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요약 

돈키호테 CEO

저   자
야스다 다카오(역:김진연)
출판사
OCEO
출판일
2017년 03월
서   재







  • 올해로 3년 연속 ‘성장률 3%’ 벽을 넘지 못하면서 장기 저성장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저성장을 먼저 겪은 일본. ‘잃어버린 20년’으로 표현되는 장기 불황 시대를 겪는 동안에도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은 있다. 불사조 기업. 종합 할인점 돈키호테를 일컫는 말이다. 돈키호테 1호점 창업 이래 27년 연속 매출과 이익이 성장하고 있다. 업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장기 저성장 초입 국면에 놓인 기업 특히 유통업계는 돈키호테 성공 요인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돈키호테 CEO》는 이처럼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는 돈키호테를 창업한 야스다 다카오의 성공 방정식을 담은 책이다.



    돈키호테 CEO


    계 상식을 버려야 기회가 보인다

    나는 1949년 5월에 태어났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셈이다. 아버지는 공업고등학교 기술 과목 교사였는데, 엄격한 교육자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고지식한 분이셨다. 나는 아버지 같은 인생은 하나도 재미없어. 하는 반발심을 품고 자란 막무가내 말썽쟁이, 타고난 청개구리였다. 어른들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왜 그래야 하는데요? 하고 반항하며 굳이 남들과 다른 길만 고집하는 아이였다. 그런 성격은 어른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 상품이 팔릴 리가 없지., 그런 가게는 금방 망하고 말 거야.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수록 청개구리에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머리를 들었다. 다른 사람 의견 따위는 필요 없어. 어떻게든 팔고 말 거야. 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를 나왔는데, 1학년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곧 무기력함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동기들은 모두 세련되고 말쑥했다. 특히 게이오대학 부속 고등학교에서 진학한 친구들은 대부분 부모님이 유명 기업의 사장이나 중역이었던 부잣집 도련님들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시골에서 막 올라온 촌뜨기에 불과했다. 당시 주위의 화려한 게이오 보이들을 보며 부러움과 시기, 알 수 없는 분노가 마음 깊이 치밀었다. 한편으로는 평범한 회사원이 된다면 영원히 저 녀석들을 이길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녀석들 밑에서 일하고 싶진 않아. 그렇다면 내가 회사의 오너가 되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혼자서 맹세했다.


    하지만 나는 게이오대학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고 2주가량 지난 다음부터는 아예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당연히 성적은 최악이었고 그 결과 1학년 때 유급 처분을 받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학비와 생활비 일체를 끊어 버렸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요코하마항에서 노역을 했다. 상당히 힘든 일이었지만, 젊은 나에게는 원초적으로 몸을 쓰는 노동이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고 또 귀중한 경험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젊기에 가능한 일이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는 절대 이곳에 다시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작은 부동산 회사에 취직했다. 작은 회사라면 빨리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대기업에 들어간 동기들보다 더 빨리 능력 발휘를 하고 수입도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실제로 회사는 고객 돈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고, 결국 제1차 석유 파동(1973년) 때 허망하게 도산하고 말았다. 입사한 지 불과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실업자 신세가 된 후 생활비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나는 다시 마작에 뛰어들었다. 그 승부에서 간신히 끼니를 때울 만큼 돈을 벌었다. 그 무렵 나의 하루 일과는 저녁에 시작되었다. 밤이 새도록 마작을 한 후 아침에야 집에 들어오는, 타락한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훗날 돈키호테를 경영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비참한 마음으로 번화한 밤거리를 하릴없이 배회하던 시간이 있었기에 늦은 밤까지 길거리를 표류하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방황하는 청춘의 아픔을 위로하는 돈키호테식 마케팅 기법도, 심야 가게 개척도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작이 더 이상 호구책이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필사적으로 모은 자금 800만 엔(약 8,255만 원)으로 무슨 장사든 시작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도쿄의 한 주택가에 열여덟 평짜리 매장을 하나 빌렸다. 역에서 멀고 주차 공간도 없었지만 임대료는 월 22만 엔(약 227만 원)으로 상당히 비쌌다. 나는 그곳에서 도산한 기업 등에서 발생하는 재고 처분품들을 팔기 시작했다. 1978년, 내 나이 스물아홉이던 해에 인생의 기념비가 된 창업 점포 도둑시장이 출범했다.


    하지만 가게 안은 파리만 날렸다. 가게 준비 명목으로 끌어 모았던 전 재산은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애당초 자본금도 신용도 없는 내가 정상적인 통로로 물품을 구매해서는 도저히 다른 점포를 이길 수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전략을 바꾸어 대형 제조업체나 도매장 창고 뒷문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런 곳들을 끈질기게 찾아간 끝에 뒷구멍으로 폐기품이나 흠집 난 상품, 샘플이나 반품된 물건 등을 헐값에 넘겨받았다. 그것은 정말 공짜에 가까웠다. 그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가게를 눈 깜짝할 사이에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도둑시장이라는 이름에 딱 들어맞는 가게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제야 도둑시장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도둑시장은 도산한 기업의 제품이나 단종된 제품들이 주를 이뤘던지라 그때그때 물건이 나올 때만 살 수 있었다. 잘 팔린다고 해서 추가로 구매할 수 없었기에 평소에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서 괜찮은 물건들을 계속 눈여겨보고 사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구매 방식이 바로 훗날 돈키호테의 근간이 된 스팟 상품(수량이나 기간 등을 한정하여 비정기적으로 구매하거나 판매하는 상품) 정책의 원형이었다.


    구매한 물건들은 선반이라는 선반마다 다 채워 넣고도 모자라, 맨 위쪽 선반에는 상자를 천장까지 쌓아 올렸다. 문제는 상자를 마냥 쌓아 놓기만 해서는 무슨 물건을 파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자에 작은 구멍을 낸 후 손으로 직접 쓴 POP 광고 글을 일일이 붙였다. 신기하게도 손님들은 뭔가 희귀한 물건이 없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게 안을 열심히 둘러보았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돈키호테의 명물이라 불리는 압축 진열과 POP 홍수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때그때 나오는 물건을 사들였기 때문에 간판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없었고, 결국 가게는 팔다 남은 상품들로 뒤덮여 쓰레기 더미처럼 변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가게 문을 닫은 후 가게 안을 정리하고 있는데, 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조용한 밤 주택가에서 혼자 부스럭거리는 나를 보고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가게 아직도 해요?"라고 물어왔다. 당연히 한 푼이라도 더 매상을 올리고 싶었던 나는 가게 안으로 손님들을 안내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술을 한 잔 걸친 덕분인지 쓰레기 더미 같은 가게 안에서도 이리저리 물건들을 찾아보며 오히려 즐거워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커다란 시장의 가능성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밤의 손님들은 환한 낮에 깐깐하게 따져가며 장을 보는 주부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본격적인 심야 영업에 뛰어들었다. 밤이라는 시장의 발견은 훗날 돈키호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던 중 당시 도둑시장을 우연히 찾은 손님 가운데 라디오 방송국의 프로듀서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우리 가게가 참 흥미롭다며 본인의 프로에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방송을 탄 다음 날부터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고객들이 도둑시장을 찾았다. 돈에 쪼들리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돈이 굴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개업 후 2년, 도둑시장은 지역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결국 나 혼자 힘으로는 이끌어갈 수가 없어 직원들을 뒀는데, 고용하는 직원들마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금세 그만뒀다. 영세하고 심야 영업을 하는 가게인데다 가게 이름도 "나 도둑시장에서 일해요."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만들었다. 저스트. 이것이 바로 주식회사 돈키호테의 전신인 주식회사 저스트(1980년 설립)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성장을 해 나가지 못했다. 경영도 체계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래서는 점포를 늘리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숙한 나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과감하게 도둑시장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고 도매를 전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1983년 리더라는 도매 회사를 설립했다.


    리더는 영업사원이 트럭에 제품을 한가득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매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전화나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한 팩스를 통해 판매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재고 상품은 종류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상품을 보여주지 않으면 감이 안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만일 제품이 이미지와 다를 경우 반품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붙였고, 효율적으로 영업 방식을 전환할 수 있었다. 설립 수년 만에 리더의 연매출은 약 50억 엔(약 516억 원)에 도달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소매업으로 승부를 보기로 결심했다.



    직원이 말을 안 듣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새로운 가게에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통업계라는 거대한 풍차를 상대로 기존의 권위와 상식을 타파해 나가자고, 혹여 고군분투하게 되더라도 나의 이상을 걸고 돌진하자고 다짐했다. 1989년 3월, 돈키호테 1호점인 후추점이 탄생했다. 후추점은 수도권의 교외 도로변에 위치해 입지 면에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당시 대규모소매점포법에 의하면 매장 면적이 150평을 넘을 경우 규제가 따랐기 때문에, 후추점을 139평으로 하여 규제를 피하는 선에서 최대한 대형 점포의 외양을 갖추었다. 나는 자신만만했다. 내게는 도둑시장을 독자적인 염가 판매 방식으로 운영해 성공한 노하우가 있었다. 리더 시절에 구축한 자금력과 상품력도 완벽했다. 하지만 첫해의 매출은 고작 5억 엔(51억 6,000만 원)으로 엄청난 적자였다.


    내가 목표로 한 점포의 형태가 유통업계의 상식에서 너무 벗어나다 보니 직원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상품을 찾기 어렵고, 집기 어렵고, 사기 어렵게 만들라고 지시했으니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일일이 설명하고 직접 시범을 보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내 생각을 직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나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직원들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무의미하다는 것의 결론이었다. 이제 깨끗이 포기하고 정반대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바로 직원들이 스스로 하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각 직원들마다 담당 매장을 정하도록 한 뒤 상품의 구매에서 진열, 가격 책정,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과감하게 위임했다. 담당자 전원에게는 각자의 전용 예금통장을 개설해 주고 알아서 장사를 하도록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권한은 그들에게 있었다. 이것이 훗날 돈키호테의 최대 성공 동력이 된 개인 상점주 시스템의 시작이었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직원들의 움직임에 활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 돈으로 자유롭게 물건을 사들이니 이보다 더 신나고 자극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자신이 좋아서 상품을 구매한 이상 책임지고 다 판매해야 했다. 그러나 당연히 팔지 못하고 남은 제품이 생겨났고, 모두들 어떻게 하면 물건이 잘 팔릴지를 필사적으로 고민하면서 여러 아이디어나 방법을 내놓기 시작했다. 경쟁적으로 POP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압축 진열의 노하우를 습득했고 저마다 상품 구매 기술을 익혀 나갔다. 권한을 위임받는 순간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하나의 게임이 되었던 것이다. 점원들이 서로 경쟁하며 즐기듯 일을 했고,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되어 고객들까지 유쾌해졌다.


    후추점이 순조롭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나는 신중하게 2호점 준비에 착수했다. 마땅한 부지가 나오지 않아 2호점 준비가 길어지는 동안 나는 일단 착실히 내부를 다지기로 했다. 회사 내부에서 인재를 키우고 독자적인 노하우를 구축하는 수비적 자세를 취했다. 우리는 프로 유통업자를 고용하지 않는 데다 다른 업체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인재를 키우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1992~1993년에는 정보화를 통한 내부 기반 정비에도 주력했다. 점포 경영은 공격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격은 결정적일 때 해야 한다. 즉, 적절한 타이밍에 타인이 손대지 않은 분야를 공략하는 것이다. 반면에 방어 태세는 늘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수비의 기본이 잡혀 있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을 때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2호점 장소를 물색하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후추점 때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좀처럼 유망한 부지를 확보할 수 없었다. 나는 기발한 대책을 세웠다. 어느 외식 체인의 점포 구조조정이 있으리라는 소식을 접하면 그 회사를 찾아가서 철수 예정인 물건이 있으면 꼭 우리에게 넘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만 정리하고 싶은데도 계약 기간과 위약금이라는 구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업을 계속해야 하는 점포를 우리가 대신 사주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 업체로서는 단순히 상품 및 설비를 껴서 파는 방법보다 이익이 크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을 돈키호테의 독자적인 솔루션형 오픈이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돈키호테는 대형 유통 자본의 점포 개발력을 싼 가격에 인수하여 손쉽게 점포를 확장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돈키호테는 솔루션형 오픈 방식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훗날 돈키호테의 큰 경쟁력이 되었다.


    1993년 2호점의 문을 연 이후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199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점포화에 착수했다. 우리 회사는 파죽지세의 진격을 계속했다. 다음 해인 1996년에는 연간 매출이 100억 엔(약 1,032억 원)을 넘어섰고 나아가 같은 해 12월, 돈키호테는 주식 시장에 주식을 공개했다. 주식 공개에 앞서 나는 나의 마음가짐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개인적인 사욕(私慾)을 회사 전체를 위한 사욕(社慾)으로 변화시켜야 했다. 회사 자체에도 공평한 게임을 위해서 반칙을 제재할 최소한의 규칙 다섯 가지를 만들었다. 공사 혼동 금지, 직책으로 인한 편익 금지, 의무 태만 금지, 친분 남용 금지, 중상 금지.


    2000년대 초반, IT 거품이 붕괴되면서 불황과 디플레이션이 한층 심각해졌지만, 돈키호테에겐 딱 맞는 상품과 인재를 대거 확보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거품이 한껏 부풀어 오른 시기에는 일절 움직이지 않다가 거품이 꺼졌다 싶으면 토지나 물건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과감하게 공략해 나가는 방식이다. 인재를 확보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즉 취직 빙하기가 한창일 때 평소라면 좀처럼 채용하기 힘들었을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완벽의 기준을 설정하지 말라

    사건은 1999년 여름, 어떤 징조도 없이 발생했다. 그해 6월에 오픈한 고가네이 공원점이 발단이었다. 이 점포의 인근 주민들이 지나친 야간 소음이 발생한다며 밤 11시에는 가게 문을 닫아 달라고 민원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해당 지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전 점포 중 가장 짧은 영업시간을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후 도하치미타카점을 비롯한 다른 점포에서도 주민 반대 운동이 일어났고, 나아가 돈키호테 점포 오픈 자체를 반대하는 움직임까지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매스컴도 흥미 위주로 이 상황에 부채질을 해댔다. 창업 이래 최대의 경영 위기였다.


    우리는 점포를 찾는 고객만 생각하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지역 주민들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돈키호테는 정면으로 이 문제에 부딪치겠노라고 결심했고 철저한 대책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이익의 5퍼센트를 미리 환경 대응 예산으로 책정했으며 점포 주변의 청결 관리, 경비원의 순찰 관리, 차량 유도 시스템 등을 대폭 강화했다. 야간에 지역 주민들이 전구나 전지, 붕대, 체온계 등의 의료용품이나 생활용품을 긴급하게 필요로 할 때 상품 값이나 배송료 없이 3분 이내에 배달해 주는 미드나이트 헬퍼 서비스를 시행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회사는 급격한 성장으로 일종의 과도기를 겪었던 것 같다. 환경 문제라는 외적인 충격이 느슨해진 사내 분위기를 다시 조이고, 왜곡된 현상을 바로잡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회사가 결코 바꾸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

    2005년, 돈키호테는 경영 체제의 쇄신을 결정했다. 그때까지 돈키호테에는 사장인 나를 필두로 일곱 명의 임원 사이에 지위상 상하관계가 없었는데, 최초로 부사장과 전무 직위를 만들기로 했다.


    그전까지 돈키호테에는 완전히 독립된 두 재의 영업본부가 존재했다. 두 본부는 늘 비슷한 세력을 유지했고 소속 인원과 담당 점포의 수도 비슷했다. 각 본부는 독자적인 간접 부문을 거느렸다. 이런 구조를 유지했던 것은 두 본부를 의도적으로 경쟁시켜 절차탁마하자는 것이었다. 돈키호테라는 업체가 애초에 라이벌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각 영업본부의 매출이 1,000억 엔(약 1조 319억 원)을 넘어서자 이제 이 운영 체제도 제 역할을 다했다는 판단이 섰다. 급격한 성장에 따른 조직 왜곡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업본부의 몸집이 거대해지면서 규모의 이익에 오히려 역행할 우려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불식시키기 위해 영업본부를 통합하여 일원화하고 부사장에게 전두지휘를 맡기기로 했다.


    돈키호테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당사의 총 고용자 수는 어느덧 2만 명을 넘어서 이른바 대기업병의 징후들을 보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의사소통이 지연되는 상황이 일어났고, 점포 말단까지 관리감독이 미치지 않아 부정행위가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


    이에 내부 다지기 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에 처음 본격적인 기업 연수를 시작했다. 인간은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커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를 키우기보다는 일단 믿고 부탁해야 한다. 직원들이 직접 부딪히며 스스로 배워 나가는 훈련을 중시한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철저한 훈련이 이루어지는데, 기업의 규모와 업무 조직이 확대되면서 그것만으로는 현장의 흐름을 따라가기 벅찬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체 연수와 더불어 조직적인 신입 교육 등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돈키호테는 회사가 가파르게 성장하던 190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직원을 까다로운 조건으로 선발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 시대에 입사한 사원들은 잡초 집단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봤을 때 남들보다 탁월한 재능이나 특기, 실적을 갖추지는 못했다. 하디만 그렇기에 어디 두고 보자라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기지,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욕구가 더 강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큰 권한을 부여받았을 때 이들은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능력과 힘을 발휘하는 기적의 집단으로 변신했다.


    돈키호테의 또 한 가지 특유한 문화는 바로 패자 부활 제도이다. 돈키호테에는 이른바 복직 사원들이 우글우글하다. 실패와 강등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끈질기게 살아남는, 배짱 두둑한 사원일수록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로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당연히 실수할 수 있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판단을 받는 측(부하직원)은 물론 판단하는 측(상사)도 실수할 여지가 항상 있기에 패자부활 제도로 이를 보완해야 한다.


    돈키호테가 지금까지 소매 할인점으로 나 홀로 승리를 구가할 수 있었던 데는 권한위양을 전제로 한 안티 프랜차이즈주의라는 독자적 기치가 밑바탕이 되었다. 물건이 남아돌고 소비 지출의 대상이 물건에서 서비스로 이행하는 상황에서 획일적인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보다는 다양화된 개인의 니즈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가 현재 유통업의 최대 난제다. 그런 상황에서 돈키호테는 체인 방식과는 정반대로 각 점포를 철저하게 개별적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모티베이션, 즉 고객이 가게를 찾도록 만드는 동기만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적어도 우리 고객의 모티베이션은 언제나 돈키호테는 할인점이라는 원점에 있다.



    가진 운의 양은 누구나 같다, 활용하는 방법이 다를 뿐

    나는 각 사람마다 운의 총량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현실에는 운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주어진 운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른 결과의 차이에 불과하다. 즉, 운이 좋은 사람은 운을 잘 활용한 사람, 운이 나쁜 사람은 운을 잘 활용하지 못했거나 100퍼센트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이다. 그럼 운을 100퍼센트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불운을 견뎌내면 그 후에 행운이 찾아온다. 그 기회를 최대화하는 것이 먼저다. 인생이 길다 해도 큰 기회를 그리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는 죽을 둥 살 둥 한 점을 돌파한다는 마음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행운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면 그것이 또 다른 행운을 가져다준다.


    성공을 위해선 창자의 힘도 필요하다. 이 창자의 힘이란 한 사람의 삶과 경험을 통해 쌓인, 말 그대로 뱃속 깊은 곳에 내제된 힘이다. 아등바등 싸우는 힘이자 우여곡절 속에서도 끝가지 기어 올라가려는 일념이다. 인생도, 일도, 경영도 고요하게만 흘러갈 수는 없다. 고매한 이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눈앞의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렇기에 창자의 힘을 모두 끌어내어 끈기 있게 매달려야 한다. 부디 경영과 비즈니스, 나아가 인생 전체에서 챔피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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