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장인의 장사

저   자
곽지원
출판사
코칭타운
출판일
2021년 03월
서   재







  •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의 길로 뛰어 든다. 하지만 일 년도 못 버티고 문 닫는 가게가 만연하다. 맞닥뜨린 상황으로 인해 어차피 자영업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망하지 않고 장사할 수 있을까? 제빵 장인 곽지원의 신간은 우리의 생존이 달린 이 중요한 질문에 40년간 쌓아 온 장사 내공을 담아 묵직하고도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다.



    장인의 장사


    나의 길을 찾다

    희망 없는 직장생활은 영혼을 잠식한다

    ‘과연 나는 몇 살까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은 아주 간단하고 막연한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1980년은 10·26과 5·18로 이어진 격동의 시기였다. 막상 졸업은 했지만 취업을 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국내 정세는 얼어붙었고 국가 경제는 제 2차 석유 파동의 후유증으로 인해 저성장 늪에 빠져 있었다. 다행스럽게 나는 D라는 대기업에 취업했다.


    회사는 국영 기업에서 민간 기업으로 막 합병이 끝난 상태라 늘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나는 나름 열심히 회사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지금까지 나 혼자서 장사를 하면서 겪었던 사회와는 전혀 다른 조직에서 일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당시에는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그만둔 많은 선후배에게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백과사전이나 무슨 전집류 등을 사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하도 시국이 안정되지 않다 보니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뭔가를 한다는 것이 어려웠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업종을 찾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경제 활동을 할 제2의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이 없다면 얼마나 삶이 불안정해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불안정한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기술이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삶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언젠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기술을 배운다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기술을 익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왕 기술을 배우겠다면 우리나라보다 기술력이 앞선 나라에 가서 선진 기술을 배우는 것이 전망이 좋으리라 생각하고, 서른이 넘을 즈음에 일본으로 배움의 길을 떠날 결심을 하였다.


    개문발차: 가능성을 보고 떠나다

    일본으로 유학길을 나설 때는 어떤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뚜렷하게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 ‘어떤 기술을 배워 와야 우리나라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일본에 가서 일본 현지 사정을 봐가면서 결정하기로 하고 일단 비자를 받았다.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 않은 데는 나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세상에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었다. 마치 해안 마을의 아침 연무처럼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게 뿌연 모습으로 내 앞에 있었다. 그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처음부터 너무 단호하게 방향을 결정하고 떠나면 그 결정에 얽매여 다른 좋은 부분을 간과하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보다 조금 앞서 있는 선진국에 가서 어떤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있고 그 직업의 장래성을 보고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물론 염두에 둔 직업군 중에서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첫 번째가 제과·제빵 기술이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유연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 밖에 자동차, 안경, 인테리어, 보석, 요리도 관심이 있었는데 일본어 학교 2년 동안 이리저리 비중을 따졌을 때 가장 장래가 밝게 생각됐던 것이 역시 처음에 마음먹었던 제과·제빵이어서 그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돈이 없어도 꿈은 꿀 수 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막상 유학을 떠날 때는 호주머니에 달랑 100만 원밖에 없었다. 당시 환율로 20만 엔 정도 되었는데 일단 가서 모든 것을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떠났다.


    처음 2년간 일본어 학교에 다니며 일본어 공부도 하고 학비를 벌었다. 하루 4시간 수업을 마치고 알바를 했는데 시급 600엔에 8시간을 일하면 4,800엔을 손에 쥐었다. 자세한 계획은 세우지 않고 갔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어떤 공부를 할지 알아보았다. 결국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은 먹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가 장사하는 데 제일 큰 비전이라 생각하고 동경제과학교에 제일 마지막차수로 들어갔다.


    도쿄에서 가라오케 점장이 될 줄이야

    사실 설거지 일을 그만두게 된 건 돈을 더 주는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후배가 내가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을 알고 새로 문을 연 어떤 술집이 기타 치는 사람을 구한다며 소개해 주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거금이었다. 술집의 기타 반주자라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그때 마침 점장이 사장하고 안 좋게 가게를 그만두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사장을 찾아가 부탁했다. 기타 반주는 자신이 없으니 가라오케 기계로 반주를 하고 내가 점장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동안 혼자 애를 써가면서 기타 반주하는 모습이 가상하게 보였는지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그렇게 일본 술집에서의 점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토당토않은 무모함이라 얼굴이 붉어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코뿔소 같은 심정이었다.


    술집이다 보니 초저녁에는 손님이 없어 4층에 있는 가게에서 창밖을 내다볼 때가 많았는데, 바로 보이는 곳에 조그마한 트럭에 수박을 한 가득 싣고와 판매를 하는 일본인 부부가 있었다. 장사가 제법 잘 돼 보였다. 관심이 있다 보니 과일은 꼭 그 부부의 트럭에서 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부부와 친해졌고, 나도 과일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부의 과일 트럭이 있던 장소는 우에노였는데 나는 집과 가까운 신주쿠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 모아 놓은 돈으로 덜컥 작은 트럭 한 대를 샀다.


    하지만 세상에 우연이 어디 있을까? 무모해 보였던 그 결정이, 가난으로 상처 받은 소년이 장사꾼으로 성장하는 길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장인의 길

    수석으로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하다

    드디어 2년간 동경제과학교에서 제과 과정을 공부하고 졸업하는 날이 되었다. 2년 동안 결석을 한 번도 안 했으니 당연히 개근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은 학생은 아내와 나 둘밖에 없었다. 둘이 개근상을 타고 자리로 돌아오는 사이에 내 이름이 다시 들렸다. 500명의 졸업식에 달랑 우리 두 사람만 개근상을 탔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했던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다시 교장 선생님 앞으로 나갔다. 상을 받으며 상장 내용을 듣고서야 내가 수석으로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본 학생들을 제치고 한국인인 내가 일등으로 졸업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예로웠던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본 학제상 원칙적으로 전문학교에서 2년간 공부한 뒤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전문학교에서 전문학교로 옮겨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동경제과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내에 있는 빵아카데미 전문학교로 옮겨가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성적과 출석 상황을 보고 일본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 어렵게 허락해 준 덕분에 나는 빵아카데미에 입학해서 빵도 배울 수 있었다.


    실전에서 빵을 공부하다

    동경제과제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일본빵 기술연구소(JB)에 163기로 입교했다. 일본빵 기술연구소에서는 일본 전국에서 현직에 근무하면서 빵을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일 3개월간 빵에 대해서 본격적이고 깊이 있는 공부를 가르쳤다. 제빵 경력자들이 공부를 하다 보니 수업 분위기는 내가 졸업한 제빵학교와는 차원이 달랐다. 3개월간 이런저런 실험을 통해서 빵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빵이 되는 이유와 안되는 이유를 공부하다 보니 빵에 대한 애착이 한층 깊어졌다. 일본 전국에서 모인 동기생들과의 친목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도 JIB에 근무하면서 일본 밀을 연구하시는 S선생님과의 만남이다.


    그 당시 S선생님에게 일본 밀로 빵을 만들 수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선생님은 지금은 잘 안되지만 열심히 연구해서 언젠가는 일본 밀로 좋은 빵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해 주셨다. 그 말은 나 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시장에서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본 밀이 발전하고 인기를 얻게 된 데는 이런 분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내가 사단법인 대한제빵협 회를 만들고 부설로 한국제빵기술연구소(KIB)를 만든 것도 우리 밀을 발전시켜서 일본처럼 부흥시키고 싶어서였다. 지금도 일 년에 서너 번 우리 밀에 관심이 있거나 우리 밀을 직접 재배하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천연효모종과 우리 밀을 이용한 제빵 세미나를 계속해 오고 있다.


    일본빵 기술연구소를 다니면서 학교 수업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은 P라는 빵집에서 빵 연수를 계속했다. 학교에서는 많은 것을 해 볼 수는 있지만 능숙한 기술자는 못되고, 공장에서는 많은 것 을 해 볼 수는 없지만 한 제품을 매일 반복해서 만들다 보니 기술자가 되어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학교 공부만으로 부족한 현장에서의 빵 기술을 익히기 위해 시간만 되면 현장 경험을 쌓았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왔고, 일본어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면서 무엇을 할지를 정해서 제과·제빵을 공부하며 달려 왔다. 그런 일본 생활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처럼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에도 일하는 로봇은 변함없이 빵 트럭을 끌고 가부키쵸로 나갔다. 여느 때처럼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면서 그동안 자 주 오셨던 단골들께는 미리 준비했던 선물도 드리고, 내 자리를 물려주기로 한 후배에게는 장사하는 법도 가르친 후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와 이삿짐을 꾸렸다. 날을 꼬박 새워 이삿짐을 싼 뒤 아침 비행기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내 인생의 귀중한 추억과 배움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속에는 그래도 다 채우지 못한 배움의 갈망이 있었다.


    빵의 본산 프랑스로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나는 늘 빵의 본고장인 프랑스 현지에 가서 빵을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 마음은 공부를 마칠 때도 여전했다. 이대로 한국에 정착하게 되면 나이도 있고 여러 가지 여건상 프랑스에 가서 빵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죽기 살기로 공부한 제과·제빵 기술로 어떻게 해야 한국에서 실패하지 않고 자리 잡을 수 있을까?’하는 새로운 화두가 늘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바쁠수록 돌아간다는 옛말처럼 기왕 시작한 제과·제빵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하기 위해서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제과·제빵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만큼 공부했는데 더 공부할 것이 있느냐고 반대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에 죄송해서 차마 얼굴도 들지 못하고 일본에서 귀국한 지 일주일 만에 프랑스 파리를 향해 떠났다.


    프랑스에서의 2년간의 경험은 기술자로서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일본에서 익혔던 과자와는 성격이 다른 과자들을 많이 접하면서 과자에 관한 시야를 넓혔다. 프랑스 과자의 배합표에서 단맛을 10% 정도 뺀 것이 일본 과자이고 일본 과자에서 단맛을 10% 정도 뺀 것이 우리나라 맛이라는 것을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일하면서 알 수 있었던 것도 프랑스에서 직접 일했던 경험 덕분이었다. 1년 동안의 모듀이 제과점 연수를 마치고 유럽 각 나라의 제과점과 빵집을 보기 위해 한 달짜리 유레일패스를 사서 유럽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에서의 2년간의 경험은 그동안 일본에서 배웠던 기술을 비교·분석해서 새롭게 나만의 기술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그때 당시에 배웠던 많은 제품을 정리한 노트를 보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 많이 참고하고 있다. 추억은 고생이 심하면 심할수록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얘기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경험은 반평생 동안 기술자 생활을 해 오는 데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금의환향대신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실패하는 제과·제빵 기술자들을 많이 본다. 원인이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우리나라 실정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외국에서 잘 팔리는 빵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먹을 거라 착각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인력관리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품과 노동 분위기가 있는데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면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금의환향하는 듯한 기분으로 개업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귀국한 뒤 나폴레옹 제과점에 처음 방문해서 회장님과 면접을 보았다. 어떤 조건으로 일하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일단 지금까지 많은 공부를 하고 들어왔지만 확실하게 한국에서 제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제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것을 보시고 거기에 합당한 월급을 주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 주위에서는 그만큼 공부를 했으면 취직보다는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게 낫지 않느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한국 실정은 전혀 모르면서 외국에서 공부했다고 제과점을 했다가 망하는 사람을 많이 봐 왔기에 나는 한국 제품에 대한 기술을 어느 정도 습득한 뒤에 제과점을 차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입장에서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과 사장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치 등이 얽혀 공장에서의 생활은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였다. 공장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대로라면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내가 모르는 제품이 너무 많았다. 물론 일본과 프랑스에서 배워 온 제품들은 잘 만들 수밖에 없겠지만 그 외에 나폴레옹에서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만들어 온 제품은 알 수도 없었거니와 만드는 방법도 하루아침에 깨우치기에는 어려웠다. 그 제품을 몇 년씩 매일 만들어 온 직원들이야 당연히 잘 만들고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작업할 수 있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제품은 그들에게 배울 수밖에 없었지만, 어설프게 아는 기술은 잘 아는 것처럼 아는 체를 해야 할지, 아니면 모른다고 밝히고 가르쳐 달라고 해야 할지 처음에는 정말로 고민스러웠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하지만 ‘외국에서 공부했다면서 이런 것도 몰라?’하는 시선이 무서워 아는 체만 해서는 그 기술을 마스터해서 내보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망설임 끝에 결국 직원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비록 오늘 내가 너에게 배우지만 일주일 후에는 너만큼 할 수 있다’는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절대 망하지 않는 장사의 20가지 비결

    망하지 않는 장사를 목표로 하라

    나의 장사 철학은 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똥철학이다. 돈을 버는 장사보다는 망하지 않는 장사를 목표로 삼는다. 망하지 않는 장사를 하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내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직접 기술을 배워 내 기술로 장사하는 것이다. 돈은 힘들게 벌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장사를 안 해본 분들은 잘 이해되지 않겠지만 장사란 안돼도 망하고 잘돼도 망할 때가 있다. 안될 때야 당연히 망할 수도 있겠지만 잘 될 때도 접을 수 있다는 것이 장사가 어려운 점이다.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가까운 곳에 돌솥밥집이 생겼는데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요즘이야 돌솥밥이 무엇인지 다들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돌솥밥이 아주 생소해서 관심을 끌기도 했고 밥 자체도 맛이 있을 뿐더러 다 먹고 난 뒤의 돌솥에 물을 부어 먹는 누룽지는 정말 인기가 있었다. 매일 손님들로 문전성시였으니 매출도 무척 많았을 것이다.


    그러던 가게가 6개월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알고 보니 일하는 종업원들이 무거운 돌솥을 매일 들고 나르느라 손목 인대가 아파서 그만두기 일쑤였고,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주인도 지쳐서 가게 문 을 닫았다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장사가 잘돼도 문을 닫을 수가 있다는 것을. 한마디로 장사는 외부에서 주는 어떤 충격으로 쓰러질 수 있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을 때도 접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크게 빛은 나지 않지만, 비바람과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는 장사법이야말로 장사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비바람이 치고 태풍이 부는 날도 있듯이 해가 뜨고 맑은 날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맞게 태풍이 칠 때는 언젠가 해 뜰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절망하지 않고, 해가 떴을 때는 언젠가 태풍이 칠 것이라는 경계심으로 자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장사의 최고 묘책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며, 장사 또한 그러하다. 전 세계가 요즘 코로나19로 인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전염되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사태가 안정되고 난 이후에 겪을 힘든 경제적 상황은 결코 모든 사람이 공평한 조건에서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지인이 인건비와 임대료의 무게를 이겨 내지 못하고 장사를 접고 있다.


    이런 난리가 날 것이라고 예견하고 혼자 하는 빵집, 망하지 않는 빵집을 구상한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혼자 하는 제자들의 빵집을 돌아보면서 정답이 뭔지를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이런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이런저런 후유증으로 인해 저성장이 계속될지 모르겠다. 수십 년 동안의 내 장사 경험에 비추어 코로나뿐 아니라 어떤 위기가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망하지 않는 장사 비결 20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망하지 않는 장사 비결 1. 망하기 어려운 업종을 선택하라

    내가 빵을 하기로 택했던 이유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인간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빵은 쌀과 더불어 수천 년 인간의 역사에서 주된 음식이었으므로 앞으로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빵 만드는 기술만 있으면 세상 어디에 가도 빵 장사로 먹고살 수 있다. 처음 일본에서 무슨 기술을 배울까 망설일 때 제과·제빵을 택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세계 어디에서도 제과·제빵은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럼 어떤 업종이 망하기 어려운 업종인가? 나는 자기 기술을 갖고 하는 장사가 제일 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면 꼭 자식들에게도 물려주려는 장사가 몇 가지 있는데 자식이 이어받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그 장사가 망하기 어렵고 수익이 좋은 장사라는 뜻이다. 그런 장사 중 하나가 안경점이다. 한때 마진이 90%가 된다고 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던 업이 안경점 장사다.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수익률이 좋고 폐업률이 다른 장사보다 월등히 낮다. 안경점을 하려면 안경사 자격증이 필요한데 안경사는 국가 자격증으로 보호를 받는다. 기술을 익히고 안경사 자격증을 따면 여유 있게 혼자 장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나는 그런 기술로 빵을 택했지만 생각해 보면 미용 같은 기술도 참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을 빨리 읽고 변화해 가는 시대에서 가장 각광 받을수 있는 기술이 뭐가 있을지 미리 연구해서 익힐 수 있는 선구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나 자신의 핵심기로 승부할 수 있는 장사를 선택하라, ‘어떤 업종이 뜬다’, ‘어떤 장사가 돈이 쉽게 벌린다’ 같이 일시적인 트렌드 때문에 반짝 인기가 있다 사라지는 것들을 쫓아다니지 말라.


    망하지 않는 장사 비결 5. 접객을 연마하라

    손님들은 현명하다. 본인의 지갑을 열 때는 그만큼 신중해진다는 의미다. 매스컴의 영향으로 한두 번은 올 수 있겠지만 와보고 기대치에 못 미치면 바로 등을 돌리는 것이 손님이다. 그런 손님들의 기대치를 만족하게 하려면 제품의 일정한 퀄리티와 다시 오게 하는 친절함이 중요하다. 우리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판매하는 방식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만든 제품을 돈을 받고 판매하는 행위다. 손님이 오셔서 “이 빵을 주세요”라고 할 때 단순하게 포장해서 드리는 것은 유치원생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빵을 사려 할 때 저 잼을 끼워서 판매할 수 있는 요령’이 진정한 장사꾼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운영하는 빵집의 효시이자 성공한 케이스로서 많은 사람이 나를 롤 모델로 삼는 중요한 이유는 시대의 흐름을 한 발 앞서 읽고 실행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접객을 할 때는 ‘저 사람 덕분에 내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고 진심으로 대한다. 손님은 현명하기 때문에 자기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처음 가게를 개업하게 되면 오픈하자마자 바로 들어와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지켜본다. 보지 않는 것 같지만 다 본다. 볼 때마다 주인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산 빵이 맛있다면 단골이 되고, 맛이 없다면 다시는 안 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 오는 손님은 수로는 제한적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단골이 축적된다.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너무 단골을 우대하다 보면 처음 오신 손님을 소홀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손님에게 소외감을 주어 손님이 다시는 오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처음 오신 손님도 단골손님처럼 서비스에 신경을 써서 대해야 한다. 접객을 할 때는 손님을 믿고, 길게 보고 해야 한다는 원칙을 기억하면 좋다.


    간혹 장사하다 보면 금액이 서로 달라 다툼이 일어날 때가 있다. 금액이 크게 다르거나 의도적으로 손님이 우기는 경우에는 CCTV를 봐서라도 시시비비를 가려야겠지만 자주 오는 손님이고 큰 금액이 아니라면 손님이 주장하는 대로 거스름돈을 내드리라고 직원들에게 주의를 주는 게 현명하다. 한번은 손님이 깜박 착각해서 결제했다고 우긴 적이 있었는데, 금액이 그다지 크지 않고 자주 오시는 손님이어서 못 이긴 척 거스름돈을 건네고 보내드렸다. 그러고 나서 한참 지나 바로 그 손님이 다시 오셨다. 집에 가서 호주머니를 뒤져 보니 돈이 있었다고 하면서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만약 이런 경우에 CCTV를 보고 그 사실을 확인하려 한다면 손님은 감정이 상해 다시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 한 명을 잃는 만큼의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번 손해를 볼망정 계속 오시게 해서 물건을 파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 된다.


    망하지 않는 장사 비결 9. 너무 힘들지 않게 장사하라

    장사는 너무 힘들지 않게 해야 한다. 장사라는 것이 원래 힘들기 때문이다. 빵 장사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지 않게 해야 오래할 수 있다. 즉, 장사는 마라톤 경주다. 아침 5시에 출근해서 10시면 빵은 다 만들 수 있다. 그 이후부터는 판매를 하는데 부부나 가족이 같이 하면 서로 도와줄 수 있어서 수월하다. 예를 들어 남편이 빵을 10시까지 다 만들고, 부인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와서 2시간 정도 가게를 봐 주면 그 시간 동안 남편은 쉬거나 볼 일을 볼 수 있다. 12시에 같이 식사하고 나서 1시부터 반죽 쳐서 3~4시가 되면 반죽을 완료하고 도우 컨디셔너에 보관한 다음 판매는 늦어도 7시까지 마친다. 그 후 가족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같이 먹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적당한 시간 일하는 빵쟁이의 삶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빵 종류를 적게 해야 한다. 보통 하루에 15품목을 넘어서면 힘들다. 똑같은 일을 매일 하면 옆을 쳐다볼 여유도 없이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너무 제품의 종류가 많으면 혼자 하는 장사가 점점 힘들어진다.


    가능하면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몇 년간 핵심 기술을 익히면서 장사 후에 버틸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장사를 시작하면 예상했던 것보다 자리를 잡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자금이 있다면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지만 장사로 버는 돈에만 의지하고 있으면 초조해지고 손님은 그런 초조함을 기가 막히게 눈치 채고 지갑을 닫는다.


    여유를 갖고 하는 것의 중요성은 돈의 속성과도 관련이 있다. 장사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다. 돈은 쫓아갈수록 도망간다. 돈이 궁해서 절박한 사람을 만나 본 경험을 떠올려 보라. 그 사람이 당신에게 상품을 팔려고 하거나 사업 제안을 한다면 당신은 선뜻 그 사람에게 돈을 내주겠는가? 오히려 자신감을 갖고 여유 있게 장사하는 사람의 상품을 사고, 그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대충 장사하라는 얘기라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마라톤 경주인 장사를 100미터 달리기로 착각해서 너무 빨리 지치고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다. 과외 수입이 없더라도 앞에서 얘기한 ‘혼자 하는 장사’, ‘핵심 기술을 갖고 하는 장사’를 하면 너무 힘들지 않게 장사할 수 있다. 장사를 오래 하기 위해서라도 장사는 너무 힘들지 않게, 여유를 갖고 하라.


    망하지 않는 장사 비결 12. 자기 관리를 하라

    사람들은 장사를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다. 하지만 막상 장사를 시작해 보면 장사해서 돈을 벌기가 생각한 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지 않은 이유야 생각해 보면 새털처럼 많지만 결론적으로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로 귀결되는 것 같다.


    끝까지 살아남는 장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장사다. 많은 것을 벌려고 무리하게 투자하니까 문제가 된다. 시골의 할머니들이 하는 식으로 소박하게 운영하고, 와주는 손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상품을 내놓고, 자기가 기술을 갖고 요리하면 망하기가 쉽지 않다. 안되는 날도 있지만 잘되는 날도 있어서 쉽게 망하지 않는다. 오래하다 보면 자기는 못 이루더라도 그 아들이 이룰 수 있다. 전국 몇 대 빵집에 든다는 전주의 이성당, 대전의 성심당도 2세 때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다음으로 장사에서는 루틴을 세우고 지켜야 한다. 요즘 혼자 하는 빵집을 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 편의에 따라 쉽게 문을 닫고 쉬는 사람이 많다. 자기가 제일 소중하니 자기를 중심에 두고 하는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공연 직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조수미 같은 삶이 장사하는 장인의 삶이 아닐까. 때로 힘들어도, 내키지 않아도,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터로 나가는 것을 매일매일, 긴 세월 동안 해내는 것. 그런 자기 관리를 해야 손님도 팬이 되어 주고 장사가 안정된다.


    장사를 잘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자기 관리와 성실함이다. 한두 번 열심히 하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매일 꾸준히 자기 일을 한다는 것은 재미의 경지를 넘어서는 일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힘든 경지를 넘어서게 되면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밥 굶을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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