출시켜 나온 결과다,



    신명을 불사른 현재 작가들

    이중섭 - 소로 구현된 한민족의 기백과 신명

    힘찬 붓질로 달려가는 소 한 마리를 간결하게 포착한 이중섭의 흰 소는 서예의 비백 기법처럼 붓의 필세가 날아 움직이는 듯하다. 빠른 속도로 그어지는 일필의 대담한 붓질에서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굴복하지 않으려는 그의 힘찬 기백이 느껴진다. 이것은 어려서 습득한 서예적 필력과 고구려 벽화에서 영향 받은 신명의 정서가 결합되어 나온 것이다. 소의 골격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토대로 역동적으로 변형된 그의 소는 신명 넘치는 한국인의 혼을 상징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한국전쟁 등 민족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이중섭은 어려서부터 본 고구려 벽화의 신명 넘치는 민족성을 계승하여 당당하게 한국인의 혼을 전 세게에 알리는 것을 예술가로서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했다. “정직한 화공”, “민족의 화가”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토속적인 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를 자신의 의지를 투영할 대상으로 삼게 된 것이다. 순한 모습의 소가 아니라 말처럼 힘차게 돌진하는 모습을 통해 그는 수많은 침략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역경을 견딘 한민족의 강인한 혼을 담아냈다.


    오윤 - 민초들의 애환을 풀어주는 신명의 춤

    오윤의 작품 칼노래에서는 한 농민이 강렬한 붉은색을 배경으로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신명나게 칼춤을 추고 있다. 내공을 모으고 힘차게 발을 내딛으며 번뜩이는 칼로 제거하려는 것은 한자로 쓰인 인간의 탐욕, 성냄, 어리석음, 증오, 간사함, 악함, 추함, 사악함, 근심 등이다.


    그에게 민중은 소외되고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역경과 부조리에 굴하지 않고 잡초 같은 생명력과 소박함을 무기로 삶을 헤쳐 나가는 강인한 존재다. 목판화 특유의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칼노래의 춤사위에는 민초들의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고 부조리한 적폐를 청산하여 대동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이 신명난 칼바람으로 인해 권력의 의지하여 안위를 누리는 탐관오리들은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다.


    또 다른 작품 춘무인 추무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신나게 풍물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풍물패의 제일 앞에 있는 기수가 ‘춘무인 추무의’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있는데, 이는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두어들일 것이 없다”는 의미다. 그 뒤로 치배라고 불리는 전립을 쓴 풍물대가 농민들과 어울려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서구의 원근법이나 명암법 대신 평면적 화면에 음악적 선율과 흥겨운 리듬이 돋보이는 이 작품에는 무등을 타고 있는 어린아이까지 총 35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동일한 춤동작을 하고 있는 이가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춤사위와 정확한 동작은 춤에 대한 이해와 체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오윤은 춤에 대한 깊은 철학이 있었다. 그는 춤이 어떠한 도구 없이 인간의 본능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고, 굳어져 가는 몸과 의식을 연결시켜 자기 해방과 세계관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 춤의 신명과 미학을 통해 오윤은 인간 냄새가 진동하는 민중들의 원초적 낭만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민중미술을 지향하면서도 미술이 작가의 진실한 혼이 빠진 채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경계한 신명의 예술가였다.


    백남준 - 비디오로 굿을 하는 국제적 전자 무당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 공연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갑자기 신들린 무당처럼 피아노 줄을 끊고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다. 머리를 위한 선에서는 작곡가 라 몬테 영이 쓴 지시문 “선을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라”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토마토 주스가 섞인 잉크를 머리에 묻혀 긴 종이에 선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또 현악 연주자를 위한 26분 1.499초를 공연하면서 백남준은 무어만에게 자신의 몸을 악기처럼 연주하게 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춤과 음악으로 축제를 여는 듯한 한국적 무속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백남준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는 자서전에서 “미친 듯이 무대 위에 뛰어올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무어만과 함께 공연하는 순간을 볼 때면 영락없이 신들린 무당이었다”라고 회고하였다.


    1963년 독일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전시회는 그야말로 굿판을 방불케 했다. 그는 어렵게 구한 텔레비전 13대와 피아노로 전시장을 채우고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음악을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보는 대상으로 만들고, 공간 예술에 시간성을 도입하여 전시장에서 작품이 관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하였다. 심지어 전시장 입구에는 도살된 소머리를 내걸어 피 냄새가 진동하였다.


    그가 창안한 비디오 아트는 음악과 미술, 동양과 서양, 가상과 현실, 작품과 관객, 삶과 예술 등 인간들이 만들어 온 모든 대립과 경계를 무너뜨리고 소통케 하는 신명나는 굿판과 같은 것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백남준은 가는 곳마다 축제의 놀이를 벌이고 문명의 갈등을 치유하며 신명나게 살다 간 월드스타 전자 무당이었다.



    맺음말 신명나는 문화 독립 운동을 꿈꾸며

    한국인들은 평소에 침체되어 있다가도 신명이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는, 위기에 강한 민족이다. 그래서 수천 년간 수많은 외침을 당하면서도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에서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축구 피파랭킹 40위권 밖에 있다가고 신바람이 나면 월트컵 4장도 가능한 민족이다. 점잖은 외래 종교도 한국에만 들어오면 신명의 종교가 된다. 관광버스가 흔들릴 정도로 노는 것을 좋아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노래방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신명이 나면 한국인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무서운 잠재력을 지닌 민족이다.


    내가 미학 연구의 중심을 미의식에 두려는 이유는 미의식이 관념적 미학과 실천적 예술 사이를 중재하고, 참된 휴머니즘의 길로 인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예술은 원래 인격 수양의 수단이었다. 사군자를 치고 시를 읊는 것은 모두 지식인들의 교양이었다. 미술이 필요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미의식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미의식은 나의 본성을 찾고 행복하고 창조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그 고유한 미의식을 통해 신명나는 문화 독립 운동을 펼치고 싶은 나의 포부가 이제 이 책으로 인해 첫 단추를 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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