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2030 반도체 지정학

저   자
오타 야스히코 외(역: )
출판사
성안당
출판일
2022년 08월
서   재







  • 21세기 전략물자 반도체를 장악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치열한 경쟁, 반도체 자립을 향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 우리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양자택일 구도가 첨예해진 상황에서 한국을 위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경로를 모색해봅니다.



    2030 반도체 지정학


    미국발 반도체 전쟁 ‘반도체 CEO 서밋’

    20세기 인프라가 도로나 다리라면, 21세기 인프라의 주역은 반도체다. 바이든은 2021년 4월 12일 열린 반도체 CEO 서밋에서 정부, 의회, 산업계가 하나가 되어 중국과 거국적인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 선언하며, 중국을 제치고 반도체 기술패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확보 경쟁에서 중국에 뒤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지 않다. 우리 미국이 다시 세계를 리드하겠다.’ 바이든 연설의 요점은 이것이었다. 이날부터 반도체 산업을 부양하는 워싱턴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2030 반도체의 의미

    미래 사회 인프라

    반도체는 모든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반도체가 없으면 사람들의 생활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삶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탱하는 사회 인프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서플라이 체인을 공략함으로써 적대하는 나라의 사회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핵무기나 미사일은 물론이고 반도체 공급을 끊는 것이 유효한 공격 수단이 될지 모른다.


    빅테크 기업의 심장부

    빅데이터가 사회를 구동하는 시대의 주역은 플랫폼으로 불리는 기업군이다. 미국에서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을 가리키는 ‘GAFA’가 더욱 힘을 얻고, 중국에서도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성장할 것이다. 그들이 긁어모은 정보는 데이터센터에 저축한다. 현대 기간산업이 된 플랫폼 중 심장에 해당하는 곳이 데이터센터다. 그리고 그 심장을 형성하는 하나하나의 세포가 반도체 칩이다.


    전기차(EV)가 보급되면 반도체의 역할은 틀림없이 중요해질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조작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이 실용화되면 차는 반도체가 뭉텅이로 들어가는 전자제품이 된다.


    사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이 진행되면 여라 가지 다른 일을 하는 소량생산 전용 칩이 필요하다. 반도체 개발 방식과 만드는 방식이 확 달라질 것이다. 반도체는 이미 산업의 쌀을 뛰어넘었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략물자

    반도체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전략물자로서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무기만 하더라도 2030년에는 AI 칩을 탑재한 로봇 무기와 드론이 배치될 것이 명백하다. 국방의 생명선인 통신망도 고속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반도체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보안이 뛰어난 전용 칩이 군사력을 결정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공격의 핵심인 미사일도 마찬가지다. 미사일의 두뇌는 바로 반도체 칩이다.


    반도체의 위력에 의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하여 초고가 항공모함을 움직이던 20세기형 전쟁은 끝났다. 앞으로는 소수의 저비용 무기를 소수의 인간이 조작하는 기술력이 군 경쟁력의 요건이 된다.


    2020년에는 일본 반도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자동차 업체들의 조업이 멈추는 사태가 발생했다. 반도체 공급이 끊기면 산업은 쉽게 마비된다. 반도체 공급망을 지배하면 경제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현대의 서방 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을 제한하는 흐름은 가속화될 것이다. 미 / 중 양대국에 한정하지 않고 반도체를 확보하는 것이 모든 나라에 필사적으로 중요한 국가 안전보장 정책이 되어간다. 반도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그러니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의 움직임을 지정학의 시점에서 읽어보자. 손가락 끝에 놓일 정도로 작은 반도체 칩을 통해 2030년 세계를 전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의 반도체 시나리오

    미국 정부가 세계 곳곳의 반도체 업체를 애리조나 주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 피닉스로 불러들이고 있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바이든의 반도체 전략의 중심에 애리조나가 있다.


    2020년 5월 15일, 반도체를 수탁 생산하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가 애리조나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TSMC는 기술력과 규모 면에서 세계 어느 파운드리가 와도 이길 수 있는 괴물 같은 거대 기업이다. 엔비디아, 퀄컴 등 미국 대기업을 비롯해 세계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가 제조를 위탁하기 때문에 TSMC의 생산력 없이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 특히 미세 가공 기술은 이 회사의 독무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장인의 기술을 미국에 유치하는 것이 바이든이 추진하는 반도체 전략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미국에는 설계가 뛰어난 기업은 있지만 물건 만들기가 취약하다. 유력한 파운드리가 미국 내에 없고, 웨이퍼 절단이나 패키징 등을 거쳐 칩으로 완성되는 후공정 산업도 취약하다. 미국 정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TSMC 공장을 유치하면 미국 내에서 공급망이 끊김 없이 연결된다. 이 회사를 뒤쫓아 후공정 기업과 소재 업체, 기기 유지 보수 기업도 아시아에서 진출할 것이다. TSMC를 구심점으로 삼아 새로운 생태계를 애리조나에 구축할 수 있다.’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면 외국으로부터 반도체 산업을 지킬 수도, 외국을 공격할 수도 있게 된다. 대만의 TSMC를 불러들이는 작전은 반도체 체인을 미국 내에서 완결하기 위해서다.


    TSMC 발표에 따르면 애리조나 공장은 2021년 중 착공해 2024년 조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미국 공장 건설은 대만보다 2~3배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그 차이를 보조금으로 메워주지 않는 한, TSMC가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서플라이 체인을 수중에 넣고 싶은 미 정부의 국가 안전보장 논리와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TSMC의 기업경영 논리라는 상충되는 두 가치관이 유치 계획의 이면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세계 1, 2위를 오가는 반도체 메이커인 미국 인텔은 피닉스와 인접한 챈들러 시에 공장 2개를 짓고 파운드리 사업에도 뛰어들어 다른 반도체 업체로부터 제조를 위탁받을 계획이다. 상무장관 지나 러몬도는 인텔의 투자는 미국의 기술혁신과 리더십을 지키고 미국경제와 국가안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대만에 이어 한국에도 압력을 넣었고, TSMC에 이어 파운드리인 삼성전자에도 공장 진출을 촉구했다. 반도체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 부문의 2020년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면, TSMC와 삼성전자 2개사가 7할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여기에 미국의 다른 파운드리나 인텔이 수탁 생산에 참여하는 것까지 더해지면 미국 정부의 영향 아래 있는 기업이 세계 반도체 제조의 89%를 지배하게 된다. 바이든이 던진 그물에 세계 반도체 기업이 끌어올려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수요는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 산업이다. 그 거대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반도체 회사를 미국에 집결시켜 세계의 반도체 공급망을 개편하려는 게 미국의 속셈이다. 바이든이 ‘반도체 CEO 서밋’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미국 시장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미 상원이 반도체 관련 여러 법안을 묶은 ‘미국 이노베이션 경쟁법안’을 통과시킨 직후 중국은 즉각 반응했다. 중국도 보조금 규모에서는 미국에 지지 않는다. 성공 사례만 있는 건 아니지만 윤택한 정부자금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중국 기업들은 명확한 국책 아래에서 채산성에 신경 쓰지 않고 설비투자와 증산에 매달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만큼이나 또 다른 거대 경제권인 유럽의 움직임도 간과할 수 없다. EU의 행정부인 집행위원회는 2030년을 향한 산업전략 ‘디지털 컴퍼스(Digital Compass)’를 발표했다. EU 지역 내 반도체 생산을 10년 동안 2배 증가시킨다는 의욕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EU 27개 회원국 정부는 ‘연산소자와 반도체 기술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하여, 지역 내 반도체 산업 강화가 회원국의 공통 목표임을 확인하고 역내 공급망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합의했다.


    TSMC조차 아직 시험 단계에 있는 초절정의 미세 가공 경쟁에 유럽 기업이 뛰어들게 하겠다는 높은 목표를 세웠으니 EU는 공적자금을 반도체 산업에 아낌없이 쏟아 부을 것이다.


    세계 각국은 반도체가 가진 지정학적 가치를 깨달았다. 한 차례 가속화된 정부의 산업 개입 흐름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 무역 시대의 끝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도체 지정학

    전통적인 지정학은 국제정치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해양과 지형에 주목하는 연구다. 현대 반도체의 지정학을 생각할 때는 이런 지리적 공간뿐 아니라 가상적인 사이버 공간에서의 국가와 기업의 전략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반도체는 무역으로 거래되는 물건인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노하우, 지적재산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무대인 환태평양에서 물건이 오가는 공급망 뒤편에서 기술 패권을 둘러싼 세계적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에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반도체 생산력이고, 대만 TSMC 한 곳에 제조를 의존하는 국제 수평분업 구조가 국가 위기를 초래하는 지정학적 리스크이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 침공은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반도체의 패권을 잡고 싶은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미국에 필요한 파운드리 집적지 대만을 미국이 지킬 것인가, 아니면 대만의 파운드리들을 미국 내로 이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바이든 정권은 그 양쪽에 재빨리 손을 뻗쳤다.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더욱 강하게 둘러싸서 억지력을 높이고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봉쇄한다는 전략이다. 그리고 아시아의 반도체 팹을 보유한 업체들에 그물을 펼쳐 미국으로 바짝 끌고 갔다. 미국 내에서는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파운드리에 생산력 증강을 촉구하고 있다.


    바이든의 반도체 전략은 기업의 채산성을 초월해 채산성 유무를 가리지 않고 투자를 압박하는 방식이다. 이 전략이 성공하면 세계에 분산된 공급망이 미국에 집약되어 미국 내 생태계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 반도체 산업에 물자가 흐르는 길을 끊는 공격에 나설 태세다. 화웨이의 반도체 부문인 하이실리콘,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 반도체 제조장치 업체인 AMEC 등 주요 중국 기업에 대한 금수조치를 계속할 것이 틀림없다.


    바이든 정권의 통상정책도 눈여겨보자. 바이든 정권의 새로운 통상 전략은 동맹국들과만 디지털 분야를 교류하는 국제 룰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그 친구들로 구성하는 틀은 안쪽에서 보면 무역자유화지만 바깥쪽에서 보면 배타적 보호주의가 된다. 현재 미국은 디지털 통상정책에 있어 ‘개방’에서 ‘쇄국’으로 거대한 방향 전환을 일으킬 기미를 보이고 있다. 중요한 디지털 기술의 대부분을 이미 미국이 쥐고 있다. 그러니 부족했던 반도체 제조기술을 국내에 확보하기만 한다면 디지털 분야에서 자유무역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줄어들지 않을까?


    반도체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중국이 취해야 할 경제외교에 대해 생각해보자. 중국은 반도체 확보를 위해 두 가지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제해권이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싶은 것은 시진핑 정권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대만의 TSMC를 탐내는 것과 같은 이유로 중국 또한 대만의 반도체 생산능력이 필요하다. 공급망의 핵심인 대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싶지만 대만 침공은 중국에 너무 큰 정치적 리스크를 준다. 하지만 대만으로부터 반도체 공급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대만과 미국을 계속 압박해야 한다.


    중국은 군사적 위협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대만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려 할 것이다. 남중국해에서 그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난사군도 주변에 흩어져 있는 암초 위를 매립해 쌓은 인공섬으로 군사거점 건설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 / 중 갈등이 격화된 2020년 4월에는 난사군도와 시사군도에 행정구를 설치해 중국의 ‘지방자치구’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대만 주변은 중국군 기지투성이다. 게다가 반도체 공장이 집결하는 대만 서안의 신주는 대만 중에서도 가장 중국 대륙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 지정학적으로 이렇게 위험한 곳은 없다.


    중국의 또 다른 무기는 자국시장이다. 2020년 반도체 시장 규모를 보면 중국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커 중국에서만 세계 수요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그 마켓 파워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 틀림없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민감한 제품을 제외하고, 오히려 자유롭게 중국에 수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이다. 수출 확대의 기회를 엿보는 미국 기업의 존재는 중국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미국 정부는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기업을 자국 내에서 지원하지만 기업은 비즈니스에서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기업이 미국 안에서 수출 규제 완화를 압박하면 중국에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해줄지도 모른다. 미국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무역 룰의 무대에서 내려갔고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었다.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의 변절. 시진핑 정권은 이 대목을 문제 삼았다. CPTPP(포괄적 /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는 미국이 이탈한 뒤 일본이 중심이 돼 마련한 11개국 협정이다. 중국이 가입하기 위해서는 이미 완성된 협정의 내용에 따르도록 중국 국내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새로 가입한 국가도 다른 참가국과 같은 발언권을 가진다. 원래의 TPP는 중국을 국제 룰의 무대로 유인하기 위해서 미국이 생각한 장치였지만, 미국이 빠진 지금은 중국이 자유무역의 국제 룰을 만들어 가는 형국으로 변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의 통상규칙 책정에 대한 관여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2020년 11월에 서명된 역내(범아시아)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한국 / 중국 /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의 다자간 협상을 통해 중국은 여러 국면에서 논의를 주도하려 했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 규칙을 정한 이른바 디지털 조항 조문은 중국의 주장을 짙게 반영한다.


    이 조항은 국경을 초월한 데이터의 이전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점, 데이터를 보관하거나 처리하는 컴퓨터 시설을 자국 내에 두도록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을 정하고 있다. 얼핏 보면, 데이터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조문을 잘 읽으면 가맹국이 자국의 안전보장과 관계된다고 판단했을 경우는 예외로 취급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게다가 TPP에는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 공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중국이 들어간 RCEP에서는 “향후 논의의 대상으로 한다”라고 밖에 쓰여 있지 않다. 겉으로는 데이터 무역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외국 기업의 데이터가 국경을 넘지 않도록 금지할 수 있고 외국 기업의 서버를 중국 내에 둘 수도 있다. 외국 기업에 소스코드를 보여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외국 클라우드 기업이 중국에서 모은 데이터는 사실상 중국 정부의 관리 아래에 놓이게 된다. 중국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중국 밖으로 반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회원국 간 갈등을 해결하는 분쟁 처리 구조다. 디지털 분야는 적응 대상에서 제외돼 데이터 무역을 둘러싸고 어떤 갈등이 일어나도 규칙에 비춰 공정하게 제정할 수 없다. 데이터 무역의 룰은 반도체 분야에서도 기업의 글로벌 전략을 크게 좌우한다. 향후 중국은 특히 디지털 분야에서 WTO나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의 국제기구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국제 룰 형성에 참가할 것이 틀림없다.


    디지털 분야의 국제 룰 마련에서는 눈을 떼면 안 된다. 하드웨어 반도체와 사이버 공간의 데이터 무역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미 / 중 양자 대립뿐 아니라 다자간 통상협상 또한 패권 경쟁의 무대다. 바이든 정부의 통상정책이 시동을 걸면 국제 룰을 형성하는데 미 / 중이 주도권을 다투게 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반도체 공방전

    2020년 6월 25일 일본 방위상 고노 다로는 육상배치형 요격미사일 시스템 ‘이지스 어쇼어’ 도입을 철회하였다. 이지스 어쇼어는 고도의 적 색출 능력과 정보처리 능력을 갖춰 날아오는 미사일을 지상에서 쏘아 떨어뜨리는 방어체계다. 이지스 어쇼어 문제를 시스템을 구성하는 부품 차원에서 바라보면 정치 세계와는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일본의 방위력을 좌우하는 이지스 문제의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반도체다. 복잡하고 고도의 레이더 시스템의 요점이 되는 부품이 일본 메이커가 특기로 하는 ‘파워반도체’다. 일본의 지정학적 우위를 좌우하는 열쇠가 여기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채용되는 시스템에 일본제가 포함되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일본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생산국이다. 싱가포르에서 전자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8%로 이 중 약 80%가 반도체 관련이다. EDB(경제개발청)는 전략적으로 반도체 제조뿐 아니라 반도체 제조를 뒷받침하는 장비 제조사도 유치하고 있다. 인건비가 높고 국토가 좁은 싱가포르로 반도체 산업을 모두 불러들일 수는 없지만, 밸류 체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정 기술을 엄선해 전략적으로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옛 소비에트연방에서 전자 / 전기 산업을 담당했던 아르메니아공화국은 숨겨져 있는 IT 국가다. 아르메니아의 IT 산업을 구성하는 기업의 상당수는 외국에서 진출한 전자기기, 반도체 업체다. 반도체의 비경이라 할 수 있는 아르메니아에서 지금 지정학적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2020년 9월 말, 이웃 아제르바이잔과의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양국의 대립을 무대 뒤에서 바라보면 아르메니아에 그늘을 드리운 것은 러시아이고, 아제르바이잔을 지탱하는 것은 터키다. 러시아와 터키의 대리전쟁 색채도 띤다. 러시아로서는 동맹국인 아르메니아의 IT 산업을 수중에 넣어두고 싶은 귀중한 자산처럼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반면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주로 미국으로부터의 직접투자로 이뤄진 국내 IT 산업이 국가의 자립을 유지하는 데 의지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터키의 뒤편에서 아제르바이잔을 군사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실크로드 구상을 내세워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영향력을 높이려는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2030 반도체 전략

    지난 30년간 진행된 국제 수평분업의 형태가 지금 크게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세계화의 모습이 바뀌는 역사적인 전환점에 있다. 미 / 중 싸움을 남의 일로 바라본다면 환태평양은 패권 경쟁의 늪이 된다. 여러 나라가 논의해 국제 룰을 정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TPP는 그것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미 시나리오가 결정된 무대에 오르면 중국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 디지털 분야를 개척해 디지털 TPP로서 새로운 틀을 만드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인 대만과 한국의 참여, 그리고 미국의 복귀가 필수적인 조건이다.


    반도체 제조에는 대략적인 분류만으로도 20개 이상의 공정이 있으며 공정마다 다른 제조장치나 소재를 공급하는 업체가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애초에 무엇을 위해 반도체 칩을 만드느냐를 따지는 일이다. 사회의 숨은 요구를 깨닫고 미래를 선점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의 부흥은 미래 사회를 그리는 사용자 기업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반도체 산업에는 넘어야 할 큰 벽이 몇 개 있다. 하나는 이 산업 특유의 실리콘 사이클로 불리는 경험에서 나온 규칙이다. 이 현상은 수요와 공급이 엇갈리며 거의 4년 주기로 호불황이 찾아오는 것이다. 반도체가 많은 산업 분야에서 필요하고, 게다가 복잡한 공급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반도체 업체는 자신의 공장임에도 생산량을 매끄럽게 조절할 수 없다. 이를 거시적으로 보면 지구 규모로 엄청난 낭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이대로 반도체 수요가 계속 증가하면 실리콘 사이클로 인한 에너지 낭비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과장하자면 반도체가 지구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빅데이터를 활용해 상당한 정확도로 수급을 해석하면 사이클 발생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정부의 규제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물건 흐름이나 설비투자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반도체 산업이 도전해야 할 또 하나의 산이 인텔 창업자 중 한 명인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주창한 무어의 법칙(칩 집적도가 2년 새 2배가 된다는 경험에 의한 규칙)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지난 50년간 칩 집적도는 비약적으로 올라갔지만 미세화 기술은 이제 한계에 와 있다. 그래서 전자회로를 3차원으로 쌓아 올리는 3D 기술이 돌파구로 기대되고 있다. 일본에서의 3D 칩 연구가 결실을 맺으면 소비전력의 벽도 넘어설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망가져가는 지구를 구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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